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견
성경본문 : 잠언 30: 29-31
29. 잘 걸으며 위풍 있게 다니는 것 서넛이 있나니
30. 곧 짐승 중에 가장 강하여 아무 짐승 앞에서도 물러가지 아니하는 사자와
31. 사냥개와 수염소와 및 당할 수 없는 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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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戌年(무술년)을 맞이하여 첫 주일입니다. 무술년과 관련해서, 우리나라 특히 해군으로서 잊지 못할 것은 노량해전이라 생각합니다. 선조 31년 무술에 이순신 장군은 7년 임진왜란의 종지부를 찍는 순천앞바다 노량에서 500여척의 왜함대를 전멸시키고 대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11월 19일 새벽 忠武公(충무공)은 불의의 적탄에 순직하였습니다. 『전쟁이 지금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것을 말하지 말라』고 같이 있던 그의 장자와 조카에게 부탁하고 눈을 감았으니, 승리의 원인은 충무공의 충성에 있었음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며, 무술년을 맞이하여 하나님과 국가에 충성하는 우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正月初(정월초)에 대하여는 제사장 에스라가 바벨론에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을 거느리고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등등의 기사가 성경 중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 창세기 8:13에 보면 『601년 정월 곧 그 달 일일에 지면에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 물이 걷혔더니』 노아의 식구도 아직 공포의 뚜껑을 덮고 있지 않을 수 없었으나 한 번 결단있게 뚜껑을 열고 밖을 보자 심판의 홍수는 다 사라지고 은혜의 신천신지가 전개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58년도 첫 주일의 불신앙과 의심의 뚜껑을 열어 제치고 은혜의 주님의 사랑하는 얼굴을 보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방주의 뚜껑을 열고 그 후에 거기서 나오는 것은 노아의 식구와 모든 혈육있는 동물이니, 곧 새와 육축과 땅에 기는 것이라 하였으니 한 쌍의 닭도 나왔고, 한 쌍의 개도 나왔을 것입니다.
성경에 개에 대해서는 대개 이방인 또는 죄인에 비유하여 멸시감을 가지고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3:2에 보면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라』고 하였고, 마태복음 7:6에 보면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고 하였으며, 베드로후서 2:22에 보면 『개가 그 토한 것에 돌아가고...』라고 했습니다.
베드로후서의 말씀은 예수를 믿다가 다시 죄악된 세상으로 돌아가 버린 排道者(배도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심지어 신명기 23:18에 보면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상 17:43에 보면 다윗이 막대기와 돌 다섯 개를 가지고 골리앗과 맞서자 골리앗은 『네가 나를 개로 아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무엘하 9:8에 보면 므비보셋은 다윗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게 될 때 『왕이 죽은 개와 같은 저를 이처럼 돌아보시나이까』하며 감격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죽은 개라고 부르는 겸비한 자로서 다윗에게 더욱 큰 은혜를 입었던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충성스런 개에 대해 몇 가지로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눌까 합니다.
1. 충견은 겸비하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충견은 문간에서 밤을 새우며 집을 지킵니다. 嚴冬雪寒(엄동설한)에도 주인이 안방에서 잘 쉬도록 문을 지킵니다.
한번은 예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에 가셨을 때, 한 가나안 여인이 나와 귀신들린 자기의 딸을 불쌍히 여기사 고쳐 달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들은 척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자 더욱 크게 소리 지르자 예수님께서는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외에는 다른 것을 위하여 오지 않았다』고 하시며 이 이방여인에 대하여 냉담한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물론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이 여인을 시험코자 하심이요, 또한 제자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이 여인의 좋은 믿음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자 이 여인은 더욱 큰 소리로 불쌍히 여겨 달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번에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도다』라고 하시며 그 여인을 개로써 취급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그 여인의 대답이 놀라웠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나이다』 정말 대단한 믿음이요, 대단한 겸손이며, 대단한 인내심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받아 딸을 구하기 위해 어떤 수모도, 어떤 시험도 이겨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믿음을 높이 평가하시며 그녀의 소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2. 양을 잘 지키는 충견
욥기 30:1에 보면 『양떼를 지키는 개』라는 말이 쓰여져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를 받들어 섬기는 주의 종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는 것입니다.
