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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현대 시 스크랩 김이듬 시집 - 히스테리아
바우 추천 0 조회 90 14.08.26 09:0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히스테리아

김이듬 시집

문학과지성 시인선 454

2014년 8월 11일 발행

174쪽/8000원

한국 시단에서 유일무이한 시 세계를 구축해 온 김이듬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이 출간됐다. 이 시집에 수록된 50편 모두 한층 아름다워진 충격파로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에너지를 보여주며, 다른 한편에서는 감정의 긴장, 고조, 완결에 이르는 리듬이나 색조의 아름다운 변화가 원숙해진 필치로 펼쳐진다.

한층 더 아름다워진 충격파, 원숙해진 필치

2001년 등단 이후 “섹시한 은유와 도발적 상상력”(<별 모양의 얼룩>, 천년의시작, 2005)으로 “몽유의 마녀”(<명랑하라 팜 파탈>, 문학과지성사, 2007)가 되어, “말과 피를 동시에 철철 흘리는 온몸의 마임”(<말할 수 없는 애인>, 문학과지성사, 2011)을 보여주며 한국 시단에서 유일무이한 시 세계를 구축해 온 김이듬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 <히스테리아>(문학과지성사, 2014)를 출간했다. 그 사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파견 작가로 선정되어 반년 가까이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체류하며 쓴 시편들로 네 번째 시집 <베를린, 달렘의 노래>(서정시학, 2013)를 내기도 했다.

이번 시집 수록작 중 시인에게 <2014 웹진시인광장 올해의 좋은 시 상>을 안겨준 ‘시골 창녀’는 우리 시단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 넣어줄 시로 큰 호평을 받았는데, 시집에 수록된 50편 모두 한층 아름다워진 충격파로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에너지를 보여준다. 그런 한편에서는 감정의 긴장-고조-완결에 이르는 리듬이나 색조의 아름다운 변화가 원숙해진 필치로 펼쳐진다.

내 마음의 기생은 어디서 왔는가

오늘 밤 강가에 머물며 영감(靈感)을 뫼실까 하는 이 심정은

영혼이라도 팔아 시 한 줄 얻고 싶은 이 퇴폐를 어찌할까

밤마다 칼춤을 추는 나의 유흥은 어느 별에 박힌 유전자인가

나는 사채 이자에 묶인 육체파 창녀하고 다를 바 없다 ―‘시골 창녀’ 부분

히스테리를 불러일으키는 일들과 마주하기

김이듬은 도처에서 맞닥뜨릴 만한 불쾌하지만 사소한 것을 시 안으로 끌어들인 뒤 의미를 강력하게 확장하곤 한다. 이를테면 주문한 것과 다른 음식을 받아든 순간의 내적 갈등을 들여다보면서 세계와의 대결은 늘 영역 밖으로의 추방과 제거가 전제되어 있던 기억을 소환하거나(‘사과 없어요’) 맹인 안마사의 지리멸렬한 인생 역정을 듣는 와중에 시를 쓰는 일의 의미를 반성하기도 하는(‘변신’) 식이다. 그 외 시인이 실제로 겪은 듯한 일화들이 산재해 있다. 보이스피싱(‘운석이 쏟아지는 밤에’), 온라인 직거래 사기(‘빈티지 소울’), 시 창작 수강생과의 에피소드(‘내 눈을 감기세요’)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보이스피싱이나 온라인 거래 사기의 부조리성은 물론이거니와 시 창작 교실에서 수강생이 기성의 시를 들고 들어와 자기 것인 양 선생을 속이고, 선생은 그게 기성의 시인 줄도 모르고 맹렬히 지적했다는 이야기는 얼핏 이 세상에서 나 아닌 모든 것들이 나를 공격하고 있다는 기분을 들게 한다. 그러나 김이듬은 이렇게 히스테리를 불러일으키는 장면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이 바로 삶을 구성하는 근원적인 요소이며 고귀한 체험이라고 기꺼이 받아들인다. 사태의 발생과 시인의 수용 사이에 체념이나 회피가 아닌 돌올한 시 혼으로 일궈낸 예술적 승화가 일어난다.

