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마27:45-50)
(27)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46)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47)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48)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49)그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50)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요19:14-16)
(14)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15)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16)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여섯(육)째날……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 하셨다는 날입니다.
여섯째 날의 창조를 살펴 보기 전에 먼저 여섯(육)의 의미(비밀)를 먼저 살펴 보고자 합니다.
여섯(육)을 묵상함에 있어서 마27:45-50과 요19:14-16의 말씀을 가져왔습니다.
마27:45-50에 의하면 육(여섯)시에 예수님께서는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19:14-16을 보면 육(여섯)시에 빌라도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는 시간에 빌라도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니……
이럴 수가……
성경이 거짓입니까?
왜냐하면 마27:45-50이 진실 이라면 요19:14-16의 말씀이 거짓이고 요19:14-16이 진실이라면 마27:45-50이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에 교회 사역을 준비하는 어느 형제에게 이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형제가 말하기를 마태 복음은 유대 시간으로 육시라고 기록한 것이고 요한복음은 헬라 시간으로 기록한 것이랍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4:3-8)
(3)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4)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5)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7)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8)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또 다른 여섯(육)시에 관한 기록 입니다.
사마리아 여자의 이야기는 육시에 빌라도의 법정에서 재판 받고 있다고 기록한 사도 요한이 썼습니다.
사도 요한이 시간을 유대 시간으로 썼는지 헬라 시간으로 썼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요4:3-8의 육시와 요19:14-16의 육시는 동일한 기준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같은 사람이 쓴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한 형제의 말처럼 유대의 시간과 헬라의 시간은 여섯(육)시간의 시차가 있습니다.
요4:3-8에서 말하는 육시는 정오 입니다.
즉 12시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점심 식사를 위한 음식을 사기 위하여 동네에 들어 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27:45-50과 요19:14-16의 여섯(육)시는 분명히 다릅니다.
왜냐하면 마27:45-50과 요19:14-16에서 말하고 있는 일이 동시에 있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마27:45-50의 일은 요19:14-16의 일을 이미 지나서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시간을 모두 여섯(육)시 라고 기록하고 잇습니다.
그런데 요한 만이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시간을 여섯(육)시라고 쓰지 않고 쌩둥맞게 빌라도에게 재판 받고 있는 시간을 여섯(육)시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요한이 의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빌라도에게 재판 받고 있는 시간을 여섯(육)시라고 기록한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요한은 왜 그렇게 한 것일까요?
앞에서 말한 형제와 같이 생각 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형제가 말한 것처럼 6시간의 시차가 있기 때문입니다.
(벧후1:20-21)
(20)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성경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라고 베드로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태, 마가, 누가는 성령의 감동을 입어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는 시간을 여섯(육)시로, 요한은 성령의 감동 하심에 따라 예수그리스도께서 빌라도에게 재판 받는 시간을 여섯(육)시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왜 그렇게 기록하게 하신 것일까요?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성령의 의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를 그냥 지나친 것은 아닌지요?
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창세기의 여섯(육)째 날로 가 봅니다.
(창1:26-27)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우리는 창1:26-27의 말씀을 보고 여섯(육)째 날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었다고 생각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창조에 있어서 첫째 날부터 다섯째 날까지 이것 저것을 만들다가 여섯째 날에 사람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던 땅(사람의 마음)을 첫째 날에는 빛과 어둠이 나누어지게 하고 둘째 날에는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이 나누어 지게 하고 셋째 날에는 궁창 아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게 하여 뭍(땅)이 드러나게 하시고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가 나게 하시고 넷째 날에는 궁창(하늘)에 해와 달과 별이 있게 하여 땅을 비취게 하시고 다섯째 날에 물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여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이 있게 하고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는 것이 우리가 아는 하나님의 태초의 창조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첫째 날부터 다섯째 날까지의 창조의 과정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어가는(창조) 과정이라고 말씀 드립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어가는(창조)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는 짐승, 어떤 이는 가축 어떤 이는 물고기 어떤 이는 하늘의 새, 어떤 이는 기는 것, 어떤 이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사람, 짐승 물고기 새 등은 사람의 영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만들어진 존재가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원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때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여섯(육)이라는 수는 영적인 수입니다.
첫째 날부터 다섯째 날까지의 하나님이 역사하심의 결과가 나타나는 날이 여섯(육)째 날입니다.
로마의 식민지에서 구원할 메시야로서 기대하고 예수그리스도를 따랐던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고 기적을 보여줘 확신을 가졌으나 능력으로 로마를 물리치기는커녕 빌라도에게 재판 받게 되자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라고 외치는 백성들의 영의 상태를 성령께서는 요한으로 하여금 여섯(육)시 라고 기록하게 한 것입니다.
이를 알게 하기 위하여 마태, 마가, 누가에게 예수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시간을 여섯(육)시로 후대의 사람들로 하여금 묵상해 보라고 기록하게 하신 것입니다.
(막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벧후2:1)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자들의 영의 상태는 여섯(육)입니다.
자기를 부인 하지 않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그리스도를 부인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사람 또한 여섯(육)입니다.
벧후2:1에서 말하는 거짓 선지자(선생)들 또한 여섯(육)입니다. 또한 그들에게 속아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부인하여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는 그 사람 역시 여섯(육)입니다.
이것이 여섯(육)이라는 영의 수의 의미(비밀)입니다.
첫째 날부터 다섯째 날까지의 창조의 열매로 나타나는 날……
(마7:20)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첫댓글 여섯(육)의 의미는 다섯째 날까지의 하나님의.일 히심의 열매(결과)가 맺어지는 날입니다.
백성들은 그 열매가 빌라도의.법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여 죽게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여섯(,육)은 이를 영적으로 말씀하신 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일 하심의(창조) 결과는 같지 않음을 어떤이에게는 사람으로, 어떤이에게는 짐승으로 어떤이에게는 새로, ㅇ떰이에게는 물고기로 아떤이에는 기는것으로 열매 맺어집니다.
이러한원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 여섯(육)째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