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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바로 사는 길
전도서 6 : 1 - 6
Starke라는 사람은 오늘의 본문을 “수전노(守錢奴)의 극한 불행상(不幸相)”이라 말했고 행스켄벌이란 사람은 “부의 공허성”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읽어보시는대로 느끼시겠지만 말씀의 내용은 비록 부의 추구만을 언급한 것은 아니고 명예, 장수, 다자손(多子孫), 먹는 것, 지혜, 보는 것 등 여러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상의 행복 가운데는 가장 보편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돈 많이 벌고, 오래 살고, 아들 많이 두는 것입니다(물론 요사이는 다소 그 기준이나 추구하는 것이 달라지기는 하였지만 결국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미 우리가 생각한바 있는 4장 7-8절과 실질적으로는 같은 말씀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중심해서 인간의 삶의 몇 가지 분야에 대해서 생각하고 우리 스스로를 반성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 6:1-2을 보십시다.
“내가 해 아래서 한 가지 폐단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에게 중한 것이라. 어떤 사람은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능히 누리게 하심은 얻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세상에 사는 동안 쓰고 살 것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물질에 대해여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 119번, 마가복음에 57번, 누가복음에 94번 요한복음에 88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이 지적한 것처럼 예수님은 다른 문제보다도 물질에 관한 문제를 다섯 배나 자주 말씀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이유가 있는 줄 압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은 대개의 죄가 물질과 관계를 다섯 배나 자주 말씀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이유가 있는 줄 압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은 대개의 죄가 물질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 가운데 “황금은 흑사심(黃金黑士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돈은 깨끗한 선비의 마음도 검게 만드는 것입니다. 형제간의 의리도 재산 때문에 갈라집니다. 그래서 재산 때문에 형제간에 재판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공무원이 재물 때문에 눈이 어두워져서 나라 일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번 싱가포르에 갔더니 여러분 아시겠지만 그 나라는 말하자면 도시 국가인데 넓이는 우리나라 서울 특별시만 한데 인구는 250만명 됩니다. GNP는 3,500불 정도로 우리 나라보다 약 3배 이상 됩니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이 자랑하는 것이 있어요.
싱가포르는 세 가지가 깨끗하다고 해요. 첫째 거리가 세계에서 제일 깨끗하고, 둘째는 물이 세계에서 제일 깨끗하고, 셋째는 공무원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깨끗하다고 자부하고 있어요. 주 싱가포르 한국 대사가 점심을 초대해서 대접을 받았는데 이 대사가 하는 말이 대사로 부임하면서 수상에게 조그만 선물을 하나 드렸더니 그것도 다 등록을 하더라고 합니다.
나라가 바로 성장해 나아가려면 공무원이 깨끗해야 합니다. 공무원 뿐만이 아닙니다. 누구나 다 물질에 대한 바른 자세가 꼭 필요합니다.
이 물질에 대한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소위 이원론(二元論)적 사고입니다. 이 이론은 물질과 영혼 두 가지로 나눠서 말하면서 물질은 다 악한 것이고 영혼만 선하다는 사상입니다.
옛날 교회사 가운데 보아도 가령 노스티시즘(Gnostisism)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옛날 교회에서 고행주의(苦行主義)나 수도원주의(修道院主義)가 일어나서 육신을 괴롭히고 제어하는 일에만 강조하여 왔습니다. 인간의 이 육체는 물질이기 때문에 그리고 물질은 악하기 때문에 신령한 은혜를 많이 받으려면 어떻게 해서도 이 육신을 괴롭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중세 시대에 어떤 신도들은 몸을 일부러 괴롭히기 위해서 못을 박은 속옷을 입고 다닌 사람도 있었고 몸에 피부병이 나서 진물이 흘러도 치료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수도사는 높은 기둥 위에 올라가서 앉아 지내면서 그저 연명만 하는데 몸에 헌데가 나서 치료하지 않으니까 파리들이 날아와서 구더기를 쓸었습니다. 살을 먹다가 떨어지면 그 구더기를 손으로 집어 다시 헌데 위에 놓으면서 “어서 먹어라, 어서 먹어라”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은 성경의 사상이 아니고 잘못된 사상입니다. 하나님이 천자를 창조하셨는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하였습니다.
