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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원불교 강동교당 원문보기 글쓴이: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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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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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급 |
⑵서원
1. ‘우리 어리석은 중생’ : 모든 사람, 모든 생령을 총칭한 것
금강경의 중생,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중생을 지칭한 것
2. '이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아서': 체받는공부=표준삼는 공부
①법신불을 떠올려라! 관습 등으로 무사통과하지 말아라.
②제 3자(가치관,관념 등)가 간섭하지 않도록 하라!
3.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 -> 육근을 잘 간수하여 지키는 공부
4. 사리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 -> 시비이해를 잘 판단하는 공부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시비를 판단하자.
5. 심신을 원만하게 아는 공부 -> 정당한 곳에 정당하게 사용하는 공부
6. 지성= 끊이지 않는 것
7. 일원의 위력을 얻는 것 = 사사(邪私)가 끊어진 것
일원의 체성에 합하는 것 = 망념이 쉰 것
-> 망념이 쉬어서 일원의 체성에 합하고 사사가 끊어져 일원의 위력을 얻어서,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법신불의 위력으로 일하는 사람이 성현이고 불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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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절 일원상 서원문(一圓相誓願文)
일원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입정처(入定處)이요, 유무 초월의 생사문(生死門)인 바, 천지·부모·동포·법률의 본원이요, 제불·조사·범부·중생의 성품으로 능이성 유상(能以成有常)하고 능이성 무상(無常)하여 유상으로 보면 상주 불멸로 여여 자연(如如自然)하여 무량세계를 전개하였고, 무상으로 보면 우주의 성·주·괴·공(成住壞空)과 만물의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사생(四生)의 심신 작용을 따라 육도(六途)로 변화를 시켜 혹은 진급으로 혹은 강급으로 혹은 은생어해(恩生於害)로 혹은 해생어은(害生於恩)으로 이와 같이 무량 세계를 전개하였나니,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이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아서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를 하며, 또는 사리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를 하며, 또는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를 지성으로 하여 진급이 되고 은혜는 입을지언정, 강급이 되고 해독은 입지 아니하기로써 일원의 위력을 얻도록까지 서원하고 일원의 체성(體性)에 합하도록까지 서원함.
1. 일원상 서원문 형성 배경과 동기
대종사님께서 일원상 진리 신앙 수행를 집필하시고 서원문은 집필은 안하셨다.
산업부 김형섭님의 가정집에 법신불 봉안식을 하는데, 반야심경만 독경했다.
당시 시자였던 김형오선진님께서 대종사님께 “우리도 반야심경과 마찬가지로 의식에 사용할 경을 만들어서 우리의식에 우리경을 독경하면 어떻겠습니까?” 여쭈었다.
대종사님께서 인정을 하시고 일원상 서원문을 집필하셨다.
*일원상 서원문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 심익순교무님의 <이 밖에서 구하지 말게> 중에서)
- 교산 이성택교무님 말씀과 다름.
일제 치하, 익산 총부에서 상주하며 불법연구회를 감시하던 순사 황가봉씨가 어떻게든 대종사님의 흠을 잡아야 되니까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결국, 대종사님께 감복이 되어 나중에는 제자가 되어서 '이천(二天)' 이라는 법명까지 받았습니다. 한번은 어떤 집에서 생일을 한다기에 황이천씨가 따라갔답니다. 그런데 그 때는 초창기니까 불교처럼 독경 같은 것이 없어서 전부 입정만 하고 앉아있더랍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황이천씨가 답답해서 말을 했답니다.
"대종사님, 우리도 불교처럼 읽는 게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데 와서 기도할 때 읽을 수 있는 것 말입니다."
대종사님께서 "그래, 그럼 만들어야지." 하시고는 일원상서원문을 호롱불 밑에서 밤이 깊도록 만드셨다고 합니다.
이 경을 집필하실 때 몽땅 연필을 대에 끼워서까지 쓰시고 지우시고를 반복하셔서 손으로 친저하신 것을 알 때 소태산대종사님의 서원과 꿈, 방향 등이 대단한 것이다.
대단한 정력을 들여서 집필하신 것이다.
일원상서원문을 정성스럽게 외우면 자기도 모르게 진리의 위력에 감화를 받는다.
그 실례: 남원의 한 교도가 불법연구회에 나가서 일원상 서원문을 열심히 외웠다.
(*태백산맥의 저자 조정래씨 - “시간이 지나 잊혀진 역사, 아픈 상처가 다 아물어 딱지가 앉은 역사의 상처를 소설을 통해 다시 더 아프게 하는 것이다. 태백산맥을 통해 민족상잔의 슬플을 인식하게 한 것이다.” )
625전쟁 중 공비에게 끌려가서 총살당하게 되었다. 묶이고 눈 가리고 총살 당하기 직전에 소리 안나게 입술만 움직이면서 일원상 서원문을 외웠다. 그 것을 보고 대장이 총살을 멈추고 그 이유를 물어보자 “불법연구회를 신앙하는 신도인데, 마음을 안정시키는 경이 있어 그 경을 외우고 있다” 고 하자 풀어줬다.
일원상 서원문을 외워서 살아난 것이다.
경계를 당해서 서원문에 대한 위력을 느껴야 한다.
일원상 서원문을 대할 때 대종사님의 경륜, 정성, 원력이 뭉쳐있는 것을 항상 알아야 한다.
반야심경: 부처님이 반야경 계통을 21년간 설하셨는데, 그 결정판이 금강경이고 금강경을 더 축약한 것이 반야심경이다. 반야경의 결정판
일원상 서원문: 일원상진리장의 결정판, 일원상의 진리,신앙,수행을 서원문을 통해서 원력을 뭉쳐서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라는 의미
*대산3집 제3 수행편 127. 일원상의 진리
홍제교당 교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부처님이나 대종사님이나 성현들의 진리눈을 태양에다 비교하셨다. 그래서 성현이 탄생하시면 진리의 태양이 솟았다고 한다. 부처님들께서는 대원경지(大圓鏡智)를 얻으셨기 때문에 삼천대천 세계에 비추고 그 빛은 인류뿐 아니라 허공법계와 지하지옥까지 다 비칠 수가 있는 것이다.
