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과 정의 (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25. 06.29 - 25. 07.05, 호명환 번역)
1. 다른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방어하고 지키기보다는 참된 자아를 추구하여 '나' 자신이 되는 특권이 주어져 있습니다.
2. 해방을 향한 여정!
- 해방은 유대교 전통과 그리스도교 전통의 심장부에 있습니다.
3. 행위의 결과에서 나오는 자유!
- 자유는 상태가 아닙니다. 자유는 행위입니다.
4. 자유를 위하여 자유롭게 된다는 것!
- 그리스도는 우리의 해방자이시고, 하느님은 우리가 해방되기를 바라십니다.
5. 해방을 위한 선구자적 목소리가 되어 주었던 인물 - 돔 헬더 카마라 대주교
- 예수님에 의해 시작된 해방의 임무를 계속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6. 해방(Emancipation)이란 무엇인가?
- 오늘날 모든 종류의 자유와 해방이 필요합니다.
7. 비전을 위한 싸움!
- 관상이 우리 자신을 넘어서 있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갈 때 해방(emancipation)이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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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하느님의 숨 2025.06.29. 22:32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6월 29일 일요일 - 스물여섯 번째 주간 (호명환 번역): 해방과 정의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방어하고 지키기보다는 참된 자아를 추구하여 '나' 자신이 되는 특권이 주어져 있습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리처드 로어 신부는 복음이 어떻게 해서 특별히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을 위한 메시지가 되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인류 역사 전체에 걸쳐 다수의 사람들은 가난했고 억압받았으며 어떤 식으로는 "주변부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역사를 변화가 필요한 관점에서 읽었지만, 역사 대부분은 승자의 편에서 기록되었고 해석되었습니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성경입니다. 사실 복음은 예수님이라는 인물에서 정점을 이루는 사람들, 즉 노예로 살면서 억압을 받던 옛 이스라엘 사람들의 편에서 쓰인 대안적 역사서입니다. 복음서들을 보면 가난한 사람들과 능력이 없는 사람들, 세리들, 죄인들, 그리고 내쳐진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경향을 지닙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은 로마 식민 지배자들과 수석 사제들, 그리고 이들에게 동조한 이들, 즉 내부 사람들과 상위 계층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이 뭔가 의미심장한 것을 이야기해 주지 않나요? 모든 관점은 어떤 지점에서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 충만한 진리를 보고자 한다면 승자의 관점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억압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는 해방 신학은 대개 공적인 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 무시되곤 합니다. 아마도 지난 1,700년 간 성서를 해석한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숙고해 본다면 이는 놀랄 일이 아닙니다. 권력이 주어진 성직 계급의 사람들은 참으로 엄청난 기대와 희망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받아들였던 주변부 사람들의 관점이 아니라 자기들의 관점을 주입시켰습니다.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공식 종교가 되자(313년 이후), 우리는 대체적으로 성경을 가난한 사람들과 억압받는 사람들 편에서 읽는 것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정의와 진리에 굶주린 사람들의 편에서가 아니라 정치적 권력에 기반을 둔 이들과 주로 위안을 주는 사제직의 관점에서 성경을 읽게 되었습니다. 권력에 기대는 대신 힘 없은 이들을 위한 여지를 마련하려는 데 관심을 두고자 하는 것은 권력과 돈, 자기-중심성이라는 일반적인 경향에서 종교를 정화시켜 주는 유일한 길입니다. [1] 성서가 연약함의 눈을 통해 읽혀질 때 - 이를 가톨릭 신자들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 선택" 혹은 "바닥으로부터의 관점"이라고 함 - 성서는 언제나 해방을 가져다주고 변모를 일으켜 줍니다. 성서는 억압하거나 강요하기 위해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의 질문은 "내가 어떻게 현상 유지를 할 것인가?" (대개는 '나'에게 이로운 어떤 것!)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함께 성장하고 변화할 것인가?"