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9천보. 9km. 6시간.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씨.
아직 한낮 가을 햇살은 따갑다.
최고기온 23도.
땡볕은 만하(晩夏).
그늘은 초추(初秋).
가창면 사무소(100) - 사방산 - 달비고개(500) -
청룡산 갈림길(700) - 청소년 수련관(100).
참석자 : 두리봉님. 예쁜마음님. 은풀잎님.
나일락님. 대덕화님. 봄봄님. 마일도님. 한소
좋은 길 열어주신 두리봉님께 감사드린다.
행복한 길 동행한 대구방 길벗님들께 고마운 마음 전한다.
사방산 등산로 입구. 앞에 보이는 산이 주암산.
초반에 경사가 심하다.
바로 편한 길이 나온다.
사방산에 여러 번 왔지만
오늘처럼 신선한 느낌은 처음이다.
쏟아지는 가을 햇빛 속에서
풍요롭고 장엄한 음악을 듣는 기분이다.
멀리 단풍 구경 간다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고들빼기.
가을철 산길을 걷다 보면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높이 30~70cm 정도에 지름 15㎜ 정도의 꽃이 달려있다.
고들빼기와 이고들빼기는 같은 속이다.
꽃 모양도 둘이 비슷하다.
왜 이고들빼기라는 이름을 가졌을까.
‘이’는 ‘이것’(this)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고들빼기에서 ‘이’는 이(tooth)다.
사진처럼 꽃잎의 끝이 앞니처럼 생겼다고 붙인 이름이다.
고들빼기.
고들빼기는 한자어로 아주 쓴 뿌리나물이라는
의미를 지닌 고채(苦菜) 또는 고돌채(苦葖菜)라고 불리었는데
이 한자어가 구전되면서 고들쌕이 고들박이 등을 거쳐
고들빼기가 되었다고 한다.
양념 잘 배인 고들빼기김치는
세상 어떤 김치보다 맛있다.
꽃잎 끝이 앞니처럼 생긴 것은 이고들빼기와 같으나
그냥 고들빼기는 잎이 줄기를 감싸고 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 구절을 곱씹어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일락님은 경주로 이사 가시고
2년 만에 도보에 처음 나오셨다.
무식한 놈/안도현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
안도현 시인은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할 줄 모르는 사람을 ‘무식한 놈’이라 부르고
함께 들길을 걸어온 걸 후회한다며,
절교하겠다고 외쳤다.
우리는 가을 들판에 핀 국화 계통의 꽃을
들국화라고 쉽게 부른다.
그러나 사실 식물도감 꽃 중에 들국화라는 건 없다.
구절초, 쑥부쟁이, 벌개미취는
같은 국화과 식물로 모양이 비슷해 헷갈리기 쉽다.
그러다 보니 이들을 뭉뚱그려 들국화라고 불렀다.
무엇인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부른다는 건
그 대상이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는 걸 뜻한다.
내가 그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
어쩌면 그 대상은
나에게 존재하지 않은 거와 마찬가지다.
혼종이 생기다 보니 꽃 색깔로는 구별하기 어렵다.
꽃대와 이파리 모양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벌개미취·쑥부쟁이·구절초는 비슷하게 생겨서
초보자들이 바로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아래 사진으로 한번 연습해 보시라.
이들 세 가지 들국화만 확실히 구분해도
올 가을 산과 들을 다닐 때
느낌이 전과 달라진다.
나는 여전히 어렵다. 여전히 무식하다.
나는 늘 부끄럽다.
쑥부쟁이.
옛날에 동생들의 끼니를 마련하기 위해
쑥을 캐러 간 불쟁이(대장장이)의 딸이
죽은 자리에서 이 꽃이 피어났다는 전설로
'쑥부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쑥부쟁이 잎사귀
벌개미취.
벌개미취의 학명은 'Aster koraiensis'인데,
‘Aster’는 그리스어 ‘별’에서 유래했다.
꽃 모양이 별 모양을 닮았다고 이런 속명이 붙었다.
'koraiensis'는 '한국'이라는 뜻이다.
벌개미취는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것이다.
영어 이름도 'Korean Daisy'이다.
햇빛이 잘 드는 '벌'판에서 자란다고 '벌'이란 이름을 얻었고,
'취'는 어린 순을 나물로 먹을 수 있다는 의미다.
'개미'는 꽃대에 작고 하얀 솜털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그 모습이 개미처럼 보여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산보다 서울 등 도심 화단이나 도로가에서 더 흔히 볼 수 있다.
우리나라 특산종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벌개미취 세밀화
개망초 꽃과 구절초 꽃이 비슷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꽃잎과 이파리에 차이가 많다.
