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스 노바(ars nova)
<아르스 노바(ars nova)>는 ‘새로운 기법’이라는 뜻으로, 14세기에 들어와 유럽(특히 프랑스, 이탈리아)에 새롭게 일어난 하나의 흐름을 말한다. 이 말은 원래 1320년경에 프랑스의 이론가 필리프 드 비트리(Philippe de Vitry, 1291~1361)가 쓴 음악 이론서의 표제로서, 13세기까지의 옛 음악인 <아르스 안티쿠아(ars antigua)>에 대비되는 것이다.
아르스 노바의 음악은 아르스 안티쿠아에 비하면 자유롭고 세련되어 있으며, 복잡한 기교를 집중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르스 노바 음악에서 새롭게 시도되었던 주 분야는 리듬으로서, 리듬에 관한 새로운 가능성들은 14세기의 음악에 무한한 복잡화의 가능성을 제시해주었다. 13세기 말까지 대부분의 음악은 획일적인 3분박으로 되어 있었으나, 14세기에는 3분박과 2분박이 동등하게 허용되었으며, 3도·6도의 음정을 협화음정으로 활용하였고, 아르스 안티쿠아 시대의 리듬 체계인 리듬선법을 버리고 좀더 복잡한 리듬기법을 개척하여, 훨씬더 유연한 선율을 만들 수 있었다. ■ 기욤 드 마쇼(Guillaume de Machaut, 1300경~77)
그는 프랑스의 북부지방에 위치한 랭스(Reims)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성직자가 되었고, 룩셈부르크에 거주하던 보헤미아 왕 요한을 섬기는 비서관으로 20대 초반부터 20년이 넘도록 룩셈부르크에 거주하면서, 유럽의 많은 도시를 왕과 함께 여행하면서 보냈다. 마쇼는 1346년 왕이 전사한 후, 프랑스로 돌아와 프랑스의 왕족들을 모시게 되었고, 노년에는 자신의 고향인 랭스에 살면서 교회 요직을 맡았다. 프랑스의 여러 귀족들을 위해서 모테트, 다성 미사곡, 기악음악과 세속노래 등, 당시의 유행하고 있는 모든 음악형식을 사용해서 많은 음악작품들과 시를 남겼다. 대표적인 다성 세속노래로는 마쇼가 60세 되던 해에 18세의 아름다운 귀족 소녀 페롱(Peronne)과 사랑에 빠졌으나, 그들의 사랑은 3년간 열렬히 지속되었지만, 결국 둘의 관계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마쇼의 만년의 시들은 그녀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 담긴 다분히 자전적인 시들로, 특히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서사시 ‘진실한 이야기(Voir dit)’에 그대로 담겨 있다.
그가 중세 다성 세속음악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바는, 상성부에 자유로이 창작한 주선율을 두고 다른 두 성부를 악기가 연주하도록 하는 3성부 악곡의 새로운 스타일을 발명한 것이다. 마쇼는 비를레(Virelai), 롱도(Rondeau), 발라드(Ballade)의 세 종류의 정형시 형식을 그의 세속노래에 주로 사용했다.
무엇보다도 마쇼의 이름을 음악사에서 길이 남게 한 작품은 그의 다성 미사곡 ‘노트르담 미사(Messe de Notre Dame)’이다. 이 곡은 그가 말년에 있던 랭스의 노트르담 대성당 내의 마리아 소예배당에 바치기 위해 작곡된 곡으로 알려진다. 이 미사곡이 가지는 음악사적 의의는 <<키리에·글로리아·크레도·상투스·아뉴스 데이· 이테 미사 에스트>> 등 여섯 개의 미사 통상문이 처음으로 한 작곡가에 의해서 한 벌의 다성음악으로 작곡되었다는 데 있다. <출처 : 서양음악사(1),pp.112~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