산 행 지 : 금북정맥 04차(양곡리~곡두고개)
산 행 일 : 2014. 03. 07. ~ 08.(토)
산행코스 : 양곡리~국사봉~국수봉~차령고개~봉수산~장고개~개치고개~곡두고개 (산행거리 2km + 18km)
산행참가 : 17명.
<산행코스>
지난주 토요일 백두의 씩씩한 여전사 두 분이 유량리고개에서 덕고개까지의 땜빵 산행을 무사히 마쳤다 한다. 그동안 원격지 단독 산행을 감행한 적이 없었던 두분을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지켜보았던 백두의 남성회원들은 그 열정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한편 호위무사가 없었음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낀다. 최근들어 산행 참가 인원도 부쩍 줄어든 느낌인데, 두리두리 바쁜 일이 많은게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산행을 함께 하려는 열정만은 바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지난 산행에서 치매센터인 전의요셉의집 앞에서 산행을 마쳤는데, 이곳 양곡리 까기의 6km 남짓한 금북정맥은 군부대에 의해 막혀져 있어서, 다들 691번 지방도를 따라서라도 금북길을 걸어서 이어야 한다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정맥길을 걷는 게 더 쉬운가 아니면 차 타고 가는 게 더 쉬운가에서 차 타고 정맥길 가는 게 훨씬 어렵다는 것이 결론이고 보면, 우리가 차로 양곡교까지 이동한 것은 남들이 쉽게 하기 어려운 결행을 한 결과라고 해아 할 것이다. 차를 타던 걸어 오던 우찌 우찌 하여 양곡리 양곡교 직전에 있는 '달성학구경로당' 앞마당에 버스는 1:20 쯤에 도착하였고, 승객들은 어쩔 수 없이 한참동안 어거지로 잠을 청해 보다가 시간이 되자 일어나 산행 준비를 하고 따뜻한 버스를 벗어나 서늘한 찬바람에 몸을 맡긴다.
양곡교 직전 달성학구경로당 마당에서 산행 준비를 마치고 버스 문을 나선다.
요셉의집에서 342봉까지의 정맥길은 도상거리 기준 6.2km 정도로 제111탄약창이 자리하고 있어서 정맥길을 이어갈 수 없는 것이 아쉽지만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우리의 산하를 마음껏 걸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오늘의 금북정맥 네번째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 준비를 마치고 양곡교 앞을 출발하여 군부대 울타리가 있는 342봉을 향한다.
양곡리는 양지바른 곳에 있다고 '양지'라 불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양곡리, 상세곡리, 양지를 합하여 양곡리라 하였다. 또한 큰 바위가 있는 골짜기 마을이라 해서 암실. 암곡 또는 압실이라 하여 새주소로는 '압실길'이라 하고 있다. 이 마을도 멀지 않은 장래에 흔적도 찾아 볼 수 없게 될 듯하다. 근처에 붙어 있는 플래카드에 '이주 대책'이니, '절대 사수'니 하는 말들이 씌여 있는 것으로 보아, 공단이나 군부대 등이 들어설 모양이다. 그리 되면 진정 금북정맥길은 우회하여 라도 잊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양곡 2리 마을회관 앞 갈림길에서 우측 시멘트 포장 농로로 들어선다. 보통 택시로 이동하는 정맥꾼들도 이곳에서 하차하여 걸어서 342봉을 향하게 된다.
양곡 2리 마을회관 앞 갈림길에서 우측 실개천 옆으로 이어진 시멘트 포장 농로를 따라 오르며 명산사 갈림길도 지나 도로 끝지점 까지 온다. 시멘트포장 농로 끝 지점에서 산길로 접어든다.
숲길을 접어들자 묵밭이 나오는데.. 우측 가장자리를 따라 오르면 산길 오름길이 이어지고, 제법 가파른 산길을 지그제그로 올라간다.
군부대 철책이 나타나고, 342봉까지 철책을 따라 진행한 후, 좌틀하여 금북능선을 따른다.
