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상11:1-15) 수상가옥과 물밑작업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삼상11장 말씀중심으로 <수상가옥과 물밑작업>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증거 합니다.
'수상가옥과 물밑작업'
여러분! 수상가옥하면 생각나는 곳이 어디입니까? 동남아시아에 있는 여러 나라, 캄보디아라든지 베트남, 미얀마, 홍콩 등 흔히 강가나 바닷가에 수상가옥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곳은 너무나 작은 규모들이고, 배 위에 지었든지 아니면 나무로 침목을 만들어 놓고 그 위에 기둥을 만들어 놓고 그 위에 조그맣게 오두막 같이 짓는 그런 수상가옥들을 우리가 봤어요. 그런데 수상가옥이라고 느낄 수 없는 그런 집들이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수상가옥들. 여러분! 다 아시지요?
이태리의 베네치아라고 하는 도시에 가면 겉으로 보기에는 벽돌로 지은 엄청나게 큰 수상가옥들이 빌딩처럼 서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년 수가 적으면 400년 정도, 년 수가 많으면 무려 1,000년 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그런 오랜 세월, 장구한 세월 동안 물위에 떠 있는 빌딩이라는 것입니다. 돌로 지은 집이지요. 그런데 오래된 베네치아의 수상가옥 한 채가 보통 1,000억씩 한답니다. 그래서 이태리 사람들의 꿈 중에 대표적인 꿈이 평생에 베네치아의 수상가옥을 사서 살 수 있다면 하는 것이, 이태리 사람들의 큰 꿈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이 수상가옥을 보면 밑에 그 집을 뜨게 하는, 눈에 보이는 물위의 건물을 유지시켜주는 밑에 구조물들이 있어요. 물밑에 구조물들이. 어느 영화에서 본 것 같은데 건물이 물속에 가라앉는 무슨 액션영화였던 것 같아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물밑에서 집을 뜨게 해주는 그런 구조물이 다 깨어지면서 어마어마한 수상가옥빌딩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사울이 첫 번째 전쟁을 치룹니다. 기름부음을 받아서 왕으로 인침을 받은 후에 일어난 첫 번째 전쟁이에요. 그런데 암몬 사람이 쳐들어와서 치르게 되는 전쟁자체에 본문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게 아닙니다. 사울이라고 하는 사람, 어저께 말씀을 드렸듯이 왕의 자리라는 것은 꿈도 꿔 보지 않고 전혀 왕이 될 것에 대해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시골의 잘 생긴 한 청년을 하나님께서 선민 이스라엘 백성전체의 왕으로 세워 가시는 과정에 이 본문의 초점이 있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드러나고 있는 사울의 모든 삶의 모습, 사람들에게 비쳐지는 사울의 용맹함, 사울이 왕이 되어 가는 것이 다 하나님의 물밑 작업 위에 떠있는 수상가옥과 같은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보세요. 왕이 될 때 10장에서 봤습니다마는, 하나님이 사무엘과 입을 다 맞추십니다.
‘이렇게 해라. 이렇게 해라. 세 가지 징표를 보여서 두 사람을 만나는데 암나귀의 행방이 아버지께로 갔음을 알리게 해라. 세 사람을 만나는데 떡 두 덩이를 얻게 하라. 예언자들의 무리를 만날 때 신이 임하게 될 것이다.’라고 이렇게 다 입을 맞춰 놓으시고, 백성들의 눈앞에 보이는 현상은 어떻게 일어나느냐? 제비뽑기입니다.
자, 사무엘이 말합니다. ‘이제 미스바에 모여라. 내가 너희에게 왕을 뽑아 주겠는데 우리가 무엇을 기준으로 뽑겠느냐? 하나님의 뜻에 맡긴다는 뜻으로 제비뽑기를 하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천 명단위로 뽑고, 뽑고 뽑았는데 결국 사울이 뽑혔다는 것입니다. 이때 사울은 숨어 있었어요. 왕 되는 게 무서워서. 이게 완전히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닙니까? 이게 물밑작업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물밑작업을 통해서 사울이 왕으로 뽑혔어요. 그런데 불량배들이 뭐라고 하느냐면 어제 본 10장27절에 “사울이 무엇인데 우리를 구원하겠느냐?”라고 사울의 왕 됨을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사울이 왕 자격이 있고 왕 다운 면모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물밑작업을 하십니다.
