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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八回 曹沫手劍劫齊侯 桓公舉火爵甯戚
제18회: 조말이 칼로 제환공을 겁박하고 제환공은 불을 들어 영척에게 벼슬을 주다
周釐王元年春正月,齊桓公設朝,群臣拜賀已畢,問管仲曰:「寡人承仲父之教,更張國政。今國中兵精糧足,百姓皆知禮義,意欲立盟定伯,何如?」管仲對曰:「當今諸侯,強於齊者甚眾。南有荊楚,西有秦晉。然皆自逞其雄,不知尊奉周王,所以不能成霸。周雖衰微,乃天下之共主。東遷以來,諸侯不朝,不貢方物,故鄭伯射桓王之肩,五國拒莊王之命,遂令列國臣子,不知君父。熊通僭號,宋鄭弒君,習為故然,莫敢征討。今莊王初崩,新王即位,宋國近遭南宮長萬之亂,賊臣雖戮,宋君未定,君可遣使朝周,請天子之旨,大會諸侯,立定宋君。宋君一定,然後奉天子以令諸侯,內尊王室,外攘四夷。列國之中,衰弱者扶之,強橫者抑之,昏亂不共命者,率諸侯討之。海內諸侯,皆知我之無私,必相率而朝於齊。不動兵車,而霸可成矣。」
주리왕(周釐王) 원년(기원전681년) 봄 정월에 제환공이 조회에서 신하들의 신년 축하 인사를 받고, 관중에게 묻기를, “과인이 중보의 가르침을 받고 국정을 쇄신했습니다. 오늘날 나라의 군사들은 정예하고 양식은 풍족해서 백성들은 모두 예의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회맹(會盟)을 행하여 패업을 정하려고 하는데 중보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하니, 관중이 대답하기를, “지금 제후들 중에 제나라보다 강한 나라가 많습니다. 남쪽에는 형(荊) 땅의 초나라와 서쪽의 진(秦)나라와 진(晉)나라가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 각기 영웅으로 자처하면서 주왕을 받들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패업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왕실은 비록 쇠약하게 되었으나 천하의 주인입니다. 주왕실이 동쪽의 낙읍으로 천도한 이래로 제후들이 입조하여 공물을 바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나라 축담이 주환왕의 어깨를 활로 쏘았고, 또 다섯 나라는 주장왕의 명을 거역하여 마침내 열국의 신하들이 임금과 신하의 구별도 모르게 되었습니다. 초(楚)나라 웅통(熊通)이 왕호를 참칭하고, 송나라와 정나라는 그 군주들을 습관처럼 죽였음에도 감히 토벌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주장왕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고, 새로운 천자가 즉위했음에도, 송나라에서는 남궁장만의 난이 일어나 역신을 비록 죽였으나 송나라 군주 자리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주군께서는 사절을 주나라 왕실에 보내어 천자의 조칙을 청하여 제후들을 크게 모으고 송나라 군주를 정하십시오. 송나라 군주의 자리가 일단 정해지면 그다음에 천자의 명을 받들어 제후들을 다스리고 안으로는 왕실을 높이고 밖으로는 사방의 오랑캐를 물리쳐야 합니다. 열국 중에 쇠약한 나라는 붙들어주고 강하고 횡포한 나라는 억누르시고, 명을 받들지 않고 천하를 혼란하게 하는 자는 제후들을 인솔하여 토벌하십시오. 중원의 제후들이 우리가 공평무사하다는 것을 모두 알면 틀림없이 서로 무리를 지어 우리 제나라에 입조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군사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패업을 이룰 수 있습니다.” 했다.
桓公大悅。於是遣使至洛陽朝賀釐王,因請奉命為會,以定宋君。釐王曰:「伯舅不忘周室,朕之幸也。泗上諸侯,惟伯舅左右之,朕豈有愛焉?」使者回報桓公。桓公遂以王命布告宋、魯、陳、蔡、衛、鄭、曹、邾諸國,約以三月朔日,共會北杏之地。桓公問管仲曰:「此番赴會,用兵車多少?」管仲曰:「君奉王命,以臨諸侯,安用兵車?請為衣裳之會。」桓公曰:「諾。」乃使軍士先築壇三層,高起三丈。左懸鐘,右設鼓,先陳天子虛位於上,旁設反坫,玉帛器具,加倍整齊。又預備館舍數處,悉要高敞合式。
제환공이 크게 기뻐하며 즉시 사자를 낙양으로 보내어 주리왕의 즉위를 경축하고, 명을 받들어 회맹을 하여 송나라 군주를 정하겠다고 청했다. 주리왕이 말하기를, “백구(伯舅 ; 천자가 성이 다른 제후를 일컫는 말)가 주나라 왕실을 잊지 않고 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오. 사수(泗水) 강변의 제후들은 오로지 제환공의 명을 따르고 있으니 짐이 어찌 기뻐하지 않겠는가?” 했다.제나라 사자가 돌아와서 제환공에게 고하니, 제환공이 즉시 왕명을 송(宋)나라, 노(魯)나라, 진(陳)나라, 채(蔡)나라, 위(衛)나라, 정(鄭)나라, 조(曹)나라, 주(邾)나라 등에 알려서, 3월 초하루에 북행(北杏) 땅에서 모두 모이기로 약속했다. 환공이 관중에게 묻기를, “이번 회맹에 갈 때는 전차를 얼마나 데리고 가야 합니까?” 하니, 관중이 말하기를, “주군께서 왕명을 받들어 제후들에게 임하는데 어찌 전차를 몰고 갈 수 있겠습니까? 청컨대 예복을 갖추고 회맹에 가십시오.” 했다. 환공이 말하기를,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즉시 군사들을 먼저 보내어 높이가 세 길인 3층 제단을 쌓고, 왼쪽에는 종을 걸게 하고 오른쪽에는 북을 매달았으며, 맨 위에 천자의 빈자리를 만들고 곁에는 반점(주객이 헌수를 마치고 술잔을 올려놓는 곳)을 세웠다. 옥과 비단과 모든 기구를 갖추어 잘 정돈하였다. 또한 높고 시원한 곳에 모두 격식에 맞도록 관사를 여러 곳에 미리 지었다.