여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방어하고 지키는 것을 최상으로 삼아서는 안 되고, 소위 "바닥"이라고 하는 것이 모든 이를 위한 교육과 참된 변화, 그리고 변모를 위한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바닥은 자기를 증명하거나 지키기 위한 특전의 장소가 아니라 무언가를 추구하고 무언가가 되기 위한 장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복되다"고 하셨습니다(마태 5,3). 도로씨 데이(Dorothy Day)도 이와 아주 비슷한 말을 하였습니다. "참으로 안전하게 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바닥에서 아주 가까운 데서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은 떨어질 곳이 더 이상 없을 것이고, 또 잃을 것도 거의 없게 될 것입니다." [2] 소수의 사람들만이 선택하는 이곳에서 우리는 이 세상의 나머지 사람들을 위한 변모와 해방을 위한 도구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3] 우리 공동체 이야기 관상은 제가 어렸을 때 배웠던 어떤 것이 아닙니다. 저는 직감과 직관은 바르지 않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이제 마흔두 번째 생일을 맞이하게 되면서 저는 그 직감과 직관을 재건하기 위해 그런 잘못된 믿음을 해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호기심을 갖고 질문을 던지면서 자연스럽게 삶이 흘러 가도록 하는 것이 저로 하여금 참되고 동정심 가득하며 해방된 삶을 살게 해 준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입니다. 뿌려져서 씨앗의 껍질을 깨고 나오는 씨앗처럼 저는 저의 어두웠던 지난 날이 앞으로 있을 제 삶의 여정에 풍요로운 자양분을 제공해 주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Crystal I. References [1] Adapted from Richard Rohr, Yes, And…: Daily Meditations (Franciscan Media, 2019), 37, 39. [2] Dorothy Day, Loaves and Fishes (Orbis Books, 1997), 86. [3] Adapted from Richard Rohr, Scripture as Liberation (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2002). Available as MP3 audio download.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Sushil Nash, untitled (detail), 2020, photo, United Kingdom,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주먹은 억압과 불의에 맞서 저항과 연대, 그리고 일치를 위한 강력한 상징입니다. 억압받는 이들의 해방을 위한 내면의 갈망은 기대치 않게 억압하는 자들을 위한 해방까지도 가져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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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을 향한 여정!
하느님의 숨 2025.06.30. 16:47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6월 30일 월요일 - 스물여섯 번째 주간 (호명환 번역): 해방과 정의
해방은 유대교 전통과 그리스도교 전통의 심장부에 있습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리처드 로어 신부는 해방이 히브리인 성서와 그리스도인 성서에 있어 근본이 되는 이야기로 이해합니다: 해방이라는 주제는 영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거대한 틀입니다. 해방신학이라는 용어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마치 그것이 이단적이고 좌익의 이념이나 맑시스트 같아 보일 뿐 아니라 분명히 성서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상 해방은 애초부터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전통의 심장부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대부분이 너무도 오랫동안 이 진리를 회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 대부분이 성경을 바닥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위쪽의 관점에서 읽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히브리 성서나 그리스도교 성서에는 둘 다 이 바닥의 관점이 반복해서 드러납니다. 우리는 이 해방이라는 주제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예수님보다 1,400년 이전에 유대인들의 노예살이와 탈출 때라고 봅니다. 이 때 이집트에서 억압받던 셈족 사람들에게 점진적인 해방의 여러 차원들을 경험하게 해 준 신성한 그 무엇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성경 전체를 위한 본보기요 비유가 된 것이고요. 이 탈출에는 내면과 외면의 여정이 있었습니다. 우리 내면의 여정이 모든 이를 위한 해방의 외적 여정과 맥을 같이 하면서 그 외적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에게는 참된 자유 혹은 "해방"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해방신학이 참으로 진솔하게 가리키는 바입니다. 모세는 탈출 사건과 그 경험에서 성장한 영성의 심장부에 있는 역사적 인물입니다(탈출 3,1-15).