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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신명기 33장 26-2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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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33장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는 말씀입니다. 1절에,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 이러하니라”고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라는 표현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우리가 일생을 마치고 후손들이 그 사람을 기억하기를, “그 사람은 진짜로 하나님이 귀하게 쓰신 하나님의 사랑 받는 사람이었어!”라고 평가해 준다면 그보다 더 후한 평가는 없을 것입니다. 모세가 바로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120세를 살다간 모세의 인생은 정확하게 3등분으로 나뉩니다. 태어나서 40년 동안은 애굽의 왕자의 신분으로 지냈고, 이후 40년은 미디안 광야에서 목동으로 지냈고, 마지막 40년은 이스라엘을 이끄는 지도자로 살았습니다. 그야말로 모세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인물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지낼 정도로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 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런 그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이스라엘 각 지파와, 이스라엘 전체 민족을 향해 축복의 말씀을 선포하는 말씀이 신명기 33장 전체에 담겨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면서 “여수룬아” 라고 부릅니다. ‘여수룬’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부를 때 시적으로 부르던 호칭입니다. 5절에서도, “여수룬에 왕이 있었다”라고 합니다. ‘여수룬’을 다스리는 왕은 오직 한분, 여호와 하나님 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이스라엘을 통치(신정정치)하시면서 사랑스럽게, 혹은 엄한 어조로 말씀하실 때 , ‘여수룬아’라고 부르셨습니다. ‘여수룬’은 ‘곧은’ ‘정직한’이라는 히브리어(야솨르-형용사)에서 파생한 말로 하나님 앞에서 구부러지지 않고, 거짓이 없는 정직한 백성이 되어야 하는 이상적인 상태를 일컫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백성의 모습이 ‘여수룬‘이라는 호칭에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 주시려 오실 때의 모습이 2절에 나타나 있는데, 엄청난 위엄과 권능으로 오시는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산위에서 내려오시고 빛과 불 가운데서 많은 무리 가운데 강림하시는 왕의 모습으로 묘사 합니다. 하나님이 절대적 권위를 지닌 왕의 모습으로 표현된 것은 축복의 말씀이 하늘에 계신 신성한 왕의 권세로 임하기 때문에 두려움과 경외감으로 받아들이라는 강한 의미입니다. 그리고 축복의 말씀들이 허세가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질 약속이라는 것을 믿고 받아들이라는 의미도 함께 주기 위함입니다. 왕과 백성의 관계는 명령을 내리고 순종하는 관계이기도 하지만, 복을 내려주고 그 복을 받는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26절 앞 부분에,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다”고 축복의 말씀을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신이라고 생각하는 이세상의 그 어떤 존재도(사실은 없는 허상이지만) 하나님과 같이 자기의 백성들을 사랑하시고 많은 복을 내려 주신 분은 결단코 없습니다. 다른 신들은 전부 가짜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헛것을 믿고 지냈으며, 헛것을 받아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했는데도 마치 풍족하게 받은 것처럼 세뇌당한 상태로 우상에 매여 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고 모든 것을 주실 능력과 권세가 있으시기 때문에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고 삶의 모든 필요한 것들을 풍성하게 해 주셨습니다. 대적하는 무서운 적군을 물리쳐 주시고, 빼앗으려는 흉악한 무리들을 막아주시고, 질병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고, 근심과 염려를 지워주셔서 늘 평안 속에 있게 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항상 선하고 인자하신 분만은 아니었습니다. 심판과 구원의 방면에서도 하나님 같은 분은 없으셨습니다. 죄와 악에 대한 공의로운 심판을 행하셨고, 고통과 멸망에 있는 자들은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에게로 돌이키는 자는 무한한 자비로 용서하고 기회의 손을 내미시지만, 끝까지 거부하고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심판의 채찍으로 가혹한 형벌을 내리시는 분이었습니다. “하나님 같은 분은 없도다”라는 고백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영역인, 사랑, 은혜, 심판, 용서, 구원...등 모든 영역에서 참 신은 오직 하나님 한분임을 높이고 또 높여 드리는 최고의 존귀를 표시하는 말입니다.
