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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전 3: 7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 - 벧전 3: 9 도리어 복을 빌라.
벧전 3: 7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 -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
사도 베드로는 아내들의 의무를 교훈한 후 남편들의 의무도 교훈한다. 남편들은 지식을 따라 아내들과 동거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관한 지식을 가리킬 것이다.
결혼은 남녀가 연합하여 한 인격처럼 사는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밀접한 관계이다.
결혼의 목적은
첫째, 남녀가 외롭지 않도록 함께 살게 하기 위함이다.
* 창 2: 18 -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둘째, 자녀 출산을 위함이다.
* 창 1: 27-28 -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셋째, 음행 방지를 위함이다.
* 고전 7: 2 -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결혼에 있어서 남편의 의무는 사랑이다.바울은 남편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자신을 주심같이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고 교훈하였다.
* 엡 5: 25 -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사랑은 무조건적, 희생적 사랑이었다.
우리 속에는 그의 사랑을 받을 만한 아무런 선한 것이 없다. 남편들은 그런 무조건적, 희생적 사랑으로 아내들을 사랑해야 한다. 남편들의 따뜻한 말 한 마디와 얼굴 표정과 행위는 단조로운 집안 일로 피곤한 아내에게 위로와 기쁨을 줄 것이다.
성(性)에 대한 올바른 지식도 필요하다.인간의 성은 더럽고 죄악된 것이 아니고 아름다운 것이다.
* 창 2: 25 -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그것은 부부의 사랑을 증진시킨다.
그러나 성은 단지 부부 관계에서만 사용되도록 명령되었고, 그렇지 못한 행위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온다. 음행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는 참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과 벌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남편들은 아내들을 귀히 여겨야 한다.
아내는 남편의 갈빗대이며, 남편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다. 사도 베드로는 남편들이 아내들을 귀히 여겨야 할 이유로 첫째, 아내들이 더 연약한 그릇이며, 둘째, 그들이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라는 것을 들었다.
여성은 대체로 남성보다 몸이 연약하고 마음도 약하고 예민하다. 그렇지 않다면 옛날부터 전쟁에 남자들만 아니고 여자들도 참여했을 것이다. 이런 연약한 아내들이 남편들과 자녀들을 위해 노동과 같이 힘든 집안일을 하며 늙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편들은 그들을 외롭게 하거나 마음 아프게 하거나 슬프게 하지 말고, 귀하게 여기고 보호하고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 아내들은 생명의 은혜, 즉 영생과 천국을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들이다. 아내들은 이 세상에서만 아는 관계가 아니고 천국에까지 같이 갈 반려자들이다. 물론 천국에서는 부부로서의 짝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내들은 천국에서도 함께 기쁨과 영광을 누릴 영원한 동료들이다. 그러므로 남편들은 아내들을 귀히 여겨야 한다.
남편들은 지식을 따라 아내들과 동거하고 그들을 귀히 여길 때 그들의 기도가 막히지 않을 것이다. 부부의 사이가 좋아야 기도도 잘 된다. 부부가 서로 다투고 나면 기도의 문이 막힌다. 왜냐하면 부부 사이가 좋지 않은 것도 죄가 되기 때문이다. 죄는 우리의 기도의 문을 가로막는다.
요한일서 3: 21-22은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고 확증하였다.
우리의 선한 생활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성도들은 가정에서부터 그리고 결혼한 이들은 부부 사이에서부터 성경의 교훈대로 바르고 선하게 행해야 한다.
1] 남편(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아내가 남편에게 순복한 것처럼 남편들도 아내들에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와 같이'는 1절과 동일한 분사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결혼의 관계를 세상의 제도적인 것으로만 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로 인식해야 함을 시사한다.
그러므로 남편 된 자들이 마땅히 아내들에게 결혼 생활 속에서 감당해야 할 의무는 연약한 아내를 보살펴 주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부부 관계에 있어서는 마땅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이 '지식'(그노신)는 하나님께서 의도하고 있는 결혼 관계에 대한 인식, 즉 결혼 생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하는 통찰력을 의미한다(Vincent).
'동거하다'(쉬노이쿤테스)는 '함께 살다'의 '쉬노이케오'에서 나온 말이다. 이것은 특히 성생활과 관련된 말이나(Kelly) 본문에서는 단순히 남편이 아내와 갖는 성적인 관계만이 아니라 여자의 육체적인 연약함을 돌보는 전체적인 관계를 나타낸다(Reicke).
2] 그를(저는) ... 귀히 여기라.
베드로는 두 가지 이유를 들어 남편들이 아내들을 귀하게 대할 것을 권면한다.
3] 더 연약한 그릇이요
이것은 지적이나 도덕적인 연약성이 아닌 육체적인 연약성을 가리킨다(Blum).