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로부터 들은 목소리는 파라오와 대면하여 그에게 당신의 백성을 내보내라는 말을 하라는 소명을 즉각적으로 줍니다! 그 목소리가 성전으로 가라고 하거나 성전을 지으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로 여기에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의미를 함축하는 주된 내적 경험이 동반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해방신학은 영성과 행위가 애초부터 연결되어 있으며 절대 떨어질 수 없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어떤 사람들은 먼저 행동하기 시작하는데, 여기에서부터 내면의 체험으로 이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다른 이들은 내면의 체험을 먼저 하고 나서 그 경험에서 비롯하여 어떤 행동에 이르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 먼저 시작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국 행위와 영성은 서로 만나게 되어 있고 또 서로를 살려 주는 것입니다. 기도가 참되다면 그 기도는 자비의 행위를 하게 해줍니다; 또 자비의 행위가 어떤 식으로든 깊이 있게 시도된다면 그 행위는 우리를 기도로 이끌어 주게 되어 있습니다. 유대교 전통 아주 초기에는 탈출 전통 - 저는 이것이 해방의 본래 전통이라고 믿습니다. - 과 레위기와 민수기에서 발전한 사제 전통 사이의 괴리가 있었습니다. 사제들의 정신 구조는 기도와 의식으로 이루어지는 초기 신비 체험을 체계화하고 통제하며 영구하게 하려고 시도합니다. 내면의 하느님 체험과 외적으로 정의와 진리를 위해 하는 일을 한곳으로 연결시켜 주는 이들이 바로 유대 예언자들입니다. 이 연결은 참으로 간절하게 필요한데도 오늘날까지 거부되고 비판되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예언자들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종교는 대개 하느님 대신 종교 자체를 숭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패턴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 공동체 이야기 관상은 제가 어렸을 때 배웠던 어떤 것이 아닙니다. 저는 직감과 직관은 바르지 않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이제 마흔두 번째 생일을 맞이하게 되면서 저는 그 직감과 직관을 재건하기 위해 그런 잘못된 믿음을 해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호기심을 갖고 질문을 던지면서 자연스럽게 삶이 흘러 가도록 하는 것이 저로 하여금 참되고 동정심 가득하며 해방된 삶을 살게 해 준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입니다. 뿌려져서 씨앗의 껍질을 깨고 나오는 씨앗처럼 저는 저의 어두웠던 지난 날이 앞으로 있을 제 삶의 여정에 풍요로운 자양분을 제공해 주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Crystal I. References Adapted from Richard Rohr, Yes, And…: Daily Meditations (Franciscan Media, 2019), 34–36.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Sushil Nash, untitled (detail), 2020, photo, United Kingdom,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주먹은 억압과 불의에 맞서 저항과 연대, 그리고 일치를 위한 강력한 상징입니다. 억압받는 이들의 해방을 위한 내면의 갈망은 기대치 않게 억압하는 자들을 위한 해방까지도 가져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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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의 결과에서 나오는 자유!
하느님의 숨 2025.07.01. 17:13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7월 1일 화요일 - 스물일곱 번째 주간 (호명환 번역): 해방과 정의
자유는 상태가 아닙니다. 자유는 행위입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자유는 상태가 아닙니다; 자유는 행위입니다. 자유는 우리가 자리를 잡고 앉아 쉴 수 있는 저 먼 고원 높은 곳에 있는 어떤 마법의 정원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자유는 우리가 모두 취해야 할 계속적인 행위이고, 각 세대는 더더욱 공정하고 더욱 의로운 사회를 창출하기 위해 자기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 존 루이스(John Lewis), 저 다리 너머(Across That Bridge) 자넬 브루스(Janelle Bruce) 목사는 어떻게 해서 성전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해방하시는 행위가 노스캘롤라이나와 그 너머에까지 이어진 성직자 중심의 모럴 몬데이 시위(Moral Monday protests)의 본보기가 되었는지에 대해 성찰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오셔서 사고파는 이들을 내쫓으시고 환전상들의 탁자를 둘러엎으십니다.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정의를 행하면서 탁자를 둘러엎으신 것은 선택의 여지가 아니라 하나의 '명령'입니다. 