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엡 5: 3-7 더러움과 탐욕 ( 2 )
3] 희롱의 말
'희롱의 말'은 농담을 가리키는데 특히 저속하고 상스러운 농담을 가리킨다.
헬라어 '유트라펠리아'(*)는 본래 '재치 있는 농담'이라는 좋은 의미였으나 본 절에서는 외설적인 내용을 포함한 '상스러운 농담이나 독설'을 의미한다.
이러한 언어생활은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배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말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크게 위배되기 때문이다(Calvin).
4]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언어생활에 있어서 최선의 태도는 감사하는 말을 하는 것이라고 훈계하고 있다(Foulkes).
'감사하는 말'로 번역된 헬라어 '유카리스티아'(*)는 '유'(*, '좋은')와 '카리스'(*, 은혜)의 합성어이다.
그래서 혹자는 '유카리스티아'를 '은혜스러운 말'로 해석하나(Calvin) 이런 경우로 사용된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Mitton).
오히려 '유카리스티아'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말을 의미한다(Lincoln).
그리스도인들은 그 입에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말이 항상 흘러넘쳐야 한다(18절).
* 골 2: 7 -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 골 3: 15 -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감사(感謝, Thanksgiving)는 타인에 의해 자기에게 보인 호의(好意)에 대한 승인(承認)의 정(情)이다.
성경은 하나님께 대해 백성들이 가지는 태도로 나타난다.
구약성경의 감사는 히브리어 ‘야다’(yadah)로 ‘고백하다’는 뜻이다. 이 단어가 ‘찬양하다, 감사하다’의 의미로 쓰일 때 목적어는 하나님이다.
* 창 29: 35 -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 스 3: 11 - 찬양으로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 기초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 시 33: 2 -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 사 12: 4 -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그러므로 기독교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응답하는 사람의 물심(物心)의 표현을 말한다. 따라서 예배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감사로서, 성전에 들어가는 것이 감사이다.
* 시 95: 2 -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노래로써 또는 희생제물을 드리는 일로서 감사한 마음이 표시되었다.
* 시 54: 6 - 내가 낙헌제로 주께 제사하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주의 이름이 선하심이니이다.
신약의 감사는 헬라어로 ‘유카리스티아’(eucharistia)인데 이 단어는 두 번(눅 17: 16. 롬 16: 4)을 제외하고는 모두 하나님에 대해 사용되었다.
복음서에는 예수께서 친히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 마 11: 25 -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 요 11: 41 -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이것은 감사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다.
* 눅 17: 16, 18 - 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습관에 따라 최후 만찬 때도, 잔을 가지사 사례하여 이에 새로운 의미를 더하셨다.
* 막 14: 22-24 - 22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3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24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말세의 특징 중 하나는 감사가 없다.
* 딤후 3: 2-5 -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 18)고 권면하였다. 감사는 기독교인이 가져야할 제일 중요한 덕목이다.
‘감사드리다’라는 말은 식사 전에 드리는 축복기도나 성만찬의 용어로도 사용되었고, 2세기에는 ‘유카리스티아’란 말이 성만찬 예식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로도 통용되었다.
* 고전 11: 24 -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엡 5: 5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
원문에는 본 절 초두에 '왜냐하면'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것은 우리가 음행과 더러운 것과 탐욕을 버리고 또 단정치 못한 말, 어리석은 말, 상스러운 농담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보인다.
그 이유는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함을 너희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 절은 말씀한다.
탐하는 자를 우상숭배자라고 표현하였다. 그것은 탐심이 돈과 세상을 신으로 섬기는 자와 같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는 천국 곧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가리키며,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한다.'는 말은 그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1]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토 이스테 기노스콘테스'(*)는 현재 명령법 또는 현재 직설법으로 볼 수 있다(Robertson).
전자의 경우로 보면 '이것에 대해 확신하라'(Be verysure of this, NEB, RSV)로 해석되며, 후자의 경우로 보면 '너희가 이것을 안다'(thisyou know, KJV, NIV, Foulkes, Bruce)로 해석된다.
이 두 가지 해석이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바울은 이 표현을 통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Hendriksen).
2]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본 절에서 열거된 죄악의 범주들, 곧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는 3절에 언급되어 있는 것과 근본적으로 같다.
본 절에서 바울은 인간의 탐욕을 우상 숭배와 동일선상에 두고 있다.
* 골 3: 5 -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우상 숭배자는 절제할 수 없는 탐욕으로 인하여 자신을 우상화하여 앞서 언급한 죄악을 범하는 자이다.