至期,宋桓公御說先到,與齊桓公相見,謝其定位之意。次日,陳宣公杵臼,邾子克二君繼到。蔡哀侯獻舞,恨楚見執,亦來赴會。四國見齊無兵車,相顧曰:「齊侯推誠待人,一至於此。」乃各將兵車退在二十里之外。時二月將盡,桓公謂管仲曰:「諸侯未集,改期待之,如何?」管仲曰:「語云:『三人成眾。』今至者四國,不為不眾矣。若改期,是無信也。待而不至,是辱王命也。初合諸侯,而以不信聞,且辱王命,何以圖霸?」桓公曰:「盟乎,會乎?」管仲曰:「人心未一,俟會而不散,乃可盟耳。」桓公曰:「善。」
이윽고 약속한 기일이 되자 송환공(宋桓公) 어설(御說)이 먼저 도착하여 제환공과 서로 만나 자기의 군주 자리를 정하기 위하여 이런 모임을 베풀어 준 데 대해 감사의 말을 했다. 다음날 진선공(陳宣公) 저구(杵臼)와 주(邾)나라 군주로 자작(子爵)인 극(克) 두 사람이 뒤를 이어 도착하고, 이어서 채애후 헌무가 초나라에 잡혀갔던 한을 품고 역시 회합에 달려왔다. 네 나라 군주들은 제환공이 전차를 한 대도 끌고 오지 않은 것을 보고 서로 돌아보며 말하기를, “제환공이 지성으로 우리를 대하는 것이 이렇듯 한결같군요.” 했다. 그들은 각기 이끌고 온 전차를 20리 밖으로 물러나게 했다. 때는 2월이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환공이 관중에게 말하기를, “제후들이 아직 모이지 않았으니 기일을 다시 정하여 기다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관중이 말하기를, “옛말에 ‘세 사람이면 무리를 이룬다.’ 고 했습니다. 지금 네 나라 제후들이 모였으니 무리가 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만약 기일을 변경하면 믿음을 잃게 됩니다. 기다려도 오지 않으면 왕명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처음으로 제후들이 모였는데 믿음이 없다는 소문이 나거나, 또한 왕명을 욕되게 한다면, 어찌 패업을 도모하겠습니까?” 했다. 환공이 말하기를, “동맹을 할까요, 회합만 하고 말까요?” 하니, 관중이 말하기를, “아직 인심이 하나가 되지는 못했지만, 회합을 열어서 마음이 흩어지지 않으면 곧 동맹이 될 것입니다.” 했다. 환공이 말하기를, “좋습니다.” 했다.
三月朔,昧爽,五國諸侯,俱集於壇下。相見禮畢,桓公拱手告諸侯曰:「王政久廢,叛亂相尋。孤奉周天子之命,會群公以匡王室。今日之事,必推一人為主,然後權有所屬,而政令可施於天下。」諸侯紛紛私議:欲推齊,則宋爵上公,齊止稱侯,尊卑有序;欲推宋,則宋公新立,賴齊定位,未敢自尊。事在兩難。陳宣公杵臼越席言曰:「天子以糾合之命,屬諸齊侯,誰敢代之?宜推齊侯為盟會之主。」諸侯皆曰:「非齊侯不堪此任,陳侯之言是也。」桓公再三謙讓,然後登壇。齊侯為主,次宋公,次陳侯,次蔡侯,次邾子。
3월 초하루 동틀 무렵에 다섯 나라 제후들이 단 아래에 모두 모였다. 서로 상견례를 치르고 나자 제환공이 두 손을 올려 예를 표하면서 제후들에게 말하기를, “왕정이 오랫동안 시행되지 않고 반란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가 주천자의 명령을 받들어 여러 군주를 모시고 왕실을 보좌하려고 합니다. 오늘의 일은 반드시 한 사람을 맹주로 정한 후에 그 권한을 위임하여 천자의 정령을 천하에 펼치도록 해야 합니다.” 하니, 제후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제환공을 맹주로 추대하려고 했으나 송환공의 작위는 공작(公爵)인데, 제환공의 작위는 후작(侯爵)에 머물러, 높고 낮은 것에도 순서가 있다고 하여 송환공을 세우려고 했으나, 송환공이 즉위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맹주의 자리를 제환공에게 양보했다. 그러나 제환공이 감히 스스로 높이지 못하여 일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됐다. 진선공 저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하기를, “천자의 명으로 이렇게 모였는데 맹주를 제환공으로 하지 않으면 누가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마땅히 제환공을 맹주로 추대하여야 합니다.” 하니, 제후들이 모두 말하기를, “제환공이 아니면 이 일을 감당하지 못하니, 진선공의 말이 옳습니다.” 했다. 제환공이 재삼 겸양한 뒤에야 단에 올라 맹주가 되고, 다음에 송환공, 진선공, 채애후, 주(邾)자작(子爵)이 순서대로 단에 올랐다.