불의를 신성하게 붕괴시키는 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 사랑을 자기들의 종교라고 고백하는 이들, 정의를 믿는 이들에게는 하나의 명령입니다. 안락함이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은 안락함을 받아들이게 하는 반면, 신앙은 하느님 백성에게 해를 끼치는 것들을 무너뜨리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탁자가 억압의 도구가 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둘러엎기를 거부하는 탁자에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결과를 두려워하여 행동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저는 2013년에 처음으로 시작된 단체 시위 때에 도덕 운동을 향한 함께함(Forward Together Moral Movement)이 이루어낸 엄청난 업적을 지켜 보았습니다. 저는 서로의 배경은 달랐어도 함께 서 있던 노스캘로라이나 사람들을 보고 경외심을 느꼈습니다. 월요일마다 있었던 시위에 참여한 군중이 수십 명에서 수백 명으로, 그리고 수천 명으로 늘어갔습니다. 이 거룩한 시위자들은 가장 취약한 사람들로부터의 선거권 박탈과 그들에게 큰 해를 끼치는 세금 규정, 그리고 학생들과 가난한 이들, 노인들, 그리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정책에 반대하며 싸웠습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교회들은 행동하는 사랑과 정의를 요구하시는 예수님 복음에서 참된 정치색을 지워 버렸습니다. 브루스는 오늘날 미국 사회 안에서 무너져야 할 분야들이 어떤 것들인지를 말합니다: 우리가 50년 전보다 더 적은 선거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이것을 무너뜨릴 필요가 있습니다. 극도로 부유한 사람들이 부를 모으고 축적하는 동안 매일 미국에서 칠백여 명의 사람이 가난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면 우리는 이런 상황을 붕괴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거룩한 붕괴는 사람들이 정의롭게 대우받기를 요구하는 것이고, 법 제정자들이 사람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봉사직의-지도부에 있는 이들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불의에 대항하여 발걸음을 옮기면서 그리스도의 급진적 본성을 따라 걸어간다면 사람들은 여기에 거룩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 문제란 선하고 해방하고 사랑 가득한 문제들, 즉 그리스도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을 말합니다!.... 첫 번째 월요일 시위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떻게 탁자를 엎어야 할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혁명가요, 난민이며, 옥에 갇힌 이로서의 예수님, 그리고 탁자를 엎으시는 예수님을 상기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싸우셨고 부패한 종교의 기득권층에 질문을 던지셨으며, 정부의 사악한 정책에 도전을 던지셨던 예수님을 우리 삶의 자리에서 구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로마 제국에 혼란을 가져다 주셨듯이, 우리도 오늘날의 세상에서 도덕적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불의한 제국을 무너뜨리도록 초대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 이야기 저는 어디에 속해 있을까요? 부유한 사람들과 특권층 사람들에게도 아니고, 아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아니고, 자유주의자들에게도 아니고, 보수주의자들에게도 아니고, 지성인들과 성공한 사람들에게도 아니고, 체계적인 종교와 사회 단체에게도 아니고 - 심지어는 어떤 가족 구성원들에게도 아닙니다. 저는 그리스도의 품, 즉 역설의 공간이요 알지 못함의 공간이며 고통의 틈새인 그리스도의 팔 안에 속해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제가 겸허하고 열린 마음으로 하느님의 사랑 가득한 어루만지심을 자유롭게 느끼는 곳입니다. —Kathy Jo W. References Janelle Bruce, “Should We Sit at the Table—or Turn it Over?” in We Cry Justice: Reading the Bible with the Poor People’s Campaign, ed. Liz Theoharis (Broadleaf, 2021), 89–91.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Sushil Nash, untitled (detail), 2020, photo, United Kingdom,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주먹은 억압과 불의에 맞서 저항과 연대, 그리고 일치를 위한 강력한 상징입니다. 억압받는 이들의 해방을 위한 내면의 갈망은 기대치 않게 억압하는 자들을 위한 해방까지도 가져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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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위하여 자유롭게 된다는 것!