4)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아내가 남편에게 귀히 여김을 받을 또 다른 이유는 영적인 면에서 남편과 동등하게 영생의 은총을 공유한 자이며 그것을 상속받을 동등한 동반자이기 때문이다(Stibbs, blum, Michaels).
5]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남편과 아내가 꾸미는 가정은 교회의 축소판이다(Clement). 가정 안에서 남편과 아내가 협력하며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기도하였을 경우 두 세 사람과 함께 계신 주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다.
* 마 18: 20 -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 고전 7: 5 -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서로의 관심과 사랑을 필요로 하는 기도 생활에서(4: 7-11) 남편이 악하게 아내를 대하거나 서로가 불화하는 경우에는 기도의 효력이 발생하기 어렵다.
남편과 아내 사이의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도를 막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다. 각자 스스로의 문제가 막고 있을 뿐이다. 예수님도 이와 비슷한 충고를 하셨다.
* 마 5: 23-24 -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 마 6: 12, 14-15 - ⑫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⑭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⑮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 마 18: 15-20 - ⑮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⑯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⑰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⑱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⑲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⑳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 막 11: 25 -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아내들은 자기 남편들에게 순복하자.
그들은 믿지 않는 남편도 그들의 정결하고 두려워하는 행위를 통해 구원을 받게 해야 한다. 아내들이 자기 남편들에게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명령이며, 아내로서의 마땅한 의무이다. 그럴 때 믿지 않는 남편도 구원을 얻을 가능성이 생긴다.
아내들의 선행은 특히 외적 단장이 아닌 내면적 단장에서 드러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 성도들은 지나치게 머리를 꾸미거나 금은패물로 치장하거나 아름다운 옷을 입는 등 사치하지 말아야 하고 온유하고 조용한 내면적 덕을 소유하기를 힘써야 한다.
이것은 썩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가치 있는 일이다. 이 세상의 것들은 다 지나가는 것이며 일시적이고 허무한 것들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자들이므로 세상적인 가치관을 버리고 썩지 않을 영원한 천국의 영광과 행복을 소망하며 살아야 한다.
둘째, 남편들은 결혼과 부부 관계에 대한 지식으로 동거하며 아내들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남편들은 결혼의 의미와 목적과 의무를 잘 이해해야 한다. 아내들이 남편들의 갈빗대이며 더 연약한 그릇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하여 여겨야 한다.
그럴 때 남편들은 기도가 막히지 않을 것이다. 아내를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기도의 문이 막힌다. 좋은 부부 관계는 신앙생활에 유익하지만, 자주 다투면 자신들의 신앙생활에 유익이 없고 해가 된다.
2. 성도들간의 사랑 ( 3: 8 – 12 )
⑧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⑨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⑩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⑪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⑫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벧전 3: 8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
사도 베드로는 마지막으로 권면하고 마치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그의 권면과 교훈을 좀 더 계속되게 하셨다.
첫째, 우리에게 마음을 같이하라고 권면하였다.
'마음을 같이하라'(호모프론)는 생각을 같이하라는 뜻이다.
성도들의 교제는 생각의 일치에서 이루어진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2: 16에서 '서로 마음[생각]을 같이하며.'라 하였고, 고린도전서 1: 10에서는 '같은 마음[생각]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하였다.
빌립보서 2: 2에서는 '마음[생각]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생각]을 품어.' 즉 생각이 서로 같아야 하나님을 함께 섬길 수 있다.
생각이 서로 다르면 다투고 분열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이 하나 되도록 힘써야 한다.
둘째, 서로 체휼(동정하며)하라고 권면하였다.
'체휼하다'(쉼파테스)는 같은 감정을 가지다, 동정심(同情心)을 가지다는 뜻이다.
사람은 생각이 첫째로 중요하지만, 아울러 감정도 중요하다. 감정이 같은 것이 좋다.
어떤 이는 무엇을 좋아하지만 다른 어떤 이는 그것을 싫어하면 서로 사랑으로 단합하기 어려울 것이다. 성도들이 어떤 일에 대해 좋아하는 같은 감정을 가지고 다른 일에 대해 싫어하는 같은 감정을 가질 때 일치 단합하여 하나님의 일을 잘 할 수 있다.
셋째, 형제를 사랑하라고 권면했다.
사랑은 성도의 기본적인 덕목이다. 예수께서도 친히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다.
사도 바울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쉽게]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는다.'고 말했다(고전 13: 4-7).
넷째, 남을 불쌍히 여기라고 권면하였다.
'불쌍히 여기다'(유스플랑크노스)는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다는 뜻이다. 우리는 상대방의 부족과 연약을 볼 때 멸시하거나 배척하지 말고 자비로운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바울도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교훈했다(엡 4: 32).
다섯째, 친절하라고 권면하였다.