암몬을 들쑤셔서 전쟁을 일으켜서 쳐들어오게 만들어요. 암몬과의 전쟁에 초점이 맞춰진 게 아니라, 하나님의 물밑작업을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사울로 하여금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왕이 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물밑작업을 하시는데, 암몬으로 하여금 전쟁을 일으키게 합니다. 스파링 상대를 만드십니다. 그리고 사울이 이 암몬이 쳐들어왔다는 얘기를 듣지 않습니까? 듣게 될 때에 하나님의 신이 임해서 노했다고 나옵니다. ‘아니 암몬이 쳐들어오다니? 이런 놈들이 있나. 당장에 요절을 내야지.’라고 말하는데 사울이 그 이전에 자기 자신의 자연인으로서 성정을 가지고 ‘어, 화난다.’라고 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신이 임했다는 겁니다. 이것도 물밑작업 아닙니까?
사울은 정말로 주체성이 없는 사람인 것처럼, 인격이 없는 사람인 것처럼 하나님에 의해서 지금 끌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왕의 자리로 하나님이 밀가루 반죽 주무르듯이 주물러 가시면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완전히 물밑작업 하시는 것을 사람들은 못 봐요. 사울이 ‘와, 화난다. 암몬을 쳐부숴야지.’라고 할 때는 사람들이 ‘오, 사울이 센데.’라고 본다는 겁니다. 그 밑에 하나님께서 성령의 신이 임하도록 해서, 용맹한 마음상태가 되도록 만들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르고 사울을 용감하게 본다는 것이에요. 이게 물밑작업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사울의 왕 됨은 수상가옥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물밑작업을 통해서 수상가옥이 되는데 세 가지 구조가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사울의 왕 됨이 보입니다. 그러면서 수상가옥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물밑에서 작업을 계속해 나가십니다. 심지어는 사람들이 '한 사람 같이 모였다'라고 하는데 '한 마음으로 모였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했다고요? 7절에 “두려움이 임하매” 무슨 두려움이 임할까? 비도 아니고 눈도 아니고. 그런데 하나님이 두려움을 눈을 내리듯이 온 백성에게 다 임하게 만들어서 물밑작업을 다 하시는 것입니다. 수상가옥이 있어요. 왕이 되어져가는 수상가옥이 있고, 하나님의 물밑작업이 있지 않습니까? 그 중간에 뭐가 있습니까? 사울이라는 인격이 있어요. 사울이라는 인격은 이 하나님의 물밑작업을 통해 수상가옥이라고 하는, 왕의 자리를 만들어 가는 역사에 있어서 죽어있는 겁니다. 마치 물에 이렇게 완전히 힘을 빼고 떠있는 상태가 되었지 않습니까? 완전히 힘을 빼고 온 몸의 힘을 빼서 축 늘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자기의 의견, 자기의 의지, 자기의 용맹함, 자기의 계획 이런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하나님의 신이 임하는 대로 끌려가는 겁니다. 마치 쭉 힘을 빼고 물위에 늘어져서 둥둥 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밑에서 물밑작업을 하시면서, 사람들에게 보이는 물위의 현상으로서 왕의 자리를 만들어 가시고 굳혀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뭐 생각나는 것 없어요? 이게 기독교인의 삶의 모습이에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 죽음을 내 죽음으로 받아들인 이유가 뭡니까? 쭉- 힘을 빼고 물 위에서 뜨는 겁니다. 힘을 주면 가라앉아요.
이렇게 하나님의 물밑작업을 통해서 왕으로서 수상가옥을 짓게 됩니다. 사울은 힘이 쭉 빠졌어요. 자기가 하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왕이 되기 위해 힘을 들인 것도 아닙니다. 전쟁을 하기 위해 힘을 들인 것도 아닙니다. 신이 임해서 용맹함도 생기고 방법도 생기고 다 그렇게 된 것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왕 노릇 하다가 나중에 보겠습니다만,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고 자기의 생각을 주장합니다. 자기가 힘을 냅니다. 힘을 줍니다. 그러자마자 어떻게 됩니까? 결국 사울의 왕이라는 수상가옥은 물밑으로 가라앉아 버리고 맙니다. 하나님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내 힘을 빼고 내 의견을 빼고 쭉- 죽어있었어야 했는데. 그래야 왕으로서 수상가옥이 계속 유지될 수 있었는데 가라앉아버리고 맙니다. 하나님의 물밑작업이 중단되면서 가라앉아 버리고 맙니다.
여러분! 주님의 십자가가 뭘 하는 겁니까? 우리로 하여금 물 위에 떠있게 하는 겁니다. 힘을 쭉- 빼고. 자식? 엄마가 힘을 쭉- 빼고 누워 있어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물밑작업을 하시는 거예요. 그 밑에서. 그러면 자식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수상가옥으로 만들어져 간다는 것입니다. 사업? 사업에 대해서 나의 힘을 빼는 거예요. 십자가 붙잡고 내가 죽었는데. 뭐.