하늘과 땅은 모두가 물질입니다. 물질은 쓰는데 따라서 달라집니다. 선하게 쓰면 선하게 되고 악하게 쓰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같은 칼이지마는 병든 사람을 수술하는데 쓰면 생명을 구한 이기(利器)가 될 수 있고, 사람의 가슴을 찔러 살인하면 흉기(凶器)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 몸도 선하게 쓰면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령의 전이 될 수 있고 육신의 정욕을 따라 쓰면 음란의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도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는 육신으로 십자가에 달리셔서 고난을 받으심으로 만민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물질인 만물을 주시고 이를 다스리게 하신 것은 이것을 바로 써서 인간의 생활도 향상시키고 문화를 창조해 나아가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반면에 유물론적인 사상이 있는데 이것도 성경적이 아닙니다. 이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인간에게 영혼의 존재를 부인하고 이 우주 안에 하나님의 존재도 부인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연히 무신론자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사람을 단순히 물질로만 봅니다. 짐승과 사람의 차이가 없게 생각합니다. 이 사상이 잘못된 것을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요, 우리 가운데는 관념적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마는 실제로는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하는 말하자면 소위 실제적 무신론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불신자는 물론 교회에 출입하는 이들 가운데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물질을 인간의 삶의 중심으로 삼는 이들입니다.
신명기 8장 12-14절에 이런 경고가 있습니다.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수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데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러분! 물질이란 우리 인간이 임시로 위탁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물론 내가 일을 하여 벌지마는 모든 물질은 하나님께 속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거두어 가실 수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잊지 맙시다.
농부가 아무리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김을 매나 곡식이 자라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햇빛과 비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일하든지 자기 자신이 관리할 수 없는 분야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업을 통해서 물질을 쌓았든지 간에 결국은 하나님의 축복 아래서 이루어진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소유는 하나님 뜻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청지기는 자기 뜻대로 무엇을 처리하지 못합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청지기이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할 의무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우리의 육체만 위해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영혼의 생활을 위하여 사용해야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하늘에 네 보물을 쌓아두라”하였는데 퍽 의미 깊은 말씀입니다.
전에 요한 웨슬레 목사가 “열심으로 일해서 돈을 모을 수 있는대로 많이 버세요. 그리고 돈을 버는대로 많이 저축하세요. 뿐만 아니라 돈을 저축하는대로 하나님께 바칠 것은 바치고 좋은 일을 위하여 모두 쓰세요.”하고 설교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어느 부자 교인이 예배를 마치고 나가면서 속으로 하는 말이 “아, 오늘 요한 웨슬레 선생께서 참 설교를 잘 하셨는데 그 마지막에 가서 그만 전부를 망쳐 버렸어”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지런히 일해서 돈을 모으는 데까지는 잘합니다. 그런데 그만 이렇게 모은 돈을 좋은 일을 위해서 쓰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그것이 중요합니다. 힘써 일해서 돈을 많이 모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돈으로 이웃을 위하여 봉사하고 선한 일을 하는데 옳게 사용해야 합니다.
전에 인도의 유명한 시인 타고르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번은 인도의 한 왕이 평복을 입고 지방을 순찰하는데 어떤 거지가 와서 무엇을 좀 달라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때 이 왕은 그 거지에게 말하기를 “네가 먼저 무엇을 내게 주면 나도 네게 주겠다” 그러니 이 거지가 생각해 보니 줄 것이 별로 없단 말입니다. 생각다 못해서 저 앞 동네에서 받은 옥수수 한 되가 있는데 이 옥수수 가운데서 다섯 알을 집어서 이 손님에게 드리면서 “저에게는 이것밖에 드릴 것이 없습니다.”하였습니다. 이때 그것을 받은 왕은 그 위에 따라오는 재정대신(財政大臣)에게 “자네가 가지고 오는 금자루를 들어서 이 옥수수 알만한 금덩이를 다섯 개 꺼내게” 그리고 그 다섯 개의 금덩이를 거지에게 주었습니다. 그 거지는 물론 옥수수 대신에 금덩이를 받았으니 기뻤습니다.
그러나 속으로 크게 탄식했습니다. “아하! 이럴 줄 알았으면 이 옥수수 주머니를 아예 다 그분께 바쳤을걸! 그랬으면 그만큼 금덩이를 받았을텐데. 내가 왜 다섯 알만 바쳤던가?” 그러면서 한숨을 쉬었다고 합니다.
물질뿐만 아닙니다. 시간에 대해서도 우리는 청지기의 책임을 바로 해야 겠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흔히 ‘시간이 돈이다’하는 말을 합니다. 시간 따라 일하고 일하는대로 돈을 주는 미국 같은데서 있을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시간은 생명입니다” 한정된 생명을 매일 매일 살아가며 그만큼 단축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이 얼마나 귀하다고 하는 것을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느끼며 삽니까?
시간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외인을 향하여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골로새 4장 5절)했고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에베소 5장 16절) 하였습니다.
