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굽은 소나무
도봉산 마당바위에 다다를 때쯤
내가 높이 오르기라도 한 것처럼
어깨춤을 추다가 헛발 디뎌
천 길 낭떠러지 밑으로 굴러떨어질 뻔한
그 아찔한 순간에 덥썩 붙들 것이 보였다
나를 향해 쑥 내민 소나무의 등이 보였다
오르내리던 사람들에게 붙잡혀 온
반드레한 등을 문지르며
높푸른 하늘을 본다
바람은 왜 이토록 가파른 길옆으로
솔방울을 굴려 솔씨 하나를 받아냈을까
하늘은 왜 이 소나무가
비탈길 쪽으로 쭈욱
등을 내밀며 커가도록 놔뒀을까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 연구』¹를 읽으며
친구가 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박사를 마치기까지는
2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돌아보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까지 29km 그 굽이진 길을,
제사장과 레위인과 선한 사마리아인이 등장하는
그 길을 품고 살아온 셈이다
아내가 허옇게 센 그의 머리 위에 박사모를 얹어줄 떄
그의 얼굴이 신랑 때처럼 활짝 피어났다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라고 경솔히 묻던 율법사에게
주님이 입을 열어 들려주신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²는 짧지만
성경 66권을 감싸줄 보자기와 같은 이야기이다
우리는 지금 선한 사마리아인이 머물렀던
비유의 길목에 서있다
믿는 사람은 성경책과 더불어 나이를 먹는다
이 나이 먹도록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율법사에게 주님이 던진 질문,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내가 진정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죽도록 두들겨 맞고 쓰러진
저 불쌍한 사람의 이웃이었는지
내가 오늘 해가 지기 전에 저 불쌍한 사람의 상처 위에
기름을 부어주고 포도주를 부어 싸매줬는지
내게는 과연 저 불쌍한 사람을 돌보던
불면의 밤이 몇 밤이나 있었는지
내가 혹시 저 불쌍한 사람을 못 본 체하고 지나친,
저 두 사람과 똑같은 사람은 아닌지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셨다”³는,
비유의 교사 예수는 경솔한 율법사에게
학생을 대하듯이 물었다
이 셋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인가
스승을 빼닮은 의사 누가 또한
나를 진단하듯 되묻고 있다
셋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인가
1) 오영출 목사의 박사학위 논문(2023년 개신대학원대학교)
2) 눅10:25~37
3) 막4:34
- 《창조문예》 (2024.4, 제327호), 52-5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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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종
1985년 《전우신문》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시작. 2014년 《창조문예》, 2019년 《문예연구》 시 부문
신인문학상 수상. 편저로 『박이도 시인을 찾아서』 (광선,2014), 시집으로 『건빵에 난 두 구멍』 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