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캔바스 윤호섭 선생님 찾아갔어요. 겉에서 보면 뭐하는 공간인지 한눈에 알아보기 어려운 간판없는 작업실이었어요. 작업실 곳곳에 다양한 소재의 작업물들이 보였는데, 그 중에서도 초록색 문에 덕지덕지 붙여놓은 박스 테이프와 생수 라벨지가 단번에 눈길을 끌었어요. 버려지는 테이프를 모아 공을 만들고 계시는데, 그 공은 마치 우리가 사는 지구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선생님은 대학 학장을 맡으신 때에 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나 돌아보시며, 디자인이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로 환경 파괴에 앞장서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린 디자인" 과목을 개설하고 교육하셨다고 해요. 이미 쓰레기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무얼 더 보태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이 중간다리의 역할로써 본질적인 문제를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환경을 생각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계셨어요.
첫마음과 그 뜻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지 질문했는데, 선생님의 작업물을 보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을 보며 기쁨과 공감을 주었다는 만족감, 그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경험이고, 이것이 작업을 지속 가능하게 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더욱이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환경디자인을 마치 분과적이고 윤리적인 영역으로 보는 이들에게, 환경을 고려한 디자인(작업)은 수단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임을 일깨워주셨어요.
엽서와 달력에 들어간 그림을 직접 설명해주기도 하셨는데, 환경 외에 "침묵", "평화", "사랑" 과 같은 주제로 작업하신 이야기 들으며 혹자는 환경운동가라고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평화운동가 같다 느꼈어요.
성경에서 바울이 각 믿음과 분수대로 한몸된 지체들과 사랑하며 살라고 이야기한 것과 비슷한 메시지가 담긴 작품이 인상 깊었어요. "우리는 서로 다르기에 각자의 부족함을 서로 메워주는 서로가 필요하다, 우리는 서로의 열쇠다"라고 말씀하신 교황님의 말을 그림으로 그려낸 작품이었는데, 깨우침을 자신의 작업에 녹여내고 그에 맞게 삶을 변모해가며 지내시는 것 또한 인상 깊었습니다.
작업실에 붙어있는 또다른 유리문 너머에 바깥인지 안인지 경계가 모호한 공간이 있었는데,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천장 구조물 사이로 떨어져 자연스럽게 꾸며주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어요. 천장 구조물에 걸려있는 사과는 새들이 들어와 먹고 쉬어갈 수 있도록 매달아 놓으셨다는 이야기 듣고 그 광경을 목격하며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어요.
각자 가져온 옷에 제주 돌고래, 제돌이를 떠올리며 초록 물감으로 그림 그려주셨어요. 이미 수천번 그리셨을텐데 한 획 긋는 붓 끝에 온 정성을 담는 손길과 눈빛이 느껴졌어요.
선생님과의 만남에 앞서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 소설을 읽고 필사했어요. 황무지에 수 십 년 동안 나무를 심어 울창한 숲을 만들고 마을에 새 생명들을 불러일으킨 주인공 '부피에'처럼, 묵묵히 그리고 겸손하게 자신의 일을 해가고계신 선생님과의 만남이 참 좋았습니다. 작업실 옆에 선생님께서 심으신 은행나무가 튼튼히 제 빛깔내며 자라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