쭉- 뻗어요. 쭉- 뻗고 있으면, 하나님이 물밑작업을 하시는 거예요. 물밑작업을 하시면서 사업의 그 수상가옥, 이 물위의 모양이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져 가는 겁니다.
여러분! 포항 앞바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제가 이제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설교할 때도 한 번 인용을 했습니다. 포항 앞바다에서 어느 여자고등학교의 수영반 아이들이 체육선생님하고 같이 수영을 하다가, 갑자기 한 아이가 허우적거리니까 선생님도 들어가시고 그 주변에 같이 있던 아이들이 서로 돕다가 그만 다 엉켜버리고 말았습니다. 7-8명의 아이가 선생님과 함께 다 엉켜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중의 한 아이는 어떻게 하다가 선생님을 붙잡지 못하고 그 무리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어쩔 수 없어서 물속으로 가라앉았는데 발을 딛고 보니까 목까지 차는 곳이에요. 그런데 선생님과 함께 서로 부둥켜안고 엉겨 붙은 모든 자들은 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같이 엉겨 붙을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어서 물속에 가라앉다 보니까, 바닥에 발을 딛고 걸어 나왔다는 것입니다. 걸어 나와도 될 수 있는 깊이였는데, 발이 실족한 아이가 허우적거리니까 다 엉겨 붙어서 허우적거렸다는 겁니다. 그 붙잡은 것을 놓고 힘을 빼면 되는데. 발을 디디면 되는데. 서로 붙잡고 부둥켜안고 있다가 다 죽었다는 겁니다. 이게 삶의 원리에요.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 것들, 가정, 남편, 아내, 자식, 사업, 무엇이건 간에 내 계획, 내 비전, 이상, 꿈,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을 붙잡지 말고, 죽은 사람인 것처럼 쭉- 물위에 떠 있으면 그 물밑에서 하나님이 다 작업을 하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볼 때 사울이 왕이 된 것 같이 아름다운 수상가옥을 지으시려는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힘을 주고 잡아버리면 꼬르륵 갈아 앉아버리고 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물밑에서 작업을 하실 수가 없게 돼 버린다는 겁니다. 우리가 물 위에 떠있어야 그 물밑에서 작업을 하실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가라앉아버리고 말아요. 우리 스스로가 세상 것을 붙잡고 부둥켜 안고 엉겨 붙어서.
여러분! 자식 하나 생각해 보세요. 그 자식을 마음으로 붙잡고 엉겨 붙어서 씨름하고 있는 동안에, 마음이 편한 적이 있어요? 행복한 적이 있어요? 감사가 나오는 적이 있습니까? 항상 이렇게 돼야 되는데. 이게 이루어져야 되는데. 맨 날 씨름하지요. 사업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세상에 모든 일이 다 내가 마음으로 붙잡아서 씨름해서 이렇게 돼야 돼. 힘을 꽉 주고 끙끙거리고 애쓰고 있는 동안에 뭐 이루어진 게 있어요? 그러나 이런 경험 다 있을 거예요. 잊어버렸는데. 내가 어쩔 수 없어서 포기했는데. 그래도 그만큼 일이 돼 가는 것, 구태여 주님의 십자가가 아니더라도 그 정도는 다 경험할 수 있는 게 아닙니까? 그런 고백 많이 들었어요. 사업하느라고 바빠서 자식 놈들 어떻게 크는지도 몰랐는데, 은퇴하고 보니 자식 놈들이 잘 커줬더라. 내가 키운 게 아닌데. 그런 고백하는 분들 많이 보았어요.
사울을 왕으로 세우시려는 하나님, 왜 사울만 왕으로 세우고 싶으시겠어요? 왕이라고 하는 자리는 아닐지라도, 이것에 준할 수 있을 만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하여 갖고 계신 하나님의 계획들이, 정말 그렇게 아름다운 수상가옥들로 준비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뭡니까? 우리가 힘을 주면 안 됩니다. 왜? 죄 때문에. 우리의 모든 생각과 모든 비전과 모든 꿈과 모든 계획과 소원들 죄에 물들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겁니다. 죄에 물든 것들 붙잡으면 가라앉는 거예요.