하느님의 숨 2025.07.02. 17:21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7월 2일 수요일 - 스물일곱 번째 주간 (호명환 번역): 해방과 정의
그리스도는 우리의 해방자이시고, 하느님은 우리가 해방되기를 바라십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복음서들에 나오는 해방의 메시지와 자신의 생생한 경험이 팔레스타인의 성공회 사제 나임 아틱(Naim Ateek)의 신학을 낳게 해 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1948년 저는 육천 명의 주민으로 이루어진 팔레스타인 도시 베이산(Beisan)에 살던 소년이었습니다.... 베이산은 이슬람교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섞여 사는 도시였고, 거기에는 세 개의 교회 - 동방 정교회, 로마 가톨릭교회, 그리고 성공회 - 로 이루어진 생기 넘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저는 제 고향에서 살았던 애틋한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맛있는 과일과 채소로 축복받은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그 도시 가까이에 있는 산에서는 사람들의 땅과 밭에 물을 대주는 샘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제 아버지와 제 가족에게 풍미와 즐거움을 주었던 여러 종류의 과일 나무들과 정원을 기억합니다. 우리 삶은 1948년 5월 시온주의자들(zionist) 군대가 베이산으로 쳐들어와 그곳을 점령했을 때 완전히 뒤집어졌습니다.... 우리는 총부리 앞에서 강제로 집을 떠나야 했고 그 도시의 중심지로 모이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군인들은 우리를 이슬람교인들과 그리스도인들 두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이슬람교인들은 베이산에서 몇 마일 떨어진 요르단으로 이주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버스에 태워져 나자렛 외곽으로 이주되었고, 그곳에서 도시 경계 밖으로 버려져 다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나자렛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우리 이웃 마을들에서 온 수백,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비슷한 상황에 처해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틱은 교회가 고통받는 이들과 더불어 일어서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계속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는 세상 한가운데 존재합니다. 매일 이 세상에는 전쟁과 기아, 인종차별, 폭력, 그리고 가난에 직면해야 하는 남녀들과 어린이들로 가득합니다. 교회에는 이런 곤궁의 상황에 대해 어정쩡한 응답을 했던 역사가 있습니다. 때때로 교회는 억압받는 이들과 연대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또 때로는 억압하는 이들에 대해 침묵하기도 했고, 심지어는 그들의 억압에 공모하기도 하였습니다. 복음서들에서 우리의 본보기로 소개해 주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형제자매들인 인류를 사랑하고 돌보아 주라고 권고하십니다. 이런 돌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내쳐지고 억압받는 이들을 최선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요? 말과 행동으로 불의와 억압에 직면하고 도전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고통에 응답하는 법을 제대로 성찰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해 주시는 삶의 양식을 먼저 숙고해 보면 좋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 생명은 충만한 생명입니다. 이 충만함은 먼 미래의 저 먼 곳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상황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의 해방을 성취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생명의 충만함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과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해방자이시고,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반드시 자유로워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굳건히 서서 우리를 비인간화하고 노예화하는 어떤 것에도 굴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 이야기 저는 어디에 속해 있을까요? 부유한 사람들과 특권층 사람들에게도 아니고, 아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아니고, 자유주의자들에게도 아니고, 보수주의자들에게도 아니고, 지성인들과 성공한 사람들에게도 아니고, 체계적인 종교와 사회 단체에게도 아니고 - 심지어는 어떤 가족 구성원들에게도 아닙니다. 저는 그리스도의 품, 즉 역설의 공간이요 알지 못함의 공간이며 고통의 틈새인 그리스도의 팔 안에 속해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제가 겸허하고 열린 마음으로 하느님의 사랑 가득한 어루만지심을 자유롭게 느끼는 곳입니다. —Kathy Jo W. References Naim Stifan Ateek, A Palestinian Theology of Liberation: The Bible, Justice, and the Palestine-Israel Conflict (Orbis Books, 2017), 1–2, 5–6.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Sushil Nash, untitled (detail), 2020, photo, United Kingdom,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주먹은 억압과 불의에 맞서 저항과 연대, 그리고 일치를 위한 강력한 상징입니다. 억압받는 이들의 해방을 위한 내면의 갈망은 기대치 않게 억압하는 자들을 위한 해방까지도 가져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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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을 위한 선구자적 목소리가 되어 주었던 인물 - 돔 헬더 카마라 대주교