수양을 많이 하면 저수지에 물을 많이 모으는 것과 같고, 연구를 많이 하면 발전(發電)을 하는 것과 같고, 취사를 많이 하면 전기를 켜는 것과 같다. 아무리 물이 많고 발전기가 있어 발전을 하더라도 불을 켜지 않으면 쓸모없는 것이며 셋 중에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니 삼학으로 전등을 밝혀야 한다. 또 삼학으로 일원상(一圓相)의 진리를 알아야 한다. 정전(正典)과 대종경 등 많은 법문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삼학팔조 사은사요이고 여기서 제일 진수가 일원상서원문이다.
일원상은 사은의 본원[四恩之本源]이요 여래의 불성[如來之佛性]으로 우리의 원불(圓佛)님이요 주불(主佛)이다. 이 자리를 무생법인(無生法印)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도 이 자리를 얻으셨고, 공자님, 노자님, 예수님께서도 이 자리를 얻으셨다. 또 우리 대종사님께서도 이 자리를 얻으시어 법계의 인증을 받으셨다. 그러니 일원상서원문과 교전은 삼세제불제성의 도본이다. 집을 짓는데도 도본을 내야 집을 지을 수 있듯이 부처를 만들려 해도 도본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일원상서원문은 삼세제불제성의 도본도 되고 천만경전의 근원이된다. 어느 경전도 원불님을 토대로 하지 않고는 나오지못한다. 이것이 무진장한 보배이다.
또 이자리는 삼세제불제성이 상주하시는 대적광전(大寂光殿)이며 일념미생전(一念未生前) 부모출생전(父母出生前) 천지미분전(天地未分前) 소식의 자리다. 또 불여만법위려자(不與萬法爲侶者)의 자리며 복과 혜가 나오는 근원이다.
만고에 없어지지 아니할 진리의 등불을 밝히기로 하면 복혜의 근원을 알아야 되고 그 자리를 알아야 법인을 받게 된다.} (63. 1. 8)
2. 내용
- 전반부: 일원상 진리의 내역 ~전개하였나니,
후반부: 서원을 비는 내용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 초기 명칭은 “일원상 내역급 서원문”
I. 일원상 진리의 내역
⑴ 일원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입정처(入定處)이요, 유무 초월의 생사문(生死門)인 바
: 전체의 내용이 담긴 것, 일원상 서원문의 대의
①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입정처(入定處) : 언어의 길이 끊어진 정에 든 자리 -> 대소멸문
말로는 일원상 진리를 다 표현할 수 없다.
언어와 문자의 한계를 극복하고 상징으로 표현했다.
*찼다면 다북 차고 (진경眞境) 109장
찼다면 다북차고 비었다면 텅비어서 두렷한 거울속에 파도없는 잔 물결이
고요히 움직이나니 진경인가 하노라
닦자니 본래맑고 기르자니 근본커서 조촐한 둥근옥을 아로새김 병통이라
아마도 수양심놓음이 참수양인가 하노라
소리로 못 전하고 동작으로 형용못할 참 극락 가는길을 누구에게 물었기에
남먼저 찾아온 이들 홀로 즐겨하더라.
~진경의 성가를 들으면 속상하다.
먼저 찾아온 사람이 못 전하고 혼자 즐겨하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가 하고 속상하다. 속상해야한다. 속상하지 않으면 공부 안하고 있는 거다.
언어도단의 입정처: 진공, 불생불멸 -> 대소멸문 : 모두를 다 흡수해서 소멸시키는 자리
모든 중생을 비롯한 모든 유정물들의 마음의 안식처, 편안한 자리
* 학생들이 졸업여행 후 감상담 “다시 서원관으로 가는구나!”
vs 사가에 가면 형제들이 다 법사인데도 저녁심고도 안모시고 고스톱(치매예방차원에서^^)을 치는데, 집이 오히려 불편하고 교당에 오면 편안하다.
-> 기질이 바꿔야 한다. 세상에 사는 것은 자기 마음이 타향살이하는 것이다.
자기가 사는 직장, 가정이 입정처가 되어 편안하고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
이 자리만 있으면 진리의 반쪽이다. 유무초월의 생사문까지 가야 한다.
② 유무 초월의 생사문(生死門): 유와 무를 초월했으되 생과 사를 갈라내는 문 -> 대생성문
생사는 쉽게 갈라냈을 수 있지만, 유와 무를 초월하고 갈라내는 것과 초월하지 않고 갈라내는 것은 질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유무자리를 초월하는 것은 유무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그 벗어난 상태에서 생사를 만들어 내야 한다.
유무도 변화한다. 즉 변화에 끌리지 않는 상태에서 변화를 만들어내는 문이 유무초월의 생사문이다.
사람들의 말하는 것을 보면 유무를 초월한 것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유무초월의 생사문: 묘유, 인과보응 -> 대생성문
온갖 형상을 만들어내고 우주만유부터 유정물의 생각들이 다 나타난다.
유무에 잡히지 말고 유무에 국집, 집착되지 말고 생사를 만들어 내자.
모든 변화를 만들어 낸다.
인간생활, 자연생활에 일어나는 일체의 모든 변화는 유무초월의 생사문에서 나온다.
언어도단의 입정처 -> 대소멸문
유무초월의 생사문 -> 대생성문
-> 일원상의 자리는 모든 것을 소멸시키면서 모든 것을 생성할 수 있는 자리이다.
두 자리가 진공묘유이고 두 자리를 함께 공부해야 일원을 공부하는 것이다.
* 선을 하는 것은 입정처에 합일하기 위함이다.
어느 선진님이 입정처자리를 보존하기 위해서 청소를 할 때도 천천히 조심스럽게 빗자루로 쓸다가 대종사님께 크게 혼나셨다고 한다. 대종사님은 활불의 세계를 지향하시는 것인데, 입정처자리에서 나타나는 유무초월의 생사문이 현실세계에서 확실히 구현되어야 한다.
두 자리는 서로 떠나래야 떠날 수 없다.
교리도에서 수행문을 “진공묘유”의 수행문이라 하였다. 진공, 언어도단의 입정처의 수행이 아니라, 진공묘유, 일원상 진리 전체를 닦아가는 수행문이다.