26절에 계속해서, “~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살아가면서 좋은 일이나 행운이 따르는 일이 생기면 하늘에서 도와주셔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어떤 사고를 당했는데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게 되면, “천운이야, 하늘이 도왔네, 하늘이 도왔어”라고 말들을 합니다. 그리고 궂은 일이 생겨도 하늘을 말하는데, 안타깝게도 짧은 인생을 살다간 사람들의 장례식에 가보면, “인명은 재천이라더니, 하늘이 여기까지만 허락 하셨나 보네”라는 말들을 합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분이 하나님을 믿었던지, 안 믿었던지, “이제는 아픔 없고 고통 없는 하늘나라(천국)에 가서 편히 쉬시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무의식중에도 하늘 이라는 곳에는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신적인 존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람은 죽어서는 하늘에 있는 나라에 갈 것이라는 심리가 남아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하늘은 생명과 죽음을 주관하는, 인간이 다다를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하늘(우주 만물 속에)에 영원토록 계신 분이고, 그 위대하신 분이 먼지 같은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에게 내려오신다(강림)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수룬’에게 하늘로부터 영광으로 임재 하셨으니, ‘여수룬’이 받은 은혜는 말로 다 하 할 수 없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면서” 언제든지 하늘로부터 ‘여수룬’에게 내려오실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여수룬’에게 내려오시려는 이유가 “보호해 주시려고” 오셨다고 합니다. ‘보호한다’는 말에는 막아주고, 마음껏 먹게 해주고, 최고의 상태로 마음을 안정 시켜 준다는 뜻이 포함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모든 조건들을 완벽하게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오십니다. 사나운 적들과 같이 외부 환경적인 문제나, 마음의 상처등과 같이 보이지 않는 내부 근심적인 문제들을 말끔하게 처리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 높은 하늘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부르면 곧바로 달려오실 하나님이 대기하고 계신다는 사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모든 연약함을 ‘보호해 주신다’는 사실이, ‘여수룬’에게 복중의 복으로 선포되고 있습니다. ‘여수룬’의 하나님이 곧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 이십니다. 고개를 드시고, 하늘을 바라보시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나를 보호해 주시기 위해 언제든지 달려오실 하나님이 준비하고 계심을 믿으시고, 때마다 일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27절은 하나님이 우리의 외부의 적들을 물리쳐 주시는 복의 말씀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이 말씀을 읽으면 마치 거대한 거인이 두 팔을 크게 벌려서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모습이 연상이 됩니다. (마치 킹콩과 미녀처럼) 아기돼지 삼형제 동화 이야기에서 밀짚과 나뭇가지로 집을 지은 돼지형제는 늑대의 공격을 막을 수 없었지만, 벽돌로 집을 지은 아기돼지는 늑대의 공격을 거뜬히 막아냈습니다. 우리가 벽돌같이 튼튼하게 지은 하나님의 처소에 머물러만 있다면 늑대와 같은 사탄, 마귀, 귀신의 어떤 공격에도 전혀 해를 입지 않을 것입니다. 힘으로 빼앗으려고 침입하는 흉악한 어둠의 무리들은 하나님께서 팔을 한 번 휘두르시면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이 날아가 버립니다. 하나님의 처소에는 권능의 팔(힘, 능력)이 보호막으로 쳐져 있기 때문에 어떤 질병도, 사고도, 재해도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팔은 잠간 있다가 사라지지 않고 영원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처소에 머물러 있기만 하면 영원한 보호를 보장 받을 수 있습니다. ‘여수룬’은 영원토록 하나님의 처소에, 그리고 하나님이 팔 아래에서 보호 받을 수 있었으니 참으로 복 받은 민족입니다.