여러분, 세월은 강과 같이 계속 흘러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인데 우리는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그 기회에 할 수 있는 일을 꼭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가졌던 돈을 다 빼앗기고 매를 맞아 중상을 입어 길가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이 길은 매우 험한 골짜기여서 지금도 그런 일이 이따금 생긴다고 합니다.
여기에 제사장 레위인이 지나갔으나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이 도와주었습니다. 여기서 여러 가지 귀한 교훈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기회를 잃지 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끔 좋은 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주십니다. 선한 청지기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반드시 포착하는 것입니다.
어거스틴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나는 어느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절대로 그것을 미루지 아니하고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합니다. 그 까닭은 내가 다시 이 길을 지나갈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기화란 언제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공부하는 것도 젊을 때 주어지 기회입니다. 열심히 해야 평생 후회하지 않고 살며 성공할 것입니다.
전도에도 기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전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시간의 선한 청지기는 부지런해야 합니다. 시간을 아껴야 합니다. 돈을 아낄 줄 알면서 돈보다 귀한 돈으로 살 수 없는 시간은 낭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도 부지런해야 합니다. 학생은 부지런히 공부해야, 주부는 부지런히 가정 살림해야, 공무원은 부지런해야 나라 일을 바로 봅니다. 사무원은 부지런해야 직장의 일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근면의 생활은 모든 방면에 축복이 됩니다. 부지런하면 유혹과 시험에 빠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도 부지런해야 옳은 크리스천의 생활을 할 수 있고 어떤 방면에서든지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 6장 7-11절에 보면 귀한 교훈이 있습니다. “재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여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줍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하였습니다.
잠언 22장 29절에 보면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와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하였습니다.
여러분, 시간은 살과 같이 빨리 지나갑니다. 여름이 되어 ‘덥다 덥다’하는 것이 이제 ‘춥다 춥다’하는 겨울이 되었습니다. 해도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는데 이제 한 달만 더 짧아지면 그 다음부터는 길어지기 시작합니다. 이러면서 지나갑니다.
그림자 같이 지나가는 세상입니다(역대상 29:15).
베틀의 북보다 빠른 세상입니다(욥기 7:6-7).
독수리같이 빠르게 날아갑니다(욥기 7:6-7).
잠깐입니다(시편 39:5).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같습니다(야고보 4:13-14).
여러분, 오래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살아야 합니다. “저가 비록 천년의 갑절을 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축복을 모르고 살면 얼마나 불쌍한 존재가 되겠습니까?“
여러분, 금년도 이제 얼마 남지 아니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맡았든지 책임 바로 감당하십니다.
사실은 물질뿐만 아닙니다. 시간뿐만 아닙니다. 우리가 맡은 재능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내실 때는 그를 통해서 무슨 일을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이 있고 또 그것을 감당할 만한 능력까지 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받은 재능 혹은 은사가 각각 다릅니다. 이 은사나 재능을 쓰지 아니하고 그냥 두는 것은 큰 죄입니다.
그래서 쓰지 아니하는 재능은 하나님이 빼앗습니다. 그리고 쓰지 아니하면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무엇을 맡았든지 그 맡은 것에 대한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쓰되 잘못 써도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나 그 받은바 재능을 스스로 살펴 그 재능을 묻어 두지 않나 종종 살펴야 하고 또 그 재능을 옳게 쓰는가 반성해야 합니다.
청지기의 책임이란 별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저 주시는 물질,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 재능과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과 사람을 위하여 정성껏 종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하늘 나라에 가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하는 칭찬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많은 물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천년의 갑절을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백 자녀를 둔다 해도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가 올 터인데 그때 하나님은 “내가 네가 세상에 있을 때 재산을 이만큼 맡겼었는데 너는 그것으로 나를 위해 무엇을 하였느냐? 내가 너를 세상에 60, 70년 살게 했는데 너는 그 동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하였느냐? 내가 네게 이런 재능, 은사를 주었었는데 너는 그것으로 내 영광을 위해 어떻게 사용하였느냐?” 하나님께서 물으십니다.
여러분은 무엇이라 대답하시겠습니까. 오늘 저녁 우리 하나 하나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은 생각하면서 새롭게 다짐하기를 바랍니다.
충성의 시금석은
1. 양(量) : 적은 일이든 큰 일이든 충성하는 것입니다.
2. 환경 : 어떤 환경에서든지 감사하며 순종합니다.
3. 시간 : 충성하고 순종하되 한번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평생에 행한 길 돌아보니 부끄럼 뿐이라 죄송하나 하나님 아버지 날 사랑하시니 생명의 면류관 내것이라’ 하시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