하느님의 숨 2025.07.03. 17:57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7월 3일 목요일 - 스물일곱 번째 주간 (호명환 번역): 해방과 정의
예수님에 의해 시작된 해방의 임무를 계속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CAC 프로그램 우리는 [함께 숨 쉬어요(We Con-spire)]는 해방신학의 옹호자인 브라질의 돔 헬더 카마라(Dom Helder Cmara: 1909-1999) 대주교의 업적에 대해 살펴봅니다. 돔 카마라는 키가 155.5 센티미터밖에 되지 않았지만 확신에 있어서는 거인이었습니다. 물론 그는 자신의 성직자로서의 삶을 정의와 비폭력의 수호자로 시작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제의 삶 초기에 카마라는 브라질에서 "브라질 통합주의자들의 행동"(Brazilian Intergralist Action)이라고 하는 전체주의 정치 운동에 찬성하며 거기에 신앙의 목소리를 내 주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의 제를리어(Gerlier) 추기경이 그에게 그의 사목에 가난을 우선 관심사로 해야 한다는 촉구를 듣고 그는 변화의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만남은 카마라의 신앙에 있어 변모의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 만남을 "다마스커스로 가던 사울처럼 바닥에 쓰러진" 사건(사도 9,1-19)으로 묘사할 정도였습니다. [1] 카마라는 그후 나머지 삶을 가난과 폭력을 만들어내는 체제적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더 넓은 교회 조직을 만드는 데 헌신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돔 헬더 카마라는 20세기 가톨릭 교회에서 평화와 정의를 위한 선구자적인 목소리로 간주되었고, 도시 빈민들과 경제 정의를 위한 그의 흔들리지 않는 헌신으로 인해 "빈민가의 주교"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2] 돔 헬더 카마라가 살고자 했던 몇 가지 확신의 삶의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카마라)는 모든 이에게 이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 [겸손]이 있는 곳에 교회가 현존해야 합니다. ☞ 부자들의 자기-중심주의(egoism)는 공산주의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만듭니다. ☞ 오늘날의 세상은 불결함을 가져다주는 가난이라는 원자 폭탄에 의해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 온 세상의 모든 곳에서 정의를 세우기 위해 심오한 변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 개인의 깊은 회개 없이는 아무도 세상의 회개를 위한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 끔찍한 가난은 혐오스럽고 모멸적인 것입니다; 이런 가난은 모든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모상을 더럽힙니다.... ☞ 내 마음의 문과 내 마음은 모든 이에게 열려 있습니다. - 아무도 예외 없이 모든 이에게! ☞ 그리스도께서는 최후 심판 비유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예언하셨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과 억압받는 이들, 그리고 짓밟히는 이들 안에 있는 당신을 대하는 방식에 따라 심판받을 것입니다. [3] 돔 헬더 카마라는 자기 나라에서 어떤 통신 수단으로든 통교하는 것이 금지되었기에 복음과 해방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온 세상을 다녔습니다. 그는 우리의 체제와 우리 세상 안에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으로서 관상적 삶과 내면의 변모를 촉구하였습니다. 카마라는 우리에게 주어진 해방의 임무를 하느님께서 제공해 주시는 해방과 연결시켰습니다:
우리 공동체 이야기 젊은 여성이었던 저는 확고한 무신론자였고, 30대에 와서는 불가지론자였는데.... 50대인 지금 저는 그리스도와 신성한 어머니신 하느님과의 사랑에 더더욱 빠지고 있는 저를 보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몇 년간 CAC의 매일 묵상을 읽어왔는데, 이 묵상 글들이 제 삶에 깊은 영향을 주었던 겁니다. 저에게 있어 매일 묵상의 가장 근본적인 측면 중 하나는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현실적이고 감지할 수 있고 사랑 가득한 진리로 해석해 준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것이 교회와 그리스도교 역사가 전해 주는 유해한 이야기들을 해독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믿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일종의 영적 해방을 찾은 겁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Em S. References [1] As quoted in Dom Hélder Câmara: Essential Writings, selected by Francis McDonagh (Orbis Books, 2009), 24. [2] Adapted from “A Vision for Liberation,” We Conspire (March 2025), 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3] Dom Hélder Câmara: Essential Writings, 65–66. [4] Hélder Câmara, The Conversions of a Bishop: An Interview with José de Broucker, trans. Hilary Davies (Collins, 1979), 170–171, quoted in “A Vision for Liberation,” We Conspire (March 2025).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Sushil Nash, untitled (detail), 2020, photo, United Kingdom,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주먹은 억압과 불의에 맞서 저항과 연대, 그리고 일치를 위한 강력한 상징입니다. 억압받는 이들의 해방을 위한 내면의 갈망은 기대치 않게 억압하는 자들을 위한 해방까지도 가져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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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Emancipation)이란 무엇인가?
