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일(10/23 금)
06:30 호텔조식 - 07:30출발 - (2시간) - 화산입구 도착 - 셔틀버스 - 索道 20여분 타고 화산서봉 도착 - 남봉(2154.9m) - 서봉 - 하산 15:30 점심 - 18:30 전신마사지 - 20:15 사천요리로 저녁식사 - 21시경 호텔 도착 |
둘째 날 ① - 호텔 창문 너머로 얻은 현대중국교육의 스승
우리가 숙박하는 世紀金源大酒店은 장안성 성문 밖 동남쪽에 위치한 곳이었다. 부지런하고 소탈한 榴園님과 한 방을 쓰게 되어 여러모로 도움을 받았다. 오늘은 華山을 가는 날이라 일찍 일어나 씻고 차 한 잔을 마시며 창문너머로 들어오는 서안 시내를 감상했다. 우리 방은 21층이라 시야가 넓게 잡혔지만 지난밤의 비 때문인지 짙게 낀 안개로 인해 멀리까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호텔 길 건너편으로 行知幼儿园(행지유아원)이라는 간판이 들어온다. 건물 정면에 붙인 간판 아래로 “千教万教教人求真(천 번 만 번 가르치되 사람들이 참을 구하도록 가르친다)”이란 문구와 “千学万学学做真人(천 번 만 번 배우되 참사람이 되도록 배운다)”이란 문구가 나란히 쓰여 있다.
‘行知’, ‘실천을 통해 배운다?’라고 생각하며 자료를 찾아보니, 行知는 중국의 교육가인 陶行知(1891~1946)를 가리킨단다. 行知幼儿园이란 우리나라 유치원이나 학교 가운데 ‘프뢰벨’ ‘삐아제’ ‘듀이’ ‘간디’라는 등의 이름을 붙이는 것과 비슷하다.
처음에는 陶行知가 이름인줄은 생각지도 못하고, 姓이 陶冶한다는 陶와도 통해 지레 짐작으로 ‘배운 것을 갈고 닦고 실천하며 알아간다(?).’고 멋대로 해석했으니, 어설프게 아는 게 문제다. 공자가 말씀하신 ‘博學之’의 뜻이 새삼 새겨졌다. 다행히도 ‘審問之’하는 게 나의 장점인지라 아무래도 ‘陶行知’가 미심쩍어 자료를 좀 깊숙이 뒤졌다.
陶行知는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죤 듀이에게 교육학을 배우고 귀국하여 ‘생활교육’이론을 폈다. 蔣介石 밑에서 활동하기도 했으나 그의 ‘讀書救國’ 운동에 반대하고, 항일민족통일전선운동에 참가하여 ‘교육은 어린이와 대중의 생활해방을 위해 민족해방에 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陶行知 교육이론이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의 교육이론으로 그대로 계승되어 유아원과 중학교의 이름에 많이 쓰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 인민들의 스승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國立臺灣師範大學 詹棟樑 敎授가 쓴 『敎育倫理學導論』을 보면, 陶行知가 제시한 중국 본토의 교육방침을 소개하고 있는데. “교육은 국가의 萬年大計”라고 시작되는 ‘敎育人員信條’(총12조)가 그것이다. 이에 따른 교사의 직무는 ‘千敎萬敎敎人求眞’이고 학생의 직무는 ‘千學萬學學做眞人’이라고 했다.
흥미로운 것은 교육신조 제8조에 “교사는 반드시 배우되 싫어함이 없어야 하고, 자질은 능히 사람을 가르침에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敎師必須學而不厭, 才能誨人不倦).”며 공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교사의 자세를 담았다는 점이다. 호텔방 창 너머로 생각지도 못했던 중국 교육의 일면을 덤으로 얻었다.
둘째 날 ② 華山 가는 길
오늘은 華山을 올라가는 날이라 등산복을 입고 나섰다. 서안은 우리와 1시간 차이가 나기 때문에 6시 반의 호텔 朝食이라고는 하지만 평소 집에서 식사하는 시간과 다를 바 없었다. 다만 직접 식사 준비를 하지 않고 차려진 음식만 골라먹으니 시간적 여유로움을 많이 느낀다.
느긋하게 채비를 갖춰 버스에 올랐다.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 오히려 더 부지런히 움직이신다. 송 선생님과 전 선생님은 오랜 벗으로 자주 산행을 다니다보니 일흔 남짓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가볍게 움직이신다. 특히 송 선생님은 한국의 100대 명산 가운데 앞으로 두 곳만 더 가면 완주하신단다.
우리의 버스는 출근길의 차량과 섞여 어제보다 더욱 서행한다. 시내를 빠져 나왔지만 화산으로 가는 길은 짙은 안개에 쌓여 주변 풍광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화산 정상을 제대로 구경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워하니, 사장님 왈, ‘이런 날씨일수록 정상은 해가 반짝반짝 난답니다.’고 답한다. 비 오거나 흐린 날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로 올라갔을 때의 광경인가? 화산이 해발 고도 2천 미터 이상이니 기대해 볼 법하다.
