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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예수님이 제물로서 소나 양과 다른 점>의 줄거리: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당신 자신의 몸을 속죄를 위한 번제물(祭物)로서 드리셨습니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그 옛날 구약시대 때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없게 하지 못했던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죄사함을 목적으로 정해주신 제사에도 불구하고 없어지지 않았던 그 죄란 대체 무엇이며, 이 죄와 연관하여 예수님의 죽음은 어떤 점에서 당시 제물로 드려졌던 소나 양의 죽음과는 다르다는 것일까요?
예수님이 제물로서 소나 양과 다른 점
(히10:11~18)
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15.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16.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17.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18.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예수님이 제물로서 소나 양과 다른 점>이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예수님이 제사에서 드리는 제물로서 소나 양과 다른 점’
이거 뭐 말이라고 물어보는 거냐 하는 그런 느낌이 들지요, 여러분?
그리고 제목이 다분히 좀 불경스러운 느낌까지 들어요.
예수님이 소나 양과 다른 점.
근데 꼭 이 ‘제물로서’라는 전제가 들어가야 되요, 이 단서가 없으면 말이 안 되는 얘기죠.
‘예수님과 소나 양이 제물로서 다른 점’
이거 뭐 언뜻 생각해도 답이 확연한 질문 아닙니까?
소나 양은 짐승이고 예수님은 사람이셨습니다.
근데 그냥 보통사람입니까? 하나님이신 사람이셨어요.
그러니까 그 존재의 가치로 볼 때, 그 차이라고 하는 것은 뭐 묻고 자시고 할 문제가 전혀 아니지요.
감히 어디다대고 예수님과 비교를 해서 차이점을 얘기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가에서 죽으신 사건은 번제사건의 완성입니다.
그래서 번제물로 사용되었던 소나 양과 공통점이 있을 수밖에 없게 돼버린 거고, 이 예수님과 소와 양을 제물로서 비교해 나가는 것은 제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히브리서 저자가 성령의 감동을 받고 지금 해나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제물로서, 소나 양과 어떻게 다른가를 분명히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존재로서 다른 것은 우리가 다 알아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근데 제물로서 다른 점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우리의 신앙에 도약이 일어납니다.
이걸 모르면, 신앙이 이걸 알 때와 비교해서 한없이 쳐지게 돼있습니다.
그래서 그걸 꼭 알아야 되겠다는 거예요.
자! 제물로서 라는 공통점이 있지 않습니까? 제물로서 라는 공통점이 뭡니까?
우선 소나 양은 죄가 없어요.
소나 양에게 죄를 물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격이 아니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죄를 물을 수 없습니다.
근데 예수님은 인격자이시지만 죄가 없으십니다.
그래서 공통점이 소나 양도 죄가 없고, 예수님도 죄가 없으십니다.
이게 왜 필요합니까?
삼투압 현상에서처럼 우리 죄가 그쪽으로 옮겨져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번제로 드릴 소와 양을 끌고 오면 제사장이, 그 죄를 진 사람으로 하여금 먼저 안수하게 하지 않습니까? 안수하는 동안에 자기의 죄를 고백하는 거예요.
그럼 우리 이렇게 물어볼 수 있어요, ‘에이, 그런 거 어디 있어요? 소나 양에다가 내가 손대고 내 죄를 얘기한다고 내 죄가 그쪽으로 옮겨진다는 그런 이상한 말이 있느냐?’
그게 왜 이상합니까?
여러분, 태양이 동쪽에서 뜨는 건 안 이상해요? 태양이 지고나면 달이 뜨는 건 안 이상합니까? 지구가 자전하는 건 안 이상해요? 태양이 왜 동쪽에서 뜨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이 태양을 동쪽에서 뜨라 하셨으니까, 북쪽에서 뜰 수도 있고 서쪽에서 뜰 수도 있고 남쪽에서 뜰 수도 있어요, 근데 동쪽에서 뜨라 하신 겁니다.
그렇게 사람이 소나 양을 가져와서 자기 죄를 고백하면서 안수하면 죄가 옮겨진다는 거, 태양이 동쪽에서 뜨라고 지정하신 그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신 거예요.
왜 말이 안 된다는 겁니까? 그럼 뭐가 말이 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투표했기 때문에 서울시장에 박 원순 씨가 재선이 됐다, 그러니까 당연하다.
이게 더 말이 안 되는 건 줄 알긴 아십니까?
이렇게 해서 하여간 하나님이 정하셨기 때문에, 죄를 흡수하려니까 죄가 없어야 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고, 인류 속에 있는 나의 죄를 담당하시려면, 죄가 없으셔야 되는 겁니다, 공통점이 있는 거예요.