⑶ 천지·부모·동포·법률의 본원이요, -> 사은지본원(四恩之本源)
일원상 진리에서는 “우주 만유의 본원”이라 하셨다.
우주만유를 좀 더 가깝게 하기 위해서 천지·부모·동포·법률의 본원이라 하신 것이다.
*법이 건네지려고 해도 가까워야 한다.
이 생활이 재미있어지고, 질박아지려는 사람은 어른님들과 가까워지게 된다.
한번 교섭하고 두 번 교섭하는 것에 따라서 인정이 달라지는 것이 사람사는 모습이다.
대종사님도 가깝게 해주시려고 같은 내용인데도 사은을 표현해 주셨다.
진리를 쉽게, 친절하게 알려주시려고 노력하신 흔적이다.
-> 사은지본원(四恩之本源)
초창기에 일원상을 그려놓고 그 아래에 심불일원상, 사은지본원이라 적어 두었다.
⑷ 제불·조사·범부·중생의 성품으로 -> 여래지불성(如來之佛性)
일원상 진리에서는 “제불 제성의 심인이며, 일체 중생의 본성이며” 이라 하였는데, 합쳐서 성품자리라고 하였다. 심인은 맞지 않지만 성품은 맞는 것이다.
제불·조사·범부·중생의 분류는 성품을 깨달은 정도에 따른 유정물의 분류이다.
깊은 정도부터 제불, 조사, 범부, 중생이다. 자성을 깨쳐 나가는 정도에 따라 유정물을 분류한 것이다
-> 여래지불성(如來之佛性)
천지·부모·동포·법률의 본원이요, 제불·조사·범부·중생의 성품으로 : 사은지본원, 여래지불성
-> 일원상의 진리는 우주적 진리와 심성적 진리가 하나되는 자리이다. 두 가지가 따로 있거나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로 귀결되는 것이다.
마음자리, 안식처를 항상 사모하면서 활용하는 공부를 해나가야 한다.
*대산3집 제2편 교법 77.일원의 진리
말씀하시기를 『일원은 사은의 본원〔四恩之本源〕이요, 여래의 불성〔如來之佛性〕으로 크되 큼이 없으며, 작되 낱이 없고, 있고 있고 없고 없으며, 있으면 없고 없으면 있어서, 생멸이 없고, 인과가 적실하여, 제불제성(諸佛諸聖)이 법 받는지라, 만법(萬法)의 조종(祖宗)이 되나니라.』 (63. 9. 13.)
⑸ 능이성 유상(能以成有常)하고 능이성 무상(無常)하여 : 일원의 진리의 대능동성
일원의 진리의 대능동성-> 반대말은 피동 : 자력이 선 사람은 능동적이지만 자력이 없으면 피동적으로 끌려간다.
누구에 의해서 사는 사람은 머슴밖에 안 된다. 주인은 자기 일을 자기가 하기 때문에 스스로 한다.
능동적으로 사는 사람은 주인으로 사는 것이고 피동적으로 사는 사람은 머슴으로 사는 것이다.
능동적으로 해나가면 철들었다고 한다.
*종법사님께서 출가교화단에서 ‘하루일과중 잠자는 시간 8시간, 일하고 밥먹는 시간 8시간, 나머지 8시간인데 그 나머지 시간을 퇴임 후 30년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고 말씀하셨다. 강의하고 준비하고, 교당법회준비, 대산종사님 추모담준비 하는데 멋지게 보내고 있다. 붓글씨 쓸 시간도 없는데, 꼭 해야 할 일을 하면서 그 시간이 없는 것이다. 능동적으로 살고 있다. 이왕 살려면 능동성으로 살자. 끌려다니지 말자.
진리는 유상과 무상을 능동적으로 한다.
유상有常: 변화를 안하는 것 , 무상無常: 변화를 하는 것
안하고 싶은 딱 거둬들이고, 하고 싶으면 딱 내는 것을 자유자재로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유상: 변화를 안 하는 것 : 언어도단의 입정처
무상: 변화를 하는 것 : 유무초월의 생사문
진리는 스스로 능동적으로 하므로 우리도 체받아서 피동적인 사람이 되지 말고 자기 삶을 자기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공부를 이 대목에서 해야 한다.
⑹ 유상으로 보면 상주 불멸로 여여 자연(如如自然)하여 무량세계를 전개하였고,
① 변하지 않는 자리로 보면 여여자연 하다.
부처님을 여래라 하는 데, 여래(如來)는 ‘오는 것 같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오지 않는다. 반대말은 여거(如去), 가는 거 같다 그런데 가지 않는다.
대적공실에 “세존(世尊)이 도솔천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이미 왕궁가에 내리시며,”라는 말씀이 있는데 도솔천에 있는 마음이나 왕궁가에 있는 마음이 같다는 말이다.
*사감할 때 김해 사는 학생이 학기중에 김해에 가야겠다고 하기에 집에 자주 가면 안좋길래
“학림사를 떠나지 말고 김해를 가거라” 그런데도 가겠다고 한다.
“어찌 갈래?” “마음은 학림사에 두고 몸은 김해에 가겠다.”
“여기에 두는 마음은 무엇이고 김해에 가는 몸은 무엇이냐” 학생의 말문이 막혔다. 여여하지 않다.
학림사에 있는 마음이나 김해에 있는 마음이 그 마음이 그 마음일 때 갈 수 있다.
부처님은 도솔천에 있거나 왕궁가에 있거나 그 마음이 그 마음이니 안 떠난 것이다. 여여한 것이다.
*일직심(一直心) 관리
학교 이사장할 때 기대되는 전무출신 한명이 보직을 맡게 되었다. 보직을 해봐야 경험을 해서 학교운영자로 컸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냈다. 그 뒤에 차안에서 만났기에 이야기를 했다. “자네는 한가지 약점이 있네. 경계를 당하면 그것을 일직심으로 그경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무너져버려 사표를 냈다. 하나를 보면 다 안다.” “다음 기회에 오면 잘 해보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오지 않는다. 기회가 오면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한번 한다고 하면 하는 거다.