힘이 없는 민족이 외부의 침략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는 것을 ‘약육강식’의 논리로 본다면 반박할 여지는 없습니다. 강자의 지배, 약자의 지배당함은 역사 속에서 얼마든지 있었던 일입니다. 하지만 역사적인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힘의 근원이나 통치의 영원함이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짧은 기간 영화를 누리는데 그치고 말았습니다. 성경속의 제국이라고 일컬어지는 이집트,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제국 등은 광활한 영토와 강력한 군사력으로 세계를 호령한 시절이 있었지만, 영원할 것 같은 제국의 위력이 불과 몇 백 년 사이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운명을 맞게 됩니다. 이스라엘을 멸망하는데 사용되었던 바벨론 제국도, 하나님을 경외하였던 다리오 황제의 페르시아 제국도 결국 멸망 했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는 어느 나라, 어느 권세도 하나님의 권능의 팔에 휘둘려서 안개 같이 사라질 것입니다. 현재 초강대국 미국이나, 신흥 강대국 중국도 하나님 우선의 국가를 만들지 않으면 그 권세는 언제고 거두어질 것에 불과함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200년 전에 복음이 이 땅에 들어오고(개신교는 100년 전) 우리나라는 복음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복음이 이 땅에 자리 잡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나라도 굳건하게 세워지고 경제도 눈부시게 성장하여 왔습니다. 교회와 교인 수는 세계 교회 역사의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급속히 성장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현재를 냉정하게 바라보십시오, 나라를 빼앗기고 고통을 받을 때, 전쟁으로 나라가 온통 불바다가 되었을 때, 먹을 것이 없어 구걸하다시피 이웃 국가의 눈치를 보고 있을 때는 목청껏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곳을 넉넉하게 주셨습니다. 풍족하다 못해 너무 넘쳐나는 느낌이 듭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주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은 고사하고, “없다, 부족하다, 더 달라, 죽을 것 같다” 아우성을 칩니다. 교회들은 경건이 사라지고 점점 세속화되고 인본주의에 물들어 간다고 합니다. 잘 되면 하나님께 더 나아가야 하는데, 오히려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이 모습이 바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멸망의 길로 치달았던 ‘여수룬’의 모습이 아닙니까? ‘여수룬’의 멸망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안다면, 우리 민족과, 우리 교회들과 우리 가정과, 우리 자신들은 하루라도 빨리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처소로 다시 들어가려고 애써야 하고, 하나님의 권능의 팔 아래 놓여 있으려고 하나님의 팔을 단단히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처소를 떠나는 순간, 팔의 보호하심은 사라지고, 그나마 가진 것조차 하나도 남김없이 다 빼앗기고 다 잃어버릴 것입니다. 사람들은 영원한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외면하고 당장 보이는 재물과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시간을 허비 합니다. 영원한 복을 주시면 받아야지 걷어차 버리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처소를 떠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영원하신 팔 아래에 머물면서 영원한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28절은 우리 현실의 풍요를 보장해 주시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 “야곱의 샘”이라는 표현은 샘에서 끊임없이 솟아나오는 물처럼 자손이 번영하게 될 것을 말합니다. “새 포도주의 땅에~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라는 것은 양식이 풍부하게 될 복을 말합니다. 자손이 많고 먹을 것이 풍족한 것은, 이 땅에서 아무 걱정 없이 누리며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모든 것을 완벽하게 제공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새겨듣고 그대로 순종하는 자에게는 재물의 풍성함과 자손의 번영으로 갚아 주시는 분입니다. 믿음으로 순종한 아브라함에게 가축과 땅도 주시고, 자녀도 주셨고, 후손의 번영도 약속해 주신 것이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빈궁하게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돈 한 푼 없어서 구걸하고 꾸어다니게 하시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하게 믿음의 정도가 곧 부의 척도와 비례하지는 않습니다. 얼마나 많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판단하는 것이 부요함의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이 주신 것에 감사하고,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족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풍요를 마음껏 누리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요를 허락하신 것은 남에게 과시하라고,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을 나만 독점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자들을 찾아다니시면서 그들이 겪어야 하는 처절한 생존 현장을 돌보아 주셨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긍휼함으로 돌보아 주셨으며, 부자들에게는 재산을 팔아 나누어 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오순절 이후 세워진 교회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팔아 다함께 나누고 베푸는 일에 적극적으로 앞장섭니다. 바울은 교회들을 세워가면서 형편이 조금 나은 교회들이, 형편이 어렵고 힘든 교회들을 돕기 위해 자발적인 연보를 모아 전달하도록 했습니다. 바울은 연보에 대해서 고린도 후서 8장 13-14절에서,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균등하게 하려 함이니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고 말합니더. 연보를 많이 한다고 해서 가진 사람들이 힘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균등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나눔 방식임을 말합니다. 