자! 문제는 그런데, 태양이 동쪽에서 지정하시면 태양이 동쪽에서 뜰 수밖에 없고, 그에 마땅한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그런 하나님께서, 소와 양에게 안수해서 죄를 고백하면 죄를 그쪽에 다 옮겨지게 되고, 스펀지처럼 내 죄를 빨아먹게 돼가지고 죄가 용서함 받는다고 정하셨는데도, 왜 히브리서 저자는 오늘, 제사장들이 섬기고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지만 이 제사가 죄를 없애지 못한다고 말한 겁니까?
죄를 어떨 때는 없애고 어떨 때는 못 없애고 하는 게 아니라, 언제나 못 없앤다는 거예요.
그럼 뭐에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죄 사함을 위해서 정하신 법인데 죄를 못 없앤다니.
이 소나 양과 같은 번제물들을 통해서 사해지는 죄는, 율법을 어기는 것과 같은 행위로 지은 죄들이 그 죄 값에 대해서 용서를 받습니다.
근데 문제는, 그 행위의 죄들이 행위로 짓는 범죄들이 이유 없이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뿌리가 있다는 겁니다, 그 뿌리를 제거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럼 뿌리가 뭡니까? 제1 계명을 범한 거예요.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나 외에 다른 신을 섬지지 말라 그러니까, 우리는 불상 앞에서 절하지 않으면 되는 건줄 알고 있지요? 무당 불러다 굿하지 않으면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까?
그거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신 아니십니까?
근데 하나님이 마음으로 들어가게끔 인간을 만드신 거예요.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만 들어와야 되는데 그 하나님이 신입니다.
그런데 마음 안에 내가 내 가족을 끌어들이잖아요? 그러면 가족이 신격화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 마음 안은 신이신 하나님만 들어와야 될 자리인데, 신의 자리에 내 가족이 들어오니까 가족을 신격화하는 것이고, 내 마음 안으로 돈이 끌어들여와 지면 돈을 신격화하는 겁니다.
내 애인이 내 마음 안에 깊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면 애인을 신격화하는 거예요.
애국지사들 독립투사들처럼 나라를 사랑해서 나라가 마음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면 나라가 신격화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은 신이신 하나님만 들어오는 자리인데, 그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걸 끌어들였으니까 신격화하는 것이고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지요.
이렇게 십계명의 제1계명을 어기기 때문에, 나머지 아홉 계명이 다 어겨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율법과 윤리와 도덕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원치 않으시는,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그 뿌리가 뭐냐 하면, 우리 마음에 다른 신을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의 자리! 하나님만의 자리인 내 마음에 다른 것들을 끌어들여요, 왜 끌어들여요? 좋으니까.
왜 좋아해요? 그것이 제대로 되면 행복할 거라고 믿으니까, 그것이 나에게 기쁨과 만족을 줄 수 있을 거라고 믿으니까.
신의 개념이 뭡니까?
신의 개념이 간단해요, 나에게 기쁨과 행복을 줄 수 있을 거라고 믿어지는 게 신입니다.
그걸 좋아하는 것이고, 그걸 마음으로 끌어들이는 것인데, 마음에 돈을 신격화해가지고 집어넣은 상태에서 살다보니까 이 범죄 저 범죄 다 일어나요.
돈과 관계없는 죄도, 예를 들어서 부모를 거역하는 것도, 간음하는 것도, 살인하는 것도, 돈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어도, 다~ 돈이라는 것을 마음에 끄집어 들여서 신격화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겁니다.
가족을 끌어들여도 마찬가지고 나라를 끌어들여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이렇게 돼서, 다른 신이 마음속에 있는 가운데 범죄가 저질러져서, 양을 끌고 가고 소를 끌고 가가지고 안수해서 죄를 사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지만, 그 죄라는 것이 내 마음속에 다른 신을 모시고 있는 상태를 바꾸어주는 게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이게 문제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백 번 천 번 번제를 드리고 속죄제를 드려도, 하나님께서 당장 벼락을 쳐서 죽이시지는 않지만, 당장 심판하시지는 않지만, 왜냐하면 번제를 드리니까, 그렇지마는 이 마음속에 다른 신을 섬기고 있는 죄의 뿌리가 바뀌어 지지 않고 있으니 이거 어떡하면 좋냐 이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오셔서 이걸 해결하시는 거예요.
다른 신이 빠져나가게 하는 겁니다.
다른 신을 섬기지 않게끔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해 주시는 겁니다.
어떻게 그러십니까?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시면서 그 모형으로서의 번제제사의 의미를 완성시키십니다.
