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19년 04월 07일 주일 메시지 (설교안)
시리즈 주제: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
일곱 번째 설교
제목: 옛 예루살렘과 새 예루살렘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통해 본 하나님 나라의 본질
성경 본문: 마가복음 10:32~11:25
낭독 본문: 마가복음 11:11~11:19
설교 동영상은 아래 그림을 클릭하세요!
설교 목적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행하신 일들은 예수님이 꿈꾸는 나라가 어떤 것인지를 나타내 보여준다.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을 살펴봄으로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본질에 맞게 사셨고 그것을 실천하셨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함이 마땅하다.
설교 개요
1. 예루살렘에 올라가기로 결심하심
l 죽음을 예고하심/야고보와 요한의 요구/바디매오를 치료하심
2. 예루살렘에서의 첫 날
l 나귀 새끼를 타심/아이들이 호산나를 외침/성전을 두루 살피심
3. 예루살렘에서의 둘째 날
l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성전 멸망을 선포하심/베다니로 물러가심
4. 예루살렘과 베다니
5. 새 예루살렘과 하나님 나라
1. 예루살렘에 올라가기로 결심하심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도시입니다. 그곳은 옛날 아브라함 시절부터 하나님을 향해 단을 쌓았던 곳이라고 하며, 다윗이 그 성을 정복하여 자기 성을 지었으므로 다윗성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이 예루살렘에 위대한 성전을 지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모든 유대인들이 그곳을 향하여 마음을 모으고 기도를 드리던 거룩한 땅, 거룩한 도시입니다. 그곳은 시온산에 있으므로 하나님의 구원이 바로 이 도시가 있는 산으로부터 나온다고 제사장들은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도시 예루살렘은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아 폐허가 되기도 했습니다. 영광스럽던 솔로몬 성전도 무너지고 약탈당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도시였던 곳이 황폐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도시와 성전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더 이상 특별하게 거룩한 곳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하나님은 그들의 예배를 받으신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도리어 예루살렘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는 탄식과 안타까움 그 자체였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마태복음 23:37~38
예수님은 이제 자신의 삶이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음을 아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갈릴리에서 나고 자라셨지만 이제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여러 번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서 당할 고난과 죽음에 대하여 일러주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이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이렇게 많은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데 붙들려 죽임을 당하신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야고보와 요한이라는 두 제자가 문득 예수님께 엉뚱한 부탁을 합니다. 주님이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유대인의 왕이 되실 것인데, 그 때는 예수님의 왕좌 좌우편에 자신들을 앉혀달라는 것입니다. 지금 죽으러 가신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두 제자가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정말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께서는 길을 가시다가 소경 바디매오 라는 사람의 눈을 고쳐주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렇게 눈이 열려 예수님이 하시고자 하는 바를 밝히 알아볼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라고 마가는 생각한 것 아닐까요?
어쨌든 선지자들을 죽이는 도시 예루살렘에서 자신도 죽게 될 것을 아셨음에도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것을 굳게 결심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이해해 주지 못해도 가야 할 길이기에 올라갑니다. 바디매오의 눈을 열어주시면서도 올라가십니다. 그 동안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시고 행하셨는데 이제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금 유대 땅 전체에서 모든 악이 집중되어 있는 악의 도시로 예수님은 올라가십니다. 악과의 최종 일전을 치르기 위해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십니다. 그리고 그 대전(大戰)에서 어떤 희생을 치러야 할지를 잘 알고 계십니다.
2. 예루살렘에서의 첫 날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어떤 모습으로 가셨을까요? 아마 거기에는 이미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퍼졌을 것입니다. 많은 군중도 모일 것입니다. 대적자들도 매서운 눈초리로 예수님을 예의주시할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기대한 것처럼 예루살렘에 왕으로 위풍당당하게 입성하면 어떨까요?
그런데 예수께서는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를 타셨습니다. 장군의 말이 아니라 여행자를 위한 나귀였습니다. 무력과 권세를 상징하는 로마의 통치자들은 거대한 말을 탑니다. 그 말은 무시무시한 말발굽 소리를 내고 빛나는 마차를 끕니다. 그 뒤에는 중무장을 한 군대가 호위합니다. 왕이란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시고 갈릴리 촌티를 벗지 못한 사람들에 둘러 쌓여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낯선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 구경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호산나,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소리를 높였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모두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윗과 같은 용기 있는 지도자를 기다렸습니다. 골리앗처럼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원수라도 능히 무너뜨릴 수 있는 그런 왕을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자신들도 더 이상 굽실거리며 살 필요가 없는 세상이 오기를 바랐습니다.