부는 가지고 혼자 욕심내서 다 쓰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나누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주시면 감사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웃에게 나누고, 나누면 또 채워주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몸소 가르쳐 주신 나눔의 정신, 그리고 사도 바울이 가르쳐 준 나눔의 가르침을 따라서 내가 가진 조그만 풍요도 이웃과 함께 나누면서 살아가며 더 큰 채워 주심의 복을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29절 말씀이 ‘여수룬’을 향한 모세의 축복의 결론입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이 말씀에는 최종적으로 구원을 얻은 이스라엘 백성이 대적자들을 물리치고 승리를 얻게 될 것을 축복합니다. 구원을 얻는 다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강대국들인 이웃 나라들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가난과 굶주림에 벗어나고, 질병과 근심에서 벗어나는 일이지만, 이런 것들은 육체적인 구원에 불과 합니다. 이스라엘이 궁극적으로 얻어야 하는 구원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영혼의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모세는 육체적인 구원과 영혼 구원의 승리를 얻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라고 선포 합니다.
앞의 축복의 말씀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① 세상의 모든 신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 도와주세요!” 부르기만 하면 곧바로 하늘에서 내려오시려고 구름가운데 위엄과 권능으로 대기하고 계십니다. ② 하나님이 영원한 처소를 만들어 주시고, 어마어마한 권능의 팔로 이스라엘을 감싸 안고 모든 대적들이 얼씬도 못하도록 영원토록 지켜 주십니다. ③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손의 번영과 재물의 풍성함을 채워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④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건강하고 강건한 육체로 살아가게 하시고, 죽어서는 영원한 나라에 들어오도록 허락하시는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축복의 말씀이 선포되는 이스라엘 백성은 행복하고도, 행복하고도, 행복할 것입니다. 모세도 떨리고 감격에 젖어서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축복의 말씀을 선포 하였습니다. 부러운 축복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도 취해야 합니다. 가정도, 교회도, 우리 민족도 이 말씀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저도 선포하겠습니다. “00교회 모든 성도 분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아멘. 복 받는 것은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우선 전제 되어야 한다는 것은 구약에서 계속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가 항상 말씀 앞에 겸손함으로 나아가고, 하나님 앞에 정직함으로 살아감으로,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복들을 다 누리기를 바랍니다. 언제든지 달려와 보호해 주시는 복, 지켜 주시고 물리쳐 주시는 복, 번성하고 풍요를 누리는 복, 육체와 영혼의 구원의 복을 하나도 빠짐없이 받아 누려서,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선포 하실 때, “네 맞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화답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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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만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니 참으로 우리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시고,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하나님의 복 내려 주심의 선포가 우리 교회와 가정과 우리 삶 위에 항상 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신명기 33장 26-29절)
믿는 순간부터 예수님은 우리를 책임져 주셔
주의 사랑안에 거할 때 참 행복 느낄 수 있어
하나님 영광 위한 삶,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주셔
이 세상 살면서 가장 큰 기쁨은, 축복은, 은혜는 예수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보다 더 귀한 분이 없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신명기 33장 27절로 29절의 말씀을 가지고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서점에 가면 계속 잘 팔리는 책이 행복, 성공, 이런 것과 관계된 주제를 다룬 책들입니다. 그런데 그 책을 사서 읽는다고 행복이 다가오는 것이 아니고, 그 책을 사서 읽는다고 성공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행복이 무엇이고, 행복이 어디로부터 오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것을 많이 얻으면 행복하리라 생각하지만 가지면 가질수록 염려와 근심이 쌓이는 것이 세상의 물질입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신경 쓸 일이 많고, 편안하게 잠을 자지 못할 날이 많은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세상 권력이, 물질이 우리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행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마음으로부터 행복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다는 이 생각이 내 마음을 점령할 때, 내 마음이 기쁘고 평안하고 행복함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외에 그 어디서도 참된 행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 이름만이 온 인류의 절대 희망이 되시고, 행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참 기쁨과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모세가 120년 동안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을 했습니다. 마지막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남긴 말씀을 가지고 오늘 함께 은혜 나누기 원합니다.