사방은 안개 속에 묻힌 가운데 안내인은 자신이 서안에 오기 전까지 맡았던 신장위구르 지역 얘기만 한다. 華山가는 길의 주변이 보이지 않기에 이곳 얘기를 해주면 좋으련만 안내인이 이곳에 대해 안개 속과 같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열심히 얘기하는데 마이크를 달라 하기도 그렇고, 그나마 보이는 도로 안내표지판을 보며 혼자 이곳저곳을 그려볼 수밖에 없다. 우리 일행들 모두 넉넉히 공부하신 분들이라 ‘잘 그려보며 가시겠지.’라며 위안을 삼았다.
안개 속을 대략 두 시간 달려 화산 아래 공원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셔틀버스로 갈아타고 구불구불 산길을 40여분 달려 화산 입구에 도착했다. 산 아래 쪽인지라 안개는 더욱 짙어 20여 미터 앞도 잘 보이지 않는다. 제대로 보이는 것이 없다보니 조금이라도 보이는 곳마다 눈길을 줄 수밖에 없다. 늘어선 버스의 출입문 옆에 좀 낯선 글자가 눈에 띄었다.
核载39人! ‘이~잉? 이게 무슨 소리야? 適正搭乘人員 39명이라는 뜻일 텐데, 달랑 이 글자만 놔두면 핵 배낭을 맨 사람 39명을 싣는다고도 할 수 있을 터인데…거리를 달리는 차마다 核載라고 쓴 것을 敵對國이 보면 어떨까?’하고 생각하면서 은근히 장난기가 발동했다.
“일본은 미국이 떨어뜨린 히로시마 원폭을 잊은 것일까요? 최근 들어 일본과 미국이 군사 동맹관계를 맺는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하며 우리 일행에게 물었다. 거창한 물음인 줄 알고 다들 우물우물한다. 버스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으니, 화산을 올라갔다 내려오는 동안 생각해보라고 했다. 나중에 내려 왔을 때도 답을 못하여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읽어보라 했더니 그제야 그 뜻을 알고 웃었다. 洛陽지역에 갔을 때 탄 버스는 ‘乘載’라고 쓰고 있었는데 지역마다 표현방식이 다른 듯하다.
안내인이 매표하는 동안 우리 일행은 케이블카(缆车, 纜車)를 타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사진을 찍으려 애썼으나 사방으로 안개뿐이다. 화산입구 牌坊에 ‘天威咫尺’이라고는 했으나 그야말로 五里霧中이다.
화산의 최고봉인 南峰이 2154.9미터라고 했으니, 매우 걸맞는 말이다. 五里霧中 속에 사진 찍는 걸 포기하고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西峰 索道站(삭도참)까지 올라가는데 대략 20분이 걸리는 노선이다. 이곳의 케이블카는 작년에 프랑스 기술로 개통된 곳이란다.
가는 내내 짙은 안개 속이다. 함께 탄 스님은 高所恐怖症이 있다며 내 옆에 바짝 붙어 앉으셨다. 짙은 안개로 인해 우리가 어느 높이쯤에서 가고 있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어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행이다 싶었다.
그러다 잠깐 안개가 걷히자 스님이 비명을 질렀으나 이도 잠깐, 다시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후 경이로운 자연의 조화에 우리는 그저 경탄을 금치 못했다.
(* 동영상의 설명 가운데 남봉과 서봉이 바뀌었습니다. 처음 화면에 나타나는 곳이 남봉쪽으로 올라가면서 담은 서봉의 모습고, 나머지 화면은 남봉 위와 남봉쪽으로 올라가면서 발 아래로 보이는 화산의 봉우리들입니다.)
첫댓글 안개에 휩쌓인 화산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커져 직접 보고 오신 분들 만큼
매우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화산. 참 멋지지유. 서봉 쪽 케이블카는 예전부터 있었던 것이 남봉 쪽에 새로운 케이블카가 생겼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8월에 갔었는데 날씨가 아주 좋아서 사방을 넒게 잘 봤던 기억이 납니다.
동행하지못한 아쉬움을 동영상으로 대신합니다...
참 많이 아쉽습니다....여행기 또 기대합니다~~~
운해에 빠진 봉우리가 보이다 말다.....
운집한 군중에 영상 찍기가 매우 어려웠을텐데....
덕분에 자연의 경이를 편안히 볼 수 있어 감사할뿐입니다.
쉽지 않은 곳에 이르렀는데 날씨가 좋았더라면....
중국의 삭도에 매료 되었읍니다. 자연을 거스리지 않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