이건 너무 상투적이잖아요. 이렇게 쓰시면 안 됩니다. 노인이 내민 시에 칼질을 한다. (…) 선생님, 방금 그 작품은 내가 쓴 게 아닙니다. 아무리 애써도 시를 쓸 수가 없어 유명한 시인의 수상 작품을 필사해봤어요. ―‘내 눈을 감기세요’ 부분

사회 주류의 폭력에 희생된 이들의 반란

김이듬의 시에는 자주 미혼모, 창녀, 장애인, 이혼녀, 동성애자, 정신질환자, 거지, 가난한 노인 등 사회적 소수자들이 직접 등장한다. 이들은 사회의 주류에 편승하지 못하고 중심에서 거듭거듭 밀려난 자들이다. 공동체의 주류는 이들을 이질적이고 위험스런 존재로 여기고 ‘정화’의 대상으로 삼는다. 말하자면 이들은 일종의 ‘덤’이고 ‘부산물’이며 ‘잉여’인 셈이다. 비록 유무형의 박해와 소외에 의해 주변부까지 밀려나긴 했지만 완전히 추방될 수는 없으므로 주류들의 눈 밖에서라도 머물기로 한다. 그리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사이에 조금씩,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형태로 자기들만의 질서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김이듬은 바로 그들의 질서에서 어떤 가능성을 찾는다. 중심부의 문화적 무의식을 잠식할 만한 새로움이 거기에 있고 거만하고 부조리한 기성의 질서에 일침을 놓을 날카로움이 곤두서 있기 때문이다. 이제 김이듬의 시에서 비주류들은 꿈틀대던 잠재력을 펼치려는 참이다. 다만 앙갚음은 아니게, 잊고 있던 사이에 성큼 중요해진 듯하게 반란이 일어나려 한다.

다만 꼭 그래야만 한다면,

허무와 활기가 동시에

B시의 밑바닥에서 어지럽게 퍼져 오를 거예요. ―‘B시에서 일어날 일’ 부분

히스테리아에서 유토피아의 가능성을 엿보다

‘히스테리아’라는 기묘한 나라는 앞선 시집들에서 해 온 작업들에 비추어 김이듬만이 세울 수 있는 세계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렇다면 히스테리아는 어디에 터전을 잡고 있는가. 보편적인 인식으로 세계를 중심과 주변부로 나누려 한다면 히스테리아는 분명히 주변부 어디에 울타리를 치고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김이듬의 히스테리아는 여럿이서 하나를, 다수가 소수를 둘러싸고 박해를 가하는 그 현장을 말하는 중이다. 바로 그 현장에서라면 진짜 중심은 어디인가 하는 것이 김이듬의 질문이 아닐까.

김이듬은 이번 시집을 통해 박해의 한가운데로 기꺼이 들어가서 ‘하나’의 목소리, 소수의 목소리를 따라 외친다. 오직 ‘차이’로서만 존재 가치를 증명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지만 지금부터는 가능성이 될 수 있음을, 그리고 그 가능성이 주변으로 전이될 것임을 활발하고 솔직한 시어로 주장한다. 그 최종 목적이 어우러짐을 향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어우러짐! 히스테리아에서 유토피아의 모습을 찾겠다는 이 무모한 시도 또한 시 이력 14년에 다섯 번째 시집을 내놓는 김이듬에게 맡겨봄직한 도전으로 보인다.

시인의 말

우울, 몽상, 슬픔

그리고 광기 같은 게 불러주었으나

떠돌았으니

원주, 증평, 담양

그 숨은 빛의 통로들

없었다면 받아 적지 못했을 것이다.

외로운 일,

감사하다.