1.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구원을 얻은 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말하기를 첫째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구원을 얻은 자라고 그들을 말씀합니다. 신명기 33장 29절입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야훼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백성들입니다. 그들이 잘나서, 그들의 숫자가 많아서, 그들이 남들보다 뭔가 뛰어났기 때문에 택함받아 하나님 자녀가 된 것이 아닙니다. 무엇 하나 내놓을 것 없고, 적은 숫자의 무리였지만 하나님이 무조건적으로 저들을 사랑하시고 택하셔서 하나님 백성으로 삼아주시고 복을 내려주신 것입니다. 신명기 7장 6절과 7절은 이와 같이 설명합니다.
“너는 야훼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야훼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야훼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수도 적고, 힘도 없고, 그리고 저들이 지금 애굽에서 430년을 거하면서 노예생활을 합니다. 절망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들을 하나님이 그 절망에 대해서 구원해내신 것입니다. 이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들이 구원받고 오늘 이 자리에 와서 앉아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여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내 스스로 구원을 얻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만세 전에 하나님이 예정하신 뜻을 따라서 우리가 택함받고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입니다.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에 대해서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이사야 45장 17절은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은 야훼께 구원을 받아 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니 너희가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욕을 받지 아니하리로다”
에베소서 1장 3절로 5절은 말씀합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할렐루야! 하나님이 만세 전에 예정하신 뜻을 따라서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너는 내 것이라’고 지명하여 부르시고 택하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로 구원받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원의 은혜에 대해서 늘 감사하며 감격하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할 때에 모세를 보내시사 저들에게 열 가지 재앙을 통해 저들을 심판하시고 그들을 구원해내셨습니다. 그들 앞에 홍해가 가로막혔을 때에 홍해를 가르사 육지처럼 지나게 하셨습니다.
시편 106편 9절로 11절은 설명합니다.
“이에 홍해를 꾸짖으시니 곧 마르니 그들을 인도하여 바다 건너가기를 마치 광야를 지나감 같게 하사 그들을 그 미워하는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며 그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셨고 그들의 대적들은 물로 덮으시매 그들 중에서 하나도 살아 남지 못하였도다”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그의 대적을 멸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해주시고 위대한 승리를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중국이,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해서 뭐라고 하더라도,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다 어쩐다 하더라도 일천이백만 하나님을 섬기는 크리스천이 있는 대한민국을 그 어느 나라도 흔들지 못합니다. 우리가 모여 기도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붙드시는 것입니다.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북한이 우리를 쳐들어오는 날은 그날로 북한이 망하는 날입니다. 시편 40편 2절은 말씀합니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시편 18편 16절 17절입니다.
“그가 높은 곳에서 손을 펴사 나를 붙잡아 주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그들은 나보다 힘이 세기 때문이로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셨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어떤 때에 너무나 힘들고 어려워서 마음의 고통과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눈물로 베개를 적실 때가 있습니다. 그런 기가 막힐 절망의 자리에 있는 우리를 주님이 건져주시고,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시고,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에게 주님의 은혜를 넘치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요한1서 4장 10절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 내 모든 것 다 바쳐 헌신하는 주님의 귀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이 고백합니다. 시편 18편 1절에, 나의 힘이신 야훼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나의 모든 것이 되시는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나의 생명이 되시고 나의 희망이 되시고 나의 능력이 되시고 나의 구원이 되시는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시편 18편 3절에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내가 찬송 받으실 야훼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입니다. 3장 18절에, “나는 야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저희 교회에 종로중구대교구 6교구에 장점옥 집사님. 유방암 3기 말에서 깨끗이 고침을 받았어요. 2002년도, 남편의 전도를 받아 교회를 나왔지만 10여 년 동안 그냥 교회를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런데 2016년 4월 15일, 작년에요 건강검진을 받는데 유방암 3기 말의 판정을 받고 임파선까지 전이가 되었습니다. 암 덩어리가 7.5 센치. 너무 커서 8번 항암 치료를 받아서 좀 줄인 다음에, 그 다음에 수술을 하기로 했습니다. 갑자기 죽음에 대한 공포가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질병도 우리를 절망에 빠뜨릴 수 없습니다. 왜? 생명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나와 부르짖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새벽마다 주님 앞에 나와 부르짖어 기도하고 1차 항암 치료받은 처음으로 금요철야, 5월 13일에 와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저의 죄가 너무 많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저의 모든 죄를 회개할 수 있도록 방언을 주시고 회개의 영을 부어주세요!”
