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스폐셜-내 어머니 박경리
기획의도
『토지』의 작가 박경리.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2년이다. 고전이 사라지고 스승이 부재한 이 시대,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할까? 삶이 문학이 되고 문학이 삶이 되어 살았던 일생. 모진 운명 속에서 단단한 성취를 이룬 그의 삶을 되짚어본다.
주요내용
● 끝날 것 같지 않던 불모의 시기

이 작은 소녀의 이름은 박금이
작가 박경리로서 우리에게 기억되기까지
그는 한국 현대사의 돌풍 속에 홀로 내던져진 채 살았다
“1.4후퇴 직전에 남편이 서대문형무소에 있을 때, 형무소를 다니는데
너무 힘드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미끄러져서 한강에 빠졌으면 싶더라고”
부모의 이혼, 6.25 동란 속 남편의 죽음, 어린 아들의 돌연사,
사위 김지하의 수감생활, 유신시대의 핍박..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촌부가 되고 싶은 소박한 꿈을 꾸었던 그는
몸서리쳐지는 불행의 늪에서 위험과 공포를 껴안고 살아야 했다
“꾹꾹 누르고 있다가 마지막 해를 넘기는 날 같은 때는
한 번씩 창자가 끊어지듯이 우셨어요” / 딸 김영주

삶의 가파른 언덕을 지날 때마다 등을 곧추세우며 당당하게 맞서 싸운 박경리
최고의 작가라는 찬사 뒤에 가려진 삶의 궤적을 더듬어본다
● 글 기둥 잡고 눈먼 말처럼
“나의 삶이 평탄했더라면 나는 문학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박경리에게 문학은 유일한 피난처, 그를 숨 쉬게 해 주는 통로였다
“자율학습 시간에 책하고 노트 사이에 소설책을 넣어서 열심히 읽는데
얼마나 빨리 읽는지 하여튼 독서광이었어. 그때부터” / 진주여고 동창 김희선

소녀 시절엔 외로움을 잊게 하는 친구가 되어 주었고
노모와 어린 딸을 부양해야 하는 시절엔 밥벌이가 되어 주었다
개인적 아픔을 승화시킨 『불신시대』와 『암흑시대』, 작가의 입지를 굳혀준 『김약국의 딸들』,
『시장과 전장』, 『파시』..
그리고 1994년, 집필기간 25년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으며 완간된 『토지』
등장인물 700여명, 50여년에 걸친 질곡의 한국역사를 담은 소설은
21세기에 남을 한국문학 최고의 고전으로 손꼽힌다
“박경리 선생님이 들어앉으셨다, 전화도 끊고 사람들과의 모든 걸 다 끊고 들어앉아서
토지집필을 시작을 하셨다.. 별 소문이 다 났어요
너무 들어앉아 있어서 다리를 못 쓰고 걷지를 못한다더라..” / 작가 오정희
“보통 그렇게 대하를 가다 보면 사실 중간 중간에 태만해지는 구석이 있어야 되는데
그것이 없다는 게 더 놀라운 것 같아요
한 줄도 긴장 없이 쓰지 않았다는 게 너무 놀랍고” / 작가 공지영

25년간 하나의 작품에 몰입하기 위해 감수해야 했던 것들
암 수술과 세간의 숱한 오해들도 그의 집념을 이기지 못했다
“보름만인가 퇴원하고 썼어요. 이 팔이거든요? 붕대를 감은 팔을 가지고 썼는데..”
“언젠가 독자들이 날 잊어버리게 될 거다, 이런 생각하면 참 고독해요. 초조해지기도 하고
그런데도 전부 거절하죠. 그러면서 가서 내 욕 쓰라고 그러거든요”
배수의 진을 치고 절대고독 속에서 보낸 『토지』집필 25년
『토지』라는 큰 멍에를 짊어지게 했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삶의 고통을 펜 끝으로 토해내지 않고서는 살 수 없었던 세월
치열한 작가정신이 이룬 박경리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본다
● 두 팔 벌려 지붕 되어준 어머니 마음
삶보다 중요한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박경리
한평생 그를 움직인 것은 오로지 사랑하는 딸과 외손자의 눈빛이었다

“어머니가 저만 보면 엄청 화를 내셨어요. 왜냐하면 속이 상해서,
딸만 쳐다보면 속이 상하는 거예요” / 딸 김영주
“모래밭에서 하루 종일 놀아주셨죠. 치즈하고 커피 같은 걸 아예 들고 오셔 가지고
저한테 먹여 가면서 같이 놀아주셨거든요” / 큰손자 김원보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장모님께 빚을 많이 졌죠” / 사위 김지하
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디든 마다않고 달려갔던 어머니,
쑥스러움이 많았지만 큰손자 자랑만은 그칠 줄 몰랐던 할머니
가족들이 회고하는 박경리의 지극한 가족 사랑을 엿본다
● 땅처럼 후한 인심
자신에겐 가혹하리만큼 냉정했지만 모든 생명 있는 것들에겐 한없이 따뜻했던 박경리

“밭에서 일하시는 거 보면 농부가 그런 농부가 없어요” / 작가 오정희
경배하듯 텃밭을 일구고 맨손으로 흙을 쓰다듬으며 생명의 아픔을 느꼈고
새모이를 한 톨 한 톨 물에 씻어 먹이며 생명 보살피는 법을 몸으로 익혔다
자연과 공감하며 생명을 보듬어 안는 것. 박경리 생명론의 핵심이다

“곰탕입니다. 이삼일 동안 기름을 걷어내고, 끓여내고, 또 끓여서 걷어내고
이렇게 정성을 들여서 해주시는데 황송해서 맛있게 먹고 그랬습니다” / 교수 최유찬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었지만 한 번 정을 주면 한이 없던 그는
언제나 버선발로 뛰어나와 손님을 맞이하고 메밀전 하나도 혼자 먹는 법이 없었다
노년에는 많은 작가들이 집필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집필관을 마련하였다
세상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더 크게 돌려주는 그만의 방식이었다
“선생님께서 아침저녁마다 손수 반찬을 한두 가지씩 만들어서 내려 보내주세요
토지문화관에 한 번씩 다녔던 사람들은 그걸 선생님표 밥이라고 불렀어요” / 작가 윤성희
매일 반찬을 준비하면서도 행여 부담을 줄까봐 얼굴도 비치지 않았던 박경리
그의 꾸밈없고 아낌없는 사랑은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지금도 생생히 남아있다

“선생님 댁은 제 친정집이었고 선생님은 제 친엄마였습니다” / 작가 박완서
“선생님이 너무 크시고 이런 게 아니라 저희는 늘 이웃집 할머니 같았어요” / 단골식당 사장 부부
"선생님한테 반했기 때문에 42년 동안 선생님만 열심히 따라다닌 거예요” / 前신아일보 기자 최이영
거인의 모습 속에 감춰진 소탈하고 따뜻했던 모습들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박경리의 문학을 넘어선 삶의 향기
지인들의 입을 통해 우리 모두의 어머니 박경리를 만나본다
* “연출자 최우철은 84년에 MBC에 입사한 다큐멘터리 경력 26년의 베테랑 PD이다.
오랜만에 현장으로 돌아온 최PD가 풀어내는 ‘박경리’ 이야기에서
숙성된 다큐멘터리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CP 정성후
*** 얼마전 토지의 주무대인 악양뜰과 최참판댁을 다녀온분들께
좋은 되새김질이 될것 같아 적극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