일직심으로 나가는 것이 여여자리이다.
*대산종사법어 적공편 15장
대산 종사 말씀하시기를 「선(禪)은 본래 일직심(一直心)의 생활을 말함이니 사사물물을 대할 때마다 한결같은 마음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선을 하는 것은 정신 작용과 육근 활동을 쉼 없이 하는 가운데 큰 정을 얻고 큰 지혜를 얻어 세상을 밝히는 것이라, 선을 하는 사람은 늘 밖으로 나가는 마음을 멈춰 고요한 생활을 하고, 어리석은 마음을 밝혀 지혜의 생활을 하며, 모나고 모자란 마음을 바루어 원만한 생활을 하느니라.」
② 무량세계를 전개
무량세계: 한없는 세계, 헤아릴 수 없는 세계 -> 무시무종(無始無終)의 무량세계
내가 죽는다고 이 세상이 없어지지 않는다.
세상은 그대로 있으면서 많은 사람이 왔다갔다 하면서 변화하는 것, 시작도 끝도 없는 한없는 세계가 전개되었다. 진리의 세계는 무량세계이고 우리의 영혼은 무량세계로 간다.
⑺ 무상으로 보면 우주의 성·주·괴·공(成住壞空)과 만물의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사생(四生)의 심신 작용을 따라 육도(六途)로 변화를 시켜
변하는 자리에서 볼 때, 유무초월의 생사문의 입장에서 볼 때
① 우(사방상하: 공간개념)+주(시간개념) -> 공간은 시간을 만나서 공간이 살아나고 시간은 공간을 만나서 시간이 살아난다.
영원한 공간, 영원한 시간 즉 무한 공간, 무한 시간을 서로 합쳐서 우주의 모든 변화를 다 일으킨다.
우주의 변하는 모습을 대종사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셨다.
->성주괴공 (成성:생성한다 住주:살아있다. 壞괴:무너진다 空공:없어진다.)
일원상의 진리 ‘은현자재’ ->> 은=공, 성·주·괴=현
(성장기: 성, 청년: 주, 지금의 나: 괴, 좀있으면 공으로 간다.)
우주의 변화, 성주괴공의 변화는 이세상 만물이 변하는 큰 틀의 변화이다.
유정물, 무정물 모두 성주괴공으로 변한다.
무정물의 예,
⒜ 유럽의 네덜란드는 가라앉고 있고, 우리나라 서해는 융기, 돋아나고 있다.
정산종사님께서 백수읍이 도청소재지가 들어선다고 하셨다.
서해는 항하의 물이 쏟아져 와서 황해라고 하는데, 황토물속의 흙입자가 들어와서 서해에 갯벌이 생기고, 생태의 보고가 되고 있다. 서해가 서서히 올라오고 있다. 성급에 들어왔다.
*대산법문4집 제2부 열반인 영전에 1.전무출신 亨山 金洪哲 宗師 - 九人精神 再次興起 중에서
대종사님과 선종법사님께서 {칠산바다가 앞으로 개척되어 중공과 통래(通來)할 것이다} 하시고 {앞으로 백수가 도청 소재지가 될 것이다} 하시고 교당을 마련하라 하시어 형산법사가 그 뜻을 받들어 2천 여평의 교당 부지를 구입했다. 그런데 몇 달전 김제 방 군수와 전북 홍석표 지사가 와서 {서해 바다 새만금방조제를 막으면 큰 군이 두개 나오는데 부산직할시 보다도 크다}고 말하면서 {이는 국가 대산업으로 꼭 되어야 합니다} 하더라. 한국은 서해 개발이 되는 때에 무궁무진한 대운이 열린다고 선종법사님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런데 지난번에 정부에서 공식 발표를 하였다. 우리가 50년 전에 군산에 대종사님과 선종법사님을 모시고 갔는데 선종법사님께서 {7, 80년 전에 큰 선각자 한 분이 나오시어 彼天地虛 此天地盈 群蒼萬里가 된다}고 예언하시었다. 앞으로 한국의 장래는 이로서 크게 대운이 열릴 것이다.
⒝돌멩이도 괴급과 성급의 돌멩이가 다르다.
성급의 뽀족한 돌멩이에 물을 자꾸 주면 물을 먹고 큰다.
석돌, 잘 깨지는 돌은 괴급의 돌멩이다.
⒞일본의 모든 흙은 노토, 괴급의 흙이라서 가라앉는다.
북한산을 등산할 때, 돌멩이가 잘게 부서진 흙으로 덮여있다.
서울의 지기(地氣)는 아직도 성급이다.
성주괴공의 이치를 보면 정도 육백년이지만 서울의 기운은 아마도 천년이 지나도 쇠해지지 않을 것이다.
-> 모든 유정·무정물들은 성주괴공으로 변화하여 은현자재한다. 큰 틀의 변화이다.
② 만물: 유정물 + 식물
유정물은 개령, 각혼, 자의식이 있다.
식물은 개령, 각혼, 자의식도 없고 생혼(살아가는 힘, 대령)만 있다.
cf. 우주는 유정, 무정물 모두 포함
- 우주·만물·사생의 분류는 변화의 모습을 적실하게 표현해주셨다.
생로병사: 나고, 커가면서 늙고, 병들고 죽는다. 다시 생으로 돌아가서 영원히 순환반복한다.
식물도 그렇다.
유정물과 식물은 우주의 성주괴공으로 변하면서 또 생로병사로 변한다.
③ 사생: 유정물들이 태어나는 모습을 태난습화 네 가지로 분류한 것
유정물: 자의식가 있는 것, 즉 자기 스스로 자기생각을 하는 것-> 업을 짓는다: 정업
cf. 천업: 성주괴공으로 변하고 생로병사로 변하고 육도로 변하는 원리, 원칙 자체
천업은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원죄라 할 수 있다.
육도: 천도 인도 수라(삼선도) 지옥 축생 아귀 (삼악도)
*절의 벽화: 바다(=생사)를 건너가는 배가 있고 길을 인도하는 대왕(인로왕)이 있다. -> 불교는 장엄과 방편을 사용하여 깨우치게 하려 했다.
