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습니다.
올 2025년은 내가 60갑자(六十甲子)의 60년 한 주기를 온전히 보내고 다시 또 12지(十二支)의 열두 해째를 맞이하는 을사년(乙巳年)입니다. 뱀의 해에 태어난 나에게 7번째의 뱀띠 해가 다시 돌아온 셈입니다. 손녀로부터 푸른 뱀이 큼직한 복주머니를 안고 있는 그림이 그려진 ‘2025 푸른 뱀의 해’ 연하엽서 카드를 받았습니다. 손녀가 그려서 보내준 이 엽서를 보며 2025년이 우리 모두의 복되고 건강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세월이 빨리도 흐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새 한 살을 더 먹은 내 나이도 나이지만, 유치원 무렵부터 초등학교 5학년이 되기까지 6년여의 기간을 방과 후 시간에 보살펴주었던 쌍둥이 손녀들이 엊그제 초등학교 졸업을 했으니 말입니다. 새해의 초하룻날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했습니다. 이튿날 오전에는 손녀들의 졸업식에 참여하고 오후에는 동작동 국립현충현을 찾았습니다. 사관학교 동기 동창생 30여 명과 함께 현충탑에 헌화 참배하고 이승만 건국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가 함께 잠들어있는 묘소,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나란히 잠들어있는 묘소에도 헌화했습니다. 언덕을 내려오는 길에는 현충탑 오른쪽에 자리해 있는 채명신 장군 등 월남전 참전 용사의 묘역에서는 추모의 묵념을 올렸습니다.
새해의 둘쨋날 하루 오전에는 손녀의 졸업식에 참여해서 두 손녀를 포함한 우리의 미래를 살아갈 314명의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졸업생들에게 힘찬 새 출발의 박수를 보냈고, 오후에는 우리가 자유롭고 부강한 나라에서 살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준 선열들을 추모하고 그리워하며 오늘의 어지러운 나라 시국을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미래의 새싹들을 응원하는 한편, 우리의 멀지 않은 과거를 잠시나마 뒤돌아보는 나름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발걸음으로 새해 벽두를 시작했습니다.
나이를 먹으니 새해의 시작이 더욱 새롭습니다. 이제는 남겨놓은 날들의 햇수를 점점 가늠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일 듯합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코끝이 쨍한 추위의 이런 축복의 겨울을 보낼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부푼 설렘이 있는 날들의 기적과도 같은 봄을 기다릴 수 있을까? 이런 저런 마음의 생각이 한 발 더 앞서서 달려갑니다. 텃밭을 좀 더 잘 보살피고 정원도 좀 더 잘 가꿨으면 하는 바람과도 같은 것입니다. 지난해는 시골살이를 시작하면서 새롭게 맞이한 첫 해, 모든 것을 서둘렀고 서툴기만 했습니다. 올해는 욕심을 줄이고 좀 더 차분하게 해나갈 생각입니다. 이제 한중간에 접어든 겨울을 보내며 올해는 어떻게 농원을 가꾸고 보살필 것인지를 생각해 볼 참입니다.
올해는 농원을 가꾸기 시작한 지 25년째가 되는 해입니다. 농원에는 스러지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그간 뜻밖에도 거칠게 무성해진 것들이 있습니다. 자연의 본 모습을 확연하게 바라보게 됩니다. 성해진 후에 사라지고, 승한 것들은 다시 소멸하고는 합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자연의 순리를 깨닫게도 됩니다. 한 시도 그대로 있지 않고 변화되는 날씨나 정원의 모습처럼이요. 그래서 그대로 둘 것은 두어두고 반면에 보살필 것은 알맞게 가꾸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도 됩니다.
