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 상원사 범종에 얽힌 이야기
옛날 강원도 땅에 사는 한 젊은 신비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영월과 원주 사이에 드높이 솟은
험준한 치악산을 넘어야 하는
나그네의 발길은 바쁘기만 했습니다.
산중턱에 이른 선비가 잠시 쉬고 있을 때였습니다.
바로 몇 발짝 거리에 꿩의 울음소리가
절박함을 호소하듯 요란하게 들렸습니다.
청년 과객이 고개를 들어 밭이랑을 보니
큰 구렁이가 한 마리가 꿩을 향해 혀를 날름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꿩은 구원을 청하는 듯
더욱 절박하게 ‘꺽꺽’ 울어댔습니다.
깊은 산중에 울려 퍼지는 꿩의 울음소리에
청년은 구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년은 능숙한 솜씨로 활줄을 당겼습니다.
화살은 구렁이를 명중시켰습니다.
그 구렁이가 붉은 피를 쏟으며 힘없이 쓰러지자
꿩은 잠시 머뭇거리며 또 ‘꺽꺽’ 울어댔습니다.
생명의 은인에 대한 감사의 뜻인 듯
좀 전의 울림과는 달랐습니다.
꿩은 몇 번인가 청년을 행해 울더니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습니다.
청년은 땅거미가 지자 걸음을 재축했으나
산을 넘기엔 아직 갈 길이 멀었습니다.
인가가 있을 리도 없고 과객은 나무 밑에서
낙엽을 펴고 하룻밤 쉬어 가기로 했습니다.
그 때 청년의 눈에 희미한 불빛이 보였습니다.
“이 산 중에 웬 불빛일까?”
청년은 불빛이 보이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의 눈앞에 고래 등 같은 기와집 한 채가 나타났습니다.
청년은 깊은 산중에 이렇게 큰 기와집이 있다는 것이
내심 의아스러웠으나 혹시 절인지도 모른다 싶어
우선 주인을 찾았습니다.
“뉘신지요?”
대문 안에서는 뜻밖에 여인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지나가는 나그네올시다.
하룻밤 신세 좀 질까 합니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대문이 열렸습니다.
“들어오시지요.”
“감사하오.”
청년은 대문을 들어서며 여인을 힐끗 쳐다보았습니다.
절세미인이었습니다.
‘저토록 아름다운 여인이 이 산중에 홀로 지내다니
아무래도 무슨 곡절이 있을 거야.’
여인의 미모에
넋을 잃은 청년은 안방으로 안내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심산유곡에 홀로 오셨나요?”
“서울에 과거를 보는 길입니다.”
“피곤하시겠군요.
저녁상을 차려오겠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잠시 후 밥상이 들어왔습니다.
밥상에는 먹어본 일이 없는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었습니다.
청년은 식사를 하면서 궁금증을 풀려는 듯
이 일 저 일을 묻기 시작하였습니다.
여인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습니다.
“소녀는 본래 강원도 윤부자로 알려진 윤 씨댁 셋 째 딸입니다.
갑자기 집안에 괴물이 나나나 폐가가 되고
식구는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 후 저는 이곳에 혼자 숨어 살고 있었습니다.”
“거참 딱한 사정이구려.”
“오늘 밤도 괴물이 나올까봐 무서워서 떨고 있었는데,
선비님이 오셨으니 잠을 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청년은 안방에 자리하고 잠을 청했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창밖에선 바람이 불고
멀리서 승냥이 울음소리가 을씨년스럽게 들여왔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손님!”
문 밖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왜 그러시오?”
“무서워서 도저히 잘 수가 없습니다.
윗목에 앉아 날을 샐 터이니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새파랗게 젊은 여자와 한 방에서 자다니 청년은 난감했습니다.
잠시 망설이던 청년은 여인에게 잠자리를 내 주고
자신이 윗목으로 옮겠습니다.
여인은 수줍은 듯 등을 돌리고
옷을 벗더니 이불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창밖엔 달빛이 휘영청 밝은데
여인은 잠이 들었는지 숨소리조차 없었습니다.
청년은 한참을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가슴이 답답하고 무거운 중압감에 눌려 눈을 떴습니다.
그 순간 “악”하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의 몸을 징그러운 구렁이가 칭칭 감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청년은 온 힘을 다해 몸을 빼려고 노력했으나
그럴수록 구렁이는 더욱 힘껏 감아대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구렁이의 음성은 바로 절세미인의 목소리였습니다.
“누.....누구냐?”
“네가 낮에 활로 쏘아 직인 구렁이의 아내이다.”
“뭐.....뭐라고!”
“너로 인해 남편을 잃었으니
오늘밤 나는 원수를 갚기 위해 사람으로 둔갑했다.
이제 너를 물어 죽일 것이다.”
“살생을 목격하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그리 되었으니
제발 목숨만 좀.........”
“만약 범종 소리가 네 번 울린다면 목숨을 살려주마.”
바로 그 때.
대청마루 쪽에서 “덩~”하고 종소리가 울려왔습니다.
“아니 저 종소리가?”
종소리가 여운을 남기며 얼려 퍼지자
구렁이는 그만 힘이 빠지면서 당황했습니다.
“덩 ~~ 덩 ~~ 덩 ~~”
종소리는 3번을 더 울렸습니다.
구렁이는 몇 번 몸을 흔들더니
스르르 몸을 풀어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청년은 정신을 가다듬고 벌떡 일어나 대청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니 이게 웬 꿩들인가?”
대청마루 바닥엔 꿩 네 마리가 깨져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있었습니다.
꿩들은 자기들의 은인인 청년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목숨을 던져 청년을 구한 것입니다.
그 후 과거에 급제한 청년은 꿩의 죽음을 애도하는 뜻에서
까치를 따서 본래 적억산이던 이 산 이름을 ‘치악산’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꿩이 죽은 자리에 절을 세워 불도를 닦으니
그 절이 바로 치악산 상원사입니다.
이것이 오늘 드리는 따끈따끈한 글입니다.
행복한 시간들로 가득 차시기 바랍니다.
2023년 11월 01일 오전 05:40분에
남지읍 무상사 토굴에서 운월야인雲月野人 진각珍覺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