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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갈과 사라(갈라디아서 4장 21~26절) - 율법과 복음
사도바울은 다른복음의 유혹에 넘어간
갈라디아 교회에게 복음을 떠나지 말라고 말하는데
율법은 초등학문에 불과하여 구원받지 못하고
오직 복음의 말씀을 믿음으로만 구원받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율법은 죄인임을 깨달아
그리스도께 인도함을 받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게 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본문부터는
하갈과 사라를 예로 들어 율법과 복음을 설명하며
오직 복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본문 21절을 보면 ....
갈4:21 <하갈과 사라>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율법 아래에 있는 자는 자신의 열심과 노력으로
구원받고자 하는 자들을 말하는데 유대인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런데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이라는 것은
전해 들은 복음을 배척하고
다른복음의 유혹에 넘어간 갈라디아 교회를 말합니다.
이러한 갈라디아 교회에게 성경에서 기록하고 있는
하갈과 사라의 모습을 통하여 율법으로는 구원받지 못하고
오직 복음으로만 구원받음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 21장 15~17절을 보면 율법이 아닌 복음으로만
구원받게 됨을 모형으로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21:15 <장자의 상속권> 어떤 사람이 두 아내를 두었는데
하나는 사랑을 받고 하나는 미움을 받다가
그 사랑을 받는 자와 미움을 받는 자가 둘 다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이 장자이면
이 말씀도 본문의 말씀과 같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라와
아들을 낳아 준 하갈의 모습을 기억하고 보시면
쉽게 이해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는데
아이를 낳지 못한 사라는 미움을 받는 아내의 모형이며
아들을 먼저 낳아 준 하갈은 사랑을 받는 아내의 모형으로
하갈이 먼저 이스마엘을 낳았고
약 14년 후에 사라가 이삭을 낳게 되는데 ....
육적인 장자는 율법을 상징하는 이스마엘을 말하는 것으로
사랑을 받는 아들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장자는 복음을 상징하는 이삭이지만
미움을 받는 장자를 모형합니다.
이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먼저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셨다는 의미가 이스마엘이 태어나는 모습으로
율법을 생명처럼 여기며 하나님을 섬길 것을 말하고
그 후 약 1500년 후에 약속의 말씀대로 예수님이 오셔서
율법을 복음으로 바꾸어 주신 모습이
이삭이 태어나는 모습인데 그 복음을 미워할(배척)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하여 교회로부터
율법은 사랑을 받고 복음은 미움을(배척) 받게 될 것을 말하는데
오직 복음으로만 구원받으므로 복음을 떠나지 말라 말하는 것입니다.
신21:16 자기의 소유를 그의 아들들에게 기업으로 나누는
날에 그 사랑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삼아
참 장자 곧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보다 앞세우지 말고
신21:17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장자의 의미는 교회의 장자인 예수님을 말하는데
아버지 기업을 이을 자를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기업인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자를 말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장자는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권리가 있는 교회를 말하는 것으로
율법이 아닌 복음의 말씀을 믿는 자가
구원받게 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으려 하지 말고 오직
많은 사람들로부터 미움을(배척을) 받는 복음을 믿어야
구원받게 됨을 모형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마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먼저 낳아 준
하갈과 이스마엘이 쫓겨나고
아이를 낳지 못해 미움을 받던 사라와 이삭이
아버지의 기업을 이어가는 모습과 같은 의미입니다.
사도바울도 본문에서 이 말씀을 근거로 율법이 아닌
복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22절을 보면 ....
갈4:22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다는 것은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과 사라가 낳은 이삭을 말합니다.
두 아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에서와 야곱을 낳는 모습도 동일한 것으로
먼저 태어난 에서는 율법을 상징하고
동생 야곱은 복음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창세기 25장은 조금 다른 의미로 다루고 있는데
22~23절을 보면 ....
창25:22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창25: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에서와 야곱 쌍둥이를 잉태하여 낳게 되는데
이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형 에서가 동생 야곱을 섬긴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사도바울은 로마서 9장 1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롬9: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에서와 야곱이 어머니 태속에 있었으므로
죄를 범하거나 착한 행위를 하지 않았는데도
여호와 하나님이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긴다고 했다는 것으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택하셔서 부르심을 따라
믿음에 이르게 되어 구원을 받게 되지만
어떤 사람은 택함을 받지 못해 믿음에 이르지 못해서
구원받지 못한다는 뜻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사도바울은
또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데 ....
3장 5절과 4장 6절을 보면 ....
갈3: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누룩이 없는 복음의 말씀을 들음으로
성령이 오셔서 믿음에 이르게 하지만
다른복음을 상징하는 율법의 행위로는
성령이 오시지 않아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갈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어머니 태 속에 있는 야곱처럼
택함을 받은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이며
그에게 복음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성령을 보내어
믿음에 이르게 하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신다는 것으로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들의 영은 복음의 말씀을 말하지만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복음의 말씀을 들어도
마음에 기록되지 못해 믿음에 이르지 못하므로
아들의 영을 성령이라 표현하기도 합니다.