군부대 철책을 따라 올라 가는데, 철책 안쪽에서 군인 두명이 나타나 우리에게 빨리 돌아 내려가라 한다. 우리는 등산객으로 잠시 후면 좌측 능선으로 갈 것이라 하고는 철책 안쪽에 진지가 있는 342봉을 찾아 오르는데, 군인들의 후레쉬 불빛으로 인해 지형지물을 가늠키가 쉽지 않다. 잠시 혼선을 격은 후에 겨우 342봉 쯤으로 보이는 능선 위에 올라서고 우측으로 희미하게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본격적인 금북정맥 산행을 시작한다. 밝은 낮이 였으면 길 찾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을 듯 하지만, 깜깜한 밤중에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해 보이는 곳이다. 342봉 쯤에서 좌측으로 이어진 금북능선길도 낙엽이 많이 쌓여 있어서 등로 구분이 쉽지 않고 표지기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군부대 벙커가 있는 356봉을 지난다.
낙엽이 쌓여 푹신한 흙길에 바위들이 보이는 봉우리를 지나고,
새내고개라 불리는 안부를 지난다.
고개 우측에 쇠내골이 있어서 새내고개라 부른다고 한다. 쇠내골은 천안시 광덕면 원덕리로 옛날에 쇠가 많이 나는 곳이여서 쇠내라 부른다고 한다. 그리고 좌측은 잠시 전에 지나온 양곡 2리 마을회관에서 좌측 길로 직진해서 올라오면 이곳에 닿는다고 한다. 잠시후 시멘트 포장 임도로 내려서서 좌측으로 진행한다.
123번 송전탑까지 임도를 따라 진행해도 되지만, 도중에 좌측 희미한 숲길로 들어서면 122번 송전탑 아래를 지나게 된다.
123번 송전탑부터 서쪽 방향으로 122번, 121번으로 이어진다. 이내 다시 임도로 내려서서 좌측방향으로 임도를 따르다가, 123번 송전탑 직전에 우측 숲길로 들어선다.
여러개의 봉우리와 좌틀, 우틀을 반복하는 희미한 등로의 흔적을 쫒다 보면, 국사봉 갈림길(도재고개)에 도착하고, 함께 오던 후미그룹들은 우틀하여 금북길을 이어가고 몇몇 분만 직진방향의 좌측 등로를 따라 국사봉을 향한다. 국사봉 오르는 도중에 국사봉을 찍고 내려오는 선두그룹과 조우하고, 잠시 후 국사봉 정상에 도착한다. 국사봉 인증.
금북능선 국사봉은 3개 시군의 경계를 이루는 지점으로, 우측은 천안시 광덕면이고, 좌측은 세종시 전의면에서 공주시 정안면으로 바뀐다.
다시 국사봉 갈림길(되재)로 돌아 나와 좌측의 가야 할 금북길로 접어든다.
<되재> 고개길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우측 쇠내골(천안시 광덕면 원덕리) 골짜리를 따라 끝까지 올라오면 이곳쯤이 되고, 좌측으로 내려가면 세종시 전의면 금사리가 나온다. <금사리> 세종시 전의면 금사리(金沙里)는 옛날 분청사기와 백자를 생산하던 지역으로 지금도 마을 곳곳에서 사기를 굽던 가마터와 사금파리 등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금사리란 마을 지명은 지금의 금사저수지 부근에 금광(金鑛)이 있어 금이 많이 나왔으며, 금성산 기슭 사기소의 사(沙)를 따서 금사리라 하였다고 한다. 417봉에서 우틀하여 진행하면,
427봉 헬기장을 건성으로 지나친다.
우측으로 정안면 정안산업단지가 내려다 보이고,
우측으로는 좀전에 지나온 전의면 방향의 금북능선이 보인다.
427봉 헬기장 내림길에 우측으로 임도를 만나고, 멀리 전의면 방향(북동방향)으로 시야가 트인다.
임도에 내려서고,
가야할 412봉으로 이어진 임도를 따른다.
임도를 따라 412봉을 우회하고, 임도가 좌틀하는 지점에서 우측 숲길로 들어서는데, 좌측으로 송전탑이 지근거리에 있다.
412봉 내림길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가야 할 금북능선의 봉우리들이 어렴풋이 가늠된다.
다시 임도로 내려섯다가는,
국수봉을 가기위해 임도를 뒤로하고 우측의 조그만 봉우리로 오른다.
돌아본 412봉 방향.
잠시 후 국수봉(382m)에 도착하여 인증을 남긴다.
지나온 금북능선 방향으로 412봉, 421봉, 국사봉이 나란히 보인다.
