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예배 (17) 히7장 연약함이 본성인 인간이 그 연약함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아들의 생명을 얻는것입니다. 히7장의 결론은 히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지난시간에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달려가서 히6:19 예수그리스도께 소망을 두고 달려간다고했는데 그 예수님이 바로 멜기세덱의 순서대로 좇아서 영원한 대 제사장이 되어서 우리를 위하여 지성소에 들어가계신다. 거처를 삼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그리고는 7장에 넘어가서 멜기세덱에 대해서 다시 설명한다. 앞에 5장에 아직 수준이 안맞아서 이해가 안간다. 그렇게 말하고 6장에서 그리스도의 초보를 버려야되는데 아직도 거기에 메여있어서 초보가 무언인지를 자세하게 다시말하고 너희는 그러지말고 열심을 내서 끝까지 믿음으로 게으르지 아니하고 오래참음으로 약속을 받은자처럼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강력하게 권면한다. 그 약속이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은 맹세로서 하나님이 보증했기 때문에 우리도 반드시 보증한대로 우리에게 이루실것이다. 하나님은 절대로 거짓도 없고 변치도 않기 때문에 우리가 그 소망을 가지고 달려가면 우리도 반드시 그 휘장안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말씀을 하시고 그 휘장안으로 들어가신 예수님이 바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 제사장이시면서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계시기 때문에 우리도 이제 담대하게 들어갈수있다란 말이다. 그래서 옛날 율법으로 돌아가지말고 배교하지말고 끝까지 버티고 믿음으로 소망을 가지고 달려라 그러면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 예수님이 어떤수준이냐를 말한다. 그냥 배교하고 갈정도가 아니다란것이다. 예수님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직분,권세 이런것들을 7장에서 멜기세덱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자세하게 설명한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보다 낫고, 레위계통 제사장보다 낫고,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그림자다. 이전에 있었던 제사장들은 원래 죄가 많은 인간이였기 때문에 완전할수가 없고, 또 죽고, 또다른 제사장이 세워지기 때문에 영원하지 못하는데 예수님은 영원하시다. 죽지않는다. 부활해서 안에 들어가계시고 죄도 없으시다. 하나님의 언약을 완성하셨다. 제사장들이 제사를 지낼수는 있어도 생명을 줄수는 없었다. 예수님은 죄사함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런데 어찌하여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느냐란것이다. 어리석은짓을 하고있는지 알라 남아있는 너희들은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된다. 히7:1-3절은 그림자와 실체, 멜기세덱과 예수그리스도, 8장 그림자, 10장 그림자 구약에서 의의왕, 평강의왕 직접적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말한다. 그것이 멜기세덱을 통해서 나타났다라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현현이라는것이다. 예수님이 멜기세덱으로 나타났다. 3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이건 예수님이 멜기세덱으로 나타났다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다. 그 완전한 예수님을 너희가 어떻게 버리고 옛날로 돌아가느냐 어리석은자들아 그것을 7장에서 말하고있고, 이것을 육체에 관련된 율법과 생명의법을 대조하면서 더욱더 완전하다라는 것을 말하면서 그래서 너희는 예수님을 꼭붙들라. 예수그리스도외에는 답이없다. 그래서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가는자가 영원한 구원을 얻는다. 온전한구원과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이 중보기도를 하고계신다. 그래서 어떤문제를 당할 때 떠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일이다. 히브리서 독자들중에는 옛날에 많이 떠났다란것이다. 이것을 몰라서 다시 율법으로 돌아간다 말이 안된다. 1-3절은 그림자와 실체, 그림자는 멜기세덱이고 실물은 예수그리스도를 말한다. 4-10절은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더욱뛰어나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했다. 레위인은 아브라함의 4대손이다. 레위제사장들도 아브라함을 통해서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거와 같다. 레위제사장보다 훨씬 위에있고 뛰어나고 완전하다. 11-28절 구약의 육체에 관련된법에서 제사장직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제사장직을 폐하고 영원한 제사장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가 바로 우리가 의지할바이다. 그 완전한 제사장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을 얻었고 언제든지 예수님의 힘으로 하나님앞에 가까이 갈수있다. 그것이 바로 파레시아 구약에는 누구도 하나님앞에 가까이 갈수없었다. 대제사장이 1년에 대속죄일 7/10일 한번만 들어갔다. 그런데 우리가 언제든지 하나님앞에 나갈수있다란것이다. 