우선 밭 중간에 여기저기 남겨두었던 나무들을 베어치워야겠습니다. 늙어서 수명을 다한 자두나무가 스스로 몸뚱이를 쓰러뜨리기 시작했습니다. 밭 한가운데 싹을 틔워서 이제는 거목으로 자란 산벚나무, 소나무, 층층나무, 신나무(개단풍나무), 메타세콰이어 따위는 잘라버리거나 다듬어주어야겠습니다. 베어내기가 뭣해서 그대로 두어두었던 것들인데 이제는 그것들이 자라나서 큰 그늘을 만들고 작물 재배에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농원 안길이나 밭 가장자리에 조경수로 심은 벚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 따위도 이제는 경관을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햇빛을 가리고 경치를 지나치게 압도합니다. 솎아내서 바람이 통하게 하고 그 아래 작은 것들의 풍경도 살아나게 했으면 합니다.
날이 좀 푹해지면 먼저 이들 수명이 다한 과수나무를 베어내야겠습니다. 10여년 전에 무턱대고 심었던 아로니아 열매 나무는 캐내야 합니다. 이 열매의 상품화가 어려워 재배할 실익이 없어졌습니다. 밭 중간과 가장자리, 농원 안길의 너무 큰 나무를 솎아내고 길게 늘어진 옆 가지는 잘라내겠습니다. 이런 일들은 나무에 물이 오르고 잎이 나오기 시작하기 전인 겨울에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한편 올해부터는 나무를 심는 일에 좀 더 신중해야만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 작은 것이 얼마나 크게 자랄지, 어떤 풍경을 만들어 줄 것인지를 곰곰이 헤아려보면서 말입니다.
한편 텃밭 농사를 좀 더 잘 지었으면 합니다. 지난해 감자, 고추, 김장 채소, 들깨 따위의 재배 규모를 텃밭 수준을 넘는 규모로 다소 늘렸지만 몇몇 시행착오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농사는 하늘이 지어주는 것이라고도 하지만 가꿈의 정성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땅심을 높이고, 때를 맞추어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는 일에 신경을 쓰겠습니다. 순리를 따르는 일이야말로 농사일의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입니다. 그늘을 만드는 밭 중간의 나무를 베어내고 나뭇가지를 솎아내는 일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밭에 햇빛을 충분히 들이는 일만큼 중요한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가뭄에 대비하여 계곡으로부터 물을 모아서 내리는 시설도 좀 더 견고하게 보완하겠습니다.
체리, 복숭아, 배, 살구, 자두, 대추나무 따위의 과수와 라일락, 마가목과 같이 해충에 약한 나무들의 방제에도 관심을 기울이겠습니다. 때맞춰 예방을 해야 줄기를 갉아 먹는 해충을 없앨 수 있습니다. 줄기를 갉아서 동강 내는 고약한 녀석들은 몰아내야 합니다. 고양이 바다와 강아지 산이를 다 큰 녀석들로 기르고, 수탉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더 많은 닭장에는 알맞은 숫자의 암평아리를 넣겠습니다. 알을 품어 병아리를 까게도 하겠지만, 읍내 장이나 양계장에서 암평아리를 사다 넣을까 합니다. 염소를 몇 마리 나래실아침농원의 가족으로 들여볼까 하는 생각은 좀 더 숙고해보겠습니다. 농장의 모습을 재정비한 후에 결정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산행에 나서고 싶습니다. 그리 먼 발걸음은 하지 않고 내 주변의 알려지지 않은 산, 그리고 나의 청년 학향(學鄕)인 춘천 인근의 산들을 오를까 합니다. 김유정의 고향 마을 뒷산인 금병산(金屛山)을 포함하여 강촌역 인근의 검봉산(劍峰山)과 봉화산(烽火山), 춘천 동남쪽의 대룡산(大龍山), 연엽산(蓮葉山)과 구절산(九折山), 그리고 홍천 쪽의 수타사(壽陁寺)라는 절을 품고 있는 공작산(孔雀山) 등입니다. 소설가 김유정(金裕貞)을 소재로 한 평전(評傳) 소설이라는 독특한 장르의 작품인 『유정의 사랑』(전상국 지음, 새움출판사 2018년 펴냄)에 등장하는 산입니다.김유정이 오래 살았더라면 올랐음직한 그의 고향 마을 인근의 그리 높지 않은 산들입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그 산들의 자연 풍경과 그 산이 품고 있는 – 소설에 나오는 – 산야초와 나무들의 모습도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서 찾아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나라가 왜 이다지 어지러운지요.