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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과 <유정천리> 개사곡
자유당 말기 3.15 선거를 한 달 앞둔 1960년 2월 16일 새벽, 대선에서 이승만과 맞섰던 조병옥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과거에는 5월에 치르던 선거를 자유당이 ‘농번기를 피한다’는 구실로 (실제로는 조병옥 후보의 입원을 틈타서?) 3월로 앞당긴 상황에서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민주당의 구호에 호응하던 많은 국민이 슬퍼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당시 유행했던 가요 <유정천리>를 개사한 노래가 삽시간에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2.28횃불> 통권 70호(2018 여름호, 제18권 2호)에 실린 조해정 선생의 글 ‘꺼지지 않을 타오르는 횃불’(1. 횃불의 불씨, ‘노가바 사건’)에는 <유정천리>를 개사해서 부르게 된 경위가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경북대 사범대 부속고등학교 1학년 2반 유효길, 이영길, 오석수 세 학생이 개사 작업을 하고 제목을 <무정만리>로 하였다. 그 자리에 있던 2학년 최용호 학생이 <무정만리> 가사를 자기 반에 가서 칠판에 적었다.....
가련다 떠나련다 해공 선생 뒤를 따라 장면 박사 홀로 두고 조 박사는 떠나가네 가도 가도 가망 없는 당선 길은 몇 구비냐 자유당에 꽃이 피네 민주당에 비가 오네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필자도 개사곡을 배웠다. 이웃집 누나가 약간 흥분된 모습으로 어머니에게 가르쳐 주는 걸 옆에서 들었고 학교에서 친구들이 부르기도 했다. 가사 중 ‘가망 없는’대신 원곡 가사처럼 ‘끝이 없는’이었다는 차이가 있는 정도였다.
옛 생각이 나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아래 링크에 더 자세한 내용이 나온다. 개사곡을 소개하는 동아일보 1960년 2월 22일자 휴지통 기사, 그리고 약간씩 다른 가사도 소개되어 있다. http://blog.daum.net/seoksan9/17949251
이 블로그에 나오는 가사 중 하나를 소개한다.
가련다 떠나련다 해공 선생 뒤를 따라 장면 박사 홀로 두고 조 박사도 떠나갔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당선 길은 몇 구비냐 자유당에 꽃이 피네 민주당에 비가 오네.
세상을 원망하랴 자유당을 원망하랴 춘3월 15일 조기선거 웬 말인가 천리만리 타국 땅에 박사 죽음 웬 말인가 설움 어린 신문 들고 백성들이 울고 있네.
한편, 2018년 7월 20일(금) 국회방송에서 <대한민국 70년 노래는 세월 따라>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했는데 그 무렵 광주에서 시위에 참가한 학생이었다는 원로 몇 분이 출연하여 이런 가사를 소개하였다.
가련다 떠나련다 해공 선생 뒤를 따라 조 박사가 떠나갔네 장 박사를 홀로 두고 못 살아도 나는 좋아 외로워도 나는 좋아 유정천리 꽃이 피네 무정천리 눈이 오네
장길만(83세) 씨라는 분은 “금남로에서 무등산까지 우리가 노래를 부르며 갔어요”라고 했다.
이런 자료를 통해 <유정천리> 개사 과정에 관해 몇 가지 가능한 추측을 해보면....
- 경북대 사대부고 학생이 맨 처음 개사했고, 전국으로 퍼져나가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몰라도 개사곡이 퍼지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지역마다 조금씩 편차가 생겼다. 부고 학생도 어디선가 듣고 자기네 버전을 만들었다. - 광주 개사곡도 대구 것과 거의 같았는데 인터뷰에 나온 분들이 잘못 기억하고 있다 등.
* 지난 5월 26일(토) 장주효 선생 자서전 출판기념회에서 내가 <유정천리>를 하모니카로 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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