가까이 갈수있다란것이다. 코르반, 제사, 예수님이 단번에 완전한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언제든지 들어갈수있다. 휘장을 찢어 열어났기 때문에 새롭고 산길이다. 거기로 들어가 하나님의 은혜 보좌앞에 나가 도움을 청하라 그렇게 할수있다. 멜기세덱: 두글자가 연합, 말라크,말키(왕) + 세덱(체데크,의) 의의왕, 예수그리스도 예수님의 현현이다. 사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7날)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예수님에 대한 칭호) 평강(7날), 십자가로 연합할때만 이루어짐, 엡2장 하나님과 화목 과거의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오직 제사장을 통해서 소를 갔다가 받쳐서 피를 뿌리고 그 피를 가지고 들어가서 대제사장이 대신 만나는 방법밖에 없었다. 화목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신의피를 뿌림을 통해서 그 휘장이 열렸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함을 언제든지 누릴수있기 때문에 평강의왕이라고 한다. 그 누구도 이것을 이루어놓은 사람이 없었다. 대제사장도 답이없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것을 이루어냈다. 그래서 평강의왕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7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어진 은혜다. 렘23: 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일으킬 것이라(예수님)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6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의의왕) 평강과 의라는 것은 예수님의 호칭이다. 멜기세덱이 그 호칭을 가지고있다란 것은 예수님의 현현이다. 의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올바른관계, 하나님의 하나님자리, 우리는 백성자리. 그건 오직 십자가로만 이루어짐, 그래서 율법외에 한의가 나타났나니 롬3장 율법의 한의가 나타났다. 예수님이 의의제사를 드린것이다.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의의관계가 다시 이루어졌다 그래서 의의왕인것이다. 우리는 의라고하면 올게사는가보다 생각한다. 공의,정의라고 하니까 이렇게 살아야되나보다 이렇게 살수있는사람은 한사람도 없다. 율법아래서 그렇게 다시 살겠다고 돌아간것이다. 여러분도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나도 죽고 묻히고 부활해서 한번 7날에 가볼려고 하는데 잘안되죠 그러니까 이거 잘못된것같다. 옛날로 돌아가서 내가 열심히 할때는 잘되었는데 여기와서 할려고하니까 하는일마다 안되니까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 의와 평강은 예수그리스도의 속성이고 자신을 말한다. 하나님께로만 나올수있는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가 멜기세덱을 하나님의 아들의 모형으로 말하고있고 그것을 그대로 그모습으로 오신분이 예수님이다. 그런데 너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옛날로 돌아가느냐 그말이다. 그게 3절까지다. 히7:3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같게,복사)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멜기세덱은 예수님의 복사판이다. 예수님을 예표, 항상제사장은 예수님밖에 없다. 예수님의 현현 예수님이 하신일이 무엇이냐 의와 평강을 이루어내셔서 우리에게 그대로 전가시켜주신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든지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앞에 나갈수있도록 의가 되었고 그래서 하나님앞에 나가서 평강을 항상 누릴수있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히브리기자가 멜기세덱과 예수님, 모형과 형상으로 연결시킬려고 열심히 멜기세덱을 설명하고있는것이다. 이 둘을 결합시키는 것을 통해서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멜기세덱의 원형이다. 요한복음에서 로고스가 육신을 입고 오신것처럼 히브리서에서는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옷을 입고왔다는 것을 말하고있다. 히7:4 이 사람의 어떻게 높은 것을 생각하라 조상 아브라함이 노략물 중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저에게 주었느니라 창14장, 시110: 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5 주의 우편에 계신 주께서 그 노하시는 날에 열왕을 쳐서 파하실 것이라 이게 정확하게 예수님을 말하고있다. 만왕의왕이시며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메시아께서 장차 강림하실 때 죄의 세력을 멸하고 메시아왕국을 세울것을 예언한 다윗의 예언시다. 6 열방 중에 판단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파하시며 7 길가의 시냇물을 마시고 인하여 그 머리를 드시리로다 예수님께서 행하실일을 묘사하고있다. 히7:5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는 자들이 율법을 좇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가졌으나 6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그 얻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7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 빎을 받느니라 멜기세덱이 높다란것이다. 