排列已定,鳴鐘擊鼓,先於天子位前行禮,然後交拜,敘兄弟之情。仲孫湫捧約簡一函,跪而讀之曰:「某年月日,齊小白,宋御說、陳杵臼、蔡獻舞、邾克,以天子命,會於北杏,共獎王室,濟弱扶傾。有敗約者,列國共征之!」諸侯拱手受命。《論語》稱桓公九合諸侯,此其第一會也。髯翁有詩云:「濟濟冠裳集五君,臨淄事業赫然新。局中先著誰能識?只為推尊第一人。」諸候獻酬甫畢,管仲歷階而上曰:「魯、衛、鄭、曹,故違王命,不來赴會,不可不討。」齊桓公舉手向四君曰:「敝邑兵車不足,願諸君同事!」陳、蔡、邾三君齊聲應曰:「敢不率敝賦以從。」惟宋桓公嘿然。
제후들의 배열이 정해지자, 종을 울리고 북을 쳐서 먼저 비워둔 천자의 자리를 향하여 예를 올리고, 그런 뒤에 서로 절을 교환하여 형제의 정을 나누었다. 제나라의 중손추가 죽간이 들어 있는 상자를 들고 와서 무릎을 꿇고 읽기를, “모년 모월 모일에 제소백(齊小伯), 송어설(宋御說), 진저구(陳杵臼), 채헌무(蔡獻舞), 주극(邾克)은 천자의 명을 받아 북행에 모여 힘을 합하여 왕실을 받들고 약한 자를 보살피고 쓰러지려는 자는 부축하여 돕고자 한다. 이를 어기는 자는 열국이 함께 토벌하기로 한다.” 했다. 제후들이 두 손을 들어 예를 표하고 명을 받들었다. <논어>에서 제환공을 칭찬하여 제후들을 아홉 번 모이게 했다고 했는데, (북행에서의) 이 회맹이 첫 번째 회맹이었다. 염옹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의관을 정제한 다섯 군주가 모였으니, 제나라의 사업이 새롭게 빛나게 되었도다. 모임을 먼저 계획하기는 누구의 식견인가? 다만 높이 추대된 사람이 제일 인물이라.” 했다. 제후들이 서로 헌수하기를 마치자, 관중이 계단을 밟고 단상에 올라가 말하기를, “노(魯)나라, 위(衛)나라, 정(鄭)나라, 조(曹)나라는 일부러 왕명을 어기고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으니 토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제환공이 손을 들어 네 나라 군주들을 향하여 말하기를, “우리 제나라만의 전차로는 부족하니, 원컨대 군주들께서는 함께 거사하십시다.” 했다. 진(陳)나라, 채(蔡)나라, 주(邾)나라 군주들은 일제히 대답하기를, “어찌 감히 저희 나라가 군졸을 내어 종군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했다. 오직 송환공만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是晚,宋公回館,謂大夫戴叔皮曰:「齊侯妄自尊大,越次主會,便欲調遣各國之兵。將來吾國且疲於奔命矣!」叔皮曰:「諸侯從違相半,齊勢未集。若征服魯鄭,霸業成矣。齊之霸,非宋福也。與會四國,惟宋為大,宋不從兵,三國亦將解體。況吾今日之來,止欲得王命,以定位耳。已列於會,又何俟焉?不如先歸。」宋公從其言,遂於五更登車而去。齊桓公聞宋公背會逃歸,大怒,欲遣仲孫湫追之。管仲曰:「追之非義,可請王師伐之,乃為有名。然事更有急於此者。」
그날 밤 송환공이 관사에 돌아가서 대부 대숙피에게 말하기를, “제후가 망령되게 스스로를 높이고 더욱이 회맹의 맹주가 되어 여러 나라의 군사들을 징발하려고 하오. 앞으로 우리나라는 제후의 명령을 받들기에 바빠 피폐해질 것이오.” 하니, 대숙피가 말하기를, “제후 중에서 이번에 오지 않은 나라도 반이나 됩니다. 제나라는 아직 세력을 잡지 못했습니다. 만약 (제나라가) 노나라와 정나라를 정복하면 제나라는 패업을 성취하게 됩니다. 제나라의 성공은 우리 송나라의 복이 아닙니다. 이곳에 모인 네 나라 중에 오로지 송나라만이 대국입니다. 우리 송나라가 병사를 내지 않으면 세 나라도 역시 흩어질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가 오늘 이곳에 온 이유는 단지 왕명을 받들어 주군의 자리를 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미 회맹에 참석해 그 뜻을 이룬 이상 또 무엇을 기다리겠습니까?. 먼저 돌아가느니만 못할 것입니다.” 했다. 송환공이 그 말에 따라 오경(새벽 4시경)이 되었을 때 수레를 타고 송나라로 돌아가 버렸다. 제환공은 송환공이 회맹을 배반하고 돌아가 버린 것을 알고 대로하여 중손추를 보내 쫓으려 했다. 관중이 말하기를, “추격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왕의 군대로 치기를 청하는 것이 명분에 맞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급한 일이 있습니다.” 했다.
桓公曰:「何事更急於此?」管仲曰:「宋遠而魯近,且王室宗盟,不先服魯,何以服宋?」桓公曰:「伐魯當從何路?」管仲曰:「濟之東北有遂者,乃魯之附庸,國小而弱,纔四姓耳。若以重兵壓之,可不崇朝而下。遂下,魯必悚懼。然後遣一介之使,責其不會。再遣人通信於魯夫人。魯夫人欲其子親厚於外家,自當極力慫恿。魯侯內迫母命,外怵兵威,必將求盟。俟其來求,因而許之。平魯之後,移兵於宋,臨以王臣,此破竹之勢也。」桓公曰:「善。」乃親自率師至遂城,一鼓而下。因駐兵於濟水。
환공이 말하기를, “무엇이 이보다 더 급합니까?” 하니, 관중이 말하기를, “송나라는 멀고 노나라는 가깝습니다. 또한 왕실의 동종이니 노나라를 먼저 복종시키지 않으면 어떻게 송나라를 복종시킬 수 있겠습니까?” 했다. 환공이 말하기를, “노나라를 치려면 어느 길을 취해야 합니까?” 하니, 관중이 말하기를, “제수(濟水)의 동북쪽에 수(遂)나라가 있는데 이 나라는 노나라의 부용국(附庸國)으로 나라는 작고 그 세력은 약합니다. 또한 네 성(姓)이 살 뿐입니다. 만약 많은 군사를 동원하여 압력을 가하면 아침나절에 항복시킬 수 있습니다. 수나라가 항복하면 노나라는 틀림없이 두려워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 한 사람의 사자를 보내어 회맹에 참석하지 않음을 꾸짖고, 한편으로는 편지를 써서 사람을 시켜 노부인에게 보내십시오. 노부인은 원래 아들이 외가와 가깝게 지내기를 바라기에 스스로 힘써 노후를 종용(慫慂)할 것입니다. 노후가 안으로 모친에게 압력을 받고, 밖으로는 군사들의 위협을 받게 되면, 반드시 회맹을 하자고 할 것입니다. 노나라가 회맹을 청해 올 때를 기다렸다가 허락하십시오. 노나라 문제를 푼 다음에 군사를 송나라로 옮겨 주군께서 천자의 신하로서 임하게 되면 이것은 바로 파죽지세(破竹之勢)입니다.” 했다. 환공이 말하기를, “좋은 계책입니다.” 하고 즉시 친히 군사를 인솔하고 수성(遂城)에 이르러서 북을 한번 치자, 수나라가 항복했다. 그리하여 제환공은 제수(濟水)가에 군사를 주둔시켰다.
