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 3,1-8; 마르 7,31-37
오늘은 스콜라스티카 성녀 기념일입니다. 스콜라스티카 성녀는 베네딕도 성인의 쌍둥이 동생인데요, 베네딕도 성인의 수도원에서 10km 정도 떨어진 곳에 여성 수도자 공동체를 창설했습니다. 두 분의 우애는 무척 남달랐습니다.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님은 이렇게 기록하십니다. “스콜라스티카는 매년 한 번씩 오빠를 방문했다. 서로 만나는 때면 베네딕도는 수도원에서 조금 떨어진 수도원 소유지로 내려가곤 했다…. 스콜라스티카가 찾아오자 베네딕도는 몇 명의 제자들과 함께 거기에 내려가서 동생을 만났다. 그들은 하느님께 찬미의 노래를 부르고 영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온종일을 보냈다…. 밤이 깊어지자 스콜라스티카가 청했다. ‘오늘은 떠나지 말아 주세요. 아침이 될 때까지 천상 기쁨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면 어떨까요?’ 오빠가 대답했다. ‘스콜라스티카, 무슨 말을 하는 거니? 내가 수도원에서 떠나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너는 알고 있지 않니?’
오빠의 거절을 들었을 때 스콜라스티카는 식탁 위에 자기 손을 모아 그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전능하신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갑자기 번갯불과 우레가 일어나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여 베네딕도와 그의 동료들은 문밖으로 발걸음을 내디딜 수가 없게 되었다…. 베네딕도는 마침내 거기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온 밤을 함께 지내면서 영적 생활에 대해 거룩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사흘 뒤 베네딕도가 방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서 있을 때 동생의 영혼이 육신을 떠나 비둘기 형상을 지니고 천상 앞뜰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동생의 그렇게도 큰 영광을 바라보고 넘치는 기쁨으로 찬미의 송가를 불러 전능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그는 동생의 유해를 수도원으로 모셔 오게 하여 자신을 위해 준비해 두었던 묘지에 안장하였다. 생시에 항상 한마음이 되어 하느님 안에서 일치했던 오누이는 그 육신도 함께 묻히게 되었다.” 여기까지가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님의 글입니다.
어제밤에 비가 와서 이 이야기가 생각났는데요, 폭우가 쏟아지던 그날은 스콜라스티카 성녀가 지상에서 오빠를 만난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성녀는 자신의 수명이 오래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지상에서 오빠와 마지막 대화를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로 나누며 나누며 밤을 지샜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 우리는 이와는 다른 커플의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일을 하고 나서 하느님을 피하여 숨어 버립니다. 무엇이 차이일까요?
성 베네딕도와 성녀 스콜라스티카는 하느님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 <밖에서> 행동했습니다. 남매의 대화 주제가 하느님 말씀이었다면,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 말씀과 세상의 소리가 뒤섞인 채 아무렇지도 않게 큰일을 저질러 버립니다.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정말이냐?”하고 묻는 세상의 소리에 대해 하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먹어도 된다. 그러나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은,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신 게 아니라, 단지 “따 먹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미 유혹과 대화를 시작한 하와는 여기에 ‘만지지도 마라’는 말을 덧붙임으로써 하느님 말씀이 지키기 어렵고 부당한 명령인 것처럼 스스로 부추기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마귀의 유혹을 하느님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그러나 하와는 하느님 말씀을 제대로 기억하지 않았고 그래서 왜곡되어 있었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을 만나신 후 이제 본격적으로 이방인 지역에 가셔서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데리고 오자, 손으로 귀와 혀를 만져 주시고,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쉬십니다. 이 기적이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온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시고 나서 “에파타!”라고 말씀하시자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립니다.
이 기적은 이사야서 35장과 연관됩니다.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그때’는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오는 때’입니다. 바빌론 유배에서의 귀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출애굽 못지않은 해방이었고 구원의 상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이방인들도 이 구원에 초대되었음을, 귀가 열리고 혀가 풀리는 기적을 통해 보여주십니다. 하느님 말씀에 귀가 먹고, 그래서 하느님의 구원 업적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우리에게, 하느님 말씀에 귀가 열리고, 입으로 주님의 위대한 업적을 찬양하도록 초대해 주셨습니다.
하느님 말씀에 귀가 먹어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아무런 대화도 없이 하느님을 거스르는 행동을 태연히 하는 아담과 하와야말로, 오늘 복음에 나오는 귀먹고 말 못하는 이일 뿐 아니라, 하느님 말씀을 기억하기보다는 때때로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별생각 없이 행동으로 옮겨버리는 나약한 우리 자신의 상징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에파타! 너의 귀가 열리기를! 에파타! 너의 마음이 열리기를!”
우리는 아버지께 그 기적을 청하며 복음환호송에서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희 마음을 열어 주시어 당신 아드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