하느님의 숨 2025.07.04. 21:42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7월 4일 금요일 - 스물일곱 번째 주간 (호명환 번역): 해방과 정의
오늘날 모든 종류의 자유와 해방이 필요합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리처드 로어는 자유와 해방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가르칩니다: 저는 오늘날 필요한 자유와 해방(liberation)을 설명하기 위해 "emancipation"(해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습니다. 해방(emancipation)은 우리에게 개인적인 자유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자유의 체제적인 차원에 주의를 기울이게 해 줍니다. 완전히 해방된 아주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우리는 대개 문화와 시대, 정치, 견해, 혹은 심지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미묘한 사회적 동의와 관련해서도 우리 자신의 무의식 속에 있는 더 작은 안전 체제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자기 발언, 자유 시장, 그리고 우리 자신을 지키고 방어할 자유와 같은 정치적인 자유와 경제적인 자유는 우리가 내면으로부터 얻는 만큼의 자유만을 선사해 줄 뿐입니다. 우리가 만일 사랑할 내면의 자유를 성취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역설적으로 체제들이 우리에게 약속해 주는 자유마저도 누리지 못하면서 그 외적인 체제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소위 매우 선택적이고 계급에 기반하며 종종 부정직하고 편견에 노출되어 있는 자유만을 자유로 알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우리의 자유 시장 체제에 대한 더 나은 대안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할 자유를 지니고 있나요? 만일 우리가 이런 주제를 꺼내게 된다면 우리는 위험한 사람들이며 미국의 정서에 어울리지 않는 이들이라고 여겨질 가능성이 큽니다. 총기 소유 권리와 군비에 한정 없이 재정을 투자하는 상황이 우리 자신을 보호할 자유를 정말로 주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리고 이런 상황이 우리에게 우리 나라의 경제 자원의 대부분을 우리의 보호를 위해 사용할 권리와 자유를 주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우리 사람들에게 음식이나 건강 관리, 혹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우리의 나라, 우리의 안전 체제, 우리 종교, 혹은 우리 인종에 둘 때,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됩니다. 더 광대한 "하느님의 왕국"에서의 시민권만이 우리가 "자유"라고 명명한 잘 숨겨져 있으면서도 합의된 특정 상자의 감금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사실상, 이런 것들은 근본적인 문화적 합의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것들을 우리가 감금된 상자라고 인식하기 힘들 뿐입니다. 이런 상자들은 좋은 것이고, 도움이 되며, 때로는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제가 할 일이기도 하고, 또 그리스도교 지혜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이 아니라,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 한 가족이라는 사실"(에페 2,19)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는 일입니다. 비록 우리가 실질적으로는 사회라는 더 작은 상자 안에서 일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가장 큰 상자 안에서 상자에서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필연적으로 창조적이면서도 동시에 어려움을 주는 긴장이긴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자유의 모든 차원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세상에 있지만 세상 사람들이 아닌 사람들"이라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역사적 표현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일반적으로 사용된 것이긴 하지만, 오늘날 우리 대부분은 세상의 체제 안에 살고 있고, 그 체제의 사람들이 되었으며 그 체제를 위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말입니다! 그러니 자유의 더 깊고 더 크고 더 놀라운 차원을 표현하기 위해 "해방"(emancipa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합시다: 이 해방은 내면과 외면의 해방과 개인적, 경제적, 구조적, 영적 해방을 모두 포함하는 해방입니다. 명백하게도 이것이 우리가 온 삶을 바쳐 이루어내야 할 우리의 임무입니다! 우리 공동체 이야기 젊은 여성이었던 저는 확고한 무신론자였고, 30대에 와서는 불가지론자였는데.... 50대인 지금 저는 그리스도와 신성한 어머니신 하느님과의 사랑에 더더욱 빠지고 있는 저를 보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몇 년간 CAC의 매일 묵상을 읽어왔는데, 이 묵상 글들이 제 삶에 깊은 영향을 주었던 겁니다. 저에게 있어 매일 묵상의 가장 근본적인 측면 중 하나는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현실적이고 감지할 수 있고 사랑 가득한 진리로 해석해 준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것이 교회와 그리스도교 역사가 전해 주는 유해한 이야기들을 해독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믿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일종의 영적 해방을 찾은 겁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Em S. References Adapted from Richard Rohr, “Introduction,” ONEING 3, no. 1, Emancipation (2015): 11–12. Available in print and PDF download.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Sushil Nash, untitled (detail), 2020, photo, United Kingdom,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주먹은 억압과 불의에 맞서 저항과 연대, 그리고 일치를 위한 강력한 상징입니다. 억압받는 이들의 해방을 위한 내면의 갈망은 기대치 않게 억압하는 자들을 위한 해방까지도 가져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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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을 위한 싸움!