2014년 여름

김이듬

시인의 산문

‘달의 물’ 한잔 마시라고 했다. 그것은 찬 ‘다래물’이었다.

‘다이어리’를 잃어버린 사람 있으면 찾아가라고 했다. 나갔더니 누군가의 ‘바이올린’이었다.

그래서 ‘잃어버린 말을 찾아서’라는 시를 초교지에서 뺐다. 몇 편 더 누락했다. 다 삭제할 순 없으니까. 대폭 수정할 기회가 있었지만 대다수의 시를 그대로 두었다. 분통 터졌고 고치기 귀찮았다. 기억보다 무의식적 기억, 발언 혹은 의견 이전인 채로 방치하는 쪽을 택했다. 내 의지와 동떨어진 ‘저항resistance’ 상태로 수정을 거부하는 심리적 충동이 들끓었다. 뭐라 하든 어쩌리.

“내 작업은 비난받고

나의 일은 어리석고 쓸모없는

불손한 죄로 보여지나니”

3백여 년 전, 윈칠리라는 여성 작가의 말을(버지니아 울프, <나만의 방>), 유감스럽게도 헐떡거리며 이 낡고 우울한 하소연이 고인 웅덩이를, 휘저어보려는 게 아니다. 뛰어들려 했다. 파도 속으로, 3백여 명의 피바다로, 살아남아서 광란하는 보통 사람들의 삶에 투신하여 단 한 편이라도 써야 했다. 부활의 시, 복수의 시, 애도는 이르지 않나? 하지만 이렇게 되다니! 내겐 지속적인 불안감이 남아 있다. 안면의 틱, 육체를 종종 내다 바치는데도 제정신이 돌아오기 전에 피부가 걸쳐 있다.

작가 소개

김이듬은 진주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했다. 부산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경상대학교 국문학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2001년 계간 <포에지> 가을호에 ‘욕조 a에서 달리는 욕조 A를 지나’ 외 6편을 발표하면서 시단에 데뷔했으며, 시집으로 <별 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 <베를린, 달렘의 노래>, <히스테리아>와 장편소설 <블러드 시스터즈>가 있다. 시와 세계 작품상, 김달진 창원문학상, 올해의 좋은 시상을 수상했다. 현재 경상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시골 창녀

진주에 기생이 많았다고 해도

우리 집안에는 그런 여자 없었다 한다

지리산 자락 아래 진주 기생이 이 나라 가장 오랜 기생 역사를 갖고 있다지만

우리 집안에 열녀는 있어도 기생은 없었단다

백정이나 노비, 상인 출신도 없는 사대부 선비 집안이었다며 아버지는 족보를 외우신다

낮에 우리는 촉석루 앞마당에서 진주교방굿거리춤을 보고 있었다

색한삼 양손에 끼고 버선발로 검무를 추는 여자와 눈이 맞았다

집안 조상 중에 기생 하나 없었다는 게 이상하다

창가에 달 오르면 부푼 가슴으로 가야금을 뜯던 관비 고모도 없고

술자리 시중이 싫어 자결한 할미도 없다는 거

인물 좋았던 계집종 어미도 없었고

색색비단을 팔러 강을 건너던 삼촌도 없었다는 거

온갖 멸시와 천대에 칼을 뽑아들었던 백정 할아비도 없었다는 말은

너무나 서운하다

국란 때마다 나라 구한 조상은 있어도 기생으로 팔려간 딸 하나 없었다는 말은 진짜 쓸쓸하다

내 마음의 기생은 어디서 왔는가

오늘밤 강가에 머물며 영감(靈感)을 뫼실까 하는 이 심정은

영혼이라도 팔아 시 한 줄 얻고 싶은 이 퇴폐를 어찌할까

밤마다 칼춤을 추는 나의 유흥은 어느 별에 박힌 유전자인가

나는 사채 이자에 묶인 육체파 창녀하고 다를 바 없다

나는 기생이다 위독한 어머니를 위해 팔려간 소녀가 아니다 자발적으로 음란하고 방탕한 감정 창녀다 자다 일어나 하는 기분으로 토하고 마시고 다시 하는 기분으로 헝클어진 머리칼을 흔들며 엉망진창 여럿이 분위기를 살리는 기분으로 뭔가를 쓴다

