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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4-8)
(4)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7)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8)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지난 글로서 창세기 일곱 날의 창조를 모두 살펴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더 쓰는 것은 이어서 창2:4부터 쓰여지는 성경은 창세기 1장에서의 하나님의 창조계획(예정, 사람을 가르쳐 만들어 가심)에서 어떻게 우(잘못)를 범하는지 그리고 우리도 어떤 우(잘못)를 범하는지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제가 쓰는 글을 통하여 여러분이 어디에서 누구에게 만들어지고 있는지 발견하고 참 빛이신 그리스도(성령)를 만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하나님이 만드는 사람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나는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께서도 첫 사람 아담에 대하여 먼저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는 말씀은 곧 창1:2의 상황이라는 것을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라는 말씀으로 알 수 있습니다.
(창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그러므로 창2:4-6을 이해하려면 창1:2의 말씀을 함께 보아야 할 것입니다.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안개가 온 지면을 적실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서 운행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땅을 깊이 둘러싸고 있는 물 때문입니다.
이 때의 물은 빛의 말씀과 어둠의 말씀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물과 물 사이에 궁창 이라는 하늘이 있게 하여 궁창 위에 게신 하나님(그리스도,성령)이 가르치는 말씀이 궁창 위의 물(말씀)이 빛의 말씀이고 궁창 아래의 사람이 가르치는 물(교훈)은 어둠의 말씀이라고 하시면서 나누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땅(흙)의 사람은 빛과 어둠을 비로소 나눌 수 있게 되었고 이날이 첫째 날과 둘째 날의 상황입니다.
여기에서 빛과 어둠에 대하여 조금 더 자세히 살펴 봅니다.
우리는 빛과 어둠을 이분적으로 이해하지만 성경은 빛과 어둠이 섞여 있는 것도 어둠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계21;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계22: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계21;23의 말씀은 여섯째 날을 말씀하는 것이고 계22:5은 일곱째 날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계21;23의 날은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셔서 비취심으로 말미암아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습니다.
이는 어린 양이 그 등불이 해나 달의 비췸 보다 밝은 빛이고 해나 달의 빛은 어린 양의 등불보다 어둠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계22:5의 일곱째 날은 다시는 밤(어둠)이 없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으로 말미암아 햇빛은 물론 어린 양의 등불도 쓸데없게 됩니다.
무슨 말입니까?
어린 양의 등불의 빛도 주 하나님이 비취는 빛보다 어둠이라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둠을 이해해야 합니다.
빛을 비췬다는 것은 말씀을 가르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빛과 어둠은 말씀을 가르치는 밝기를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계21;23의 말씀과 계22:5의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요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3:12-13)
(12)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우리는 성경을 읽어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빛이 어둠에 비췬다는 것은 빛의 말씀을 가르친다는 말씀인데 땅에 있는 자들은 하늘의 말씀을 가르침 받는다고 하여도 깨닫지 못하고 믿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첫째 날부터 다섯째 날의 사람은 그리스도(성령)의 가르침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알아듣지(깨닫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빛과 어둠을 나눌 수 있습니까?
바다에서 나왔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가르침이 모인 곳, 곧 바다인 교파 교회에서 왜 나오지 않습니까?
저의 이러한 증거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파 교회가 바다라는 논리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창1:9-10)
(9)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0)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바다는 천하, 하늘 아래의 사람들이 가르치는 교훈이 모두 모인 곳입니다.
교파 교회가 그 곳이 아닙니까?
천주교는 교황의 가르침이 있는 곳이고 장로교는 칼빈, 감리교는 웨슬레, 신천지는 이만희, 기독교 복음 선교회는 정명석 이슬람은 마호멧……밤새 꼽을 수 있을 지경입니다.
이래도 교파 교회가 하늘 아래의 사람의 교훈이 모인 바다가 아닙니까?
이들은 더 나아가 자기들의 사상(교훈)을 가르칠 사역자를 가르치는 신학교를 만들어 조직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가르치고 교파 개 교회에 가서 랍비(선생)가 되어 교주들의 사상(교훈)을 성경에 섞어서 가르치게 합니다.
현실이 이러할진대 교파 교회가 하늘 아래의 사람들의 교훈이 모인 바다가 아니겠습니까?
빛과 어둠은 누가 가르치냐에 달린 것입니다.
궁창(하늘) 위의 참 빛의 말씀이신 그리스도(성령)께서 가르치시는 말씀이 빛이고 궁창(하늘) 아래의 사람이 가르치는 교훈이 어둠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르치는 사람이 어둠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아담을 살펴봅니다.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고전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첫 사람 아담은 땅의 흙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입니다.