어린 나귀를 타고 들어오는 예수님이 바로 그들이 기다리던 그런 구세주처럼 보였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코웃음을 치면서 비웃었을 것입니다. ‘저게 뭐야? 저게 왕이야? 무슨 코메디를 하는 거지?’ 라고 하면서 조롱했을 수도 있습니다. 뭔가 군중의 지지를 받고 있는 갈릴리의 선지자가 어떤 모습으로 오는지 보려고 기다리고 있던 대적자들도 의아해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무슨 일을 하셨을까요? 성경을 읽어봅시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마가복음 11:11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을 둘러보셨습니다. 성전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 장사하는 사람들의 모습, 거기에 있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모습 등을 살펴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유심히 살피시는 분입니다. 제자들의 눈에는 대수롭지 않아 보였을 일들도 예수님의 눈에는 그 속까지 속속히 보였을 것입니다. 그들의 기도와 예배와 거래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다 꿰뚫어 보셨을 것입니다.
이것을 요한복음에서는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요한복음 2:24~25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무엇을 보셨을까요? 그들의 기도와 생활 속에서 무엇을 발견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오늘 우리 교회에 오신다면 무엇을 보실까요? 우리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는 주님이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하실까요? 주님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소원과 아픔을 보실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숨어 있는 걱정과 세속적인 생각들을 몰아내려고 애쓰는 우리의 기도를 주님은 들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와 가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주님은 아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오셔서 모든 것을 둘러보시고 거기에 머물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베다니로 물러가셨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상왕십리역을 지나 한양대 앞에 있는 성동교까지 걸어가면 약 2km인데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그 정도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실 때도 머물 여관이 없어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죽음이 임박하여 예루살렘에 왔는데 예수님이 머물 곳은 예루살렘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나사로가 있는 베다니로 가셔서 숙박을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는 머리 둘 곳이 없는데 베다니에는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이용해서 뭔가를 이루고 싶은 사람, 예수님을 자신의 위협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머무실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친구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예수님은 머무셨습니다.
3. 예루살렘에서의 둘째 날
이윽고 날이 밝았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베다니에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서 가십니다. 오늘은 중요한 일을 하실 결심이 있습니다. 길을 가시다가 무화과나무를 지나치시다가 열매가 맺었는가 보시려고 멈추셨습니다. 아직 무화과 열매를 맺을 철이 아니었기에 열매는 없었고 잎만 무성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 나무를 보시면서 저주를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나무를 향하여 “이제부터 너는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하여 아무도 너에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할 것이다.” 하고 저주하셨다. 제자들도 이 말씀을 들었다.
마가복음 11:14, 공동번역성경
예수님이 갑자기 이렇게 화를 내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너무 배가 고팠을까요? 제자들은 아직 철이 아닌 무화과나무에게 저주하신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가는 이 이야기를 나중에 기록했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이 왜 그런 행동을 하셨는지를 이해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잠시 후에 예수님이 하실 행동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작심한 듯 과격한 행동을 하셨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뒤, 예수께서는 성전 뜰 안으로 들어가
거기에서 사고 팔고 하는 사람들을 쫓아내시며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다.
또 물건들을 나르느라고 성전 뜰을 질러다니는 것도 금하셨다.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시며
“성서에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그런데 너희는 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버렸구나!”
하고 나무라셨다.
마가복음 11:15~17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님이 하신 행동은 그냥 화가 나서 하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떤 메시지를 보여줍니다. 더 이상 이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심판 선언입니다. 이곳은 더 이상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강도의 소굴이 되어버렸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아침에 오시면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사실 잎만 무성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한 저주입니다.
사람들은 위대한 선지자가 나타났는가 하여 예수님의 주위에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셨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에 시원함을 얻고 기뻐했습니다.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찾는 예배가 무엇인지, 가난해도 하나님의 돌보심과 사랑을 받고 사는 삶이 어떻게 행복한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새로운 세상이 어떤지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그 가르침에 놀라워하면서 더 깊이 빠져들어 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적자들은 군중의 마음을 잃을까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죽이기로 모의를 시작합니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사들은 예수님 정도의 사람을 없애버리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겨우 열두 명의 촌뜨기들과 함께 있는 가난한 선지자가 그들의 눈에는 우습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 작자가 성전에서 난동을 부리고 백성들을 선동하여 미혹하게 하는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4. 예루살렘과 베다니
날이 저물어가자 예수님도 그런 사람들과 함께 계시지 않고 다시 친구들이 있는 베다니로 물러가셨습니다. 프랭크 바이올라(Frank Viola)라는 사람은 ‘하나님이 이 땅에서 가장 좋아하시는 곳’(God’s Favorite Place on Earth, 2013)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곳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바로 베다니였습니다. 성전이 있는 거룩한 도시라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나사로와 그의 자매들이 있는 곳 베다니였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가장 원치 않는 모습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거기에 머리를 둔다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선지자들을 죽이고, 이제 하나님의 아들까지 십자가에 못박아버릴 도시가 바로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나사로는 예수님을 더욱 열심히 전했습니다. 사람들은 나사로 때문에 더 많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는 예수님과 그 일행을 모시는 일을 기쁨으로 감당했습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바로 거기 베다니에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다운 예배자들이 있었습니다. 신령과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 베다니는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시는 곳이었습니다.