*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믿는가? -> 애드카 케이시
미국사람, 기독교집안에서 태어나 기독교신앙
최면이 걸린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전생을 말해주고 최면에서 깨어나면 기억 못한다.
전생을 말해주는 것을 확인한 것을 리딩이라고 하는데 3만건이 있다.
예를 들어 40세 사람이 50년 전에 한 일을 말해주고 사실여부를 확인한다.
*20세기 최고의 영능력자로 불리는 케이시는 평생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성서를 손에서 놓지 않은 독실한 기독교신자입니다. 교육은 별로 받지 못했으나 특별한 영적능력으로 1901년부터 1944년까지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리딩이라 불리는 상담을 했답니다.
리딩이란, 에드거 케이시가 안락의자에 편안히 누워서 잠이 든 후 조수가 상담자가 의뢰한 고민거리를 얘기해주면 케이시는 (잠든 상태에서) 그에 대한 해결책을 얘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정작 케이시는 자신이 얘기한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으며 케이시가 전혀 알지 못하는 언어(독어, 불어, 이태리어 등)로도 얘기했다고 합니다.
리딩에서는 개인적인 상담도 있었지만 여러 국가 및 세계의 미래에 대한 예언도 있어서 많은 논란이 되었다고 합니다. 예로, 케이시는 영국이 인도를 잃을 것(당시로서는 식민지였음), 미국에 대공황과 증권시장의 폭락이 있을 것, 1차 및 2차 세계대전의 발발, 공산주의의 종식, 중국이 결국에는 민주화 될 것, 문명의 중심이 미국에서 점차 서쪽으로 옮아가 필경 다른 또하나의 강대국과 미국이 양분해서 세계의 영도권을 쥘 것, 일본의 침몰, 1958년에서 백년안에 인명을 손상하는 대진동이 계속될 것이고 끝내는 로스엔젤레스.샌프란시스코. 뉴욕 등 미국의 동서해안 대부분의 도시가 파괴되지만 그 이후에는 인류에게 희망에 찬 새로운 지복천년이 시작될 것 등을 예언했다고 합니다.
케이시는 정보를 잠재의식과 초의식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개인의 잠재의식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한 개인의 잠재의식이 알고 있는 사실은 다른 사람의 잠재의식에서도 알 수 있다는 것이며 또한 초의식 수준에서는 아카식레코드 즉, 우주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던 모든 것들이 기록된 우주의 역사책에 접근하여 그 기록을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초의식의 전지전능함을 내부에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인터넷카페에서 옮김 (에드거 케이시의 '삶의 열가지 해답' )
유정물, 자의식 즉 개령을 가진 유정물만 육도 변화를 한다.
가장 작은 폭의 유무변화가 육도변화이고, 가장 큰 틀은 성주괴공, 중간틀은 생로병사이다.
*지구가 공전하면서 자전을 한다.
지구공전속도: 1초에 29km를 돈다.
자전속도는 북위 37도를 기준으로 시간당 1337km이다.
( 지구의 공전 속도는 초속 29.79km 이는 107160km/h 입니다.
지구의 자전속도는 우선 위도에 따라 다릅니다. 왜냐하면 지구는 구형이라 위도면에 둘레의 길이가 다르기 때문이죠.
각 위도에서 자전속도를 구하는 방법은 그 위도면의 둘레를 24시간에 한바퀴 돌기 때문에 둘레길이를 24시간으로 나눠주면 됩니다. 우선 적도면의 반지름은 6400km정도이므로 그곳에서의 자전속도는
자전속도(V) = 2 * 3.14 * 6400km / 24h = 1674km/h 입니다. 정말 엄청난 속도죠.
우리나라의 경우는 위도 37도에 해당합니다.
우리나라 부분의 위도면의 반지름은 6400 * cos37 = 5111km
우리나라의 자전속도 = 2 * 3.14 * 5111km / 24 h = 1337km/s 입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극지방에선 자전속도가 0입니다. -인터넷 지식질문)
지구가 공전하면서 자전하는 것처럼 유정물들은 성주괴공로 변화하면서 생로병사로 변화하면서 육도로 변화한다.
대종사님께서 세 가지로 분류해주신 것이 기가 막힌 것이다. 우주, 만물, 사생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려주셨다.
변화의 모습을 확인한 것이 유상으로 본 모습이다.
일원상의 진리 끝 부분에 “진공 묘유의 조화는 우주 만유를 통하여 무시광겁에 은현 자재한다”는 말씀이 있는데, 우주 변화, 만물 변화, 사생 변화가 우주 만유를 통해서 은현 자재하는 모습을 세가지로 나누어서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신 것이다.
묘유의 조화, 변화가 실제 우리 생활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세 가지로 분류해주신 것이 <우주-성주괴공, 만물-생로병사, 사생-심신작용따라 육도변화> 로 말씀하셨다.
대오본상에서 정밀하게 분류해 주신 것이 큰 홍복이다.
⑻ 혹은 진급으로 혹은 강급으로 혹은 은생어해(恩生於害)로 혹은 해생어은(害生於恩)으로
: 변화를 세 가지 나누시고, 종합적으로 말씀하신 내용:은생어해, 해생어은 <- 음부경에 나온 말씀
변화 내용을 전체적으로 유추해보면 은생어해, 해생어은 뿐 아니라 은생어은, 해생어해 도 있다.
은생어은, 해생어해는 쉽게 접할 수 있다
* 부안교당 법회를 보러 갔는데 그 옆 작은 개화교당에서도 교도 몇 사람과 함께 참석했다.
그 교무가 봉투를 주는데,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받았다.
보니 돈 5만원이 들었는데, 내가 5만원을 보태서 대각개교절 기념비로 보냈다.
돈을 안드릴 것을 그랬다고 말하는데, 이게 은생어은이다. 내가 베풀면 금방 온다.
은혜는 또다른 은혜를 가지고 온다. 일상생활속에서 은혜와 감사를 항상 마음속에 지니고 실천하면, 다시 상대방으로부터 은혜가 온다.
해생어해는 해에서 해가 나오는 것이다. 죽어라 죽어라 하는 것이다.
안 좋은 이야기를 하면 나도 안 좋은 이야기로 받아들일 때 있다.