그러면 소나 양이 번제단에 올라가서 불타서 죽는 것과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어떤 차이가 날까요? 제물로서의 차이가 어떤 차이가 날까요?
어떤 차이가 나기에 마음속에 다른 신을 섬기고 있는 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얘기입니까?
소와 양과 다르게 인간으로 오신 분이세요.
그럼 인간으로 오셨다고 하는 것이 가장 두드러지게 다른 차이점이 뭡니까?
관계를 맺으시는 분이라는 얘기입니다.
오늘 히브리서에서도 계속 얘기가 반복되고 있지만,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의 이웃으로 사셨습니다.
인간으로 오셨기 때문에, 관계 속에 오신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요셉, 아버지와 어머니 부모님과의 관계를 맺으십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셨지만 부모님과의 관계가 생깁니다.
그리고 형제들이 또 관계를 맺게 됩니다.
이웃이 관계를 맺게 되고, 목수 일을 하셨으니까 고객들도 관계를 맺게 됐겠지요.
그리고 제자들과의 관계를 맺습니다.
그리고 유대민족으로서 태어나셨으니까, 유대민족이라고 하는 민족에 대한 관계가 있습니다.
나라에 관계가 있고, 그 나라와 조국과 민족을 식민화하고 있는 원수의 나라 로마에 대한 관계가 있습니다.
더 넓게는, 이 세상에 오셔가지고 이 세상 자체에 대한 관계가 있는 거예요.
근데 주님이 죽으셨다는 건 뭘 뜻하는 겁니까?
부모관계, 형제관계, 이웃관계, 목수로 계셨을 때 고객관계, 제자들 관계, 민족관계, 나라관계, 이 세상에 대한 관계가 십자가에서 주님이 죽으실 때, 다 끊어져 버렸다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끊어지신 상태가 죽음인데, 부활하셔가지고 오늘 본문에 뭐라 그래요?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다음에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얘기해요, 부활하셔서 승천하신다.
그러니까 무슨 얘기에요?
이 세상에서 맺었던 모~든 관계가 다 절단 나버리고, 다 끝나버리고, 하늘에 계신 세상에 있는 존재들과는 관계를 다 끊으시더니 부활하셔 갖고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가서 하나님과 관계를 덜컥 맺으셨다는 얘기입니다.
여러분 그림이 그려집니까?
이 세상에서 모든 관계가 다 죽어버린 거예요.
그리고 하늘에 올라 가셔서 하나님 우편에 가셔서, 하늘에 계신 세상에 계시지 않고 하늘에 계신 그 아버지와 관계를 맺게 된 겁니다.
근데 이렇게 역사를 일으키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관계에 변이를 일으키신, 관계에 대 격동을 일으키신 이 예수님이, 나의 죽음을 대신 죽은 거라고 믿게 되면서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거 우리가 연합하게 되면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맺고 있는 모든 관계가 다 끊어지는 거예요.
부부의 관계, 부모자식의 관계, 형제관계, 그리고 직장, 나라, 민족 이 세상 자체에 대한 관계가 딱 끊어져 버립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 따라 부활합니다, 승천하신 주님 따라 승천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만 내 마음이 관계를 맺게 되면서, 제1 계명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이제 내 마음 안에 하나님만을 모셔 들이는 거예요.
그리고 그 하나님만을 모셔 들인다는 게 뭡니까?
하늘에 계신 하나님만이 아직도 이 땅에 살고 있는 나에게 행복과 기쁨과 온전한 만족을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는 걸 믿는 겁니다.
이게 드디어 1계명이 이루어진 것이고,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대원칙, 그리고 원칙이자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 중에 축복, 하나님을 사랑하는 게 축복이에요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게.
사랑이 뭐에요? 마음에 받아들여야 된다는 거 아닙니까?
애인을 사랑한다면 애인을 마음에 받아들인다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마음과 뜻과 힘을 사랑하라는 얘기는, ‘너의 마음속에 뜻 속에 힘 속에 나를 받아들이고 나를 가지라’는 얘기니까,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관계가 죽으심으로, 이게 소나 양과 다른 것은, 소나 양은 어미가 있고 새끼가 있지만 관계랄 게 없는 거예요 이들에게는, 인격이 없기 때문에.
그러나 주님은 관계를 맺으신 사람으로 오셔 가지고, 사람으로 이 세상에서 맺으신 모든 관계가 다 절단이 나버리신 겁니다, 십자가에서.
우리 관계가 끊어지는 거예요.
예수 믿는다는 게 뭡니까, 여러분.