레위계열의 제사장은 율법아래있던 제사장이다. 그 율법이 있기도전에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받쳤으니 아브라함의 4대손 레위족속들은 한참 아래다. 히7:8 또 여기는(레위)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멜기세덱)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9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 할 수 있나니 10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 히7:11 (왜냐하면)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레위계통으로 온 제사장을 통해서는 구원을 이룰수없고, 죄사함도 이룰수 없다. 계속 죄를 지었다. 예수님은 그것을 완성했기 때문에 속죄예물은 필요가 없다. 히7:12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 율법은 완전하고 선한것이라고했다. 여기서 변한 것은 율법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제사장 그 직분에 대한것만 변한것이다. 온전함을 얻을수있는 것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완전한 관계회복을 말한다. 그래서 그 제사장은 할 수가없었다. 오직 십자가의 피로만 가능했기 때문에 그렇다. 옛언약 아래에 있는 대제사장들은 그것을 온전케할수없었기 때문에 새언약이 필요했던것이다. 렘31장 새언약 율법을 가지고 하나님은 하나님자리에 나는 내자리에 갈수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새언약을 주어서 내안에 말씀을 새겨서 이루겠다. 예수님이 피를 쏟으면서 이것은 새언약의피다 라고했다. 그래서 언약을 완성한것이다. 12절은 새언약을 말하는것이다. 구약으로는 도저히 답이 없었기 때문에 새언약이 필요했던것이다. 롬3:20-22 롬7:12-14 롬10:4 죄사함을통한 의를 이루는것들에 대해 설명. 롬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7:12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 함이니라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롬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예수님이 의가 되셨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이루어졌다란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순간 그 죄사함과 그 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언제든지 하나님께 나아가 내가 고통과 괴로움이 있을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담대함(파레시아)이 있다란것이다. 아직도 내 행위를 내세워서 하나님앞에 무언가 담대하게 요구할수 있을것같은가요 안되는데 다시 옛날로 돌아가겠다란것이다. 열심히해서 복받겠다란것이다. 내가 열심히 해서 복받았다란 사람들은 다 가짜다 열심히 해서 복받은사람 성경에 있나요 진짜 어리석다. 복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래서 레위계통의 대제사장직을 폐하는 새로운법이 필요하다란 것을 말한다. 히7:13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14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레위계통을 통해서 온것도 아니고 유다지파를 통해서 왔기 때문에 제사장법에 반역이다. 법대로한것이 아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이 되었다. 그러니까 이법이 바뀌어야된다 그법은 아니다. 그것을 말한다. 히7:15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멜기세덱과 같이 제사장이 되었다. 멜기세덱은 아비도없고 어미도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날도 없고 생명의끝도없어 하나님아들처럼 항상 제사장인 예수님이 제사장으로 왔다. 레위지파가 아니다. 그래서 그법이 효력을 잃어야한다. 시110:4 하나님이 직접 맹세로 임명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영원한 완전한 제사장이란 것을 부연설명하고있다. 히7:16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율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17 증거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율법을 좇아 된 제사장이 아니고 영원한 생명의법에(영생)의 능력을 좇아서 된것이다. 7장의 핵심중에 하나다. 율법을 좇아된 것이 아니고 영원한생명의법에 따라 생명의 능력안에서 된 제사장이다. 구약의 레위계통으로 온 제사장직을 폐했다. 그래서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그리스도. 옛계명은 쓸모가 없어서 폐지되었는데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제사장이 바로 예수님이다. 히7:18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계명이 연약하다, 계명이 무슨 사람같죠 계명도 연약해질수있고 강해질수있나요 연약하다 표시하라. 이것은 육적인 존재 육체에 상관된 계명이라고했다. 우리 육적인 것을 하나님께서 관련된법을 주셨는데 우리가 육체로 그 계명을 지킬수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연약하다란 단어를 쓴것이다. 연약하다란 단어는 앞에서도 많이 나왔다 연약하여 이룰수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그 연약이라는 단어는 바로 왼쪽에 있는 하나님과 분리된 아담의 존재적인 연약함을 말한다. 