금북정맥 능선을 따라 이어진 송전탑이 마치 등줄기에 침을 꽂아 놓은 듯하여 보기가 좋지 않다. 또한 송전탑 및 송전선 건설과 관리를 위해 무분별한 임도 개설과 방치가 산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보아와서 그런지 임도개설은 최소한으로 자제되길 기대해 본다.
국수봉을 뒤로하고 잠시 내려서면 밤나무 단지가 나타나고, 능선 등로에는 투박하게 생긴 삼각점 모양의 시멘트 구조물이 있다.
<밤(栗)> 이곳은 예로부터 토질이 밤과 잘 맞아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밤 생산지인 공주시 정안면 지역이다. 공주는 전체 면적의 70% 이상이 임야로, 일찍부터 임야를 이용한 농가소득에 관심을 가져왔다. 전국 밤 생산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밤의 주산지이다. 공주 밤은 밤알이 다소 작지만 단단하고 고소하며 단맛이 많다. 우리나라 주요 밤 산지로는 공주, 산청, 하동, 함양, 광양 등이 알려져 있지만, 그중에서도 공주의 정안 밤을 최고로 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밤은 예로부터 위장을 튼튼하게 해주는 성분이 들어 생으로, 또는 찌거나 조리해서 먹게 되면 위장의 기능이 활발해져 소화력이 왕성해 진다고 한다. 또한 근육과 뼈를 보하고 튼튼하게 하는 성분이 많아, 꾸준히 먹기만 해도 근 골격이 강해지고 하체가 튼튼해진다고 한다. 그리고, 비타민'B1'이 다른 식품에 비해 4배이상 함유되어 있어, 피부를 윤기 있게 가꿔주고 노화를 예방하고, 머리카락까지 검어지며, 머릿결이 부드러워 진다고 하니 남성뿐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더없이 좋은 식품이다. 특히 이뇨작용에 효과가 있어서 신장을 강화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며, 설사가 심할 때는 구운 알밤을 먹으면 속이 따뜻해지면서 속을 편안하게 해 준다고 한다. 가야할 차령고개 방향의 금북정맥을 따라 거대한 송전선로와 밤나무밭이 이어져 있다.
돌아본 국수봉 방향.
돌아본 쇠내골 끝자락 위로 아침해가 솟는다.
가야할 342봉 방향으로 이어진 금북능선.
좌측 정안면 사현리 방향 골짜기.
돌아본 쇠내골 건너편 군부대가 자리한 능선 위로 아침햇살이 넘어온다.
능선 위로 빠꼼히 모습을 드러내는 햇살.
당겨본 동쪽 하늘.
이제 꽃샘추위의 냉기를 몰아낼 태양이 떠 올랐으니, 조금은 느긋한 마음으로 아침 산책을 하듯 여유롭게 금북길을 이어간다.
좌측으로 23번 국도와 천안논산간 고속도로가 보이고, 더 멀리로 무성지맥 마루금이 아스라이 조망된다.
당겨본 천안논산간 고속도로와 무성지맥능선.
돌아본 국수봉 방향.
가야 할 342봉을 향한다.
지도상에 118번 송전탑이라 표시된 곳을 지나며,
돌아본 303봉 방향.
또 임도를 만나 342봉을 향한다.
342봉을 향해 좌측 숲으로 든다.
342봉 정상을 지나고,
342봉 내림길은 조금 가파르게 이어진다.
우측 아래로 임도가 내려다 보이고,
어느새 차령고개 너머로 봉수산이 성큼 다가와 있다.
다시 임도로 내려 셨다가 다시 우측 봉우리로 오르고,
또다시 임도로 내려 섰다가 이번에는 좌측 숲으로 든다.
조그만 봉우리를 넘으니 안부 직전에 묘지를 지나 다시 봉우리로 오르면,
우측 아래로 가족묘지가 있는 곳에서 쇠내골 방향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116번 송전탑 아래를 통과하여,
임도로 내려섰다가 다시 좌측 숲으로 들어가면,
이내 차령고개가 내려다 보이고,
차령고개에 도착한다.
차령고개 날머리.