사울처럼 왕이 되는데 할 수 있는 게 뭐였지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왕의 자리로 굳혀 가기 위해, 암몬과의 전쟁을 할 때조차도, 사울이 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예요. 왕 될 때도 아무것도 안 하고 왕이 되지 않습니까? 이 세상 삶에 대해서 내가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사울이 왕 될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으로, 죽은 사람이니까, 죽은 사람처럼 계속 물에 떠있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물밑에서 계속 물밑작업을 해 나가시는 겁니다. 그리고 그 물위에는 정말로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수상가옥들이 천 억짜리 수상가옥들이 지어져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나라는 20년만 지나도 아파트, 건물, 빌딩들이 몰골이 흉측해져서 재개발을 해야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물위에 지은 집들이 짧은 것은 400년, 긴 것은 1,000년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우리 인생의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은 우리 모두가 집짓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각 분야에서 뭔가 끝장을 본 사람들을 뭐라고 합니까? 대가(大家)라고 합니다. 집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집짓기입니다. 그런데 대가가 있고 소가가 있고 초가가 있고, 형편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아예 집이 없는 사람들이 있고, 집을 짓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대가가 됩니까? 이 수상가옥이 1,000년 갔다고 합니다. 주님의 역사가, 주님의 삶이 어땠습니까? 십자가에서 죽는다는 그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정도로, 당신의 뜻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받아들였어요. 수상가옥이에요. 그 물밑에서 작업을 하신 게 아닙니까? 그러니 2,000년을 끄떡없이, 아니 이 지구가 끝날 때까지 주님의 십자가 사건은 계속 진행될 것입니다. 그게 수상가옥의 특징이에요. 1,000년 가는 수상가옥.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우리 힘으로 지어놓은 우리 인생의 집, 이게 몇 년짜리이겠습니까? 내 능력과 내 경험과 내가 갖고 있는 재산과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을 동원해서 내 자식을 길러서 수상가옥으로 만들었다면 그게 얼마짜리이겠습니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있어요. 뭐든지 간에. 내 지식으로 만든 집? 아이고, 그런 집, 말도 안 나오네. 그걸 지으려고 우리가 지금 살아갑니까? 아니지요. 아니에요.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매일 사소한 일에서도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물 위에 뜨는 겁니다. 힘을 쭉 빼고 물위에 뜨는 겁니다. 왜? 사소한 일에서도, 그 사소한 시간 하나하나가, 사소한 순간 사건 하나하나가, 다 천년갈 수 있는 수상가옥을 짓는 벽돌 한 장이 될 수 있으니까. 그 사소한 모든 사람과의 만남, 만남자체가 그렇게 대단하게 여겨지지 않는 만남일지라도, 자식과의 만남, 부모님과의 만남, 부부의 만남, 직장에서의 만남 모든 만남의 시간동안에 내가 힘 빼고 쭉- 누워있으면 주님의 십자가 꼭 붙잡고 그냥 힘을 빼고, 세상일에 대해서 힘을 빼고 누워 있으면 하나님이 물 밑에서 작업을 하시는 대로 물 위에는 벽돌이 하나씩, 하나씩 쌓여 가는데 당장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아요. 매일매일 날마다 죽는다는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매 순간순간마다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 누적되다 보면, 뒤를 휙 돌아보았는데 갑자기 내 생애의 집이 천 년짜리 아름다운 수상가옥으로 지어져 가고 있더라는 겁니다. 당장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여도 여러분! 이 말 믿으세요?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울? 여러분이 사울보다 훨씬 잘났습니다. 사울이 배운 게 무엇이며 컴퓨터를 압니까? 자동차를 운전할 줄 압니까? 사울이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었겠습니까? 우리가 할 줄 아는 것 중에.
이 사람은 아무것도 몰라요. 알 수가 없지요. 그러나 그 사람을 왕으로 세우십니다. 여러분! 못나서 잘나서 이게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물위에 뜨시면. 하나님의 물밑작업을 통해 여러분의 인생은. 베네치아의 천 억짜리, 천년을 가는 그러한 수상가옥으로 지어져 갈 것입니다.
힘을 주는 만큼, 붙잡는 만큼 하나님의 물밑작업은 중단될 것이에요.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주어지는 인생의 모든 순간에 힘을 빼고 물위에 떠서 물밑에서 하나님이 작업하시고 그 떠있는 나의 생애 위에 아름다운 베네치아의 수상가옥들이 지어져 갈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시46:10)
주님의 십자가에서 그냥 죽어 있으면 하나님의 물밑작업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수상가옥이 세워짐을 감사합니다.
한달전쯤 사랑하는 사람이 하늘로 이사갔습니다. 이 땅에 있는 것 아무것도 따라갈 수도 가져갈 수도 없고...
오직 그리스도만 가지고 가셨습니다. 그냥 장례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환송예배가 되었답니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