다른말로 존재적인 부정성, 존재적인 죄악, 거짓된 존재, 나면서부터 문둥이 이런것들을 말하는 것이 연약함이다. 그것 때문에 육체에 관한 법을 주었는데 절대로 지킬수없다란것이다. 그게 바로 전엣계명이 연약하여 우리에게 아무것도 해줄수가 없었다. 죄를 씻을수도없고, 구원을 이루어낼수있는 능력도 없다 그것이 전엣 계명이라는것이다. 그것을 좇아온 것이 레위계통의 제사장직이다. 당연히 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직접 제사장을 내려보냈는데 바로 멜기세덱이고 그것이 예수님의 모형이고 실물 예수님이 오셔서 그일을 완성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붙들어라 그것을 말하고있는데 전엣계명으로는 도저히 답이 없는데 너희들은 또 옛날로 돌아가 그 제사장앞에가서 또 속죄물을 갖다 받치면서 그짓을 또할려고하느냐는것이다. 이해가 가나요 답이없다. 우리도 죄를지으면 속제제물(헌금) 갖다놓고 기도하겠냐는것이다. 똑같은것이다. 또 율법으로 돌아가 내가 열심히 해서 복을 받을려고하느냐 그것과 똑 같은 말이다 그것은 예수님을 정면 부정하는것이다. 빈주머니로는 새롭고 산길로 못들어가나요 아니다. 심령이 가난한 마음으로 가야된다. 내가 내가 하는 것 싹다 비우고 가야된다. 자기부인의 길이다. 아직도 7장에서 말하고있는 것이 그런데도 옛날로 돌아가서 그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고 금욕주의를 어떻게하고 그렇게 할려고한다 주일날 돈안쓰고~~말도안된다. 그것 하고나면 뿌듯하다. 히7: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율법으로는 절대로 온전케되지 않는다. 완성할수없는법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무엇하러 왔겠습니까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되셨기 때문에 더 좋은소망이 생겨서 우리가 그냥 직행할수있다. 그것이 참소망이다. 옛날에 외적인 경건, 율법 이런것들로해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려고 별별 쇼를 다 했던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다. 가까이 가다가 예물이란 뜻이다. 코르반, 그런데 예물은 열심히 드리면서 멀리 떨어져있는것이다 이것을 제사라고했다. 코르반이 예물이란 뜻인데 예물은 열심히 드렸다 그러면서 가까이 나갔나요 예물이란 뜻이 가까이 가다란뜻인데 봉투만 가까이오고 마음은 멀리떨어져있는 제사를 열심히 드리고있었던것이다. 그것을 예배라고 하고있었던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을 통해서는 봉투없이 쑥가서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갈수있다. 그게 파레시아란것이다. 그게 진짜 소망이란것이다. 우리는 그런소망을 가지고있다. 가까이가다란것은 거처삼고 연합하는 것을 말한다. 율법으로는 그앞에 아무도 가까이 못갔다. 그것도 하나님이 정해놓은날 대표로 대제사장이 들어갈수있었던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가까이 갈수없었는데 그런데도 다시 옛날로 돌아가 또 이짓하고있느냐란것이다. 답답하다. 진짜 답답하다 안되는데 답을 가르쳐 주었는데 예수믿고 잘 믿는 것 같더니 환란과 핍박이 오니까 넘어져서 다시 옛날로 돌아가 열심히 해봐야지 내가 기도를 안해서 그렇구나 예물을 안드려서 그렇구나 이렇게 한다. 속은 시커먼데 그것은 가까이 간 것이 아니다 예물을 드리러 간것이다. 종교활동하러 간것이지 하나님께 가까이 간 것이 아니다 점점 더 멀어진다. 잘 생각해봐라 제대로 알지못하면 이런 바보가된다. 다 속는다. 오직 십자가로만 그앞에 가까이 갈수있다. 육체에 관련된법으로 도저히 갈수없는곳인데 다시 육적으로 돌아가 내가 더 열심히 잘해서 인정을 받겠다란것이다. 어리석은것이다. 예수님을 정면 부인하는것이다. 예수님이 세워놓은 의를 부정하고 내 의를 네세우는것이다. 그것이 율법아래서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잘했다 잘했다 이게 나오는것이다. 우리가 잘한 것이 무엇이 있나요 죄짓는것밖에 없다. 열심히 교회나온다고 잘했다 잘했다 믿음이 좋다고하면 진리인가요 속임수다 말도안된다 그런상황에서 다시 돌아가서 법을 지켜서 의가 되어보겠다고 배교를 하냐는것이다. 남아있는 여러분들여 그렇게 하지 마세요라는것이다. 끝까지 버티면서 인내로 믿음으로 소망을 가지고 그 휘장안으로 들어가 은혜를 구해라 그러면 도우시리라 예수님이 그 휘장안에 앉아서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기를 기다리신다 죄를 잔뜩 가지고 가서 내가 죄인이로소이다 죽여주시옵소서 그러면 예수님이 듣고 죽여주고 다시 새사람으로 세워주시겠다 이것이 복음이다. 오늘날도 성경을 모르면 율법의 의, 종교활동이나 행함이나 여기에 메여서 놀아나게 되어있다. 답답하다 그래도 안되니까 기적이나 이적을 좇는다. 이스라엘백성들 바리새인들이 기적이나 이적에 미쳤다. 왜 그것을 좇겠나요 율법으로 행함으로 그렇게 했는데 안되니까 기적 이적을 좇는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기적 이적을 베풀면 개때같이 몰려온다. 그렇게 철저하게 율법아래서 자기의를 내세우고 잘지키고 수천년동안 열심으로 제사지내고 예배했던 이스라엘백성들이 처참한 모습이였다. 시체였다 지금 우리도 똑같이 그것을 교회에서 하고있다. 열심히 하면 하나님이 잘 봐주실것이다. 거기에 다 걸린다. 다 걸려 넘어간다. 걸린줄도 모르도 넘어가있다. 그래서 더 좋은 소망이 무엇인지 몰랐던것이다. 그리스도만 붙잡기에는 너무 빚지는 것 같은것이다. 무언가 열심히 해야될것같다. 왜그런지 아나요 우리는 나면서부터 인과응보에 메여있어서 그렇다. 인과론, 거기에 메여있어서 그렇다 열심히 한사람은 복받고 선을 쌓은사람은 복받고 악을 행한사람은 나중에 돼지로 태어나고 이런것들을 배워서 너가 그렇게 못된짓을 하니까 그렇게 되었지 그것이 우리안에 깔려있어서 그렇다. 유교적인 공자맹자 그런배경이 그런것들이 베여있어서 교회와서도 무언가 해야될것같은것이다 무언가 하나님앞에 해주어야할것같은것이다. 교회와 주어야될것같다. 