다시 나는 진주 남강가를 걷는다 유등축제가 열리는 밤이다

취객이 말을 거는 야시장 강변이다 다국적의 등불이 강물 위를 떠가고 떠내려가다 엉망진창 걸려 있고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더러운 입김으로 시골 장터는 불야성이다

부스스 펜을 꺼낸다 졸린다 펜을 물고 입술을 넘쳐 잉크가 번지는 줄 모르고 코를 훌쩍이며 강가에 앉아 뭔가를 쓴다 나는 내가 쓴 시 몇 줄에 묶였다 드디어 시에 결박되었다고 믿는 미치광이가 되었다

눈앞에서 마귀가 바지를 내리고

빨면 시 한 줄 주지

악마라도 빨고 또 빨고, 계속해서 빨 심정이 된다

자다가 일어나 밖으로 나와 절박하지 않게 치욕적인 감정도 없이

커다란 펜을 문 채 나는 빤다 시가 쏟아질 때까지

나는 감정 갈보, 시인이라고 소개할 때면 창녀라고 자백하는 기분이다 조상 중에 자신을 파는 사람은 없었다 ‘너처럼 나쁜 피가 없었다’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펜을 불끈 쥔 채 부르르 떨었다

나는 지금 유등 축제가 한창인 달밤에 늙은 천기(賤技)가 되어 양손에 칼을 들고 춤추는 것 같다

히스테리아

이 인간을 물어뜯고 싶다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널 물어뜯어 죽일 수 있다면 야 어딜 만져 야야 손 저리 치워 곧 나는 찢어진다 찢어질 것 같다 발작하며 울부짖으려다 손으로 아랫배를 꽉 누른다 심호흡한다 만지지 마 제발 기대지 말라고 신경질 나게 왜 이래 팽팽해진 가죽을 찢고 여우든 늑대든 튀어나오려고 한다 피가 흐르는데 핏자국이 달무리처럼 푸른 시트로 번져가는데 본능이라니 보름달 때문이라니 조용히 해라 진리를 말하는 자여 진리를 알거든 너만 알고 있어라 더러운 인간들의 복음 주기적인 출혈과 복통 나는 멈추지 않는데 복잡해 죽겠는데 안으로 안으로 들어오려는 인간들 나는 말이야 인싸이더잖아 아웃싸이더가 아냐 넌 자면서도 중얼거리네 갑작스런 출혈인데 피 흐르는데 반복적으로 열렸다 닫혔다 하는 큰 문이 달린 세계 이동하다 반복적으로 멈추는 바퀴 바뀌지 않는 노선 벗어나야 하는데 나가야 하는데 대형 생리대가 필요해요 곯아떨어진 이 인간을 어떻게 하나 내 외투 안으로 손을 넣고 갈겨쓴 편지를 읽듯 잠꼬대까지 하는 이 죽일놈을 한방 갈기고 싶은데 이놈의 애인을 어떻게 하나 덥석 목덜미를 물고 뛰어내릴 수 있다면 갈기를 휘날리며 한밤의 철도 위를 내달릴 수 있다면 달이 뜬 붉은 해안으로 그 흐르는 모래사장 시원한 우물 옆으로 가서 너를 내려놓을 수 있다면

*위 글은 문학과지성사 홈페이지 책 소개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김이듬 시인 인터뷰