일원상서원문에서는 이 부분을 생략한 것이다.
은생어해: 해로움에서 은혜로움이 나온다.
강의 들으러 앉으면 지루하고 불편하다. 법을 지키고 공부를 하며 실천할 때 해로움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다.
지금은 해롭지만 뒤로 가면 좋다고 은혜로 느껴질 것이다. (지금강의 듣는 것-> 고시공부, 교무생활, 책 저술. 아침 좌선 -> 결가부좌 )
해로운 것은 절대 해로운 것으로 치부하지 말고 은혜로움이 되도록 이끌어가야 한다.
진정한 도반이고, 사이가 없을수록 충고가 가능하다.
충고를 들을 때는 기분 나쁘다. 자존감이나 자존심이 높은 사람은 굉장히 아프다.
원광대학교가 정부지원 제한대학이 되었을 때 동문들이 3번씩이나 와서 성직자가 자리에 연연해 하느냐. 사퇴하라는 말을 해서 많이 아프고 자존심도 상했지만 그 충고 때문에 더 열심히 해서 오늘의 원광대학을 만들었다. 은생어해이다.
장관이 왔을 때도 “우리 원불교에는 은생어해 라는 말이 있다. 지금 정부지원 제한이 걸려서 해롭다. 이 해로움이 변해서 반드시 은혜로움이 되도록 우리가 만들겠다”고 말했다. 장관도 꼭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새롭게 변화되는, 한 차원 높아지는 계기를 만들어야 은생어해가 된다.
은생어해가 되려면 고마워 해야 한다. 이런 해로움을 주셔서 은혜로 변할 수 있도록 해주셔서 고마워 해야 한다. 이런 마음이 나기가 쉽지 않다. 해로움이 있으면 상대심이 나서 다른 마음이 나기 쉽고, 고마운 마음이 나기가 대단히 어렵다. -> 역경
어려운 경계를 주어 그 사람을 공부하게 만드는 것이 은생어해이다.
해생어은 :은혜에서 해로움이 나온다.
은혜받는 것은 참 좋다.
시봉금을 받아서 쓸 데 쓰는데, 그 시봉금 봉투를 3~4년 모았다가 다시 봤다.
엄청 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그 봉투들이 없었으면 그 생각을 못했을 텐데, 많은 도움을 받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병을 갔는데, 돈을 조금 주고 나서 마음에 많이 걸렸다.
누가 잘해주면 잘 해주는 것이 마장이 되어서 자기를 타락시키는 일들이 흔히 있다. -> 순경
순경은 마음을 녹혀 버린다. 역경은 오히려 마음을 단단하게 만든다.
순경은 자기도 모르게 자기가 세웠던 서원을 녹혀 버린다.
은혜가 오면 두렵게 생각해야 한다.
역경: 사람의 인격이 성숙되어진다.
순경: 사람의 인격이나 생활이 나태해진다.
진리의 변화의 세계
우주 |
만물 |
사생 |
|||||
성 |
생 |
삼선도 |
은생어해 |
역경 |
고마운 마음 |
진급 |
순환반복 |
주·괴·공 |
노·병·사 |
삼악도 |
해생어은 |
순경 |
두려운 마음 |
강급 |
출가한 것은 진급하기 위함이다.
출가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지, 출가를 안했으면 별 볼 일 없는 필부가 되었을 것이다.
진급의 길, 강급의 길의 갈림길에서 판단을 잘 해야 한다.
돌멩이도 진급, 강급하는 돌멩이가 있다.
물주면 크는 돌멩이, 동굴의 종유굴은 진급하는 것이고, 발로 차면 깨지는 돌은 강급하는 것이다.
흙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의 흙은 강급하는 흙이다. 한국의 흙은 진급하는 흙이다. 영산에 가면 몇 십년 된 소나무가 크지 않다. 밑바닥에 돌멩이가 많아서 크지 못한다. 한국의 흙은 소토, 젊은 흙이라서 그 흙에서 난 것을 먹는 사람은 굉장히 발랄하다. 사람이 적당할 때 죽어야 하는데, 너무 오래도록 살고 죽게 되면, 노인의 심신작용을 많이 해서 다음 생에 애늙은이가 된다. 반대로 젊어서 죽게 되면 생생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날 수 있다. 너무 오래 살아도 진급하는데 도움이 안 된다.
대종경 진급하는 사람의 심경, 강급하는 사람의 심경이 다 나와 있다.
(*인과품 24장 대의강령> 1. 진급기에 있는 사람-①심성이 온유 선량하다. ②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③대하는 사람마다 잘 화한다. ④늘 하심하기를 좋아하고 남을 높인다. ⑤배우기를 좋아한다. ⑥특히 진리를 믿고 수행에 전력한다. ⑦남 잘되는 것을 좋아한다. ⑧무슨 방면으로든지 약한 이를 북돋아 준다.
2. 강급기에 있는 사람-①심성이 사나워 대하는 사람마다 충돌한다. ②여러 사람에게 이(利)를 주지 못한다. ③자만심이 강하여 남멸시하기를 좋아한다. ④배우기를 싫어한다. ⑤특히 인과의 진리를 믿지 않고 수행을 않는다. ⑥남 잘 되는 것을 못 보아 깎아 내리려 한다.
사람도 그 마음 쓰는 것을 보면 진급기에 있는 사람과 강급기에 있는 사람을 알 수 있나니, 진급기에 있는 사람은 그 심성이 온유 선량하여 여러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아니하고 대하는 사람마다 잘 화하며, 늘 하심(下心)을 주장하여 남을 높이고 배우기를 좋아하며, 특히 진리를 믿고 수행에 노력하며, 남 잘되는 것을 좋아하며, 무슨 방면으로든지 약한 이를 북돋아 주는 것이요, 강급기에 있는 사람은 그와 반대로 그 심성이 사나와서 여러 사람에게 이를 주지 못하고 대하는 사람마다 잘 충돌하며, 자만심이 강하여 남 멸시하기를 좋아하고 배우기를 싫어하며, 특히 인과의 진리를 믿지 아니하고 수행이 없으며, 남 잘되는 것을 못보아서 무슨 방면으로든지 자기보다 나은 이를 깎아 내리려 하나니라. )
⑼ 이와 같이 무량 세계를 전개하였나니
유상으로 봐도 무량세계는 전개하였는데, 이 무량세계는 불변의 무량세계이고
여기의 무량 세계는 변하는 무량세계이다.
