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특정한 순간이나 기억을 상기시켜주는 음식이 있다. 나에게는 김밥이 그 중 하나이다. 매일 아침 등교하기 전, 밥 한 톨이라도 더 먹이고 싶으셨을 우리 엄마는 세 딸들을 위해 조미김에 흰쌀밥을 올려 돌돌 만 뒤 밥상 위에 쪼르르 올려두셨다. 지금은 짭조름한 김 하나만 있어도 밥 한 공기 뚝딱 인데 그때는 왜 그리 안 먹겠다고 엄마에게 투덜댔을까. 그때를 생각하면 엄마에게 미안하고, 감사하다.
1년 중 가장 하늘이 맑고 화창한 날에는 가을 소풍을 떠나고 운동회가 열렸다. 설렘 가득 안고 내일을 상상하며 쉽게 잠들지 못했던 밤이 지나면 온 집안 가득 채운 고소한 참기름 냄새에 눈을 뜬다. 졸음을 머금은 눈을 온전히 뜨지도 못하면서 엄마가 썰어 놓은 김밥 하나를 입에 넣어 오물거리며 먹는다. 맛있다는 한 마디에 엄마는 흐뭇하게 웃으시며 빨리 씻으라고 말하신다. 그 시절 나에게 김밥은 즐거운 날 먹어야 하는 상징적인 음식이었다. 그런 김밥이 유독 맛있었던 이유가 엄마의 사랑과 정성 때문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어디서든 쉽게 사서 먹을 수 있는 김밥은 배고플 때나 시간이 없어 간단하게 끼니를 때울 때 찾는 만만한 메뉴 중 하나이다. 하지만, 나는 특별한 날에 김밥을 만다. 근교로 여행을 가거나 나들이를 갈 때,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날 때면 함께 나눠 먹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김밥 재료를 준비한다. 이제는 소풍 가는 날 엄마가 만들어준 김밥을 먹을 수는 없지만, 그 감사했던 김밥을 내가 만든다. 김밥이 쉬워 보여도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데… 하시며 맛있게 먹어주는 엄마를 보니, 그 시절 내가 생각나고 알게 모르게 뿌듯함이 느껴진다. 이제는 나도 김밥을 통해 사랑을 전달하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