우리 시대의 시적 상상력

김이듬 시인을 오래전부터 만나고 싶었지만 연락이 잘 닿지 않았다. 그는 등단 10년을 넘기던 201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해외 레지던스 파견작가로 선정돼 베를린 자유대학을 거점으로 한 학기 동안 독일에 체류한 뒤 몇 달 전 한국에 돌아왔다. 1월 초 녹지 않은 눈이 곳곳에 쌓인 진주 경상대학교 교정에서 그를 처음 보았을 때, 그는 지극히 평범한 대학강사처럼 보였다. 노골적이고 과격한 성적 표현으로 독자를 당혹스럽게 하던 모습과는 달리 그는 오히려 낯을 가리고 수줍음을 탔다. 하지만 인터뷰 시간이 길어지자 그녀는 차츰 명랑해졌다.

“문학은 한 번 사랑하게 되면 영원히 사랑하게 되는 모양이다.”

이듬은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했다. 시인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던 순간은 중학교 3학년 때, 백일장 수상을 축하한다며 담임이자 국어과 담당이었던 ‘도왕자’ 선생님이 준 책 한 권을 펼쳐본 순간이었다. <파우스트>라는 책이었는데 맨 앞장에 ‘순간을 향해 멈추어라. 너는 진정 아름다울지니…’라고 적혀 있었다. 그 선생님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을 외치며 학생들과 시를 쓰고 연극을 하는 키팅 선생과 흡사한 분이셨다.

중고교 시절에는 문예부 활동을 하며 다수의 교내외 문학상을 받았다. 대학 시절 문학 동아리에 들어갔으나 그 동아리는 곧 학생운동의 주축이 됐다. 학교 옥상에서 투신한 시인 지망생과 함께한 대학생활은 문학과 실존에 대한 깊은 회의와 상흔을 남겼다. 그는 몇 권의 습작 노트를 불태우고 창작을 포기한 채 조용하고 평범한 삶을 꿈꾸었다. 습작 원고는 탔지만 내면의 노래는 재가 되지 않고 되살아났다. 2000년 전후로 몇 차례 동아일보 등 신춘문예 최종심에 올랐으나 계속 고배를 마셨다. 2001년 원고를 묶어 출판사에 투고했고 그해 가을 계간 <포에지>로 등단했다.

첫 시집 <별 모양의 얼룩>

첫 시집 <별 모양의 얼룩>(천년의시작, 2005) 자서에 김이듬은 이렇게 썼다. “누군가 바람이 불어 해가 진다고 말한다. 버려진 아이들, 갇힌 동물들과 병중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울어주지했다. 미안하고 부끄러울 뿐.”

그의 첫 시집에 대해 문학평론가들은 “섹시한 은유와 도발적인 상상력으로 경쾌감을 준다. 감정이입이라는 여성적 원리가 시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감각적으로 보여준다”고 평했다. 그의 부끄러움과 미안함은 특유의 냉소적 미소와 위악, 거침없는 성적 이미지로 변용되어 뿜어져 나왔다.

그의 첫 시집이 발간된 2005년에는 한국 시사(詩史)엔 ‘미래파 논쟁’이 한창이었다. 시 문법의 부정과 파괴를 통해 새로운 전통을 세우려는 전위적 충동을 지닌 일군의 젊은 시인들을 ‘미래파’로 지칭한 논쟁이었는데 김이듬 또한 미래파 시인으로 분류돼 관심과 질타를 동시에 받았다.

두 번째 시집 <명랑하라 팜 파탈>

첫 시집 발간 이후 2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명랑하라 팜 파탈>(문학과지성사, 2007)이 나왔다.

“첫 시집이 부끄러워서 덮어버리려고 더 치열하게 썼던 것 같다. 하지만 두 번째 시집도 부끄럽긴 마찬가지다. 시비 걸고 투덜거리는 시 말고 반성하고 감동하고 배려하는 시를 쓴다면 덜 부끄러울까? 아무튼 시는 시인을 참혹하게 한다. 시 앞에서는 뻔뻔스러워질 수가 없다.”

