周易 上編(주역 상편).
2.重地坤(중건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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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上六 龍戰于野 其血 玄黃
상육 용전우야 기혈 현황
[풀이]
[상6]은 용과 들에서 싸우니
그 피가 검고 누렇다.
[해설]
무식한 여편네가 만신창이가 되도록
들판에서 남편과 싸우는 꼴로,
陰(음)이 극성하면 반드시 피를 칠하며
陽(양)과 크게 싸우게 된다.
坤道(곤도)는 오로지 유순중정으로
厚德載物(후덕재물)해야 하는데,
陰(음)이 늙고 극성하면 유순과 중정
그리고 후덕이 사라지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마치 乾道(건도)가 亢龍有悔(항룡유회) 하는 모양처럼,
'野(야)'는 사방이 터진 공개된 장소다.
여자가 장소를 불문하고 들에서 남자와 맞짱을 뜨자고
[龍戰于野,용전우야]
죽자 살자 덤벼들면 피칠갑이 뻔하다[其血玄黃,기혈현황].
천지가 분간 되지 않고,
예의염치가 통하지 않는 자리다.
陰陽(음양)이 통하지 않고,
남녀가 구별되지 않으니,
예의범절이나 道(도)를 논하는 자는 묵사발을 당한다.
陰(음)이 陽(양)을 따르기는 하나
陽(양)을 따를 이유가 없으면 싸운다.
싸우면 반드시 모두 상처를 입으니,
그 피가 검고 누렇지 않겠는가.
陰(음)이 강성해도 陰(음)은 陰(음)이기에,
陽(양)을 이기지 못하고 상처를 입는다.
陽(양)은 임금이고 陰(음)은 신하다.
陽(양)일지라도 상처를 입지 않을 수 없다.
검고 누렇다.
용이 하늘을 다스리지 못하고 땅에서 전쟁을 하니,
이것은 아주 하찮은 일이다.
陰(음)과 陽(양)이 다하면 반드시 되돌아간다.
陰(음)이 다해 사라지려 하고,
陽(양)이 강장해지려 하니 반드시 전쟁이 난다.
이런 '龍戰(용전)'을 왕필은
"坤道(곤도)가 자신을 낮추고 유순하며 교만하지 않아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간수하는데,
坤(곤)이 지나쳐 陽9양)의 지역까지 점거하니
陽(양)이 이를 견디지 못해 들판에서
陰(음)과 싸우게 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렇지만 다산은 「문언전」에서
坤卦(곤괘)가 山地剝卦(산지박괘)로 간 경우로 보고,
陽(양)의 무능을 혐의로 잡은 陰(음)의 반란으로 밝힌다.
"陰(음)이 극성하면 陽(양)을 의심하며 목숨도 불사하는
싸움을 부르는데[陰疑於陽必戰,음의어양필전],
이는 陽(양)의 무능을 혐으로 잡는지라
[爲其嫌无陽也,위기혐무양야],
그 때문에 용과 같다는 소리를 들으며[稱龍焉,칭룡언],
그러면서도 그 곤의 무리를 떠나지 못하는 자리
[猶未離其類也,유미리기류야]
피를 부른다[稱血焉,칭혈언] 했고,
그 피는 천지로 뒤섞여 범벅이 되니[天地之雜也,천지지잡야],
하늘의 피는 검고 땅의 피는 누렇게 칠갑하게 되는 것이다
[天玄而地黃,천현이지황].
기혈현황을 군웅할거로도 본다.
여기서 현황은 하늘 핏빛 玄(현)이요, 땅 핏빛 黃(황)이다.
지욱은 여기서 넓은 의미로
坤卦(곤괘) [상6]을 '戰義전의)'로 보았다.
"坤(곤)의 靜(정)은 夬(쾌)고,
그 變(변)은 剝(박)이 되니 다 戰義(전의)가 있다.