십자가에서 이 세상에서 내가 육체가 있기 때문에 맺게 되는, 모~든 관계가 다 끊어져 버리고, 부활 승천하신 주님 따라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 아버지 한 분과만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자기 원수들이 발밑에 굴복할 때까지 기다리신다는 거예요.
이게 무슨 말일까요? 이게 주님께서 그렇게 이루신 역사를 내가 그대로 따라감을 통해서, 마귀가 굴복하는 일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원래 예수님에게는 마귀가 접근을 못했어요.
우리를 점령하고 있는데, 우리가 이제 예수님께서 이루신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의 사건을 내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내가 죽었다고 생각해 가지고 이 세상에 대해서 관계가 끊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마귀의 굴복이 일어나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마귀 때려잡기가 시작된다는 거예요.
무슨 얘깁니까? 마귀가 원하는 건 뭡니까?
‘이 세상에 얼마나 좋은 게 많냐’ 라는 이야기를 자꾸 귀에 들려주는 거예요.
좋은 게 많다는 것은, ‘네가 마음에 받아들이고, 마음에 받아들여서 열심히 노력해서 손에 쥐게 되면, 너를 행복하게 해주고 만족하게 해줄 것들이 얼마나 많냐, 결혼해 봐라 얼마나 행복하냐, 자식 낳아서 잘 길러봐라 얼마나 기쁘냐, 돈 많이 벌어봐라 얼마나 기쁘냐, 나라가 잘되면 우리 가정이 잘된다, 이래 갖고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마음에 받아들이게 해 가지고, 하나님을 마음에서 있을 자리가 없게 만들어 버린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하신 일은, 세상의 모든 관계를 끊으시고 하나님하고 만의 관계를 맺게 만드신 역사고, 마귀가 그 전에 이루었던 승리는 뭐였냐 하면, 하나님 한 분과의 관계만 끊어지면 된다 이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온갖 좋은 것들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 선악과를 따먹도록 유혹한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좋은 게 많은 거예요, 그것들을 전부 내 마음에 받아들이기 위해서, 평가를 하는데 선악과가 필요했던 겁니다.
요거 잘되면 내가 기쁠 것이다, 요거는 잘못되면 내가 슬플 것이다.
그것이 이제 주님의 십자가 역사, 부활과 승천의 역사를 통해서, 내가 그것을 그대로 따라서 주님과 연합해서 내가 죽는 죽음이라고 고백하게 될 때, 깨져 나가는 거예요.
모~든 세상의 관계가 다 끊어져 나가고, 관계의 무덤이 십자가입니다, 관계의 무덤이.
자! 그러면, 궁금한 게 있어요, 여러분.
우리는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과 관계를 끊어야 돼요.
세상 속에 살고 있는데, 세상이 아닌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만 관계를 맺어야 됩니다.
이건 마치, 반복해서 히브리서 2장 1절에 나오는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 이게 벌써 바다에 표류하는 걸 얘기하는 거 아니에요?
사도바울도 믿음이 파선됐다고 얘기하지 않습니까?
바다에 떠 있는데, 바닷물을 담으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한 family 안에 속해 있는데 마음에 family를 담으면 안 되는 겁니다, 관계가 끊어져야 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자식과 관계를 맺고 아내와 남편과 관계를 맺으면 마음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니까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뭐라고 얘기하느냐 하면, 거룩하게 된 자들을 제사로 영혼이 온전하게 하셨다 그래요.
거룩한 것은 관계가 끊어진 걸 말합니다, 세상에 대해서 관계가 끊어져서 마음에서 세상을 안 받아들이는 거예요.
거룩하게 되는데, 이 거룩함만 갖고는 못사는 겁니다.
이 세상에 아직도 살고 있는데, 가족 안에 살고 있는데.
여러분 주의하세요.
이단들이 자꾸 집을 떠나게 만들거나 집을 다 팔아서 자기네 무슨 뭐 안으로 들어오라고 그러잖아요?
하나님께서 나와 아내와 내 가정을 주시고 나라를 주신 것은, 그 관계를 집어 던지라고 주신 게 아닙니다.
그 관계 안에서 관계를 맺지 말고, 하나님과 관계하라는 거예요.
그 관계를 집어 던지는 것은 자살하는 것과 똑같아요, 나를 죽이는 것과 관계를 죽이는 것과 똑같아요.
그 관계는 하나님에 의해서 설정된 겁니다.
그럼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무슨 소리인지 들어보세요.
아주 어여쁜 아내가 있어요, 근데 그 아내를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고, 관계가 주 십자가에서 끊어져 버립니다.
아내를 버리고 이혼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러면 자살과 똑같은 죄에요 그거는.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부부관계를 그렇게 끊으면 안 돼요, 십자가로 끊어요, 십자가로.
