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지난 1월 말 동문회 간사로부터 걸려온 전화다. '선배님 강릉여고 80년사에 실을 추억담 한 편 보내주세요' 글쟁이한테 원고 청탁을 하는 게 수월한 듯 단문의 에세이를 부탁한다. '벌써 개교 80주년이라니' 믿어지지 않는 시간의 속도다. 서재에서 늘 꽂혀있던 앨범은 50연사 앨범이었다. 앨범을 펼치자 동문들의 사진과 글, 그 날의 축제가 엊그제인 듯, 내 졸고도 지면을 채우고 있었다. 뭉클한 감회와 모교를 아끼는 동문들의 열정과 노고에 숙연해졌다.
그립고 아름다운 기억들이지만, 이제는 어렴풋이 퇴색되어가고 있는 학창시절의 이야기들 얼마나 많은 사건 사고들이 매일 매일 우리들을 기쁘게도 하고 또 절망하게 하였는지, 필름이 끊길 듯 다가오는 기억의 편린, 그중에도 떠오르는 이야기는 2학년 2학기가 되면 연례행사로 총학생회장을 뽑는 행사였다.
선거 공지가 학교 게시판에 올려지면 전교생은 제법 술렁거리며 그중 웅지를 품고 있던 친구들이나 똑똑한 평팡이 있는 친구를 내세워 선거판을 이끌게 되었으니 나와 가장 친했던 Y가 츨사표를 내놓게 되었고또 다른 출마자는 상과를 대표하는 C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나와 Y는 다툼으로 그 즈음 말을 하지도 눈길을 주지도 않는 냉각기에 들어서 서로 냉랭하게 지내게 되었으니 참 딱한 사정이 되고 말았다. Y가 사과하지 않는 한 나는 그 아이를 용납하지 않으리라고 다짐을 하고 잇던터라 '오라 너 회장 되나 봐라' 나는Y가 되례 낙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상황을 지켜보았지만 아주 불편한 마음이 되어가고 있었다. 당시 우리 학년은 문과가 두 반이었고 상과가 한 반이었다. 문과에서는 Y가 나서게 되었고 상과에서는 C가 출마하게 되면서 드디어 두 사람으로 압축되었다.
Y는 공부도 뛰어나게 잘했지만 특출한 리더쉽을 겸비하여 반장을 도맡아 했다. 나는 그 아이에 비하면 반장 부반장 아래 서기나 회계의 반열에 있었느이 격은 한참 아래에 있었다. 키가 작고 여린 얼굴은 해맑은 소녀였지만 유머 감각이 뛰어나서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으니 학생회장 감으로 손색이 없었다.
(중략)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헤세의 데미안을 떠올라게 된다. 성장기에 우리는 헬만 헤세의 데미안 속의 두 소년, 데미안이 싱클레어의 구원이 되기도 한 것처럼,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대 문호 헤세의 이야기가 우리들의 학창시절의 혼돈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나간, 알을 깨고 나가려는 그 꿈이었을 것이다.
남실 남신 남대천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윤슬이 되어 강문으로 흘러 먼 바다로 가고 있다. 우리의 그때 시절도 그렇게 넓은 바다로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