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첫날 (6월 5일 저녁마당)
월간지 ‘풍경소리’ 창간 이십 년 기념 모임이 순천시 해룡면에 위치한 ‘사랑어린 배움터’에서 연 이틀 열려 다녀왔다. 잡지에 대해 아는 바도 없고 관계자들과 전혀 교류도 없지만, 이수호 선생님이 오신다는 연락을 받고 멀리서 오시는 귀한 손님 영접한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시간을 할애했다.
안내를 받고 들어선 배움터 도서관 행사장 하단에는 ‘우리 생각이 우리 세상을 만든다.’ 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정면 벽에는 ‘사람이 사랑이다. 老少年 이수호의 오늘을 살아가는 방식’ 이라는 선생님 초청 홍보물이 검은 먹물로 하얀 창호지에 쓰여 붙어 있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떤 모임에서도 쉽게 접할 수 없는 한마디로 ‘사람 냄새’가 흥건한 느낌이었다.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먼저 선생님을 모시는 환영 시가 낭송되었다. 시는 선생님의 자작시 ‘그것이 사랑인 줄 모르고’였다. ‘어젯밤 어둠 속에/ 그렇게 비바람 치고/ 천둥 벼락에 우박까지 쏟아진 계곡/ 나무들 죽비 맞듯 흔들려/ 수도 없이 잎이 떨리고도/ 아침 가을은 맑아/ 햇살 눈부시다/ 계곡은 흔들린다/ 저렇게 깊은 사랑을 숨기고/ 깊이깊이 흐른다/ 어느 날 내를 지나며/ 긴 그리움이 된다/ 자기가 강인지도 모르고/ 붉게 물든 산을 싣고/ 노을을 싣고/ 갈대 울음을 싣고 흘러간다/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고/ 눈물이 나도록 아름답게’
이어 선생님의 인사말과 질의응답이 시작되었다. 생존을 위해 살다가 생활인이 되었고, 이제 고희에 이르니 양질의 삶을 준비한다며 ‘삶의 질’을 이야기하셨다. 현재가 가장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안정되고 편안하시다고 말씀하셔 선생님을 존경하고 걱정하던 사람들을 안도하게 해 주셨다. 어쩔 수 없이 살고 있는 서울 생활을 잠깐 언급하시면서 ‘사랑어린 배움터’의 좋은 환경을 감탄하고 부러워하셨다.
우리 기억에서만 존재하는 오랜 옛날 ‘오래된 미래’를 현실에서 찾고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새로운 미래의 추구라고 하셨다. 무거운 것을 적절히 놓아 버리고 오늘의 소소하고 가볍게 새로운 삶을 잇고 싶은 것이 당신의 전부이고 현재라고 말씀하셨다. 관옥 이현주 목사님과의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자주 인사드리지 못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어도 생각과 믿음으로 함께 길을 걷는다고 하셨다. 그러면서도 관옥은 자신 비교할 수 없는 큰 스승이라고 겸손한 마음을 보이셨다.
선생님의 호 ‘물범’은 신일고등학교 재직 시 제자들이 만들어 주었고, ‘물범 선생’이라고 학생들이 부를 때 격의 없었고 기분 좋았다고 말씀하셨다. 자신은 ‘운다, 운다, 운다.’하면 그냥 눈물을 흘리는 아이처럼 약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이라고 자신을 낮추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 가운데 글자 빼어날 수(秀)의 의미를 잊지 않았다고 했다. 군대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이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항시 ‘나는 나를 어떻게 이 세상에서 펼쳐나가 내 몫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명심하며 ‘자기’를 챙겼다고 한다.
다시 전체는 ‘민들레처럼’ 노래를 합창하고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언제나 소년의 마음을 간직하신 노소년(老少年), 요즘 당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우리의 삶의 방편이 무엇인가 되물으시며 차분히 조목조목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셨다. 요즈음 우리는 사이버 즉 가상세계에서 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세상은 오프라인에서 사이버 온라인으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패러다임이 전환 사회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즉, 자기가 자신을 찾고 만드는 주체적인 내 자신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행복에 대해 자신이 편하려면 주위의 사람이 행복해야 내가 편해진다고 했다. 특히 가족, 그리고 가족 중에서도 아내가 행복해야 내가 편할 수 있다고 하셨다. 아내와 최상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아내를 즐겁게 하는 일이라고 말 할 때, 사회자는 老少年 열정은 아내의 치맛자락에 있다고 하여 웃음을 자아냈다. 이 부분에서 선생님의 말씀에 크게 공감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경의 말씀도 궁극적으로는 내 자신을 사랑하는 일임을 깨달았다.
인간관계에 있어 ‘자기를 낮추면 상대방은 그냥 올라간다.’라고 하시면서 모든 상대를 높이기는 힘든 일이지만 자신을 낮추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하셨다. 철없는 소년도 부모나 선생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며 이웃을 기쁘고 즐겁게 하도록 노력하자고 강조했다. 나이가 들고 아는 것이 늘어나면 말이 많아지고 과신이 생겨 부끄러울 때가 많다고 고백하셨다. ‘나의 사랑 나의 희망’을 노래한 ‘축배의 노래’를 합창하며 선생님의 순수한 열정은 아내의 기쁨임을 회상했다.
우연히 발견한 중학교 시절 설문조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인가?’라는 선생님의 답이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 답의 의미는 어쩌면 ‘존경할 사람이 없다.’라는 뜻으로 해석 될 수 있다고 하셔, 듣는 이로 하여금 여러 가지 궁금증을 갖게 했다. 교육에 대해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교사 또는 선생님이란 길잡이가 있어 ‘교육적 삶’이 영위된다고 했다. ‘교육적 삶’은 서로 배우고 변화고 성숙해 가는 과정이며 한 분 한 분이 나의 스승이라며 “여러분이 모두 스승입니다. 당신이 있어 내가 있습니다.” 라는 말씀을 하셨다.
지리산 자락에서 모임에 참여하신 어느 한 분의 고백이 의미심장했다. 매달 받아 보는 ‘풍경소리’가 자신의 생을 이끄는 지침이라며 특히 선생님의 시를 좋아한다고 감사를 드렸다. 선생님의 시는 길지만 정감이 있고 노동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오신 모습이 그려진다고 했다. 아내와 자주 싸우고 살지만 풍경소리에서 아내를 사랑하는 선생님의 시를 읽고 손빨래하는 아내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작업복만큼은 반드시 손수 손빨래한다고 하시며, ‘봄날은 간다.’라는 가요를 3절까지 구성지게 불러 관중의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우리가 고뇌하고 사랑했던 교육현장과 노동현장에서 헌신과 희생으로 자신을 불태웠던, 아니 한 시대를 처절하게 투쟁하고 살아오셨던 그분을 잠시라도 얼굴을 대하고 생생한 음성을 들으며 이제 조금은 편안히 나이 들어가시는 모습을 뵈오니 기쁨과 평화 가득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첫댓글 하루 일정을 그림 그리듯 펼쳐주셨네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