그리고 기도하고 찬양하는데 혀가 탁 돌아가면서 방언을 선물로 주시고 그다음부터 몸의 통증이 사라지고, 그다음 주일 2부 예배에 신유기도 시간에 “암에 걸린 사람이 나았습니다” 할 때에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2차 항암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보니 암 크기가 무려 5 센치 이상 줄어들었어요. 그다음 6월 5일 2부 예배 신유기도 시간에 “오른쪽 가슴이 아픈 사람이 있는데 오늘 나았습니다.”라고 선포했을 때 “아멘!” 하고 만져보니까 돌처럼 딱딱했던 그 암이 사라져버렸습니다. 할렐루야!
3차 항암 치료를 받기 전 금식을 하고 갔는데 의사가 말합니다. “선생님께서 무슨 특별한 약을 먹었어요? 몸 상태가 너무 좋아서 믿을 수가 없네요!”
3차, 4차 항암 치료를 마치고 CT 촬영을 했는데 7.5 센치였던 암이 깨끗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컸던 암이 깨끗이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그 후로 온 교구를 다니며 병 나은 간증을 하고 전도를 합니다.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백혈구 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왔으며, 암이 전이된 부분도 깨끗해져있었습니다. 할렐루야! 지금은 좋으신 하나님의 은혜로 암이 발생하기 전보다 더욱 건강합니다. 암으로 인해 저는 물론이고 가족들의 믿음도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어제의 병을 고쳐주신 예수님이 오늘도 병을 고치시고 내일도 병을 고치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변함이 없는데 우리의 믿음은 변함이 있어요. 글쎄 고쳐질까? 그런 생각이 있는 한은 절대 고침받지 못합니다. 나는 고침받았습니다. 믿습니다. 그러면 암도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오는 모든 병자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다 고침받았습니다. 하루는 날 때부터 보지 못하는 바디매오가 나왔을 때 예수님이 물으셨습니다. “네, 보기를 원하나이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 사람 눈이 떠졌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특별한 은혜를 입은 주님의 자녀들로서 늘 감사하며 살아야 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자들입니다. 어떻게 함께하시느냐? 33장 29절은 설명합니다.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마귀가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해오는데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가 되셔서 모든 마귀의 공격을 막아주시고 하나님은 우리의 칼이 되셔서 우리가 마귀를 쳐서 부수고 승리하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없으나 우리 주님이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주님이 우리의 방패가 되시고 우리의 칼이 되셔서 흑암의 권세를 물리치게 해주시고 승리의 삶을 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가나안 입구에서 40일 동안 가나안을 돌아보고 온 후에 여호수아와 갈렙이 긍정적인 고백을 합니다. 열 명은 부정적인 고백을 했는데 여호수아와 갈렙의 고백을 들어보세요. 민수기 14장 9절입니다.
“다만 야훼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야훼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거기에 거인 족속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우리를 메뚜기 같다고 저들이 고백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영의 눈으로 바라볼 때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 “들어가서 점령하자!” 할렐루야. 모세가 죽고 난 후에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 주신 여호수아서 1장 5절, 6절의 축복의 말씀이 있습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라. 강하고 담대하라. 강하고 담대하라. 강하고 담대하라. 여호수아와 함께하신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과 함께하고 계신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갈렙이 85세가 되었을 때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여호수아서 14장 12절입니다.