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한 야당이 주도하는 정부 전복을 위한 정치적 선동과 파행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광란의 칼춤을 추는’ 무리가 준동하여 자유대한민국의 체제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헌법적 권한으로 계엄이라는 통치권을 행사한 대통령의 계엄을 내란 행위라고 호도하여 국회가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의결하고 그제와 어제에 이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라는 기관이 무고한 대통령을 체포하겠다는 불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유 대한을 지켜내고자 하는 많은 시민이 대통령 관저로 몰려가 사람 벽을 만들고 대통령의 불법 체포를 막고 있습니다. 노동적위대와도 같은 민주노총연합(민노총)의 손아귀에 있는 주류 언론의 편향 보도와 종북 주사파 세력의 침투를 받은 법조계의 법난 속에서 우리 자유 대한의 체제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 위기를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걱정이 적지 않습니다.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너무나 안주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불순 세력이 무척이나 오랜 시간동안 절치부심, 권토중래하여 우리의 허점을 찾아내고 합법을 가장한 정치 공작과 부정을 통해 작금의 어지러운 상황을 만들어 나왔는데요.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간 자유대한민국을 세우고 나라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우리 모두가 열심히 노력했고 나름의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왔는데 그들은 도대체 왜 이 야단일까요? 체제가 전복되어 시골에 내려와서 조용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나의 소박한 일상과 평안한 미래를 송두리째 빼앗기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올 새해를 앞두고 자작나무 판재에 ‘惜福’(석복)이라는 글씨를 새겼습니다. 지난 1년 반 동안 서각(書刻)이란 걸 배워왔는데, 무엇인가 좀 내가 의미를 두는 글을 새겨보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惜福입니다. 지난 2주여 동안 자작나무 판재에 그 글을 새기고 그 글 아래에는 그 한자어의 뜻을 풀이하여 ‘검소하여 복을 아껴 누리다’라는 글씨를 함께 새겨넣었습니다. 엮은이를 알 수 없는 『續福壽全書』(속복수전서)라는 책의 첫 장에 나오는 말로 “복을 아낀다”는 의미의 말입니다. 이것은 검소하고 절제하여 누릴 수 있는 복덕과 은혜의 고마움을 잘 알며 살아가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고 지극히 상식적인 항심(恒心)으로 살아가라는 뜻으로도 받아들이고도 싶습니다. 올해 안으로는 나라가 다시 바로 서고, 우리 사회가 상식의 항심을 회복하여 큰 근심 걱정을 하지 않고 함께 잘 살 수 있는 나라 안에 우리 모두가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025.1.4.)
첫댓글 참 나래실 편지가 기다려집니다 ᆢ25년을 넘어 자자손손대로 더 이어지길 바랍니다 ㆍ언제ᆢ서각까지 익혔으며 ᆢ
존경합니다 ᆢ더 좋은 글 기다립니다 ᆢ惜福 ᆢ좋은 서각 ᆢ좋습니다.ᆢ
난세에 영웅이 나타나겠지요. 개 망나니 춤 추듯하는 무리들을 척결해야겠지요. 위계가 완전히 망가진 지금의 위기를 극복해야 합니다. 사회 모든 분야(군을 포함)에 종북좌파가 깔려 있는 게 큰 문제입니다. 나래실의 오래된 나무룰 잘라내듯이 우리도 이참에 종북좌파와 배신자를 갈아 엎어야 합니다. 새로운 봄맞이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