魯莊公果懼,大集群臣問計。公子慶父曰:「齊兵兩至吾國,未嘗得利,臣願出兵拒之。」班中一人出曰:「不可!不可!」莊公視之,乃施伯也。莊公曰:「汝計將安出?」施伯曰:「臣嘗言之:管子天下奇才,今得齊政,兵有節制,其不可一也;北杏之會,以奉命尊王為名,今責違命,理曲在我,其不可二也;子糾之戮,君有功焉,王姬之嫁,君有勞焉,棄往日之功勞,結將來之仇怨,其不可三也。為今之計,不若修和請盟,齊可不戰而退。」曹劌曰:「臣意亦如此。」
과연 노장공이 두려워하여 군신들을 모두 모아 놓고 그 대책을 물었다. 공자경보(公子慶父)가 말하기를, “제나라 군사들이 두 번이나 우리나라를 쳐들어왔으나 한 번도 우리한테 이기지 못했습니다. 원컨대 신이 나가서 제나라 군사들을 막겠습니다.” 했다. 반열 중에서 한 사람이 나와 말하기를, “안 됩니다. 안 됩니다.” 했다. 노장공이 보니 바로 시백이었다. 장공이 말하기를, “그대는 어떤 계책을 갖고 있는가?” 하니, 시백이 말하기를, “신은 일찍이 관중은 천하의 기재(奇才)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그가 제나라 정사를 맡아서 군사들은 절제가 있으니, 우리가 대항할 수 없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북행(北杏)의 회맹은 왕명을 받들어 천자를 높인다는 명분으로 행한 일로써, 지금 왕명을 어긴 것을 책망하니, 잘못은 우리에게 있어서 대항할 수 없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주군께서 제나라 공자 규를 죽인 일은 제환공을 위해 공을 세운 것이고, 또한 왕녀와 제환공의 혼사를 주관하시어 주군께서 공로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날의 공로를 버리고 앞으로 그들과 원수를 맺기 위해 싸운다는 것이 그 세 번째 불가함입니다. 지금을 위한 계책은 오로지 강화를 맺고 동맹을 청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나라 군사들은 싸우지 않고 물러갈 것입니다.” 했다. 조귀가 말하기를, “신의 뜻도 그와 같습니다.” 했다.
正議論間,報道:「齊侯有書至。」莊公視之,大意曰:「寡人與君並事周室,情同昆弟,且婚姻也。北杏之會,君不與焉。寡人敢請其故?若有二心,亦惟命。」齊侯另有書通信於文姜,文姜召莊公語之曰:「齊魯世為甥舅,使其惡我,猶將乞好,況取平乎?」莊公唯唯。乃使施伯答書,略曰:「孤有犬馬之疾,未獲奔命。君以大義責之,孤知罪矣!然城下之盟,孤實恥之!若退舍於君之境上,孤敢不捧玉帛以從。」齊侯得書大悅,傳令退兵於柯。魯莊公將往會齊侯,問:「群臣誰能從者?」
의논하는 사이에 보고하기를, “제환공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했다. 노장공이 보니 대략 이르기를, “과인과 노나라 군주는 주나라 왕실을 위해 같이 일하므로 그 정은 형제와 같고 또 혼인으로 맺어져 있습니다. 북행의 회합에 군주께서 참석하지 않으셨는데, 과인이 감히 그 까닭을 묻고자 합니다. 만약에 다른 뜻이 있으셨다면 그 이유를 알려주기 바랍니다.” 했다. 제환공이 따로 편지 한 통을 문강(文姜)에게 보냈다. 문강은 장공을 불러 말하기를, “제나라와 노나라는 대대로 혼인으로 맺어진 사이인데 그들이 우리를 미워하게 해놓고 오히려 우호를 청하면 두 나라가 친해질 수 있겠느냐?” 했다. 노장공은 “예, 예”라고 했다. 곧 시백에게 답서를 쓰도록 했다. 대략 이르기를, “과인이 병이 들어 왕명을 받들어 달려가지 못했습니다. 군주께서 대의로 이를 책망하시니 저는 죄가 있음을 알겠습니다. 그러나 성 아래에서 항복하는 일은 저에게 실로 치욕입니다. 만약 군사들을 두 나라 경계에 물리신다면 제가 감히 옥백(玉帛)을 바치지는 못하나 명을 따르겠습니다.” 했다. 제환공이 편지를 받고 크게 기뻐하여 군사들에게 명령하여 가(柯) 땅으로 퇴군했다. 노장공이 제환공을 만나러 가기로 하고, 여러 신하에게 묻기를, “누가 나를 따라가겠는가?” 했다.