한번이라도 한번더 와주어야될것같다. 예물도 이집사보다 조금더 내주어야될것같고 그래야 이집사보다 복을 더 받을것같다. 그게 바로 샤머니즘, 전통신앙에 못밖혀있어서 그것이 뿌리깊이 우리대를 이어 내려왔다. 그러다보니까 하나님도 그렇게 믿는것이다. 똑같이 잡신하고 똑같이 많은신들중에 하나님도 그중에 하나로 믿는것이다. 잡신으로 다른신들은 다 열심히 하면 복받은다고한다. 도를 닦고, 내공을 닦아야하고 이런거다. 하나님한테 와서도 똑같이 그렇게 하는것이다 예수님이 세운 의를 공짜로 받아들이기는 미안한것이다. 예수님만 믿고 복못받겠다란것이다. 내가 열심히 할 테니까 내가 열심히 한것만큼 복주세요 그렇게 신앙생활을 했다 그것이 완전히 속은것이다. 아직도 성경을 모르고있는것이다. 예수님이 의다. 그것을 우리에게 공짜로 전가시켜주었다. 그래서 그리스도로 옷을 입혀주셨다. 무화가나무옷을 벗겨버리고 가죽옷으로 입히고 예수님이 얘가 내모습이나이다 이리들이 예수님의 탈을쓰고 오잖아요 오니까 예수님이 그속은 이리인 것을 탈은 예수님탈을 쓰고있거든요 야곱이 에서처럼 털을입고 장자가 된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옷을 입고 오니까 하나님은 알지만 예수님이 치뤄서 예수님이 변호사로 저들을 위해서 내가 죽었습니다 저 더러운 놈이지만 용서해주세요 그래서 우리도 더러운놈이지만 내가 예수님 이름으로 왔나이다 이렇게 가는것이다. 그런데 더러운놈이 옷빨아입고 가면 내가 이렇게 깨끗한놈이니 복주세요 이것이 율법이다. 어리석게 답답해 죽겠다 지금도 옛날로 돌아갈려고한다. 예수그리스도와 십자가의 복음안에 들어와서 부활연합되는게 진정 연약한자를 벗어버리는 단 한가지방법인데 아직도 옛날로 돌아갈려고한다. 무슨일이 안풀리면 무조건 교회 출석율을 높여서 해결할려고한다. 교회출석율을 높이라는 것은 와서 복음을 듣고 너안에있는 더러운 것을 때려잡아라 이걸위해서 교회 출석율을 높이라는것이지 갑갑하다. 와서 더러운옷 안갈아입고 주여 주여 해결해 주시옵소서 이것 하라고 오라는 것 아니다. 해결은 더러운 것 때려잡는 것이 해결이다. 옛계명으로는 할수없었다 제발 옛날로 돌아갈려고 생각하지말라 답이없다. 안된다. 그래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다란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붙잡는방법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예수님이 그길로 가까이 가셨기 때문에 가까이가다란 것은 달라붙는 것을 말한다. 그외에 어떠한 방법도없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길이라고한것이다. 예수님을 따라올려면 자신을 죽이고 자신을 부인하고 따라오라는것이다. 그것이 평강이요 그게 형통,안식이고 그게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유일한방법이라는 것을 말하고있다. 그런데 그것을 버리고 옛날로 돌아가겠다란것이다. 안된다란것이다. 가까이가다 이 자체가 예물이다. 그러니까 내 자신이 예물이다. 모든율법을 폐한 것이 아니고 제사장직분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제사장에 대한 규례가 예수님으로 바뀌였다. 레위가 아니고 유다지파로 온 영원부터 있는 대제사장 그분이 진짜 대제사장이 되어서 오셨기 때문에 그분을 붙들라는것이다. 그래서 불완전한 연약한 것이 완전한것으로 대체가 되었고 한시적인 것이 영원한것으로 대체가 되었다란것이다. 그래서 레위계통의 대제사장직에 대한 규례는 폐해졌다 완전체가 왔기 때문에 그렇다란것이다. 그래서 제사장직과 제사에 대해서 그거에 대한 완전한 내용이 예수그리스도의 제사장직분으로 우리가 받은소망이란것이다. 그게 소망이라는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소망의 본체라고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가까이 곧바로 예수님의 이름을 통해서 나갈수가있는것이다. 예수님이 그 옆에 앉아계셔서 계속해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기도를 드리고계시기 때문에 나갈수있는 길이 열여있기 때문에 우리는 담대함으로 나간다. 그게 파레시아다. 히7:20 또 예수께서 제사장 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시110:4) 21 (저희는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자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레위제사장은 맹세하고 된 것이 아니고 율법에 따라서 그냥 아들이 장남이 했다. 계명에 따라된것이다. 너는 영원한 대제사장이다 하나님이 못박았고 맹세해서 이루신것이다. 그래서 구약에 나오는 모든 대제사장이 예수님을 예표하는 그림자였고 멜기세덱은 예수님의 현현으로 보여주신 모형이다 이제 예수님이 직접오셔서 그일을 완성했기 때문에 모든 불완전 모든 연약함 모든 답없음에서 완전히 이루어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예수님을 통해서 갈수있다라는 소망을 확실하게 붙잡고 가야한다란 것을 말하고있는것이다. 다른길을 찾지말라는것이다. 나를 내세울려고 생각도 하지말라는것이다. 히7: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보증하고있는분이 예수님이다. 여기에 우리가 닻을 내려야된다. 종교활동과 율법의 행함으로 돌아가려고 꿈도 꾸지마라 그것은 다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것이다. 어리석은자들아 복음을 몰라서 다시 자력으로 구원을 얻으려고하느냐는것이다. 그래서 엄격한 율법을 지키는 금욕주의로 돌아간것이다. 다시 옛날로, 율법아래로 제사지내고 요즘 교회에서도 절기 열심히 철저하게 지킨다. 요즘 굶고있죠 열심히 굶고있고, 열심히 일부러 계단을 무릎을 끓고 올라가보기도하고 십자가 큰거 지어보기도하고 그러면서 예물을 드려가면서 예물로 칠을하고 그게 옛날로 돌아간거 아닌가요 그렇게 해서 더 가까이 가서 어떻게 해보겠다란것이다. 그건 이미 폐한것이다. 더 좋은 언약의 보증수표가 있는데 바로 예수님이다. 완전한 구원의 보증이란것이다. 그게 여기있는데 그것을 버리고 옛날로 돌아가겠다고 그말이다. 