땅이라고 번역한 히브리어는 아다마(ad-aw-maw) 입니다.
그리고 흙이라고 번역한 히브리어는 아파르(aw-fawr)입니다.
아다마(ad-aw-maw)와 아파르(aw-fawr)는 같은 땅이거나 같은 흙이 아닙니다.
(창1:9-10)
(9)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0)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공교롭게도 창1:9에서의 바다에서 나온 땅을 “뭍”이라고 번역하였는데 뭍이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야바싸(yab-baw-shaw)도 마른 땅, 먼지라는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반면에 땅이라고 번역한 아다마(ad-aw-maw)는 땅, 흙, 토지 라는 의미의 말입니다.
그러므로 첫 사람 아담은 아다마(ad-aw-maw)라는 땅의 아파르(aw-fawr)라는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입니다.
즉 사람이 가르쳐서 만든 사람입니다.
그러나 바다에서 나온 땅은 바다의 물(가르침)에 젖어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다마(ad-aw-maw)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다에서 나온 젖은 땅인 아다마(ad-aw-maw)를 마른 땅(먼지. 티끌)인 아파르(aw-fawr)가 되게 하기 위하여 넷째 날에 궁창이라는 하늘에 해와 달과 별이 있게 하여 아다마(ad-aw-maw)를 비취게(가르치게) 합니다.
그렇게 아다마(ad-aw-maw)는 아파르(aw-fawr)가 되는 것입니다.
(창1:20)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넷째 날의 해와 달과 별에게 다섯째 날에 물(가르침)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는 말씀에 따라 만들어진 사람이 여섯째 날에 짐승이라는 것이 아래의 성경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궁창(하늘)의 해와 달과 별의 가르침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짐승의 영을 가진 사람이라는 말이고 이를 계13:1에서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온다고 한 것입니다.
또한 창1:25-26에서 짐승을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 이라고 한 것이고요.
(창1:25-27)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자카르 zaw-kaw수컷)와 여자(네케바 nek-ay-baw암컷)를 창조하시고
(계13: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짐승이라고 번역 하였으나 짐승의 영을 가진 사람에게 배워서 만들어진 짐승의 영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 창2:7의 말씀입니다.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네솨마nesh-aw-maw)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네페쉬neh'-fesh)이 되니라
땅의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은 하나님이 가르쳐 만든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의 가르침인 생기(네솨마nesh-aw-maw)로 만들어진 사람이라는 것이 창2:7의 증거 입니다.
그래서 생기(네솨마nesh-aw-maw)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네페쉬neh'-fesh)이 되니라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도 사람에게 생기(네솨마nesh-aw-maw)를 배우면 첫 사람 아담인 것입니다.
이런 첫 사람 아담을 여섯째 날에 그리스도(성령)께서 가르쳐서 살려주는 영인 마지막 아담이 되게 하는 것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성경을 읽는다면 때가 되면 사마리아 여자처럼 그리스도(성령)께서 가르칠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살펴보고 하나님의 영과 사람의 혼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람의 혼은 하나님의 영을 흉내 내어 자신도 속고 다른 사람도 속입니다.
이를 성경은 가라지 라고 합니다.
(고전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프쉬케psoo-khay)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프뉴마pnyoo'-mah)이 되었나니
위 두 성경에서 보듯이 창2:7에서 ‘생령”(산영)이라고 번역한 히브리어는 (네페쉬neh'-fesh)이고 고전15:45에서 “생령”이라고 번역한 헬라어는 프쉬케(psoo-khay)입니다.
이는 사람의 혼을 말하는 단어 입니다.
반면에 살려주는 “영”이라고 번역한 헬라어는 프뉴마(pnyoo'-mah)이고 창1;2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신(영)은 (루아흐 roo'-akh)입니다.
이와 같이 고전15:45과 창2:7, 창1;2의 원어를 볼 때 하나님의 영과 사람의 혼을 성경은 구분하여 쓰고 있으므로 우리도 이를 분별하여 읽고 이해해야 합니다.
(창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루아흐 roo'-akh)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고전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게 하는 것이 구원이고 하나님의 창조 목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담을 비롯하여 역사 속의 사람들, 그리고 오늘 날의 우리는 이를 모르고 성경을 오해하여 잘못 알고 얼마나 잘못 실행하고 있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은혜가 있으시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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