여기까지 전반부, 일원상의 내역을 말씀하신 것이다.
II. 서원
⑴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굉장히 중요한 단어!
어느 교수님이 정산종사님 당대때 정산종사님은 중생이 아니신데 생이지지하셔서 대종사님께 견성인가받으셔서 끝내신 분이신데, 정산종사님께서는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이 부분을 안외우실 거 같았는데, 그대로 외우시더란다.
여기서 말하는 중생은 “자각적 중생”이다.
자각적 중생: 자기가 중생이라고 깨닫는 중생. 이렇게 깨달은 사람은 이미 중생이 아니다.
진짜 중생은 중생이면서도 중생인줄 모르는 것이다. 내가 중생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깨달으면 이미 중생을 벗어나서 불보살로 들어가는 것이다.
금강경 원문에 “중생중생자(衆生衆生者)는 즉비중생(卽非衆生)일새 시명중생(是名衆生)이라”
(* 금강경 21장 중 중생중생자는 여래설비중생일새 시명중생이니라.
衆生衆生者는 如來說非衆生일새 是名衆生이니라 - 중생 중생이란 것은 여래가 중생이 아니라고 말할새 이것을 중생이라 이름하나니라.)
부처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이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중생은 부처와 중생을 구분해서 보는 중생이 아니라, 부처와 중생이 따로 없는 중생을 말하는 것이다.
대적공실 법문에 모태중에서 중생제도를 마쳤다고 하는데, 제도할 것이 없어서 마쳤다 하는 것이다. 이미 모든 것이 다 부처이기에 제도를 할 것이 없다.
도솔천 안 떠나고 왕궁가 안 내리고, 모태 중에서 중생제도 마치고, 태어나면서부터 사방으로 일수지천하고 일수지지하고 걸으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라고 말씀했다는 것은 부처님이 가지고 있는 대자존감,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것이 부처라는 것을 다 표현한 것이다.
(* 周行七步 目顧四方 一手指天 一手指地 天上天下 唯我獨尊
주행칠보 목고사방 일수지천 일수지지 천상천하 유아독존
: 두루 일곱 걸음 걸으며 사방을 둘러보신 후, 한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한손은 땅을 가리키시며, “천상천하에 오로지 나만이 홀로 존귀하도다.” )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모든 사람, 모든 생령을 총칭한 것
중생임을 깨닫자!
깨달으면 끝난다. 중생이구나 하면 중생이 아니다. 했다가 금방 잊어버린다.
마음이 나오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고, 나온 마음이 아닌 마음인 것을 깨닫는 것을 두려워 해라.
중생은 금강경의 중생,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중생을 지칭한 것이다.
⑵ 이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아서
체 받는 공부가 중요하다.
붓글씨를 쓰는데 선조의 시가 좋아서 한문으로 써서 주려고 하니 잘 안 써져서 현담에게 예서로 써달라고 부탁했다. 현담의 예서체를 보고 쓰니까 글씨가 정리가 잘 되어졌다. 체를 보고 쓰는 것과 체를 안 보고 쓰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어느 교도는 반야심경을 30분이면 잘 쓰지만 체를 받지 않고 쓰기 때문에 일 년이 지나도 글씨체가 늘지 않는다.
일원상 수행 할 때 신앙하는 동시에 표본 삼는 공부를 강조했는데 이가 체 받는 것이다.
①법신불을 떠올려라! 관습 등으로 무사통과하지 말아라.
②제 3자(가치관,관념 등)가 간섭하지 않도록 하라!
법신불 일원상을 그대로 체 받자!
살다보면 엉뚱한 대상을 체 받을 때가 있는데, 알아보고 알아차려야 한다.
체 받는 공부와 체 받지 않는 공부는 공부의 효과, 진행정도에 확연한 차이가 난다.
⑶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를 하며,
보통 사람들은 마음을 도둑맞는 줄도 모르고 도둑맞는다.
계속 새어 나간다. 흩어버린다.
마음 흩어버리는 것을 재미로 삼는 것이 보통 사람들이다.
뭔 재미로 사는가? 사람의 생활의 방향을 다르게 한다.
재미의 차원이 다르다. 수호하는 재미가 참 재미이다.
예전에 마실가서 사촌육촌 만나서 윷 놀았다. 윷 넘어갈 때 상쾌함!
피시방, 휴대폰, 게임 ~> 세상의 재미 : 마음을 흩어버리는 것, 다 도둑맞고 산다.
도둑맞는 마음을 수호해라(=잘 지키라)!
: 육근을 수호해야 한다.
우리 몸의 구멍이 뚫린 곳은 다 마음이 들어왔다 하는 통로이다.
수호를 잘 하는 사람은 그 통로를 잘 막는다. 막으면 정력이 쌓인다.
수호하는 것은 마음을 뭉치고 뭉쳐서 큰 힘이 생긴다.
대종사님의 방언공사도 대종사님의 정력으로 한 것이다. 20년간 수도하고 깨달아서 심력이 생기어 방언공사, 큰 사업을 이루어낸 것이다.
요사이 공부하기 더 힘들어진다. 마음을 흩어버리는 기기, 통로가 계속 발전해져서 갈수록 마음공부하기가 힘들어진다.
다음 생에는 공부 잘 할 수 있는 집에 태어나서 도가를 찾아올 수 있을지 걱정이다. 세대가 다르고, 마음을 흩어버리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세대는 윷놀이, 화투(어느 교당에 가니 화단에 화투에 있는 꽃이 다 있다고 설명할 정도)정도이지만, 지금은 마음도둑질하는 대상이 많이 다양해졌다.
육진의 차원이 다르다. 육근을 잘 간수하는, 수호하는 공부를 하자.
성리공부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진짜 성리공부는 자기육근을 잘 간수하는 것이다. 육근작용을 함부로 놔두지 않고 간수하는 것이다.