<차령(車嶺) 고개(323m)> 천안시 광덕면 원덕리와 공주시 정안면 인풍리의 경계를 이루며, 산경표와 대동여지도에도 이름이 등재되어 있는 족보 있는 고개로, 한양에서 하삼도(충청, 전라, 경상도)로 가는 삼남대로상의 관문이다. 대동여지도에 '공주와 천안의 일직선상에 있는 고개가 차령이요, 예산으로는 차유령(차동고개), 온양으로는 각흘고개를 넘게 되어 있다'라고 적고 있다. 삼남대로라 함은 한양에서 수원 천안 공주 광주를 거쳐 해남까지 연결되는 970리 길을 말하며, 영남대로는 상주 대구 밀양으로 해서 동래까지를, 관동대로는 대관령을 넘어 삼척 울진 평해까지 이어가고, 압록강변 의주까지 연결되는 의주대로 등 10개 대로가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훈요10조에서 '차현이남(車峴以南 공주강외(公州江外)는 산형과 지세가 모두 배역하였으니 인심도 역시 그러하다. 차현은 차령고개를 말함이고 공주강은 금강을 말함이니 차령고개 이남 사람들은 나라에 등용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왕건이 백제 일대의 공주 사람들에 대하여 거부감을 드러낸 이유는 그 당시 천안지역을 거점으로 한 왕건은 견훤의 후백제를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었는데, 공주와 청주의 지방 호족들은 고려 개국 이후까지도 고개를 숙이려 하지 않고, 왕건의 군사들을 괴롭혔던 사실에 기인한다. 이처럼 조그만 정맥 능선길 하나도 역사적인 중요한 판가름이 되기도 한다. 훈요십조(訓要十條)의 관련 내용은 아래와 같다. "차현(車峴) 이남 공주(公州)강 바깥은 산형과 지세가 모두 반대 방향으로 뻗었고 따라서 인심도 그러하니, 그 아래 있는 주군 사람들이 국사를 참여하거나 왕후, 국척들과 혼인을 하여 나라의 정권을 잡게 되면 혹은 국가에 변란을 일으킬 것이요, 혹은 백제를 통합한 원한을 품고 왕실을 침범하여 난을 일으킬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지방 사람들로서 일찍이 관가의 노비나 진(津), 역의 잡척(雜尺)에 속하였던 자들이 혹 세력가들에 투탁하여 자기 신분을 고치거나 혹은 왕후 궁중에 아부하여 간교한 말로써 정치를 어지럽게 하고 또 그리함으로써 재변을 초래하는 자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방 사람들은 비록 양민(良民)일지라도 관직을 주어 정치에 참여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라!" 차령고개 인증.
차령(車嶺)고개는 원터고개라고도 부른다. 원래는 높은 고개라는 뜻의 수리고개였을 것이라고 하며, 수리는 수레로 바뀌고 수레의 한자어인 차령(車嶺)으로 바뀌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공주시 관광안내도.
차령고개 들머리.
들머리 계단을 오르면 정안면 인풍리에서 세운 '통일시'비가 서 있다.
짓다만 휴게소건물 옥상에서 바라본 휴계소 모습.
<옛 영화를 잊어버린 차령고개 23번 국도> 차령고개 정상에는 엄청 크게 짓다가 이 길 아래로 차령터널이 뚫리는 바람에 중단되어 흉물처럼 버려진 휴게소건물이 있고, 휴계소 옆으로는 전원주택단지가 분양되고 있다. 세상은 참으로 뜻대로 되지 않는 듯하다. 휴게소 시설을 확장 투자하려고 할때에는 설마 터널이 뚫릴 것을 예상조차 못했을 터이니..! 공주시 방향.
천안시 방향.
휴계소 폭포 앞에서 사과 반쪽씩을 나눠먹고 봉수산을 향한다. 좌측 건물은 '용기순화센터'라고 표시된 것으로 보아 재활용 센터가 아닌가 몰라!
가파른 비탈길을 조금 올라가자 임도가 나타나고,
우측의 임도를 따라도 되지만, 여기서 아침 식사를 예정하고 있어서 좌측 언덕으로 오른다.
누구에게는 새해 해돋이 장소이지만, 우리에게는 아침식사 장소인 망배단이 나타난다.
337봉에 자리한 망배단은 정안 면민들의 신년 해맞이 장소다. 후미가 도착하자 먼저 와서 식사를 마친 분들은 서둘러 자리를 뜬다.
정안면 인풍리 방향 조망.
