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쓰레기 분리 거들자 아파트가 달라졌다
엄마들과 자녀들이 재활용품 분리 봉사를 시작하자 쓰레기 분리배출이 크게 개선됐고 아파트 문화까지 바뀌었다.
서울 성동구 금호동 아파트 공동체 ‘그린자이’
서울 성동구 금호동의 한 아파트단지에는 탄소중립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모임이 있다. 모임명은 ‘그린자이(Green Xi)’. 2021년 초등학생 자녀를 둔 주부 다섯 명이 단지 내 쓰레기 분리배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만들었다. 2023년으로 활동 3년 차인 그린자이는 회원이 약 40명이다. 이중 절반가량은 모임에 참여하는 가정의 자녀들이다.
이 단지는 20층 아파트 네 개 동이 모여 401세대를 이루고 있는데 미취학·초등학생 자녀를 둔 집이 많다. 그린자이를 만드는 데 앞장선 엄소예(45, 금호자이1차아파트 공동체활성화단체 회장) 씨는 “엄마들과 아이들이 재활용품 분리 봉사를 시작하자 쓰레기 분리배출이 크게 개선됐고 아파트 문화까지 바뀌었다”며 “2022년부터는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제로웨이스트(zero waste, 쓰레기 최소화)’ 확산 운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탄소중립을 위해 그린자이는 ▲제로웨이스트 캠페인 ▲플로깅(Plogging, 조깅하며 쓰레기 줍기) ▲우유팩-종량제 봉투 교환 캠페인 ▲지방자치단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사업 ▲어린이 환경 그림 그리기 행사 ▲그린리더(green leader) 활동 ▲지구의 날(4월 22일) 소등행사 ▲개발도상국 태권도복 기부 등을 하고 있다. 제로웨이스트 캠페인은 텀블러·장바구니 사용, 플라스틱 빨대 사용 자제, 손수건 사용, 개인용기에 음식 포장하기처럼 생활 속 쓰레기 줄이기 운동이다.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실생활에서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탄소중립 실천법이다. 그린자이는 “일상에서 작은 노력이 모여 탄소중립에 한 걸음씩 다가간다”고 말한다.
플로깅은 산책하며 쓰레기를 줍는 활동이다. 아파트단지 내에서 매달 1회 정기적으로 한다. 플로깅은 자녀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활동이다. 플로깅에는 집게와 장갑, 쓰레기를 담을 봉투만 있으면 된다. 수거를 마친 쓰레기는 한데 모아 분리수거장에서 처리한다. 엄소예 씨는 “플로깅 활동에 자주 참여하는 학생들은 누군가 놀이터에 쓰레기를 버리는 모습을 보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아달라’고 말한다”고 했다.
지구의 날(4월 22일)을 맞아 5분간 소등행사를 했다.
헹군 우유팩을 펼쳐 한데 모으고 있다.
엄소예 씨는 태권도복 30벌을 모아 기부했다. 사진 엄소예
우유팩 15개와 종량제 봉투 교환
우유팩-종량제 봉투 교환 캠페인은 우유팩을 물로 헹군 후 넓게 펼친 뒤 말려서 모아 종량제 봉투(10L)와 바꿔주는 활동(그린스토어)이다. 그린자이는 여기에 필요한 물품을 지자체 ESG 지원 사업을 통해 제공받고 있다. 우유팩 15개를 종량제 봉투 한 장과 교환할 수 있다. 이렇게 모인 우유팩은 한 달에 500~600장 된다. 많을 때는 1000장 가까이 모인다고 한다. 우유팩은 다시 두루마리휴지로 재탄생한다. 연말에는 이렇게 모은 두루마리휴지를 복지시설에 기부한다. 또 버려지는 세제용기를 줄이기 위해 용기를 갖고 오면 세제도 채워준다. 가격은 500㎖당 1000원(시중가 약 3000원)이다.
그린리더 활동은 단지 내 주민들이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탄소중립 방법에 대해 생각을 내고 의견을 교환하는 시간이다. 환경보호 프로그램에 참여한 회원은 새로 얻은 지식을 주민들에게 공유도 한다.
엄소예 씨는 자녀들이 더는 입지 못하는 태권도복도 활용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공적개발원조(ODA) 수혜국에 태권도복을 기증하는 ‘지구촌 태권도복 나눠입기 운동’을 알게 됐다. 자녀들이 입었던 태권도복만으로는 부족해 아이들이 다니는 태권도장에 취지를 설명했다. 이렇게 주인 없는 태권도복을 한데 모아 태권도진흥재단에 30벌 기부했다.
이경훈 기자
사진 C영상미디어
탄소중립, 쉬운 것부터 실천하세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엄소예 씨는 ‘2022년 탄소중립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이웃’ 43명에 선정됐다. 엄 씨가 처음부터 환경문제와 탄소중립에 관심을 둔 것은 아니었다. 미래세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실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실천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환경분야 전공자는 아니지만 2021년부터는 마음 맞는 단지 내 주민들과 함께 본격적인 탄소중립·친환경 활동을 하고 있다.
환경을 위해 분리배출 해야 한다는 점을 알면서도 실천은 어렵다.
반드시 ‘씻고 분리’해야 한다. 우유팩은 반드시 헹궈야 한다. 페트병은 비닐을 벗겨낸 후 배출해야 한다. 분리배출이 복잡하고 어려워서 정작 하고 싶어도 방법을 몰라서 못하는 경우가 많다. 쉽게 할 수 있는 것부터 실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렵게 생각하면 안된다.
분리배출에 따르는 귀찮음을 극복하는 마음가짐 같은 것이 있나?
‘미래세대를 위한다’는 마음을 가지면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각자 할 수 있는 작은 노력을 한다면 더 좋은 세상이 되리라 믿는다.
모임에 아이들의 비중이 높다.
우리 모임의 가장 큰 자랑이기도 하다. 어른보다 아이들이 환경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더 잘 아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은 배운 대로 하기 때문이다. 외식을 하더라도 ‘배달주문을 하면 쓰레기가 많이 나온다’며 배달 대신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자고 말하기도 한다. 또 모르는 사람이 아무 곳에나 쓰레기를 버리면 그걸 보고도 ‘쓰레기 버리지 말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엄소예 씨는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기)운동’처럼 옷이나 신발 같은 물품을 교환하며 나눠 쓰는 문화가 다시 활성화돼야 한다”며 “옷을 얻어 입는 게 창피할 수도 있지만 문화로 자리잡으면 ‘당연한 것’이 돼 자랑스러운 문화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엄 씨는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하루 쓰레기 배출량 기록하기’를 추천했다. 자신이 하루 동안 배출한 쓰레기를 적고 이를 줄여가고 있는지 점검하는 방식이다. 비타민을 먹었다면 비타민 포장지까지 일일이 적은 후 대안을 찾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