將軍曹沫請往。莊公曰:「汝三敗於齊,不慮齊人笑耶?」曹沫曰:「惟恥三敗,是以願往,將一朝而雪之。」莊公曰:「雪之何如?」曹沫曰:「君當其君,臣當其臣。」莊公曰:「寡人越境求盟,猶再敗也。若能雪恥,寡人聽子矣!」遂偕曹沫而行,至於柯地。齊侯預築土為壇以待。魯侯先使人謝罪請盟,齊侯亦使人訂期。是日,齊侯將雄兵布列壇下,青紅黑白旗,按東南西北四方,各自分隊,各有將官統領,仲孫湫掌之。階級七層,每層俱有壯士,執著黃旗把守。壇上建大黃旗一面,繡出「方伯」二字。旁置大鼓,王子成父掌之。
장군 조말(曹沫)이 가기를 청했다. 노장공이 말하기를, “그대는 제나라에게 세 번 패했는데 제나라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살까 걱정되지 않소?” 하니, 조말이 말하기를, “세 번 패한 일을 치욕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가서 한번에 설욕하려고 합니다.” 했다. 노장공이 말하기를, “어떻게 설욕할 것인가?” 하니, 조말이 말하기를, “주군께서는 그 군주를 담당하시고 저는 그 신하를 담당할 것입니다.” 했다. 노장공이 말하기를, “과인이 국경을 벗어나 동맹을 구하는 것은, 다시 한번 패하는 것과 같소. 만약 그대가 설욕을 할 수 있다면 과인은 그대의 청을 들어주겠소!” 했다. 마침내 노장공은 조말과 함께 가(柯) 땅에 이르렀다. 제환공은 미리 흙으로 제단을 쌓아 놓고 노장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노장공이 먼저 사람을 보내 사죄하고 동맹하기를 청하자, 제환공 역시 사람을 보내어 회맹할 날짜를 정해 알려왔다. 그날이 되자 제환공은 건장한 병사들을 단 아래에 도열시키고 동서남북에 청, 홍, 흑, 백의 깃발을 세운 다음에 각기 대오를 정하고 장수와 통령을 두고 중손추가 지휘하게 했다. 7층 계단의 층마다 장사를 세우고 노란색의 깃발을 들고 지키게 하였으며, 단상에는 ‘방백’이라고 수를 놓은 노란색의 큰 기를 세우고, 옆에는 큰북을 놓아 왕자 성보가 관장하게 했다.
壇中間設香案,排列著朱盤玉盂盛牲歃盟之器,隰朋掌之。兩旁反坫,設有金尊玉斝,寺人貂掌之。壇西立石柱二根,繫著烏牛白馬,屠人準備宰殺,司庖易牙掌之。東郭牙為儐,立於階下迎賓。管仲為相。氣象十分整肅。齊侯傳令:「魯君若到,止許一君一臣登壇,餘人息屏壇下。」曹沫衷甲,手提利劍,緊隨著魯莊公。莊公一步一戰,曹沫全無懼色。將次升階,東郭牙進曰:「今日兩君好會,兩相贊禮,安用凶器?請去劍!」曹沫睜目視之,兩盡裂。東郭牙倒退幾步。莊公君臣歷階而上。兩君相見,各敘通好之意。三通鼓畢,對香案行禮。
단의 중간에 향을 피우는 탁자를 놓고, 그 위에 붉은 쟁반과 옥 사발과 희생의 피를 담아 입술에 바를 회맹용 그릇 등을 배열해 놓고 습붕이 주관했으며, 양옆에 반점(反坫 ; 주객이 헌수를 마치고 술잔을 올려놓는 곳)과 금 술통과 옥 술잔을 두고 시인 초(貂)가 맡았으며, 제단의 서쪽에는 돌기둥 두 개를 세워 검은 소와 흰 말을 묶어 놓고 백정이 희생을 잡을 준비를 하고, 궁전 요리사인 역아(易牙)가 감독을 맡았다. 동곽아는 계단 아래에 서서 손님을 맞아 인도다. 관중은 (회맹을 보조하는) 상(相)이 되어 그 기상이 자못 엄숙했다. 제환공이 명령하기를, “노나라의 군주가 도착하면 오로지 군주와 수행하는 신하 한 사람만이 제단에 오르고 남은 사람들은 단 밑에 머물게 하라!” 했다. 조말은 옷 속에 갑옷을 받쳐 입고 손에는 예리한 칼을 잡고 노장공의 뒤에 바짝 붙어 따랐다. 노장공은 한 걸음 내디디고 한번 떨었으나, 조말은 전혀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장차 계단을 오르려는데 동곽아가 나서며 말하기를, “오늘은 두 군주께서 기쁘게 회합하고 두 보조자(相)가 예를 갖춰야 하는데 어찌 흉기를 쓰겠습니까? 청컨대, 칼은 버리시고 올라가십시오.” 했다. 조말이 눈을 부릅뜨고 동곽아를 노려보는데 그의 양쪽 눈꼬리가 찢어지는 듯했다. 동곽아가 주춤하며 뒤로 몇 걸을 물러섰다. 노장공과 조말이 계단을 밟고 위로 올라갔다. 두 나라의 군주들이 서로 상견례를 올리고 각각 서로 수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북소리가 세 번 울리고 향을 피운 탁자를 마주하여 절을 했다.
隰朋將玉盂盛血,跪而請歃。曹沫右手按劍,左手攬桓公之袖,怒形於色。管仲急以身蔽桓公,問曰:「大夫何為者?」曹沫曰:「魯連次受兵,國將亡矣。君以濟弱扶傾為會,獨不為敝邑念乎?」管仲曰:「然則大夫何求?」曹沫曰:「齊恃強欺弱,奪我汶陽之田,今日請還,吾君乃就歃耳!」管仲顧桓公曰:「君可許之。」桓公曰:「大夫休矣,寡人許子!」曹沫乃釋劍,代隰朋捧盂以進。兩君俱已歃訖。曹沫曰:「仲主齊國之政,臣願與仲歃。」桓公曰:「何必仲父?寡人與子立誓。」乃向天指日曰:「所不反汶陽田於魯者,有如此日!」曹沫受歃,再拜稱謝。獻酬甚歡。
습붕이 희생의 피가 담긴 옥 사발을 가져와서 무릎을 꿇고 입술에 피를 바르는 의식을 청했다. 조말이 오른손으로 칼을 들고 왼손으로 환공의 소매를 움켜쥐고 노기를 얼굴에 드러내었다. 관중이 급히 몸으로 제환공을 가리며 묻기를, “대부는 어찌하려는 것이요?” 하니, 조말이 말하기를, “노나라는 계속해서 제나라의 침략을 받아 나라가 망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제나라 군주께서는 약한 자를 구하고 쓰러지는 자는 부축하기로 회맹했다는데, 유독 우리 노나라에게만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했다. 관중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대부께서는 무엇을 원하십니까?” 하니, 조말이 말하기를, “제나라는 군사의 강함을 믿고 약자를 기만하여 우리 노나라의 문양(汶陽) 땅을 뺏어 갔습니다. 오늘 그 땅을 돌려주신다면 저희 주군께서 즉시 삽혈을 하겠습니다.” 했다. 관중이 제환공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주군께서는 허락하시기 바랍니다.” 하니, 제환공이 말하기를, “대부께서는 멈추시오. 과인이 허락하겠소.” 했다. 조말이 즉시 칼을 놓고, 습붕을 대신하여 희생의 피가 담긴 옥 사발을 두 군주에게 바쳤다. 두 군주가 모두 입술에 피를 바르는 의식(삽혈)을 마치자, 조말이 말하기를, “중보께서는 제나라의 정사를 도맡아 처리하고 계시니 저와 같이 입술에 피를 바르기를 원합니다.” 했다. 제환공이 말하기를, “하필 중보와 같이하려고 합니까? 과인이 그대와 맹세하겠오.” 하고 즉시 하늘의 해를 가리키면서 맹세하기를, “만약 문양의 땅을 노나라에 돌려주지 않는다면 태양이 나를 벌하소서!” 했다. 조말도 뒤따라 피를 바르고 환공에게 재배하여 감사하며 술잔을 바치고 대단히 기뻐했다.