개망초 꽃은 꽃잎이 가늘게 갈라져 있고, 숫자도 더 많다.
구절초 꽃잎은 개망초 꽃잎보다 넓게 되어 있다.
사방산 꼭대기(270).
이곳만 나무가 없고 휑하다.
싸리.
야외에서 젓가락이 없을 때 대용으로 쓰인다.
흔해서 구하기도 쉽고 독성이 없어 안전하다.
채반, 소쿠리, 광주리, 울타리, 사립문,
빗자루, 지게, 회초리, 땔감, 화살대 등으로 쓰였다.
이곳에서 귤껍질은 귤껍질에 남아있는 왁스 코팅 때문에
음식물 쓰레기가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귤껍질이 음식물 쓰레기에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아무도 내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음식물 쓰레기를 구분할 수 있는 쉬운 기준은
'동물 사료로 쓰일 수 있나'를 따져보면 된다.
동물이 먹을 수 있을 경우 음식물쓰레기,
아닐 경우 일반쓰레기로 분류된다.
대파·미나리 등의 뿌리,
양파·마늘·옥수수 등의 껍질,
고추씨·고춧대·옥수숫대 등 질긴 채소류나
호두·밤·땅콩 등 딱딱한 껍데기와
복숭아·살구·감 등의 단단한 씨는
일반쓰레기로 분류된다.
파인애플 껍질은 일반쓰레기,
바나나 껍질은 음식물쓰레기,
족발 뼈나 갈비뼈 등은 일반쓰레기이다.
공공기관에서 최근에 제작한 유튜브.
https://youtu.be/WDXTeNs4Skk?si=A1mLvUGlfPyR4V5j
https://youtu.be/qMddcsMeJss?si=dYocttd3grgcit3o
최정산 능선.(900)
팔공산 비슬산 빼면 대구에서 제일 높다.
그런데 고위평탄면이 발달하여
정상부가 펀펀하다.
청산벌 가을 억새밭.
대새목장 자리의 카페가 유명하다.
사방산 지나서 산성산 사면을 따라
달비고개로 올라가고 있다.
가을은 차분하지만 썰렁한 계절은 아니다.
철학적이며 예술적이다.
감성이 깨어나고 민감해진다.
들판의 억새가 바람에 스치는 소리,
홍조를 띠고 매달린 나뭇잎은
시를 읊고 싶어지게 한다.
오래된 시집을 뒤적거리고
커피 향에 예민해지는 것은
감성이 춤을 추는
가을이기 때문이다.
가창호 내려다보며 잠시 쉬고 있다.
길을 걷는 동안 최정산이 옆에서 계속 따라왔다.
최정산 정상부의 넓고 펀펀하고 긴 능선길이 생각났다.
가창호가 보인다.
가을을 가을답게 보내지 않으면
허무가 깊어지고 우울의 덫에 빠질 수 있다.
가을은 변화를 꿈꾸는 계절이다.
늘 그날이 그날이 아니다.
가을 산에 불이 붙듯 삶 전체가
곱게 물들어 가야 한다.
최정산.
달비고개 이정표.
가을에는 조금 외로워져도 괜찮다.
달비고개에서 청룡산 갈림길 가는 길.
이 길을 한번 걸어본 사람은 이 길을 결코 잊지 못한다.
그만큼 매력적인 길이다.
맑은 가을 날씨다.
빗자루에 파란 물감을 듬뿍 묻혀,
거대한 캔버스에 비질을 해 놓은 것 같은 하늘이다.
잡목 숲 사이로 투명한 가을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소슬한 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서늘하게 식혀준다.
안톤 쉬낙은
우리들의 이런 즐거움을 몰랐던 모양이다.
"정원 한편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독일의 음울한 가을만 보았던 안톤 쉬낙을
우리의 찬란한 가을산하에 초대하여
달비고개 청룡산을 함께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러면 그는 틀림없이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이라는
또 다른 수필로 우리들에게 답례했을 것이다.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찐다는 가을이다.
어느새 우리 곁에 와있다.
다가온 이 가을을 tv 부둥켜안고
집안에서만 보낼 수는 없다.
도보에 나서면
가을의 색과 시원한 공기, 맑고 높은 하늘.
자연이 주는 모든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다.
나들이 떠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시절에
청룡산 기슭에서 가을의 정취 속 힐링의 시간을 보냈다.
청소년 수련관으로 빠지는 길목.
상인동
앞산 능선. 청룡산에서 하산하며 찍었다.
동서로 길게 뻗어있는 앞산 뒷모습이다.
청소년 수련관. 오후 3시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