그 날에 야훼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야훼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성읍이 크고 기골이 장대한 거인들이 있는 그 성이었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그들을 정복하고 쫓아낼 수 있음을 믿습니다. 내게 그 산지를 주옵소서. 갈렙과 같은 믿음의 용사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시편 18편 2절의 고백입니다.
“야훼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자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 하실 때에 그 위대한 승리가 그 후에 예수님을 믿을 모든 사람에게 이미 주어진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5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7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가까스로 간신히 겨우 이기는 것이 아니라 넉넉히 이기느니라. 넉넉히 이기느니라. 넉넉히 이기는 이 승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최근에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이 예수의 유산이라는 책을 내셨는데 그 책에 이런 내용이 소개되어있습니다. 2007년부터 14년까지 미국에 천개 넘는 교회를 조사해 봤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교인 11퍼센트만 신앙의 황금기를 누리며 승리하는 삶을 살고 있다.’ 다 축복받은 삶, 승리의 삶, 행복한 삶을 살아야하는데 11퍼센트만 그것을 누리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미 우리가 승리했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그러한 설명입니다.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라는 성경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툭하면 시험이나 약점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하지만 두려움과 공포, 상처가 한 무리의 불량배처럼 달려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검을 뽑아 적들을 쫓아낼 수 있다. 수치야, 죄책감아, 지난날에 대한 후회야, 썩 물러가라! 과거에 질질 끌려다니는 삶은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패배보다 승리가 많은 삶, 슬픔보다 기쁨이 많은 삶, 절망보다 소망이 많은 삶, 이것이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건을 통해 핏 값으로 취하신 것들이며, 당신에게 주신 유산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자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자입니다. 신명기 33장 29절 하반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너의 모든 대적이 네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네가 그들을 정복할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백전백승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지 아니하시고 우리 힘으로 하면 넘어지고 상처입고 좌절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함께하시면 백전백승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까지, 그 죽음의 고난의 자리까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며 뜻을 이루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42절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예수님의 기도를 들어보세요.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예수님께서 순종하셔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죄를 짊어지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후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높이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9절로 11절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가 당하는 모든 환난을 극적으로 이기게 하시고 우리를 높은 곳에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3장 19절에 고백합니다.
“주 야훼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사람이 누구나 다 높아지길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높여주셔야만 높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높이시면 낮출 사람이 없고 하나님이 낮추시면 높일 사람이 없습니다. 요셉을 보세요.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래서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형들이 그를 끌어내리려고 했습니다. 노예로 팔았습니다. 또 경호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모함을 당해서 죄수의 신분으로 또 그는 신분이 완전히 맨 밑바닥으로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끌어내린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랑받는 아들에서 노예로. 노예에서 죄수의 신분으로 끌어내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높이셨습니다. 사도행전 7장 9절에서 10절에 그 고백을 들어보세요.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
하루아침에 노예로 팔려서 죄수의 신분에 있던 요셉이 당시 최대 강대국인 애굽의 국무총리로 높임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끌어내려도 하나님이 높이시면 낮출 자가 없는 것입니다. 에스더서에 보면 아하수에로 왕 시대에 하만이라는 아주 교만한 사람이 있었는데 자기에게 절하지 않는다고 모르드개,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사람을 죽이려고 자기 집에 높은 장대를 세워놨는데 그 장대에 자기가 달려 죽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대적들이 굴복할 것입니다.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 믿음으로 고백하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야고보서 4장10절 말씀을 기억합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파나마 가난한 어촌에서 자랐던 한 소년이 미국 메이저리그에 최고의 투수로 이름을 날리게 된 분이 있습니다. 마리아노 리베라라고 하는 분입니다 미국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꼽히는 뉴욕 양키스의 마리아노 리베라. 그의 자서전에서 그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어릴 때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자라나서 늘 몸에 생선 비린내가 났대요. 그래서 친구들이 밤낮 생선 비린내 난다고 놀리니까 친구들과 싸우다가 그만 고등학교 때 중퇴를 하게 됩니다. 학교를 퇴학당하고 그다음 밤낮 술 먹고 방탕한 삶을 살았는데 어느 날 평소처럼 야구 게임을 하고 있는데 마침 뉴욕 양키즈의 스카우트하러 온 분의 눈에 띄어가지고 1990년 2월, 이천 달러의 계약금으로 마이너리그에 그가 들어가게 됩니다. 그 당시 환율로 160만원 받고 미국에 계약을 하고 들어가는데요, 시즌을 마치고 잠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그때에 예배드리다가 성령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목사님이 말씀하십니다. “아직 자신의 구원자로서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분이 계십니까?”