既畢事,王子成父諸人,俱憤憤不平,請於桓公,欲劫魯侯,以報曹沫之辱。桓公曰:「寡人已許曹沫矣!匹夫約言,尚不失信,況君乎?」眾人乃止。明日,桓公復置酒公館,與莊公歡飲而別。即命南鄙邑宰,將原侵汶陽田,盡數交割還魯。昔人論, 要盟可犯,而桓公不欺,曹子可仇,而桓公不怨,此所以服諸侯霸天下也。有詩云:「巍巍霸氣吞東魯,尺劍如何能用武?要將信義服群雄,不吝汶陽一片土。」又有詩單道曹沫劫齊桓公一事,此乃後世俠客之祖。詩云:「森森戈甲擁如潮,仗劍登壇意氣豪,三敗羞顏一日洗,千秋俠客首稱曹。」
이미 회맹이 끝나자, 왕자 성보와 여러 사람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불평하여, 제환공에게 노장공을 겁박하여 조말에게서 받은 수모를 갚아야 한다고 했다. 환공이 말하기를, “과인이 이미 조말에게 허락했소! 필부도 약속하고 신의를 어기면 안 되거늘 항차 군주의 약속이겠소!” 하니, 여러 사람이 그만두었다. 다음 날 제환공이 다시 공관에 술자리를 준비하여 노장공과 작별의 술잔을 나누고 헤어졌다. 제환공은 즉시 남쪽 변경의 수장에게 명하여 본디 침략하여 빼앗은 문양의 땅을 노나라에 전부 돌려주라고 했다. 옛사람이 이 일을 두고 논하기를, 제환공이 회맹을 강제로 행하기 위해 남의 나라를 침범했지만, 상대방을 속이지는 않았다. 조말이 원수가 될 수 있었으나 환공은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이것이 제후를 설복시켜 제환공이 천하의 패자가 된 까닭이라고 했다. 이 일을 읊은 시에 이르기를, “높고 높은 패업의 기세가 동쪽의 노나라를 삼켰는데, 한 척 길이의 검으로 어찌 이것을 막을 수 있었겠는가? 신의로써 군웅들을 복종시키려고 하는데, 문양 땅 한 조각이 어찌 아깝겠는가?” 했다. 또 조말이 단신으로 제환공를 위협한 일을 후세 사람들이 협객의 시조로 추대하여 시를 지어 이르기를, “숲처럼 무장한 군사들이 조수같이 몰려오는데, 칼 짚고 단에 올라선 기상이 호쾌하구나! 세 번의 싸움에서 패한 수치를 하루아침에 씻었으니, 천추의 협객들 중에 조말을 우두머리로 치네.”라고 했다.
諸侯聞盟柯之事,皆服桓公之信義。於是衛曹二國,皆遣人謝罪請盟。桓公約以伐宋之後,相訂為會。乃再遣使如周,告以宋公不尊王命,不來赴會,請王師下臨,同往問罪。周釐王使大夫單蔑,率師會齊伐宋。諜報陳曹二國引兵從征,願為前部。桓公使管仲先率一軍,前會陳曹,自引隰朋、王子成父、東郭牙等,統領大軍繼進,於商邱取齊。時周釐王二年之春也。卻說管仲有愛妾名婧,鐘離人,通文有智。桓公好色,每出行,必以姬嬪自隨。管仲亦以婧從行。
제후들이 가(柯) 땅에서 제나라와 노나라가 회맹한 일을 듣고, 모두가 제환공은 신의가 있는 사람이라고 감복했다. 이에 위(衛)나라와 조(曹)나라가 제나라에 사자를 보내 북행에서의 회맹에 참석하지 않은 죄를 빌고 회맹을 청했다. 제환공은 송나라를 정벌한 뒤에 회맹하기로 약속했다. 이어서 제환공은 사자를 주왕실에 보내어, 송환공이 왕명을 어기고 지난번 회맹하던 중에 돌아갔기 때문에, 청컨대 왕실의 군사를 보내주시면 함께 송나라를 토벌하여 죄를 묻겠다고 했다. 주리왕(周釐王)이 대부 선멸(單蔑)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제나라와 함께 송나라를 치라고 했다. 진(陳)나라와 조(曹)나라도 군사를 이끌고 와서 송나라 정벌군의 선봉을 맡겠다고 알려왔다. 제환공은 관중에게 먼저 일군을 거느리고 나가 진나라와 조나라 군사들과 합류하여 먼저 출발하게 하고, 자기는 습붕, 왕자 성보, 동곽아 등과 함께 대군을 거느리고 뒤따라 출발했다. 제나라 연합군은 상구(商邱) 땅에서 모이게 되었다. 이때가 주리왕(周釐王) 2년(기원전 680년) 봄이었다. 한편, 관중에게는 정(婧)이라는 애첩이 있었는데, 종리(鍾離) 출신으로 글을 잘하고 지혜가 있었다. 제환공이 여색을 좋아하여 매번 나갈 때마다 반드시 희빈들을 데리고 다녔다. 관중도 역시 애첩 정을 데리고 출정했다.