그렇게 십자가로 끊고 나면 거룩해진 거예요.
이제 마음에 하나님이 들어오시는 겁니다.
왜냐하면, 아내가 들어와 있는 동안 하나님이 못 들어오고 계셨으니까.
그러면 이제 어떻게 됩니까?
온전하질 않은 거예요, 거룩해지긴 했는데 온전하질 않은 겁니다.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동안에 온전해져야 되는 거예요.
온전함은, 이 세상에서부터 저 하늘나라에까지도 계속 지속돼야 되는 건데, 이 온전함의 내용이 뭡니까?
내가 마음을 하나님께만 드리고 내 마음에 하나님만 들어와 계세요.
그럼 이제부터, 내가 십자가에서 아내에 대해서 관계를 끊었잖아요,
내 마음이 아내에 대해서 끊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들어오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아내를 관계하시고 아내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그 아내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남편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하고 싶으신 일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 마음에다가, 아내에 대해서 할 말과 취할 행동을 새겨 넣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아내를 사랑하시고 관계해 나가시는 중간자가 되는 겁니다.
정리해서 말하면, 십자가에서 주님 따라 이 세상에 대해서 관계가 죽은 사람들은, 나라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면, 내 마음속에 들어오신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다가, 하나님께서 나라를 위하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라를 위해서 하고 싶으신 일 중에, 나를 통해 하고 싶으신 일들이 있을 때, 내 마음속에 내가 해야 될 말과 행동을 새겨 넣어 주십니다,
우리는 자식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자식을 사랑하면 자식이 신이 돼버립니다, 마음에 끌어들이면.
근데 자식을 하나님이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나를 통해서 자식에게 하실 일이 있을 때, 내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과 자식에 대한 사랑을 위해 필요한 일들을 새겨 넣어 주십니다, 그렇게 행동하라고.
이게 온전하게 된 상태라는 거예요, 이게.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주님의 십자가사건이라는 게.
정말 사람이 돌아버리게 기가 막힌 거예요.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아요, 마음을 다하고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났는데, 다른 걸 사랑할 힘이 있습니까? 아무 힘도 없어요.
근데 분명히 요한복음에 이렇게 얘기하세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리고 사도바울은 또 반대 얘기를 합니다.
‘세상이 나에 대해서 십자가에서 죽고 내가 세상에 대해서 십자가에서 죽었다’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었는데,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어떻게 된다는 얘기입니까?
내가 세상에 대해서 죽어서 하나님만을 사랑할 때,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통해 나타난다는 겁니다.
이게 되지 않으면, 내가 하나님과 끊어진 상태에서 세상을 내가 사랑해 버리면, 내가 하나님 자리에 서는 거예요.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내 자식도 이 세상에 속한 거고, 내 아내와 자식도 세상에 속한 거고, 부모님도 세상에 속한 거고, 나라도 세상에 속한 거 아닙니까? 내 인생의 꿈과 비전도 세상에 속한 거예요.
그것을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해야 마땅하신 자격이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
우리에게 마땅한 사랑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에 안 계시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러면 세상을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당신의 법과 당신의 뜻과 당신이 이루시려는 일들을, 우리 마음속에 소원으로 두시고, 법으로 두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이루게 나가십니다.
이게 온전한 그리스도의 모습이라는 거예요.
제물로서의 예수님이 소와 양과 무엇이 다릅니까?
인간이시고 인격자이시라서, 관계를 맺으시는 것이 다릅니다.
주님이 죽으신다는 것은 관계가 죽으시는 겁니다.
주님이 사셔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것은, 유일한 관계 대상이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될 때에, 주님이 이 땅에 내려오셔서 공생애를 사셨지 않습니까?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행동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한 공생애가 우리에게도 이루어지는 것, 이래서 주님에 의해서 이루어진 십자가 번제의 역사가, 온전하게 우리에게서 죄를 도말하고, 우리로 하여금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가 주시는 겁니다.
십자가의 역사! 하아~ 눈물겹도록 고맙고 감사하고, 정말 신비한 역사 아닙니까?
이 십자가를 사도바울이 말하는 거예요.
‘날마다 기념하라, 먹을 때마다 마실 때마다 기념하고 죽을 때까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까지 이 죽음을 전하고, 이 죽음을 먹으면서 살아라!’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이 말씀을 지금 나누고 있는 거지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소나 양과 다른 제물로서의 예수님의 차이점을 분명히 깨달아서, 이제 이 세상에 대해 모~든 나의 관계가 다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 따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하고만 관계가 있게 하시며, 내 마음에 들어오신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새겨주시는 대로, 내 이웃들을 향하여 나갈 수 있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