면민들의 해맞이 장소로 사용되는 망배단에서 인증을 하고,
차령고개 저편으로 아침에 지나온 금북능선의 봉우리들이 조망된다.
망배단 뒤켠에 337봉 삼각점이 있고, 삼각점 옆으로 이어진 임도를 따라 봉수산을 향한다.
우전방 광덕면 방향 조망.
봉수산 오름길에 만난 바위지대. 육산에서 이런 바위들을 만나면 왠지 반가운 느낌도 든다.
금방이라도 굴러 내려올 듯한 펭귄 모양의 바위 앞을 지나,
돌아본 인풍리 방향.
완만한 오름길을 잠시 더 오르면,
봉수산 정상 직전 묘지가 나오며 맥길은 직좌틀하여 급경사 내림길로 이어지고, 봉수산 정상은 우측 오름길로 10여 미터 지점에 있다.
지도상에는 봉수산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곳이 쌍령산이라 안내되어 있다.
<쌍령산(雙領山 365m)> 공주시 정안면 인풍리와 천안시 광덕면 원덕리 무학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높이는 360m 남짓되는 산인데 높은 고개가 쌍으로 되어 있어서 쌍령산이라 부른다. 조선시대 때 공주 이남에 있는 여러 고을의 조세와 진상 물품이 모두 이 고개를 통하여 서울과 아산의 공세포(貢稅浦)로 운반되었다. 조선시대 때 봉수대(烽燧臺)가 있어서 남쪽으로는 공주시 고등산 봉수와, 북쪽으로는 천안시 대학산 봉수에 응하였던 곳이다. 조선시대 문종 때 의적 안수가 이 곳을 지나는 조세와 봉물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며 백성들의 호응을 크게 받았으나 끝내는 유의신에게 잡혀 죽으며 마지막으로 남긴 말인 "벼슬아치가 딱한 게 아니라 벼슬아치에 따르는 그 벼슬아치가 딱하다"라는 고언(苦言)은 그를 의적이라고 호칭하게 하는 좋은 말이 되었다. 조선시대 때는 한양으로 오르는 큰길이었고 경천(敬天)의 상여가 지날 때 양반의 교자도 멈추고 상여에게 예를 올려야 했던 고개가 쌍령고개다. 광덕의 호두나무의 토질(地質)을 만들어 준 것도 이곳이며, 중들이 이곳에서만 호랑이를 두려워했다 하는데, 이곳엔 중만 해치는 호랑이가 있었다 한다. 봉수산 정상 인증은 돌탑이 대신한다.
<봉수산=쌍령산> 안내판에는 “공주시와 천안시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324m 봉화산 정상부에 자리잡고 있는 봉수대이다. 이 봉수대는 비교적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 멀리 월성산 봉수대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이 봉수대에 대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쌍령산 봉수대는 남쪽으로는 고등산 봉수대에 응하고. 북쪽으로는 천안의 대학산 봉수대에 이어진다....”라고 적고 있다. 특히 이곳은 알바를 조심해야 할 곳이다. 봉수산 표지판 뒤로 길이 뚜렷하게 나있어서 신경을 쓰지 않고 무심코 걸으면 그리 갈 수 있는데, 다시 돌아와 봉수대 표시판 아래 묘지 옆으로 돌아나가야 한다. 실제로 두 분이 이곳에서 알바를 갔다가 전화를 받고서야 다시 돌아와 정상 금북길로 복귀했다. 다시 묘지로 돌아나와 우측의 내림길로 금북길을 이어간다.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인풍교 방향 조망. 뒤쪽 희미한 능선이 무성지맥이다.
정안IC 방향으로 휘어져 가는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급경사 내림길을 내려오니 다시 임도가 나타난다.
마중 나간 손총무님이 알바 다녀오신 분들과 함께 오고 있다.
산행은 역시 알바라는 것이 있어서 참다운 맛이 있는 것!
송전탑을 우측으로 돌아가니,
좌측으로 태화사라는 사찰 건물로 추정되는 눈에 띄는 건물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프린세스GC가 내려다 보인다.
프린세스GC 조망.
인재원(이수원)고개 도착.