심신=몸과 마음
사람은 몸 때문에 정신을 엄청 빼앗긴다. 몸에 따라 마음 뺏기는 것이 많다. 몸관리를 잘해야 한다.
ex. 옷 입는 것: 남자혼자 사는데 세탁을 자주 못하니까 한 옷만 입으니 주변사람들이 뭐라 말한다.
흰 합복을 찾는데, 다 꺼내보아도 없다. 한참 다 뒤져도 안 나오는데, 제일 가까운 곳에서 찾았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따라서 건강해진다.
⑷ 사리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를 하며,
사=시비이해 , 리=대소유무
시비이해와 대소유무의 이치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를 하자!
옳은 것을 하면 이로운 것으로 나타나고 옳지 않은 것을 하면 해로운 것으로 나타난다.
살아가면서 경험하니, 자기에게 이로우면 옳고, 자기에게 해로우면 그르다고 판단한다.
사람은 이해관계에 굉장히 민감하다.
대종사님은 세상은 대소 유무의 이치와 시비 이해의 일로써 건설된다고 하셨는데, 자기 입장따라 판단하는 기준이 다 다르다.
(*정전 교의편 삼학 사리연구의 목적중에서
이 세상은 대소 유무의 이치로써 건설되고 시비 이해의 일로써 운전해 가나니, 세상이 넓은 만큼 이치의 종류도 수가 없고, 인간이 많은 만큼 일의 종류도 한이 없나니라. )
문제는 시비이해를 판단할 때 이해관계를 초월하지 않으면 바른 시비이해가 판단되지 않는다.
이해를 넘어선 판단을 해야 시비를 바르게 판단할 수 있다.
특히 교역자의 삶은 시비이해에 굉장히 민감하다.
교무님과 부교무님 사이에서도 자기입장에 따라 시비이해의 판단이 다르기 때문에 어긋난다.
이럴 때 이해관계를 대조해 봐야 한다. 이해관계를 넘어설 때 시비가 옳게 보인다.
대에서 본 시비이해, 예를 들면, 총부 전체에서 보는 판단과 교구에서 보는 판단, 시비이해가 다를 수 있다. 대에서 본 시비이해, 소에서 본 시비이해가 다 달라진다. 시비이해를 어느 때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가에 따라 다 다르다.
정산종사법어에 말씀하시기를 옛날에는 신언서판이라 하여 사람보는 기준이 몸,인물을 먼저 보고, 말, 글쓰는 것, 판단 순서로 봤는데, 앞으로는 마음씨을 보고 판단을 본다고 하셨다. 서언신! 몸이 제일 마지막이다. 순서를 뒤집어 주셨다.
(* 정산종사법어 근실편 11장
말씀하시기를 [옛 말에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 하여 풍채와 언변과 문장과 판단으로 사람의 인격을 논한다 하였으나,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판단이며, 그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오직 그 사람의 마음이니라.] )
사리에 대한 판단이 분명해야 이 복잡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⑸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를 지성으로 하여
잘 수호하고 잘 아는 공부를 하는 것은 잘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안쓰고 저축하는 것도 쓸 때 확실하게 쓰기 위해서 인 것처럼, 잘 수호하고 정확하게 판단하고 확실하게 써야 한다.
실타래를 풀 때에도 맺힌 데 하나만 끊어버리면 전체가 잘 풀어진다. 지도자가 되면 이것을 알아야 한다. 교구장이 되어서 교화를 할 때 교화기준의 판단이 서야 한다. 판단이 서면 정성을 들여 하면 된다.
학생과 함께 오래 살아서 의식이 젊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부산교구장이 되어서 할매들과 살면 나도 할매가 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되었다. 매년 교화가 뜸해질 7,8월에 교화역량과정(1년에 8강좌씩)을 신설해서, 교리강좌 한시간씩 하고, 전문강사 초청해서 90분간 수강했다. 그러면서 내 생각이 신선해지고 21세기를 준비할 생각이 정리되었다.
21세기, 2000년대의 새 시대는 원불교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원불교 교법의 방향으로 세상이 갈 것이다.
정확한 판단을 해서 그 판단의 초점에 정성을 계속 들여 마음을 사용하라.
정당한 곳에 정당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판단을 잘해서 풀어야 할 과제를 판단을 잘 해서 자기의 모든 정성을 쏟는 공부를 해야 한다.
사용할 때와 안 할 때를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
지성으로 하여 -> 끊어지면 안 된다.
(설교를 들을 때는 잘 듣고 나서 산회가 부르고 나면 법문들은 것을 반납하고 나간다. 교무 편리하게 살도록 해준다. 설교한 거 다 기억하면 다시 못한다.)
⑹ 진급이 되고 은혜는 입을지언정, 강급이 되고 해독은 입지 아니하기로써 진급, 은혜->은생어해,
강급, 해독-> 해생어은 (수호하고 알고 사용하는 공부로 그렇게 되지 말자 하신 것이다.)
진급의 생활로 나아가자!
⑺ 일원의 위력을 얻도록까지 서원하고 일원의 체성(體性)에 합하도록까지 서원함.
체성에 합한다~ ‘망념이 쉬면 체성에 합한다’고 대산종사님이 정전대의에서 한 말씀으로 해주셨다.
보통 사람들은 망념을 끓이면서 재미를 느끼고 사는 것이다. 그것을 쉬어버리면 체성에 합해진다.
체성에 합하는 것은 유상의 세계에 합일되는 것이다.
일원의 위력을 얻는 것은 사사(邪私)가 끊어진 것이라 말씀하셨다.
邪<->正 , 私<->公 보통사람들은 邪나 私에 끌려간다.
성현, 불보살= 망념이 쉬어서 일원의 체성에 합하고, 사사가 끊어져서 일원의 위력을 얻어서 일하는 분. 자기의 능력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법신불의 위력을 얻어 일하는 사람
(* 대산법문 1집 정전대의 일원상서원문중에서
합일(合一): 마음에 사사(邪私)가 끊어지면 일원의 위력을 얻고, 마음에 망념이 쉬면 일원의 체성에 합일한다. (일원과 둘이 아님) )
힘들어도 은생어해를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