더 추워지기 전에 바다로 나와

내 날개 아래 출렁이는

바다 한가운데 낡은 배로 가자

갑판 가득 매달려 시시덕거리던 연인들

물속으로 퐁당

물고기들은 몰려들지, 조금만 먹어볼래?

들리지? 내 목소리, 이리 따라와 넘어와 봐

너와 나 오래 입 맞추게” ―‘세이렌의 노래’ 전문

두 번째 시집에서 그가 애착을 갖는다는 시 중의 하나다. 그는 “모든 시는 혁명 정신, 운동성을 갖고 있다. 누가 ‘저 새는 노래한다’고 할 때, 그 규정에 대해 의심해 보아야 한다. 해서 좋은 시인은 혁명가이고 선동가이다. 모던, 리얼리즘으로 나누는 건 천박한 이분법이라고 생각한다. 서정시를 쓰는 시인 중에 오히려 더 혁명에 가담한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세 번째 시집 <말할 수 없는 애인>

시집 제목 ‘말할 수 없는 애인’은 이중적인 의미로 읽힌다. ‘비밀스러운 애인’을 뜻하는 것인지, ‘벙어리 애인’을 뜻하는지. 하지만 정작 시인은 이 제목을 통해 ‘사랑하는 모든 것을 향한 말로 표현할 수 없음’을, 그 자명한 언어의 한계에 대한 비통함을 말하고자 했다고 한다. 주체의 중얼거림, 인간의 발화, 언어 이전의 세계에 대한 사유가 있었다고 한다.

“뛰어난 궁수들은 과녁에 대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될 때라야 비로소 과녁을 맞힐 수 있다고 한다. 저 또한 자아와 언어로부터 자유로워질 시기가 된 것 같다.” <말할 수 없는 애인>(문학과지성사, 2011)은 ‘한국문화예술위 우수문학도서’와 ‘김달진창원문학상’ 수상 시집으로 선정됐다.

장편소설 <블러드 시스터즈>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출간하는 청소년 계간 잡지 <풋>에 1년 동안 연재했던 소설을 2011년에 책으로 묶은 것이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민주화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학생운동이 그 정점으로 떠올랐던 1980년대 사회 변동의 시기다. 그러나 정치나 이데올로기 같은 거대 담론보다는 그 사회 상황에서 방황하는 청춘 개인의 복잡한 내면 관계의 불모성을 더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독문학을 전공하는 여대생 여울은 부모의 이혼, 남동생의 죽음으로 집을 나와 학교 선배인 지민의 자취방에서 함께 산다. 지민은 운동권 학생인데, 여울은 운동 자체보다 지민에 대한 호감 때문에 학생운동에 관심을 갖는다. 여울은 아르바이트를 하던 카페에서 선균이란 남자를 알게 된다. 어느 날 지민이 자살하고, 선균이 그녀를 강간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소설에는 동성애, 우정, 남녀 간의 사랑 등 다양한 관계가 등장하지만 어느 것도 서로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결핍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시는 뭐냐”는 질문에 그는 “인간이란 뭐냐, 사랑이란 뭐야 하는 질문처럼 원초적 질문이다. 뭐라고 확정하면 위험하다. 유보적이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그것이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이듬의 시는 연극 <변태(變態)>의 텍스트로도 쓰였고 올해에는 미국에서 시선집이 나올 예정이다. 이번 겨울 방학에는 특별한 계획이 없다. 여행 계획이나 다른 출간 계획도 없다. 일주일에 한번 문학과지성사 문화원 ‘사이’’에서 글쓰기 워크숍 강의를 할 뿐이다. 올해 봄 학기부터는 통영에 있는 경상대학교 분교에서만 강의를 하며 느릿하게 첫 번째 산문집 원고를 다듬으며 조용하게 다소 적적하게 지낼 계획이다. [경남신문 이상규 기자 2013.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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