결국 이러한 자들은 어느 누구라도 다가올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받을 수 없다(Wood).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의 헬라어는 '엔 테 바실레이아 투 크리스투 카이 데우'(*)로서 '크리스투'(*, '그리스도의')와 '데우'(*, '하나님')가 하나의 관사인 '투'(*)에 의해 수식된다.
이것은 '크리스투'의 나라와 '데우'의 나라가 동일한 것임을 시사한다(Foulkes, Caird, Gnilka).
악을 행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은 성경이 밝히 증거하는 진리이다.
고린도전서 6 장에서, 바울 사도는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 말씀했다(고전 6: 9-10).
갈라디아서 5 장에서도, 바울 사도는 육체의 일들인 여러 가지 죄악들을 열거한 후에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말씀했다(갈 5: 19-21).
요한계시록도 이런 사실을 확실히 증거했다.
요한계시록 21: 8은 말씀하기를,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했다.
요한계시록 21: 27은 말씀하기를,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고 했다.
또 요한계시록 22: 15은 말씀하기를,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고 했다.
우리가 이런 진리와 사실을 분명히 인식한다면, 우리는 죄를 떠날 것이다. 우리는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을 버릴 것이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 안에서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힘쓸 것이다.
엡 5: 6 불순종의 아들 -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
헛된 말이란, 예를 들어, '웬만큼 죄를 지어도 괜찮다.', '그 정도 죄를 지어도 천국은 갈 수 있다.'는 등의 말이다. 그것은 속이는 말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이며 우리가 죄를 떠나는 것이다. 계속 죄 가운데 사는 자들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자들일 것이다. 참으로 구원받은 자들이라면 모든 죄악들을 버리려 할 것이고 거룩한 삶을 살고자 애쓸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라는 말은 앞에서 언급한 죄악들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탐심 등의 죄악들 때문에'라는 뜻이다. 이런 죄악들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한다.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이 많으시고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그는 끝까지 참고만 계시지 않는다.
그는 마침내 이 세상에 가득한 사람의 죄악들에 대해 일어나 죄인들에게 진노하시며 그들을 심판하시고 징벌하실 것이다.
1]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본 절의 '누구든지'에 대해 혹자는 영지주의자라고 주장한다(Foulkes, Barth, Mitton, Abbott).
그러나 본 절에서 바울이 경고하는 대상은 일반적인 거짓 교사들이다(Wood, Lincoln).
왜냐하면 바울이 영지주의자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허망한 생각으로 미혹하는 자들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고 가르침을 받은 진리에 굳게 설 것을 권면한다.
에베소 교인들은 헛된 말을 경계함으로 죄악에 빠져 타락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Hendriksen).
2]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이로 말미암아'는 속이고자 하는 헛된 말을 가리킨다기보다 앞 절들에서 언급한 죄악을 시사한다고 본다(3-5절, Wood).
이 말은 앞에서 언급한 죄악들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탐심 등의 죄악들 때문에'라는 뜻이다. 이런 죄악들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한다.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이 많으시고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그는 끝까지 참고만 계시지 않는다.
그는 마침내 이 세상에 가득한 사람의 죄악들에 대해 일어나 죄인들에게 진노하시며 그들을 심판하시고 징벌하실 것이다.
'임하나니'의 헬라어 '에르케타이'(*)는 현재 시상으로 하나님을 떠나 죄를 범하는 불순종의 아들들에게(2: 2) 하나님의 진노가 현재와 미래에 임함을 시사한다(Abbott, Barth, Lincoln, Foulkes, Wood).
즉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으며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게 된다.
엡 5: 7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 )
우리도 과거에는 불순종하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은 후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녀들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순종하는 자들과 함께 죄 가운데 살다가 그들과 함께 그들이 받을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마땅히 거룩하게 살고 절제하며 하나님이 주신 현실에 만족하며 오직 천국 소망 중에 감사해야 한다.
1]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본 절은 3절에서부터 시작된 훈계를 결과적으로 마무리해 주고 있다(Wood, Lincoln).
에베소 교인들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추악한 죄에 빠져 하나님 나라를 상속할 수 없는 자들과 연합하여 행동해서는 안 된다.
빛과 어두움은 양립(兩立)할 수 없듯이 그리스도인들과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자들이 함께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의 심판 때에 불순종의 아들들은 영원한 형벌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만일 성도들이 불순종의 아들들의 헛된 말에 속한 그 죄악에 참여하게 되면 마땅히 그들과 함께 벌을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어떠한 식으로든지 그들과 함께 해서는 안 된다고 권면하고 있다(Blaik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