참고로 공동 번역과 현대인의 성경은
아들의 영을 성령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
현대인의 성경을 보면 ....
갈4:6 여러분이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성령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셔서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렸는데 이처럼 두 아들의 의미에서
이스마엘과 이삭은 율법과 복음을 상징하지만
저와 여러분이 구원받는 것은 택하심을 따라
구원받게 된다는 것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본문 23절을 보면 ....
갈4:23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스마엘이 여종에게서 육체를 따라 났다는 것은
이스마엘이 태어나는 모습을 통하여 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6장 2~3절만 보면 ....
창16:2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창16:3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였더라
여호와 하나님은 창세기 15장에서 자손을 낳지 못하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메시아를 보내어
복음으로 하늘의 뭇별과 같은 많은 백성을 구원하신다고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로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언약의 말씀만 해놓고
사라에게 아무런 소식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사라가(교회가) 자신의 소견으로
하나님의 뜻을 판단하여 종 하갈을 통하여
약속의 자손을 낳으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어 주실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라는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종
하갈을 주어 약속의 자손을 낳으려고 한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약속에 따라 이스마엘이 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소견에 따라 난 자라는 뜻으로
육체를 따라 났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라의(교회의) 모습은 사사기의 모습과 같은 의미입니다.
삿17: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삿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왕이 없다는 것은 약속의 말씀을 이루어 주지 않아
복음을 아는 자가 없어서 성경의 말씀을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해석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모든 성경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데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성경을 해석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인의(교회의) 모습과 같습니다.
이것은 모두 다른복음으로 율법을 상징하며 본문에서는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모든 성경을
십자가로 풀어 예수님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다른 뜻으로 풀어 전하고 따르는 것은
다른복음으로 율법에 매여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모습이 율법을 상징하는 하갈의 모습이라면
자유 있는 복음을 상징하는 여자인
사라의 모습은 어떤 의미일까?
창세기 15장 4~5절만 보면 ....
창15: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창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여호와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는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면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약속하신 메시아를 보내어
하늘의 뭇별과 같은 많은 백성을 구원하실 것을
맹세로 보증해 주셨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대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라를 통하여 이삭이 태어나게 되는데 ....
창세기 17장 19절을 보면 ....
창17: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대로 결국
이삭이 태어나게 되는데
이 모습은 약속하신 말씀대로 여자의 후손으로
약속하신 메시아가 오시는 모습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의미는 아브라함이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태어나는 것은
약속하신 메시아가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모습을 그려주고 있는 것이 할례의 의미로
이 복음으로 예수님이 하늘의 뭇별과 같은 많은
백성을 구원하실 것을 모형으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유 있는 여자인 사라의 의미는
메시아 언약의 말씀대로 여자의 후손으로
메시아를 보내어 복음으로 구원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갈은 육체를 따라나서
죄의 종에서 구원받지 못하지만
사라는 약속의 말씀대로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해 주심으로 자유를 얻게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24~2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갈4: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갈4:25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하갈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하갈은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는 모습과 같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을
생명처럼 여기며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모습을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세워지고 성전을 통하여
율법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모습을 보고 사도바울은
로마서 10장 1~4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롬10: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롬10: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들도 구원받길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말한다는 것으로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인
복음을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롬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롬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의인 복음을 믿는 길밖에 없는데
이 사실을 모르고 율법만 지키면
구원받는 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이 하갈의 모습과 동일한 것으로
율법에 종노릇하고 있는 것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사라는 그렇지 않다고
본문 26~27절은 말합니다.
갈4: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하갈은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율법) 같고
사라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는(새 언약) 것은
창세기 1장 7절의 말씀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창1: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세기 첫째 날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모습이며
둘째 날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죄인들이 받을
지옥불의 고통을 대신 받으신 모습을 말합니다.
그래서 물이 하나로 있었던 것을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신 것을 말하는데
우리의 모습으로 보면 율법 속에 감추인
복음을 십자가를 통하여 구별해 주신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궁창 아래의 물은 율법을 말하는데
본문에서는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부터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다고 말하는 것이며
궁창 위의 물은 복음을 말하는데
본문에서는 사라가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 말하는 것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구별해 주신 복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어머니라는 것은
창세기 3장 20절과 17장 16절의 말씀을 통하여
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창3:20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창17: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이 말씀은 창세기 3장 15절에서
여자의 후손으로 메시아를 보내어 구원해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대로 교회를(여자를) 상징하는 하와와 사라를
통하여 약속하신 메시아를 보내어 구원하실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라는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며 자유 자라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바울은 아브라함의 두 아내를 통하여
율법과 복음을 설명하며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받지 못하고
오직 약속의 말씀대로 십자가를 통하여 다 이루어 주신
복음을 믿음으로만 구원받음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에 대하여 기록된
성경의 말씀을 사람 스스로의 소견으로 해석하여
풀어주는 말씀을 듣지 마시고
오직 십자가로 풀어주는 말씀만 듣고 먹어서
생명을 얻는 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첫댓글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