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8일) 오전을뜨겁게 달군 뉴스는 지난 26일 송파구에서 발생한 세 모녀의 동반 자살 사건이었다. 60대의 어머니가 30대인 두 딸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족이었다. 어머니는 롯데리아에서 '알바'를 뛰었고, 두 딸들은 신용불량자였으며, 이 중 큰 딸은 고혈압과 당뇨로 앓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한달 전 다쳐 일을 그만 두면서 수입이 끊기자 세 모녀가 방안에 번개탄을 피워 놓고 동반 자살을 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이들은 어떤 복지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이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한 이유에 대해 홍순화 송파구 복지정책과장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동주민센터에서 기초수급자 발굴을 하는데 박씨 모녀가 직접 신청을 하지 않았고 주변에서 이들에게 지원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한 차례도 들어 온 적이 없다"고 밝혔다. 또 가스나 전기요금 체납 내역을 관련 기관으로부터 전달받아 도움이 필요한 가구를 먼저 찾아내 긴급구호 등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세 모녀가 지금까지 한 차례도 가스·전기요금을 체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조차 불가능했다고 한다. 이들 모녀는 세상을 떠나면서도 노란 봉투에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 이라는 메모와 함께 현금 70만 원을 남겼다.
세 모녀의 비극은 사회안전망의 한계와 복지 사각지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본인들이 '신청'을 하지 않았고, 장애인, 노인, 한부모 가정 등 전형적인 취약계층으로 분류되지 않는다면, 이들처럼 정말 절실한 상황인데도 어떠한 공적 도움도 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이들 모녀의 소식을 접하고 누리꾼들 사이에선 "길에서 넘어지는 작은 사고로 세 모녀가 스스로 삶을 끝내야 했다니, 21세기 대한민국 맞냐"는 지탄이 쏟아지고 있다.
이들 모녀의 안타까움 소식을 접하면서 "어떤 노동도, 어떤 심사도, 어떤 의무도 없이 국가가 일정한 소득을 보장하는" 기본소득제도에 대한 논의가 떠올랐다. 노인 기초연금마저 재원을 이유로 공약을 파기한 박근혜 정부에서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유럽과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에서는 이미 몇년 전부터 뜨거운 이슈다. 특히 스위스에서는 지난 해 모든 성인에게 1인당 한 달에 300만 원(2500스위스프랑) 정도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법안이 의회에 제출됐다. 스위스는 올해 이 법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통과되면 스위스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 정도가 여기에 소요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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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모녀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다,
월세 및 공과금 70만원이 든 봉투와 ‘죄송하다’는 글을 남기고 송파의 어느 지하 셋방에서 함께 목숨을 끊은 60대 어머니와 30대 두 딸의 사연이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부르고 있다.
12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죽음 이후 당뇨병과 고혈압에도 의료비 부담으로 투병을 포기한 큰딸,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도왔지만 결국 카드빚에 신용불량자가 된 둘째 딸, 식당일을 하며 생계를 책임지던 어머니. 긴 겨울의 끝자락, 일하고 돌아오던 길에 넘어져 다친 어머니는 결국 식당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마침내 세 모녀는 동반자살로 실낱같이 이어오던 생존의 끈을 놓았다.
사람들이 이들 모녀의 죽음에 보이는 슬픔과 안타까움에는 죽음이라는 극단적 선택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착하고 바르게 살고자 애썼던 이들에 대한 연민과 함께 한국 사회의 빈곤층이 처한 처절한 현실의 모순이 오롯이 담겨있다.
이들 세 모녀는 기초생활보장제도나 의료급여제도, 긴급지원 복지제도 등 가장 기초적인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이들은 복지제도에 손을 벌리지 못했고 스스로 힘으로 생계를 꾸렸던 극심한 근로빈곤층이었다. 우리 사회의 복지제도는 ‘신청주의’를 기본으로 하는데, 이들처럼 일을 함으로써 일정 소득을 가진 사람들은 오히려 철저히 복지 사각지대에 처하게 되는 모순에 놓인다. 가난을 게으름 혹은 어떤 특정요인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보는 사회적 인식이 팽배한 사회에서 이를 드러내야만 하는 ‘선택주의’는 사회적 배제를 스스로 감수하는 선택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비극을 초래한 또 하나의 원인이다. 일을 해도, 하지 않아도 극단적 가난과 사회적 배제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다.
문제는 ‘자살의 구조화’다. 생계, 교육, 질병이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 맡겨져 있는 사회구조가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가족 동반자살이라는 특이양상의 구조적 원인이라는 것이다. 특히 죽음의 삼각형이라 불리는 ‘실직자/저소득 자영업자/저임금 비정규직’의 3단계 구조가 계속 증대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이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IMF 이후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진행된 노동유연화와 근로빈곤층의 빠른 증가율이 높은 자살률, 동반자살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1961년부터 운영된 생활보호법을 대체하여 1999년 제정된 기초생활보장법은 여러 복지제도 중에서 우리 사회의 마지막 사회안전망으로 불려왔다. 그러나 근로빈곤층의 배제 등 넓은 사각지대, 낮은 보장 수준과 함께 비현실적인 최저생계비와 가난한 이들을 서로 옭아매게 만드는 부양의무자 기준 등 대표적 독소조항 때문에 사회안전망 구실을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박근혜 정부가 2013년에 발표한 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안은 오히려 근로능력가구 배제와 권리성 급여의 훼손 가능성을 더 넓혀 놓았다. 박근혜 정부의 개별급여 도입(안)은 빈곤이 별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가족 내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임을 도외시하고 수급가구의 권리를 쪼개 개별 수급자를 늘리는 수치놀음이나 하겠다는 꼼수에 불과하다.
이미 비수급·빈곤층은 2013년 현재 117만 명에 달한다. 기초생활수급권자의 힘겨운 삶과 사각지대에 내몰린 무권리 상태의 빈곤층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오직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희망의 끈을 스스로 내려놓은 자살의 구조화, 현재의 불편함을 넘어 내일의 고통으로 이어지는 가난의 대물림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적극 개입이 절실하다. 정부는 이번 송파 세 모녀의 가슴 아픈 죽음이 사회적 타살이라는 비판에 대해 답을 내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