<인제원(仁濟院) 고개(260m)> 고산자가 만든 대동여지도에도 표기되어 있는 인제원(仁濟院)이라는 이름에서 조선시대 이곳에 숙박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옛날에는 쌍령고개라 불렸다고 한다. 양쪽에 높은 봉우리가 있어 쌍령이라고도 하고, 고개가 두 개 있어서 쌍령이라고도 한다. 인제원고개는 공주에서 천안으로 가는 고개로 차령은 관로(官路)였고 쌍령은 민로(民路)였다는데, 인제원고개가 쌍령인듯하다. 이곳에는 조선시대에 이곳을 지나가는 조세를 털어 빈민을 구제했다는 의적 안수의 이야기도 남아 있는 곳이다. 차령고개가 천안시 원덕리에서 공주시로 넘어서면서 만나는 인풍리는 인제원과 풍정마을의 이름을 딴 지명이라고 한다. 인풍리의 '시나무니'는 신암마을이라고도 하는데, 인제원을 경영하던 신암사가 있던 곳이고, 그 아래쪽의 팔풍정마을은 춘양전에도 나올 정도로 인풍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고개 우측 방향.
김해 백두산악회 리본이 나뭇가지에 걸려있는데, 이름에 '백두'란 단어만 들어 있어도 왠지 남 같지가 않다.
우측 광덕면 원덕리 방향.
잠시 편안한 길이 이어지더니,
골프장에서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 표지판이 있는 안부를 지나는데, 이 안부 아래로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차령터널이 지난다.
골프장 안내문. 전화를 걸어볼까 하다가 그냥 간다. 전화비가 아까와서..ㅋㅋ
묘지를 지나며 375봉 급경사 오름길이 시작되고,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와 잠시 쉼을 한다.
다시 묘지를 지나고,
가파른 오름길 끝에 375봉 인듯한 봉우리에 올랐는데, 그저그런 특징 없는 봉우리일 뿐이다. 무지 힘들게 오르며, 뭔가 그럴듯한 장면을 떠올리며 걸었는데...ㅉㅉ
그냥 375봉을 지나쳐 잠시 내림길로 접어들었다가,
고갯마루 임도길 비슷한 곳을 통과하고,
좌측에 송전탑이 있는 430봉쯤에 도착한다.
후미를 기다리며 총무님께서 힘들게 지고 온 감을 맛나게 나눠 먹고는 430봉을 뒤로한다.
모처럼 편안한 등로가 이어지더니,
지도상 440봉쯤에 도착하고,
임도를 지나,
또 다른 430봉쯤에서 직좌틀하여 내려서면,
널찍한 임도를 가로지르는데, 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가면 광덕면 원덕리 밤나무골로 이어진다.
잠시 후 우측으로 태봉산 방향 지능선이 분기하는 봉우리에 도착하면, 가야 할 금북정맥은 직좌틀하여 이어진다.
좌측 공주시 정안면 태성리 방향으로 시야가 트인다.
돌아본 금북길.
편안한 능선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가야 할 금북능선도 가늠해 보고,
조그만 언덕 정도의 봉우리들을 지나면,
좌측으로 송전탑이 보이며, 다시 임도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한다.
장고개쯤을 지난다.
<장고개> 좌측 정안면 태성리 윗개치와 우측 광덕면 지장리 석지골을 이어주는 고개다. 석지골고개라고도 하며, 석지골 마을은 돌이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또한 광덕면 지장리 사람들은 장티고개. 늦은목고개라고도 하며, 공주시 정안면 사람들이 온양장을 보러 다니기 위해 넘나들던 고개라고 한다. 지나온 금북정맥 봉우리들을 가늠해 보며,
372봉 오름길을 오른다.
돌아본 금북길.
가파른 오름길 후에 372봉에 도착한다.
372봉에 도착하는 회장님.
372봉을 지나자 편안한 금북능선이 이어지며,
우측 골짜기에 인가가 보이는데 사진으로는 잘 보이지를 않는다.
323봉쯤을 지나니,
이내 좌측으로 채석장이 보이는 개치고개가 나타난다.
<개치고개> 광덕면 지장리 석지골 남쪽에 있는 고개로, 고갯길이 뚜렷한 것이 아직도 사람들이 넘나들고 있는 듯이 보인다. 정안면 월산리에 개치마을이 있어서 개치고개라는 이름이 붙여진 듯하며, 이 고개 또한 공주 쪽에서 온양으로 통하는 큰길이었다고 한다. 좌측 정안면 월산리 개티골 방향.