'겸손하며'(타페이노프론)은 전통사본(Byz)에는 '친절하며'(필로프론)라고 되어 있다. 겸손함과 친절함은 거리가 멀지 않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겸손하고 친절해야 한다.
1]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베드로는 본 절에서 2: 18 - 3: 7에 있는 명령을 마무리하면서 5개의 형용사를 사용함으로 완곡한 권면을 하고 있다.
본 절에 사용된 5개의 형용사는 동일하게 분사적인 용법을 취하고 있다. 이는 특별한 계층으로부터 성도의 특성으로 관심을 옮긴 것으로(Goppelt, Selwyn) 신자의 상호 관계에 대한 언급이다.
2]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호모프로네스)
이것은 '같은'을 뜻하는 '호모스'와 '마음'을 의미하는 '프렌'의 합성어로서 '한 가지 일에 뜻을 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동일한 의견을 가지라는 의미가 아니라 각자가 서로에 대한 동일한 관심을 가지며 영적인 끈으로 연합되어야 함을 시사한다(Michaels).
* 행 4: 32 -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 동정하며(체휼하며, 쉼파데이스)
이것은 '함께'를 뜻하는 '쉰'과 '고통을 받다'에 해당하는 '파스코'의 합성어이다.
'쉼파데이스'의 직접적인 의미는 '동정심을 갖다'로 다른 사람의 감정에 참여하여 고난받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동정하는 것을 나타낸다.
* 히 10: 34 -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4] 형제를 사랑하며(필라델포이)
신약성경에서 본 절에만 나오는 '필라델포이'는 '사랑'에 해당하는 '필로스'와 '형제'에 해당하는 '아델포스'의 합성어이다.
이는 단순한 형제애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에 결속시키는 형제애로서 그리스도인이 행해야 할 윤리적 덕목이다.
* 롬 12: 10 -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 살전 4: 9-10 - ⑨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⑩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에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욱 그렇게 행하고
* 히 13: 1 -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 벧후 1: 7 -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5] 불쌍히 여기며(유스플랑크노이)
이것은 '좋은'의 뜻을 가진 '유'와 '마음'을 뜻하는 '스플랑크논'의 합성어이다. '유스플랑크노이'는 히포크라테스 당대에 '내장이 강한' 사람을 가리켰으나 의미가 변화되어 '용기 있는'이나 '인정 많은'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Selwyn).
신약 성경에서는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이나 동정심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
* 고후 7: 15 - 그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과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 몬 1: 7 -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6] 겸손하며(타페이노프로네스)
이것은 '겸손한'의 의미를 가진 '타페이노스'와 '마음','생각'에 해당하는 '프렌'의 합성어이다. 이는 예수께서 가지셨던 마음으로 낮은 마음을 나타낸다.
* 잠 29: 23 -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 빌 2: 6-9 - ⑥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⑦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⑧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⑨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벧전 3: 9 도리어 복을 빌라. -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
여섯째, 남에게 보복하지 말라고 권면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주께서는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고 말씀하셨고(마 5: 39) 또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라.'고 하셨다(마 5: 44 전통사본; 눅 6: 27-28).
사도 바울도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라.'고 교훈했다(롬 12: 17).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위해 부르심을 입었다. 그 복이란 죄 사함과 구원의 복, 평안의 복, 또 영광스런 천국과 영생의 복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신 이 복을 깨닫고 귀히 여기고 감사하며 또 서로에게 이 복으로 축복해야 한다. 사람이 이 구원과 영생의 복을 잃는 것보다 더 큰 불행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리 부족한 형제라 하더라도 이 복에서 제외되는 자가 되기를 원치 않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진심으로 상대방을 위해 이 복을 빌어야 한다.
1]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베드로는 본 절에서 일반적인 불신자와의 관계를 말함으로써 결론을 맺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행동 원리는 자기를 사랑하는 자 뿐만 아니라 자기를 해치고 욕하는 자에게도 보복하는 일이 없이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게 대하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셨던 교훈이다.
* 눅 6: 27-29 - (27)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29)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 눅 23: 34 -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갚다'(아포디돈테스)는 당연히 갚아야 하는 것을 가리키는 '아포디도미'(지불하다)에서 유래한 단어이며, '복을 빌라'(율로군테스)는 저주의 반대말로 '좋게 말하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당연히 악이나 욕으로 갚아도 될 만한 상황 속에서라도 저주나 앙갚음을 하지 말고 도리어 축복하고 중보 기도해야 함을 시사한다(Blum).
2]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입었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히나, ...을 위해서)로서 목적절을 나타낸다. 그러나 본 절의 '히나'는 목적절로 보아서는 안 된다. 만약 목적절로 해석하면 복을 받기 위해 다른 사람을 축복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므로 본 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시려고 부르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타인에게 복을 빌어야 한다.'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복을 빌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Lenski,Bengel, Bl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