근래에 유럽에서는 『양을 잘 모는 개』의 시합이 있었습니다. 빠른 시간 안에 양들을 울타리 안에 몰아넣는 개가 우승하고 상을 타는 시합이었습니다. 양을 치는 개는 이리나 날짐승이 오면 짖고 생명을 내놓고 싸우는 것입니다.
이사야 56:10을 보세요.
『그 파수꾼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
이것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들을 그대로 내버려두는 그때의 제사장을 말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죄지은 자를 바로 지적하지 못하는 교역자들을 말합니다.
세례 요한은 당시에 타락한 종교인, 정치인들을 향하여 『이 독사의 자식들아!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질책을 하였고, 부도덕한 不倫(불륜)을 맺은 당시의 왕을 향해서도 거침없이 질책하다가 결국은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바로 오늘날 이러한 하나님의 일군이 필요한 것입니다.
3. 충견은 분별력이 강합니다.
개의 코는 아주 비상할 정도로 嗅覺(후각)이 발달하여 멀리 있는 것도 잘 분별합니다. 그래서 군대에서도 개를 이용하여 수색작전을 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만일 주인과 도적을 잘 분별하지 못하는 개가 있다고 합시다. 그런 개는 정말 쓸 데 없는, 가치가 없는 개일 것입니다.
출애굽기 11:7을 보세요.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않으리니 여호와가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나니』
이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에 있을 때, 애굽의 장자와 가축의 첫새끼를 죽이는 재앙시에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는 개 한 마리도 사람이나 짐승을 보고 짖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곧 이스라엘에 속한 모든 짐승에겐 아무런 해도 없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사야 1:3을 보세요.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그러나 소나 나귀보다 개는 더 잘 압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그렇듯이 개보다도, 소나 나귀보다도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 신자들은 주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잘 아는 것이 소리만 지르고, 자기 자랑이나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참 은혜는 더욱 겸손하고, 더욱 절제하고, 더욱 조용히 봉사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4. 충견은 충성스런 봉사를 합니다.
본문인 잠언 30:31에 보면 『사냥개는 잘 걷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냥개는 아주 뛰어난 짐승입니다. 첫째, 짐승이 있는 곳을 아주 잘 발견합니다. 둘째, 사살한 짐승을 신속히 물고 옵니다. 셋째, 위험할 때는 주인을 위하여 생명을 걸고 싸우기도 합니다.
황해도 해주 교외에는 忠犬塚(충견총)이 있습니다.
주인을 충성스럽게 따라 다니던 개가 있었는데 어느날 주인 술에 취한 채 산길에 쓰러져 잠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산불이 나서 주인이 잠들어 버린 쪽으로 불길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곁에서 지키고 있던 개는 주인을 흔들어 깨웠지만 너무도 많이 취한 채 잠든 지라 도무지 일어나지를 못합니다. 할 수 없이 개는 산 아래 쪽에 있는 시내까지 달려가서 자신의 몸을 물에 적신 다음 주인이 누워 있는 주변을 불길이 타 들어오지 못하도록 적셔 놓았습니다. 수십 차례 반복하는 동안에 주인이 누웠던 주변은 물로 흥건해져서 불길은 더 이상 타들어 올 수 없었으나 그만 개는 지쳐서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한참 후에 술이 깨어서 일어난 주인은 그 사실을 알고는 자기의 생명을 구하고 죽은 개를 위하여 바로 그 자리에 충견총을 세웠다고 합니다.
정말 충성스런 개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통해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개보다도 못한 인간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배은망덕한 사람들이 많다는 말입니다. 은혜를 알지 못하고, 은혜를 갚지 못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닙니다. 그런 자들은 바로 이 개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달려서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왜요? 바로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고, 우리를 영원한 형벌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 이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옮겨 쓴 설교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