그런것들을 모르고 율법으로 돌아가 인간이 세운 제사장을 의지하고 그 행위를 의지하고 자기의 내세우고 또 이렇게 해보겠다라는것이다. 율법안에 있으면 전부 자기의 아닌가요 자기 열심히 한만큼 복받는다라는 개념아닌가요 참 갑갑하다. 그것을 꼬집고있는 중이다. 여기서부터는 제사장의 불완전함을 말하고있다 답이없는 인간들이라는 것을 말하고있다. 히7:23 저희 제사장 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아들이 죽으면 그 아들이 되어야되고 영원성이 없다. 히7: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인간의 한계성과는 비교도안된다. 그런데 한계를 가진 인간에게 다시돌아가서 거기앞에서 어떻게 해보겠다란것이냐 그래서 사람을 바로보면 안된다 히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지금까지 멜기세덱을 좇아 일어난 대제사장 예수그리스도 봤지, 유한하지도 않고 영원부터 하나님이 맹세로 세우신분이다. 그리고 그가 완전한 구원을 이루고 지금 하나님앞에서 우리를 위하여 보증이 되어서 앉아계신다. 그런데 옛날 제사장에게 돌아가서 다시 율법아래서 너가 열심히 한번 해보겠다고 그말이다.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자(고르반) 를 온전히 구원하실수있으니, 구원을 온전히 이루신다란것이다. 구원이 과거,현재,미래 3시제다 지금구원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막 텁텁하고 무언가 안되고 그러면 종교활동에 열심을 내시려는분이 많다. 그것을 위해서 열심히 횟수를 늘리라고 한 것이 아니다. 와서 열심히 줄고 부활해라 연합해라 그래서 옛것을 벗어버리고 새것이 되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다 누려라는것이다. 더 좋은 언약의 보증수표 예수님을 만나서 그분앞에 꼬꾸라져사 새롭게되라 그분이 영원한 대제사장이다 그분을 만나면 안으로 들어간다. 다리놓아주는분 그래서 가까이간다. 가까이가면 하나님께 할말이 많다 가서 해라 온전히 구원하신다. 지금도 구원하신다. 과거의 모든 아담적인 죄를 모두 사하셨고 지금 내가 짓고있는 죄도 구원하실수있다 예수님을 믿고 들어오라는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와서 너를 구원해갈것이다. 그것까지 확실하게 도장을 찍었다란것이다 보증,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계신데 거기에 안가고 어뚱한데로 갈려고한다. 여러분 지금 처한상황에서 능히 구원하실것이라고 믿고계신가요 온전히 구원하실수있다란 것을 말하고있다. 우리에게 그 앞으로 언제든지 달려갈수있는 소망이 있고 파레시아 담대함이 있다란 것이 얼마나 감사한일인가요 내가 무언가를 열심히 사순절동안 40일 금식하고 이래야만 가는 것이 아니다 그런것들을 똑바로 깨달아야된다 완전하신 제사장 그분이 우리의 제사장이다 언제든지 하나님께 나갈수있는것이다.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께 나갈수도 없어서 영생을 누리지 못하고있는데도 다시 돌아가겠다고 아둥바둥있는 것을 보면 답답한것이다. 아무리 거기가서도 이땅에서 영생을 누릴수가없다. 영생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이다. 복이다, 하나님이 누리는 모든 것을 지금 누려야하는데 열심히 절기로 열심히 종교생활 활동으로 그것을 누릴려고하는것이다. 불가능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셔서 그길을 열어놓았다 그길은 자기부인과 십자가로 연합만 하면되는것이다. 너무 간단하지 않나요 자기부인과 십자가로 들어가서 연합하면 된다 심플하다. 그래서 파레시아 그것을 모르고 자기가 열심히 하면 자기가 좋은날이 오겠지 아직도 그런데 빠져있다 그게 옛날로 돌아간사람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요 똑같다. 그래서 모든것위에 뛰어난 예수님을 붙들라는것이다. 그들은 짐승을 통해서 제사를 지냈지만 예수님이 자신이 짐승이 되어서 제사를 지내므로 완전히 한번 완전한 제물이 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가는 생명의길을 열어놓았다. 그래서 율법의 행위가 아니고 영원한 생명의길을 놓았는데 그게 핵심이라는것이다. 그게 예수님의 제사장직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그 율법의 제사장이 아니라 완전한 제사장 비교도할 수 없는 제사장이 우리를 위하여 먼저 들어가 가신데 왜 옛날로 돌아가 말도안되는 답도없는 그 제사장을 섬긴다고 율법으로 돌아가느냐는것이다. 25절은 히브리서 전체핵심이다. 예수님은 자신의이름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가는자들을 완전하게 항상 구원하실수있다란것이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앞에 나갈 때 예수님이름으로 완전하게 나갈수있는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고 못해서 못나가는것도 아니다. 그래서 25절이 결론이다. 영원한 효력을 가지고있는 예수님이다. 새롭고산길을 열어놓았다란 것은 분리에서 오는 연약함, 불완전성, 부정성에서 연합을 통한 완전함으로 이루어진길이다. 십자가로 하늘과 땅이 하나가되는 것, 재통일되는것을 말하고 있고 연합을 이루는 것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다란 것을 말하고있다. 그게 결론이다. 7날에 이르는 분리에서 연합, 율법의 법이 아닌 영생의법, 생명의법 죄와사망에서 자유케하는 생명을 주는 성령의법 바로 그리스도를 통한 영생과 기쁨을 얻는다란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신을 힘입어 나오는자들에게 완전한 구원을 주신다란것이다. 지금도 이순간에도 언제든지 그게 나아가다라는 이것이 바로 파레시아를 말하고있다. 레위 제사장은 결코 그것을 할 수가없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고 그 제사는 전부 예수님이 오셔서 이루어낼것을 그림자로 보여주는것이였고 제사행위도 그렇고 제사장도 전부 예수님을 예표하는것이였고 제단도 십자가를 말하는것이고 전부 그림자와 실체에 대한 내용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완전한 구원을 가지고온다 그래서 완전한 구원의 능력이다라고 표현이 되어있다. 