좌측 채석장 절개지 방향으로 가느다란 로프로 위험지역을 표시해 놓았다. 개치고개를 지나 420봉 오름길 또한 급경사다.
잠시의 급경사 오름길 끝에 등로가 완만해지더니,
420.9봉에 도착한다.
420봉에서의 달콤한 휴식을 뒤로하면,
우측 지장리 방향으로 교회건물 인듯한 하얀 건물이 보인다.
당겨본 교회건물.
안부 사거리를 지나고,
묘지도 지나다가,
돌아본 가파른 480봉 오름길.
좌측 정안면 문천리 방향 조망.
코가 닿을 듯한 가파른 오름길이 이어진 후,
좌측 지장리 방향 조망.
육산 구간에서 모처럼 만에 만난 바위 쉼터.
우측 지장리 방향.
오름길 경사가 완만해지더니,
별 특징 없는 480봉 정상에 도착한다.
476봉 정상에서는 좌틀하여 진행되고,
다시 금북길은 잠시 동안 편안하게 이어지며,
우측 전방으로 광덕산 능선이 조망되기 시작한다.
가야 할 440봉 방향 금북능선.
좌측 전망으로 광덕면 지장리 절더골이 내려다 보인다.
금북길이 업다운이 수시로 바뀌어 편안한 길이 한동안 이어지더니,
앞쪽에 커다란 봉우리가 다시 나타난다.
440봉 오름길에서는 암릉길도 지난다.
440봉 헬기장에 도착하고,
좌측으로는 무성지맥을 넘어 유구읍으로 이어지는 629번 지방도가 보인다.
440봉을 지나며 금북길은 완연한 내림길로 바뀌고,
395봉쯤도 그냥 스쳐 지나가니,
앞쪽으로 다음 구간 첫번째 오름길이 될 553봉이 떡~ 버티고 섰다.
오늘의 종착지인 곡두고개에 도착하여 정맥산행을 마감하고,
<곡두고개(曲頭峙)> 이 재 아래로는 천안시와 공주시를 잇는 629번 지방도 곡두터널이 있다. 천안시 광덕면 광덕리 안심터에서 공주시 정안면 산성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산성리에 있는 주막거리 북쪽의 높은 고개로, 늦은목고개 위쪽 꼭대기가 되는데, 주막거리에서 천안군 광덕면 안심터로 넘어가는 고개다. 고개가 높은 곳에 있다 해서 꼭두재 또는 곡두티라 부른다. 그리고 '고갯길이 구부러져서 곡두재라고 불렀다'는 유래도 있다.
좌측 정안면 산성리 방향으로 내려선다.
곡두터널로 오고있는 629번 지방도에 대기중인 버스가 보인다.
곡두터널 입구에 도착하고,
곡두터널 입구 방향.
조류독감 AI 방역으로 인해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버스가 보인다.
생각보다 쬐끔 더 힘이 들었던 금북정맥 네번째 산행을 마무리한다.
정안면 산성리 방향.
여유로운 산행을 즐기느라 조금 지체된 분들도 도착하고,
쉽지 않은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당겨본 산성리 방향.
버스에 올라 광덕사 앞 식당으로 향한다.
천안에서 제일 훌륭한 식당이라는 "좋은날에..."에서,
자연산 능이버섯 전골로 산행의 어려움을 씻는다.
광덕사 입구.
태화산 광덕사 일주문.
광덕호두 유래.
늘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는 박기사님.
광덕사 경내.
광덕사 호두나무.
광덕산 대웅전.
석사자상.
산신각이 있는 곳으로,
양평동에서 영등포 신년하례회를 이제서야..ㅋㅋ
자주 뵙지 못했던 얼굴들도 보인다. 산에서나 평지에서나 늘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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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즐감 했습니다.감사드립니다.
아침먹고나서 회장님과 복순형수님 알바, 그 이후로 무쟈게 오르락 내리락. 암튼 짧지만 의외로 힘든구간이었습니다.
송전답이 무척 많았던 기억
일찍 내려와 식당에서 엄청난 음식을 흡입을 하는걸 보고 놀란 송사장님!!!!!
개인적으로 좋은일이 있어 도토리묵을 언니들에게 준것
그 전 주에 땜방을 해서 함께 할수 있는것에 넘 감사하며 즐겁게 산행을 했던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