오랫동안 교회를 왔다 갔다 했지만 예수님을 만난 체험이 없었어요. 그때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1, 2분 지났을까, 내 마음이 열리고, 하나님 말씀이 따뜻하고 부드럽게 느껴졌다. 성령께서 다정하게 나를 휘감고, 내 마음을 어루만짐을 알 수 있었다. ‘아들아, 내게 오너라.‘”
이 같은 체험을 한 후 그의 삶이 달라집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비행기타고 다른 도시로 시합하러 갈 동안에 마이너리그 선수들은 버스타고 일곱, 여덟 시간씩을 장거리로 다녀야 되는데 예전에는 늘 불평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부터는 감사하고 오히려 장거리 여행을 하면서 동료들에게 영어를 배울 수 있으니 감사하다 그러고 92년 시즌에 팔꿈치부상으로 수술을 받았는데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아내의 아이가 수두에 전염되서 임신중절을 해야 되는데 감사함으로 기도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게 됐고. 늘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데요, 하나님께서 그를 붙들어주셔서 95년에 메이저리그로 진출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때부터 19년 동안 얼마나 그가 공을 잘 던졌는지 미국 메이저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가 되는데, 연봉 2천 달러에서 마지막에 1500만 달러. 잘 개념이 안 들어오시죠? 180억! 이제 조금 놀라시는 것 같으네. 그렇게 물질이 다는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높여주셨어요. 19년 동안 메이저리그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모두 열세 번 걸쳐 올스타 선수로 뽑혔고, 다섯 차례 월드시리즈를 제패했고,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다 구원 652세이브. 652게임을 승리하게 만든 거죠. 최다 경기 마무리 952경기, 포스트시즌 최소 경기 당 평균 자책점 최하의 기록 0.7, 최다세이브 기록을 보유함. 그 뉴욕 양키즈 팀은 그의 등번호 42번을 영구 결번하기로, 이렇게 위대한 선수들은 그 번호를 다시는 그 후에 다른 사람들이 아무도 쓰지 않는 결번식을 하게 되는데, 이 스타디움에 뉴욕의 사람, 팬들이 모여서 그를 격려하고 환호하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은퇴 후에는 마리아노 리베라제단을 통해 무너져가는 교회들을 다시 세우는 일과 아동 교육 사업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열아홉 시즌 동안 하나님께서는 내가 뉴욕 양키스에서 프로 야구 선수로 뛸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셨다. 이제 나는 소명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을 찬송하며, 그분을 간구하고 그 은혜로움과 평화, 자비를 경험하길 원하는 이들에게 경이로움을 보여주는 게 바로 그것이다. 팀을 구원하는 마무리 투수에서 영혼을 구원하는 사람으로! 하나님과 함께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가난한 어촌에 생선 비린내 나는 그러한 한 소년이 하나님이 택하시니까 미국 야구 역사 가운데 위대한 인물로 남아서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고 칭찬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우리를 세우셨습니다. 우리에게 위대한 승리를 지금도 선물로 허락하여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절대 긍정 절대 감사와 믿음으로 무장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을 살아가게 될 때, 우리의 일생이 다 가도록 하나님 우리와 함께 계시며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되는 은혜와 축복을 더해주실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늘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한번 뿐인 인생, 짧게 지나가는 인생 예수 잘 믿고 주님 안에서 승리의 삶 살아가는 저희 모두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출처: 갑천뉴스타트 자연치유원 글쓴이: 엘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