善(선)이 극하면 惡(악)을 처단하고,
惡(악)이 극하면 善(선)을 처단하니,
고로 궁색하면 싸우고 싸우면 상처가 난다.
이는 天地(천지)가 자리를 정해 震龍(진룡)을 낳으려 함이니,
고로 '野戰(야전)'이 된다.
震(진)은 龍(용)이 되며,
玄黃(현황)이 되며,
또 氣(기)가 이미 성하여 피가 되니,
바로 水雷屯卦(수뢰준괘)가 오는 이치를 만든다.
屯(준)이 있으면 地水師(지수사)가 있으니
山水蒙卦(산수몽괘) 역시 師道(사도)를 밝힌다."
지욱처럼 아산도 자연스런 '陰陽(음양)의 이치'로 설한다.
'陰疑於陽(음의어양)'에서 陰(음)이 陽(양)을 대적하는
당당한 자격이라 하고,
陰(음)이 먼저 추파를 보내는 것,
즉 비가 내리기 전에 땅에 습기가 생기는 현상으로 보았다.
또 '天玄而地黃(천현이지황)'은 음양교합의 이치로
陰陽(음양)이 상교하면 그 분별이 어렵기 때문이라 한다.
어쨌든 공자는 이를
"용과 들에서 싸운다는 것은 음도 궁색하기 때문
[象曰 龍戰于野 其道窮也, 상왕 용전우야 기도궁야]"이라는
결정사로 여타 변명을 한방에 잘라버렸다.
아무리 月食(월식)이 방정을 떨어도 태양은 보호되어야 한다.
坤道(곤도)가 똑바른 자라면 하늘을 하늘로 보고,
땅을 땅으로 보게 되면 문제는 간단하다.
그런데 坤道(곤도)가 욕심이 과하니
남자를 여자의 울분을 해소시켜 줄 도구로 여기고
남자와 싸워서 서로가 피투성이가 되는 것이 아닌가.
'天玄地黃(천현지황)'은 하늘을 하늘로 보고
땅을 땅으로 제대로 보라는 화두다.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山山水水(산산수수)'와 다르지 않다.
고사로는 무왕과 주왕의 전쟁을 든다.
문왕이 죽은 지 4년 후에 부친의 유훈으로
무왕은 東征(동정)을 일으킨다.
마침내 은나라가 추위에 얼고 기근이 겹치자
그들조차 전쟁을 원했다.
무왕은 300대의 전차와 4만 5천 명의 병력과
3천 명의 특전용사들을 데리고 갔으며,
8개의 타 민족 제후국들도 동정에 합류하여
주왕에게 네 가지의 죄과를 물어서( 방탕과 애첩 탐닉,
하늘과 조상신에 대한 제물 봉양 소홀, 바른사람 불신,
이웃나라 범죄자와 노예의 은닉) 탄핵을 한다.
황룡과 흑룡이 목야에서 싸운 이 '龍戰于野(용전우야)'에서
은나라는 종말을 고했다.
'野(야)'는 여기서 '牧野(목야)'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런데『帛書,백서』에서는 이제까지 전통적으로 내려온
해석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龍戰于野(용전우야)'를
10월의 큰 '한파'로 보았다.
동아시아에는 해마다 대략 11월 상순에 비교적
큰 규모의 첫 한파가 발생한다.
앞에서 언급한 '서리에 경의를 표한 것(예상)'은
바로 이 한파의 여파이고,
여섯째 날은 대략 양력 12월 상순에 발생하는
두 번째의 한파이다.
한파가 일으킨 회오리바람이,
검은 흙과 누런 낙엽을 휩쓸었다가 흩뿌리는 것은,
옛날 사람들에게는 용이 싸움을 벌이다가
피를 흘리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玄黃(현황)은 혼란한 정국 속에 소인들의 피비린내 풍기는
泥田鬪狗(이전투구)가 일어남이니,
100년 전의 征韓論(정한론) 때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