그리고 예수님이 어떤가 26절 히7: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원래부터 죄가없다)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부활승천) 부활하셔서 보좌우편에 앉아계시면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이 세운 언약을 지금 보증하고계신다. 그리고 변호하고있고, 중죄자로 계신다. 히7:27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흠이 없는데 제물로 드려져서 우리의 완전한 죄속함이 되셨다란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완전하다 그리고 완전한 중보사역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리고 우리의 연약함을 온몸으로 체휼했다. 그래서 그 연약함이 어떻게해서 없어지고 완전하게 될수있는지 자기 온몸으로 보여주셨기 때문에 그길이 영원한 생명의길이다. 레위를 통해서는 절대로 얻을수없었던 속죄와 영원한생명을 예수님은 단번에 이루셨다. 그래서 언제든지 예수님이름으로 들어가 영원한생명을 누려라 연합이다. 분리된 연약함에서 연합된 완전함으로 예수이름으로 가서 이루라는것이다. 그래서 완전하고 최종적인 구원의 능력이다. 그것을 말하고있다. 승천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곡신분이다. 안죽고 살아계신분이다. 그래서 그이름을 통해서 담대하게 하나님앞으로 달려가는것이다. 그것이 중죄사역이고 완전한 변화사, 유능한 변호사 역할이다. 무엇을 변호하겠나요 죄밖에 없어서 나갈수없는 우리를 변호해서 그 앞으로 갈수있도록 내가 저사람을 위해서도 죽었나이다 내가 저사람을 위해서도 죽었나이다 그것이다 그래서 누구한테 욕하면 안된다 예수님이 그 사람을 위해서도 죽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하여 변호하는 것은 변호사가 무엇을 변호하나요 죄와허물,실수 이런 것을 변호한다. 우리의 죄와허물,실수,연약함 이모든 것을 똑같이 경험한 예수님이 다 갚았기 때문에 우리를 위하여 변호사로 계신다란것이다. 그 변호사를 대라. 그래서 우리가 불완전하고 연약하고 설령 죄가운데 있을지라도 우리를 위하셔 변호하고계시는 예수님을 힘입고 하나님앞에 우리는 언제든지 나갈수있다. 그것을 말하고있다. 요일2: 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어쩔수없이 넘어지더라도 담대하게 나오라는것이다. 날때부터 죄밖에 없다란 것을 하나님이 아신다. 히7:28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우리는 원래 연약하다.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않는분이 아니다. 연약함은 하나님과 분리됨을말함. 분리된 아담의 본능, 부정성, 무능함, 답없는 존재, 짐승 같은 존재인줄 알지만 예수님은 그런 존재로 와서 그것을 다 해결했다란것이다. 그 아들로부터 우리는 생명을 다 받았다. 그러기 때문에 언제든지 그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모든힘과 능력으로 살아갈수있는 존재가 되었다란것이다. 죄의 세력에 빠질수도있고 때로는 연약하면 넘어질수도 있다 그것을 인정안하면 안된다. 왜냐면 우리는 아직 연약함을 아직 가지고있다. 그렇지만 승천하신 대제사장이 우리를 위하여 딱 중보하고 변호하고계시기 때문에 그 이름으로 파레시아를 가지고 나오는자들을 은혜의 보좌앞에서 도움을 얻도록 예수님이 딱 조치를 취하신다. 최적의 도움을 받을수있도록 그게 예수그리스도의 중보사역, 속죄사역, 구원사역의 완성을 말하고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는 본질적으로 연약함이 아닌데 연약하게 되신 것은 그 연약함을 담당하시기위해서였다. 그래서 대제사장으로서 완전한 직분과 완전한 능력을 가지고계신것이다. 결론은 연약함이란 것은 아담의 본성이다. 벤아담의 본성, 벤아담은 한마디로 하나님과 분리되어 부정하고 타락한 짐승 같은 존재 자체다. 그 연약함을 벗을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밖에 없다 그안으로 들어가 연합하는것이다. 완전하신 그분과 그런데 그안으로 들어가 연합하는 것이 아니라 이 히브리 독자들이 그 연약함을 가지고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서 금욕생활을 하고 더 철저한 종교활동을 해서 그것을 극복할려고 한것이다. 그러니까 환란과 핍박이 오니까 이거 예수님으로만은 안되겠다란것이다. 예수님으로 문제가 해결이 되겠나요 그 어떠한답도 없다. 그 연약함을 벗을수있는 것은 율법을 다 지켜도안된다. 물론 다 지킬수도없지만 사도바울이 율법으로는 흠이 없도록 다지켰다고했다. 부자청년이 다 지켰다 도 무엇이 지킬까요 여러분도 수십년동안 다 지켰죠 회개도 매일하고 매일 열심히하고 예수님 무엇을 더 하라는것입니까 그 연약함을 벗어날려고 종교활동을 한것이다. 그게 전통종교의 뿌리깊은 자기의, 열심히 선을 행하고 열심히 무언가를 하면 복받는다. 교회도 똑같이 적용이 되어서 그런줄알고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한거죠 그것이 아니다. 그게 아니고 게을러도 예수님만 꼭붙들면 된다. 그게 복음이다 그안으로 들어오라는것이다. 여러분 넘어지고 때로는 죄를 지어도 그래도 뻔뻔하게 오라는것이다. 환란과 핍박이 몰아쳐서 도저히 답이 없는 것 같은데 답이 있다고한다. 예수님의 힘을 얻어서 그앞에 담대해 나가면 그 도움의 보좌가 있다란것이다 하나님이 돕겠다란것이다. 그것을 안하고 율법으로가서 열심히 해서 문제를 해결할려고한다. 이게 옛날로 돌아가는것이고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것이다. 예수님이 이룬 것이 부족해보이나요 자기부인과 십자가만으로는 안될것같지요 이러다가 다 깨트려버리면 안될것같은가요 무언가 열심히 해야될것같지 않나요 이래야 뭐 복을 받을것같지않나요 그건 예수님이 이루어놓은 의를 박살내는것이다. 