是日,管仲軍出南門,約行三十餘里,至峱山,見一野夫,短褐單衣,破笠赤腳,放牛於山下。此人叩牛角而歌。管仲在車上,察其人不凡,使人以酒食勞之。野夫食畢,言:「欲見相君仲父。」使者曰:「相國車已過去矣。」野夫曰:「某有一語,幸傳於相君:『浩浩乎白水!』」使者追及管仲之車,以其語述之。管仲茫然,不解所謂,以問妾婧。婧曰:「妾聞古有《白水》之詩云:『浩浩白水,儵儵之魚,君來召我,我將安居?』此人殆欲仕也。」管仲即命停車,使人召之。野夫將牛寄於村家,隨使者來見管仲,長揖不拜。
이날 관중의 군사들은 남문을 나가서 약 30여 리를 행군하여 노산(峱山)에 이르렀다. 한 농부가 베잠방이 홑옷을 입고 부서진 삿갓에 맨발로 산 아래에서 소를 먹이고 있는 것을 관중이 보았다. 그 사람이 소뿔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관중은 수레 위에서 그 사람이 범상치 않은 사람임을 관찰하고, 사람을 시켜 술과 음식을 가져가 위로하게 했다. 농부가 술과 음식을 다 먹고 나서 말하기를, “내가 재상 중보를 뵙고 싶소.” 했다. 음식을 갖다준 사자가 말하기를, “상국의 수레는 이미 지나갔소.” 하니, 농부가 말하기를, “내가 할 말이 있으니, 상국에게 ‘호호호백수(浩浩乎白水)’라는 말을 전해 주면 고맙겠소.” 했다. 사자가 관중의 수레를 급히 뒤따라가서 농부의 말을 전했다. 관중이 망연히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서 첩 정(婧)에게 물었다. 정이 말하기를, “제가 듣기로는, 옛날에 <백수(白水)>라는 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시에 이르기를, ‘넓고 넓구나. 백수여, 많고 많은 피라미 떼로다. 군주께서 오셔서 나를 부르니, 내가 장차 어디에 있으리오?’라고 했다는데, 이 사람이 벼슬을 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했다. 관중이 즉시 수레를 멈추게 하고 사람을 보내 그 농부를 불러오게 했다. 그 농부가 소를 근처의 농가에 맡겨 놓고, 사자의 뒤를 따라와서 관중을 뵙고, 길게 읍했으나 절은 하지 않았다.
管仲問其姓名,曰:「衛之野人也,姓寧名戚。慕相君好賢禮士,不憚跋涉至此。無由自達,為村人牧牛耳。」管仲叩其所學,應對如流。嘆曰:「豪傑辱於泥塗,不遇汲引,何以自顯?吾君大軍在後,不日當過此。吾當作書,子持以謁吾君,必當重用。」管仲即作書緘,就交付甯戚,彼此各別。甯戚仍牧牛於峱山之下。齊桓公大軍三日後方到,甯戚依前短褐單衣,破笠赤腳,立於路旁,全不畏避。桓公乘輿將近,甯戚遂叩牛角而歌之曰:「南山燦,白石爛,中有鯉魚長尺半。生不逢堯與舜禪,短褐單衣纔至骭。從昏飯牛至夜半,長夜漫漫何時旦?」
관중이 그의 성명을 묻자, 말하기를, “저는 위나라 농부입니다. 성은 영(寧)이고 이름은 척(戚)입니다. 상국께서 어진 선비를 좋아한다고 해서 사모하는 마음으로 산 넘고 물 건너 먼 길을 마다 않고 이곳까지 왔습니다. 제가 상국을 뵈올 길이 없어 촌사람의 소를 기르고 있습니다.” 했다. 관중이 영척의 배운 바를 떠보니 대답하는 것이 물 흐르듯 했다. 관중이 감탄하면서 말하기를, “호걸이 진흙탕 속에 묻혀서 욕을 보고 있는데 꺼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스스로를 빛낼 수가 있었겠습니까? 며칠 후면 우리 군주께서 대군을 이끌고 이곳을 지나가게 될 것입니다. 내가 편지 한 통을 써서 드리겠으니 선생은 그것을 가지고 우리 주군을 뵈면 반드시 중용할 것입니다.” 하고, 즉시 편지 한 통을 써서 영척에게 주고 헤어졌다. 영척은 노산 아래에서 계속해서 소를 먹였다. 제환공의 대군이 3일 후에 도착하자, 영척은 예전의 베잠방이 홑옷과 깨어진 삿갓에 맨발로 길가에 서서 전혀 두려워하거나 피하지도 않았다. 환공의 어가가 가까이 오자 영척이 곧 소뿔을 두드리면서 노래하기를, “남산은 찬란하고 흰 돌은 빛나는데, 그 속에 잉어는 한 자 반이 되도다. 살아서 요순 임금 선양하던 때를 못 만나서, 잠방이에 홑저고리 정강이가 드러났네. 저녁부터 소 먹이다 한밤중이 되었으니, 긴 밤은 느릿느릿 언제 새벽이 오려나?” 했다.
