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께서는 초등학교 시절 소풍가서 보물찾기 상품으로 원고지를 받았다.
그 인연으로 평생을 원고지하고 살게 되었다.고 말한다.
빈산에 사람 없어도
물흐르고 꽃이 피네
법정스님 살아계실때는 길상사 행지실이
지금은 유품을 모신 진영각으로 변했다.
길상사는 김영한보살이 운영하는 대원각이란 요정이었다.한창때는 손님 시중드는 여자직원이 300명이 넘었다.
법정스님의 글을 좋아하고 무소유정신을 존경하던 김영한 보살이 대원각을 법정스님께 시주하여 오늘의 길상사가 세상에 태어났다. 대원각 시절에는 여성 직원이 300명이 넘었는데 지금은 자원봉사자가 300명이 넘는다.
고기굽고 풍악이 울리던 큰 홀은 지금 부처님 모시고 목탁소리가 들려온다.
법정스님을 위해서 생겨난 길상사인데 스님께서는 길상사에 하룻밤도 주무시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법회끝나고 시간이 늦어도 밤중에 강원도로 가셨던 것이다.
그런데 병원에서 임종을 앞두고 하루전에 길상사로 들어 오셨다.그때 주지실이던 행지실에서 하룻밤 주무시고 육신의 옷을 벗으셨다.
주지실이던 행지실이 이제는 스님의 진영과 유품을 모신 진영각이 되었다.생전에 입으시던 먹물들여 풀먹인 무명승복 생전에 사용하던 파카잉크와 만년필.육필원고와 스승이신 효봉스님의 사진액자도 모셔져 있다.
사리를 찾지말고 사리탑도 세우지말고 장례식도 간소하게 하라는 스님의 유언에 따라 화장후에 수습한 유골을 불일암 후박나무 길상사 매화나무.강원도 토굴 세곳의 나무아래 묻었다.길상사 유골모신 자리에는 만수사화, 문수보살의 지혜만다라가 붉게 피어나고 있다.
스님께서는 초등학교때 소풍가서 보물찾기 했는데 상품으로 원고지를 받았다.그 인연으로 평생을 원고지 가까이 하며 살게 된것 같다고 하셨다.
병원에 계실때는 의사가 회진을 와서 말한다."스님,어디 불편한데 없으십니까?"
"어이 내가 불편하니까 병원에 왔지 "
제주도 농장에 갔을때 농장주인이 메뚜기 피해로 농작물을 망치게 되었다고 하소연 하였다.
"아이고 제주도 메뚜기 말도 못합니다."
"어이 육지 메뚜기도 말 못해"
위트 넘치는 스님의 답변이다.
한송이 꽃으로
다시 오시나요
한줄기 바람으로 오시나요.
님은가도 꽃은 피고
사람이 와도 새는 놀라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