다른말로 내가 이만큼했으니 그것을 의로 인정해서 하나님 신28장에 한거 주세요 이거 아닌가요 못한 것은 어떻게 하나요 못한 것이 헐씬 많다 말도안되는 것을 요즘 교회에서 요구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의 연약함은 우리힘으로 못벗는다. 존재가 그렇다 그것은 오직 십자가를 통해서 새로운존재로 거듭나서 연합될때만 벗어버릴수있는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생명안으로 연합될때만 가능한것이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와 십자가외에는 어떠한길도 없는것이다. 연합이 답이다. 답없는 연약함, 부정함, 답없는 존재 유일한답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그것만이 답이다 그래야 부활연합해서 거처안으로 들어가 언제든지 우리가 주님께 내자신을 들어내어 놓을수가있다. 우리는 때론 죄 때문에 연약함 때문에 고난을 당하기도한다. 그렇다고 매일 폐인된사람처럼 살수있나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언제든지 달려갈수있다란 것을 말하고있다. 변호사가 거기에 있다 내가 어떤죄를 지어도 변호할 수 있는 단 한가지만 빼고 성령을 거부하는죄만 빼고 다 변호할 수 있는 변호사가 유능한 변호사가 계신다. 거기로 달려가세요 그럴 때 우리는 완전한 구원, 지금현재구원도 포함되어있다. 너희들 개고생하다가 와라 이것이 아니다. 지금 이 환란에서도 건져낼수있는 언제든지 구원할 수 있는 그 변호사가 있다 그것을 믿고 그분께 나가세요 언제든지 가능하다. 그것을 우리에게 오늘 히7장을 통해서 말씀을 하고계신것이다. 우리 과거를 생각해봐라 겔16장을 보면 피투성이가 막 발짓하는 그런인생이다. 그게 뭐예요 부정성 연약한존재의 한계성이다. 그런상태로 우리는 나서 그안에서 스스로 강건해지려고 내힘으로 무장하고 얼마나 노력했나요 율법지킴도 예수믿음도 전부 그런것이다 스스로 강건해지려고 스스로 복된자가 되어보려는 그런 하나의 어떤 자기의에 불과한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강해질려고 그렇게 열심을 냈던 지난시간을 생각해봐라 내면도 강건해졌나요 내면은 파괴되어서 그것이 핏투성이가 발길질하는 수준, 만신창이라는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내면은 어떤가요 사도바울이 고백한것처럼 오호라 이 사망의몸 곤고한자를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것이 율법의 결과다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속은 곪아 죽어가고있었다란것이다. 그래서 회칠한무덤이였다. 그렇게 죄어서 자신도 파괴시키고 남들도 파괴시키고 그러지 않았나요 자력으로 많은것들을 이루어낸사람들 보세요 그 내면이 어떤가 황폐해져있다. 하루도 편한날이 없다. 그게 인간의 의다. 율법아래있는 자아라는것이다. 그렇게 비참한것이다. 그래서 힘을 길러야되고 열심히 해서 행복을 만들어내야하고 열심히 해서 하나님께 잘보여서 복을 따내야되고 그런것들이 신앙생활인줄알았다. 교회만 열심히 나왔지 여전히 자기의라는 자신의옷을 입고있었던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자리에 나는 백성의 자리라는 그 언약의 본질을 모르고 내가 내가 전부 내가했다. 속은 썩어서 염려근심 떠날날이 없고 편안한날이 없고 안식,평강이 없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언약대로 날려버리는것이다. 그게 연약함의 본질이 나 자신이라는 것을 몰랐던것이다. 내존재가 연약함, 부정함이란것, 답없다란것을 몰랐던것이다. 거기에 열심히 율법의 활동으로 옷을 입으면 되는줄 알았던것이다. 그랬더니 그 안에서 완전히 썩어서 냄새가 나고 회칠한무덤이 된것이다. 그러니 심판을 안받겠나요 잘못해놓고 잘했는줄알고 하나님앞에 들이대고있는것이다 하나님은 공의로 심판을 받아야되기 때문에 꼬꾸라질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손길이 임하게되니까 내가입고 있는 무화과나뭇잎의 껍질들이 하나씩 하나씩 말라서 벗겨져 낱낱이 존재가 다 들어나는것이다 내안에 꽁꽁 감추고있었던 부끄러움, 자존심까지 싹다 모든사람들앞에 발가벗겨서 다 들어낸다. 그게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여러분 여기까지 안가야된다. 이 말씀이란 것이 심판으로 오니까 그앞에 낱낱이 들어나는것이다. 말씀열기와 기름부음으로 새창조를 말씀열기와 기름부음으로 내존재를 바꾸어놓아야 완전한 연합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것을 다 누릴수가있다 언제든지 나가면 하나님이 붙들고 인도하시겠다 모든인간은 모두 연약한 존재다. 제일 핵심단어 연약함, 파레시아, 그리고 예수님이 완성하셨기 때문에 언제든지 달려갈수있다. 우리는 어리석고 미련하고 연약한 인간일수밖에 없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그것을 다 감당하시고 생명의길을 열어놓으셨다 그래서 율법의 의가 아니라 생명안으로 들어와 그 새명과 연합함을 통해서 이 모든약함을 다 벗어버릴수가있다. 그길밖에 없다. 우리는 완성이 되었고 완성이 될것이다. 그래서 말씀을 볼 때 말씀이 심판의 말씀이 되어서 계속 나를 쪼개어낼 때 계속해서 새롭게되어서 하나님과 연합하게 되는것이고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는 언제나 연약함속에서 고통을 당하고있지만 죽을 수밖에 없는존재이지만 그것을 알기 때문에 인정하고 예수님께 나가라는것이다 그것이 파레시아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도 그 생명의 교재없이는 살수없는 존재다. 그래서 담대하게 그앞에 나아가 생명의 공급을 받으라는것이다. 분리된자는 생명이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 연약함을 벗을수가없다. 그래서 그 앞으로 나가 생명으로 충만해지라는것이다. 그게 영생의 교재라는것이다. 그래서 천국을 누려야된다. 항상 누려야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