하느님의 숨 2025.07.05. 22:23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7월 5일 토요일 - 스물일곱 번째 주간 (호명환 번역): 해방과 정의
관상이 우리 자신을 넘어서 있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갈 때 해방(emancipation)이 발생합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 절대 편안하지도 않고 또 완전히 개인적이지 않은 - 참된 신앙은 언제나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깊은 갈망을 수반합니다. - 교황 프란치스코, 복음의 기쁨 가톨릭교회의 수녀이자 활동가인 시몬 캠벨(Simone Campbell)은 본인이 경제 해방을 위해 투신하게끔 자극을 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세상의 모든 아픔을 건드려 보고, 또 그 모든 아픔을 몸소 느끼는 것은 해방을 위한 운동에 있어 심장부입니다. 또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에 있어 두 번째 요소가 있습니다: 싸움입니다! 너무나 자주 우리는 싸움을 "무언가에 대항하는 싸움"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누군가나 어떤 정책에 "대항하여 싸울" 때, 그 사람이나 정책은 실질적으로 더 완고해질 뿐입니다. 오히려 해방(emancipation)을 향한 영적인 여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모두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비전을 위해 싸우도록 초대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피조물을 포함하는 세상을 위해 싸웁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우리가 모든 것의 현실을 철저하게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비전을 위한 싸움에 투신할 때 해방은 실현됩니다. 모든 것을 자애로이 끌어안고 100퍼센트의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는 경제를 위해 싸운다면 이 싸움이 양극화와 분열의 족쇄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줄 것입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런 사건들은 공동체 전체를 불사르는 불과 같은 것입니다. 모든 이의 선익에 헌신하는 공동체에는 어떤 선한 불길 같은 것이 존재합니다. 이 불은 서로와 나눌 수 있는 따스한 보살핌의 마음과 뭔가 선한 변화를 이루려는 노력 안에 있는 불입니다. 이 불은 우리를 두려움과 판단, 소외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는 불이고, 풍요로운 우주의 자유를 향해 마음을 열게 해 주는 불입니다.... 수입과 부의 불평등이라는 족쇄로 채워져 있는 우리 시대에 우리는 하느님으로 하여금 우리 삶에 불을 지피시게끔 하라는 소명을 받고 있습니다. 해방은 우리의 관상적 여정을 통해 우리가 우리 자신을 넘어서서 모든 이를 돌보아주며 100퍼센트의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는 비전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싸울 때 생겨납니다.... 우리 시대에 있어 참된 해방의 선포는 우리 나라는 물론이고 온 세상 안에 있는 수입과 부의 불평등이라는 족쇄를 우리가 함께 끊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창조된 세상은 하나의 몸이기에 이 위대한 투쟁은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 하는 투쟁이어야 합니다.... 여러분 존재 안으로 깊이 빠져들어가십시오. 여러분이 어디에서 행동하라는 소명을 받고 있는지를 깊이 경청해 보십시오. 배제의 경제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는 일에 저와 함께해 주십시오. 우리 나라를 위해 우리가 다른 선택을 하는 데에, 그리고 100퍼센트의 사람들을 위한 정의를 옹호하는 데 저와 함께해 주십시오. 관상적 삶은 행위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족쇄를 푸는 열쇠를 쥐고 있습니다... 그러니 깊이 경청하고 행동합시다! References Simone Campbell, “The Shackles of Our Time,” ONEING 3, no. 1, Emancipation (2015): 38, 39. Available in print and PDF download.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Sushil Nash, untitled (detail), 2020, photo, United Kingdom,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주먹은 억압과 불의에 맞서 저항과 연대, 그리고 일치를 위한 강력한 상징입니다. 억압받는 이들의 해방을 위한 내면의 갈망은 기대치 않게 억압하는 자들을 위한 해방까지도 가져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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