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덴 형제(상)
형제 감독의 눈에 비친 ‘삶의 부조리’
형은 영상 예술, 동생은 철학을 전공
감독부터 제작 각본까지 공동 작업
소외당하며 내몰리는 이들 주인공으로
다르덴 형제.(출처 pro.arte.tv)
■ 영화에서 ‘사회적 영성’ 생각하기
지난 글에서는 세 번에 걸쳐 타르코프스키의 글과 영화를 음미하며 그 안에서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영성에 대해 던져주는 메시지를 길어보려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찬사이든, 비판이든 다분히 추상적 의미로 ‘신비적’ ‘초월적’ ‘상징적’이라 평해지곤 하던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을 그의 글과 말을 새기며 감상해 보면서, 그 안의 절대자에 대한 경외심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공동체의 복원을 갈망하는 구체적이고 윤리적인, 또 영성적인 소명의식이 자리하고 있음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유작인 영화 ‘희생’의 이야기 구조와 영상언어, 영화적 장면들에 대해 수많은 해석들이 있지만 그 어떤 현학적이고 기발한 해석들도 이 영화를 시작하게 한 감독의 절박한 예언자적 비전을 보지 못한다면 오히려 이 위대한 작품에 다가가는 길을 막는 것일 뿐입니다. 좀 긴 인용이지만, 타르코프스키가 「봉인된 시간」 마지막 장에서 그가 남은 생명의 마지막 힘을 기울여 이 영화를 완성해야 할 사명감에 대해 밝히는 대목은 이 영화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꼭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은 기계문명의 발전과 그 밖의 물질문명의 발전에 얽매이고, 가칭 진보라는 인류 발전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소비자로서의 삶을 영위하든지 아니면 자기 자신을 위해서뿐만이 아니라 남을 위한 것이기도 한,
고매한 정신적 책임감이 충만한 삶으로 회귀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는 것이다. 바로 이 같은 후자의 선택에 인간 사회에 대한 책임감과 그 사회 속에서 그 사회와 함께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책임을 의식적으로 떠맡음으로써 우리들이 흔히 ‘희생’이라고 부르는 행위가 가능한 것이며, 그리스도교에서 이야기하는 자기 자신의 희생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그리고 철저하게 희생의 개념에 일관하자면, 이는 남을 위하여 혹은 어떤 일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에게서 최소한 경미한 정도로도 느끼지 않는 한, 그 인간은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을 중단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이 같은 인간은 자신의 삶을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로봇과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인 것이다.
물론 나는 오늘날 희생이라는 생각이 전혀 애호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 아무도 남을 위하여 혹은 어떤 일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의 매정한 결과들은 결정적으로 남게 된다. 더욱더 뚜렷한 자기 중심주의를 대가로 개성을 상실하는 것하며, 이미 수많은 인간 상호 관계뿐만 아니라, 전 세계 민족들의 이웃 민족들과의 공존 관계도 규정지어 주는 자기 중심주의, 그리고 무엇보다도 물질적 발전 대신에 정신적 발전이 이루어지고 그렇게 됨으로써 다시 고상한 삶을 가능케 해 줄 마지막 남아 있는 가능성의 상실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봉인된 시간」, 김창우 옮김, 분도 출판사, 1991, 293-294쪽)
타르코프스키는 심오하고 탁월한 예술적 성취를 통해 이러한 확고한 관점이 피상적인 설교나 주장으로 전락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던 드문 위대한 예술가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의 예술은 어떤 경우에도 예술 지상주의가 아니라 동시대와 다가올 세대의 사람들의 공동운명에 대한 염려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의 영화를 유미주의적 상징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오늘날 자주 언급되는 ‘사회적 영성’의 관점에서 조명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적 영성’을 위해 가장 깊은 성찰을 전해주는 우리 시대의 영화감독을 들자면 우리는 누구보다도 먼저 벨기에의 다르덴 형제를 언급해야 할 것입니다.
영화 ‘로제타’의 한 장면.
■ 관찰, 연민, 공감 그리고 희망의 시선
두 번에 걸쳐 칸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하였으며 여러 번에 걸쳐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오른 것 등의 정보만으로도 다르덴 형제가 현대 영화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상업적인 큰 성공을 추구하고 있지 않지만, 현실에 가깝게 다가가며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으면서도 사물과 사건을 담담하게 기술하는 그들의 영화미학은 사실 이미 당대의 많은 젊은 영화세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벨기에의 뤼티히 근처 공업지대에서 자라난 다르덴 형제는 젊은 시절부터 공동 작업을 시작하였고 지금까지도 영화감독, 제작, 각본을 둘이서 함께해오고 있습니다.
영상 예술을 전공한 형 쟝-피에르 다르덴(Jean-Pierre Dardenne, 1951년 4월 21일생)과 철학을 전공한 뤽 다르덴(Luc Dardenne, 1954년)은 그들의 전공이 말해주듯 영상작업의 시작부터 사회철학적 관심사를 중심에 두었습니다. 그러기에 주제와 영상기법의 선택에 있어 사회적으로 주변부로 몰리는 이들의 삶을 직시하고 이를 강요하는 시대적 사회적 조건들을 세밀히 관찰하는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내적, 정신적 고뇌와 자유의지의 영역을 피상적이거나 감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드러내려 애썼습니다.
초기 비디오 작업이나 다큐멘터리 영화 작업의 시기를 거쳐 새로운 방식의 극영화 작법을 통해 이러한 주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모색하였고 마침내 1992년 ‘약속’이라는 작품을 통해 비평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99년 칸 영화제 대상을 받은 ‘로제타’를 통해 그들의 영상미학과 주제의식은 전 세계적 영화계에서 새로운 흐름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직장에서 해고통보를 받고 사실상 노숙자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게 되는 젊은 여성 로제타가 맞이한 비참한 상황을 냉정할 정도로 집요하게 그리면서도 값싼 동정이 아닌 진정한 연민과 공감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그들의 경력에 있어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다르덴 형제는 명성이나 인기가 아니라 철저하게 자신들의 윤리적 물음과 정직한 삶의 관찰을 수행하는 매체로서 영화 작업을 지속합니다. 그 결실들이 ‘아들’(2002), ‘아이’(2005), ‘로라의 침묵’(2008) 등의 뛰어난 작품들입니다.
다르덴의 영화는 사회적으로 소외당하고 벼랑끝으로 몰리는 인물들, 특히 젊은이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으며 그러한 상황을 야기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는 사회적 조건을 냉철하게 주시하고 있기에 많은 경우 사회적, 정치적 영화로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화들은 사실 ‘로제타’나 ‘아들’과 같은 작품들에서 확연히 볼 수 있듯 종교적 질문을 함축하는 실존주의적인 차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영화에 자주 쓰여지는 표현인 ‘책임의 리얼리즘’을 사회적 차원으로만 규정될 수 없되, 사회적 차원을 도외시하지 않는 ‘사회적 영성’의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그의 영화를 보다 깊이 있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 편의 아름다운 최근작들인 ‘자전거 탄 소년’(2011)과 ‘내일을 위한 시간’(2014)은 세상의 부조리를 직시하면서도 희망의 시선을 잃지 않게 하는 ‘사회적 영성’이 어디서 시작되는지를 탁월하게 제시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대환 신부 (의정부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