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날이 풀리고 있습니다.
앞산 수도원 뒤편에 쌓여있던 눈이 녹아내리면서 거친 색깔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토방에 앉아 있는 아이들도 졸리운지 늦겨울 햇살아래 늘어져있습니다.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리고 바람도 포근한 2월의 어느 오후.
기억은 가물거리지만 어딘가에서 다시 살아나듯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작년 봄에 올라왔던 새싹과 목련이 다시 살아나고
배나무밭에 시금치도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보았던 것들과 들었던 것들은 점점 희미해지는 듯 하다가도
봄바람에 꽃이 흔들리듯이 새롭고 명료하게 창조되고 있습니다.
새로 태어나는 봄, 다시 시작되는 날에 저는 몇주전 우리가 보았던 저 먼나라의 이야기를 내어 놓습니다.
동방박사 세사람은 서쪽으로 갔고
달마대사는 동쪽으로 갔다고.
그러면 우리는 무슨 이유로 11시간이나 걸려 서쪽으로 갔을까?
먼거리였습니다. 비행기안에서 앞좌석에 붙어있는 작은화면으로
영화를 보다가 보다가 지쳐서
더이상은 못참겠구나, 미슥거릴 지경에 이를 즈음에
겨우 도착을했습니다.
누구는 그 자리에서 영화를 여섯편이나 봤다고,
또 누구는 자다가 먹고 또 자다가 일어나 보니 독일이었다고 자랑이던데
그 좁은 자리에서도 그리 편하게 다니시는 분이 부러울따름이었지요.
바리바리 챙겨 온 무거운 여행가방을 끌고 나와 수속을 밟는데
첫 관문인 입국심사대에 앉아 있는 독일사람의 표정이 싱글싱글 거리고 있었습니다.
첫 대면하는 사람의 얼굴이 웃고 있다는 그 첫인상이
이후 독일여행 내내 계속이어졌습니다.
공항을 나오자 마자 우리를 기다리는 분이 있었지요.
유소영선생님.
십일간 우리를 위해 통역을 자원해서 해주러오신 천사입니다.
문근영씨의 친이모이기도 하지요.
잘 보니 닮으셨습니다.
십여년전, 혈혈단신까지는 아니고 혈혈가족정도되는 이 분들께서 독일이라는 땅에 입성했고
지금은 애들도 의대를 다니고, 유선생님은 의사로 재직중이시라고.
그저 감동이었습니다.
있는 동안 내내, 어쩌면 독일사람 상대하면서 받았던 인상보다
이 분 통해서 얻어진 것들이 더 많을 듯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이 분의 입만 바라볼 수 밖에 없었고
이 분 입에서 떨어지는 말과 그 눈빛과
그 진정성에 물들어가고 있었지요.
살면서 누군가를 새로이 만나는데, 왠지 큰 보물이 와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독일 시간으로 오후 6시가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8시간의 시차때문에 우리 시간으로는 새벽 한밤중입니다.
프랑크푸르트공항을 나와 프랑크푸르트 중앙역까지,
그리고 거기서 위버링엔으로 가는 기차를 잡아타게 됩니다.
촌놈 서울가듯 어리벙벙한 것을
인솔하시는 선생님 덕분에 졸졸 따라다니면서
기차에 안착을 했습니다.
낯선땅, 먼 독일까지 우리는 뭐하러 왔을까?
다시 슬슬 그 물음이 들었지요.
캠프힐을 보자고, 우리가 꿈꾸는 모델을 알아보자고,
큰나무가 세워야할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데
이곳에 오면 뭔가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랬습니다.
그림을 그리자고. 좀더 선명한 그림을..
그런 생각들, 조금씩 배는 고파지고,, 피곤해지면서
정신은 말똥말똥하고.. 그랬지요.
원래 우리 도착지는 위버링엔인데
중간에 기차가 갈라지는 것을 알지못하고 있다가
다른 노선으로 가버렸습니다.
린다우에 떨어졌지요.
한밤중, 원래 숙소와는 백키로정도 떨어진곳,
난감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슈넬교수님이 데리러 오겠다고, 그러는데
큰 민폐를 끼치는구나, 한국인 특유의 미안함이 몰려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일도 있구나,
덕분에 린다우도 와보고.. 좋네..그랬지요.
갈라지는 길에서 어디로 가야하나,
항상 고민이고 어려운데..
이렇게 잘못들었을 때는
아 그래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럴 수도있어
도리어 즐기는 것도 한 방법임을
독일 첫날, 첫 방문지에서 새삼..
위버링엔 숙소 바로 옆에 보덴제호수입니다.
독일과 스위스를 나누는 호수이기도 하구요
삥 돌아서 백키로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깐 이곳은 독일의 남부이면서 스위스와 국경지대이구요
바로 옆에는 프랑스도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금요일을 지나 토요일에는 스위스 바젤, 그리고 일요일에는
프랑스 꼴마에 가게 됩니다.
국경지대라 가능한 일이었지요.
방 3개로 나뉘었구요, 밥은 왠만해서는 해먹고
일정상 밖에 있을 때는 현지 식당을 이용하였습니다.
통역하시는 유선생님이 김치와 깍두기를 담궈오셨고
틈틈이 그곳 현지 농산물과 해산물로 음식을 만들어주시는데
먹을 때만큼은 여기가 독일인지 한국인지 모를 지경이었지요.
드디어 11시간의 비행, 4시간 반의 기차, 그리고 다시 린다우에서 위버링엔으로 밤늦은 이동 끝에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약간 오래된 건물이지만 깨끗하고,
조용하고 쾌적한 곳이었습니다.
늦은 시간에 여장을 풀고, 다음날 오전까지는 푹 쉬는 걸로
몸과 마음에 준비시간을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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