우리들도 화려한 도시를 찾아 서울로 왔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더 크고 화려한 예배당이 있는 교회를 찾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에는 더 작은 교회를 찾아 섬기려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오늘날에 그리스도인들은 베다니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곳이 하나님의 가장 좋아하시는 곳이라는 보장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다만 오늘 우리는 우리 교회가 주님이 찾으시는 가장 좋은 곳, 주님이 머리를 두실 만한 곳이 되도록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이튿날 저녁에 예수님은 베다니에서 즐거운 식사를 하시고 주무셨습니다. 그리고 셋째 날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아침에 일어나 다시 예루살렘 성전으로 향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제 아침에 예수님이 저주하셨던 무화과나무가 하루 동안에 완전히 말라버렸습니다. 그것도 뿌리까지 완전히 말라버렸습니다. 다시 소생할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제자들은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선생님, 보십시오! 선생님이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렸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일을 통하여 중요한 사실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을 믿어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마음에 의심을 품지 않고 자기가 말한 대로 되리라고 믿기만 하면 이 산더러 ‘번쩍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잘 들어두어라. 너희가 기도하며 구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았다고 믿기만 하면 그대로 다 될 것이다.
마가복음 11:22~24, 공동번역성경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으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이기에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마음에 굳게 믿고 자기가 말한 대로 되리라고 믿는다면 반드시 그 일은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제자들은 지금 무화과나무가 메말라 버린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대한 저주를 말씀하신 것도 30년 후에 이루어진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확신하고 자신이 말한 바를 굳게 믿어야 합니다. 설령 자신의 생전에 그 일을 볼 수 없을지라도 그가 선포한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은 아무 일에든지 내가 선언하면 그대로 된다는 주문이 아닙니다. 생각대로 된다는 처세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며, 하나님의 뜻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한 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고 그 믿음으로 살면 반드시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5. 새 예루살렘과 하나님 나라
본래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땅의 중심이 되는 곳에 예루살렘 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성전을 짓게 하시고 거기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예루살렘성전에 두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구약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할 때 하나님은 그 성전을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그 성전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헤롯이 다시 지은 성전에 예수님이 방문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 성전을 향하여 탄식하시고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그 메시지를 무화과나무를 통하여 보여주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상인들을 내쫓으심으로써 그렇게 예루살렘 성전에서 그 백성이 쫓겨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을 예언행동이라고 합니다. 즉, 행동으로 보여주는 예언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옛날에 하나님이 우상으로 더럽혀진 솔로몬 성전을 떠나셨다면, 이제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과 그 도시에서 하룻밤도 머물지 않으시고 베다니로 가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그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지 않으신다는 메시지입니다.
성경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에서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성은 매우 크고 넓어서 만국의 백성들이 거기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에는 하나님이 언제나 함께 계셔서 성전이 별도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언제나 함께 하기에 태양마저 필요 없는 밝은 도시입니다. 밤이 없기에 성의 대문을 닫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을 장식했던 금은 보석처럼 그 성 전체가 마치 성전과 같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는 환상입니다. 그 환상은 실제보다 더 큰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온 세상이 하나의 성전처럼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해진 모습이었습니다. 옛날 선지자들이 노래하던 것처럼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인정하는 것이 온 땅에 충만하게 되는 바로 그 모습이었습니다. 옛 예루살렘 성에서 하나님이 머물지 않으셨지만 베다니에 자신의 몸을 의탁하시고 친구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은 베다니와 같은 곳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친밀한 교제가 있는 곳입니다. 바로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령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기쁨 충만한 삶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평화를 누리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친구로 여기시며 그 마음 속 깊은 비밀을 알려주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기뻐하며 감격하는 곳,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곳이 우리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누리는 기쁨과 평화, 그리고 진실에 대한 확신은 마치 강물처럼 흐르고 흘러 이 세상을 치유할 것입니다.
요한이 환상 가운데 본 새 예루살렘 성은 우리 가운데서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그림입니다. 그것은 또한 옛 예루살렘성의 질투와 시기, 탐심과 다툼이 아니라 베다니의 친밀, 자원함, 섬김과 기쁨입니다. 그렇게 주님은 오늘도 우리 가운데 계시며, 우리를 통하여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오늘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옛 예루살렘을 어떻게 대하셨는지도 보았습니다. 그 성을 무화과나무에 빗대어 저주하신 것도 보았습니다. 거기에 머리를 두지 않으시고 오로지 베다니에 자신의 몸을 의탁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세상의 허영과 화려함에 미혹되지 말고 진실과 친절, 그리고 겸손으로 단장하여 주님이 찾으시는 베다니가 됩시다. 그리고 장차 우리에게 다가올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 주님과 더불어 영원히 기쁨 가운데 살아봅시다. 또한 우리가 모인 이 자리가 하나님 나라가 되고 새 예루살렘이 되어 세상을 치유하는 은혜의 강물이 흘러나오는 옹달샘이 되게 합시다. 그와 같은 마음으로 부활절을 기다리며 맞이합시다. <끝>.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 07 - 옛 예루살렘과 새 예루살렘(설교안).docx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