桓公聞而異之,命左右擁至車前,問其姓名居處。戚以實對曰:「姓寧名戚。」桓公曰:「汝牧夫,何得譏刺時政?」甯戚曰:「臣小人,安敢譏刺?」桓公曰:「當今天子在上,寡人率諸侯賓服於下,百姓樂業,草木沾春,舜日堯天,不過如此。汝謂『不逢堯舜』,又曰:『長夜不旦』,非譏刺而何?」甯戚曰:「臣雖村夫,不睹先王之政。然嘗聞堯舜之世,十日一風,五日一雨,百姓耕田而食,鑿井而飲,所謂『不識不知,順帝之則』是也。今值紀綱不振,教化不行之世,而曰舜日堯天,誠小人所不解也。
환공이 듣고 기이하게 생각하여 좌우의 시종에게 명하여 어가 앞에 데리고 오게 하여 어디에 사는 누구냐고 물었다. 영척이 사실대로 대답하기를, “성은 영이고 이름은 척입니다.” 했다. 환공이 말하기를, “그대는 소를 치는 사람인데 정치를 풍자하여 비방하는가?” 하니, 영척이 말하기를, “신은 소인인데, 어찌 감히 정사의 일을 풍자하겠습니까?” 했다. 환공이 말하기를, “지금 위로는 천자를 모시고 아래로는 제후들을 이끌어 왕실에 조공을 올리게 하였으며, 백성들은 모두 즐거이 생업에 종사하고 초목도 물이 올라 생동하는 봄을 맞이하고 있다. 요순의 시대에도 이보다 낫지 않았을 텐데, 그대는 노래하기를 ‘요순시대를 만나지 못했다’거니, 또 ‘밤이 길어 새벽이 오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것이 풍자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냐?” 하니, 영척이 말하기를, “신이 비록 촌부이나 아직 선왕의 정치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일찍이 요순시대를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때에는 열흘마다 한 번 바람이 불고, 닷새마다 한 번 비가 내려 백성들이 밭을 갈아서 먹고 우물을 파서 마시며, 이른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임금의 법을 순종하게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왕실의 기강이 떨치지 않고 교화는 행해지지 않고 있는데 요순시대와 같다고 하니 진실로 소인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且又聞堯舜之世,正百官而諸侯服,去四兇而天下安,不言而信,不怒而威。今明公一舉而宋背會,再舉而魯劫盟,用兵不息,民勞財敝,而曰『百姓樂業,草木沾春』,又小人所未解也。小人又聞堯棄其子丹朱,而讓天下於舜,舜又避於南河,百姓趨而奉之,不得已即帝位。今君殺兄得國,假天子以令諸侯,小人又不知於唐虞揖讓何如也!」桓公大怒曰:「匹夫出言不遜!」喝令斬之。左右縛甯戚去,將行刑。戚顏色不變,了無懼意,仰天嘆曰:「桀殺龍逄,紂殺比干,今甯戚與之為三矣!」
또 듣기로는 요순시대에는 백관이 바르게 정치를 하여 제후들이 왕실에 복종했고, 사흉(四兇 ; 混沌、窮奇、檮杌、饕餮)을 쫓아내어 천하를 안정시켰습니다. 말로 하지 않아도 신의가 있었고, 화를 내지 않아도 위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군주께서 한번 거동하여 제후를 소집하였으나 송나라가 회맹에서 등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두 번 거동하여 노나라를 협박해 강제로 회맹을 맺었습니다. 군사를 동원하여 쉴 틈이 없고 백성은 고달프고 재정은 피폐해졌습니다. 그러나 군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백성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생업에 종사하고 초목에 물이 올라 봄을 맞이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 또한 소인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소인은 또한 요임금께서 아들 단주(丹朱)를 버리고 천하를 순임금에게 선양하려고 하자 순임금은 남하(南河)로 피했습니다. 백성들이 뒤따라가 받들자 어쩔 수 없이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지금 군주께서는 형을 죽이고 나라를 얻었고, 천자의 이름을 빌려 제후를 호령하고자 하시니, 소인은 또한 요순이 공손히 양보한 풍습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했다. 환공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필부의 언사가 불손하구나!” 하고, 고함쳐서 목을 베라고 명령했다. 좌우의 군사들이 영척을 결박하여 끌고 나가서 형을 집행하려고 했다. 그러나 영척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여 말하기를, “하나라의 걸왕(桀王)은 용방(龍逄)을 죽였고 은나라의 주왕(紂王)은 비간(比干)을 죽였다. 오늘 영척은 그들과 함께 세 사람이 되겠구나.” 했다.
隰朋奏曰:「此人見勢不趨,見威不惕,非尋常牧夫也。君其赦之!」桓公念頭一轉,怒氣頓平,遂命釋甯戚之縛,謂戚曰:「寡人聊以試子,子誠佳士。」甯戚因探懷中,出管仲之書。桓公拆而觀之。書略云:「臣奉命出師,行至峱山,得衛人甯戚。此人非牧豎者流,乃當世有用之才,君宜留以自輔。若棄之使見用於鄰國,則齊悔無及矣!」桓公曰:「子既有仲父之書,何不遂呈寡人?」甯戚曰:「臣聞『賢君擇人為佐,賢臣亦擇主而輔。』君如惡直好諛,以怒色加臣,臣寧死,必不出相國之書矣。」桓公大悅,命以後車載之。
습붕이 아뢰기를, “이 사람은 권세를 따르지도 않고 위협에도 두려워하지 않으니 범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주군께서는 그 죄를 용서하십시오.”하니, 제환공이 생각을 바꾸어 노기를 가라앉히고, 즉시 영척의 결박을 풀어주라고 명했다. 환공이 영척에게 말하기를, “과인이 오로지 그대를 한 번 시험해 보았는데, 그대는 참으로 훌륭한 선비로다.” 했다. 영척이 품속을 더듬더니 관중의 편지를 꺼냈다. 환공이 열어서 보니, 편지에 대략 이르기를, “신이 주군의 명을 받고 출병하여 노산을 지나다가 위나라 사람 영척을 만났습니다. 이 사람은 소를 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 유용하게 쓰일 인재입니다. 주군께서는 마땅히 측근에 두고 보좌를 받도록 하십시오. 만약 주군께서 그를 버려서 이웃 나라가 쓰게 된다면 제나라로서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했다. 환공이 말하기를, “그대는 이미 중보가 써준 편지를 갖고 있으면서 어찌하여 즉시 나에게 보여주지 않았는가?” 하니, 영척이 말하기를, “신은 듣기에 ‘어진 임금은 그 신하를 가려서 보좌를 삼으며, 어진 신하는 또한 그 군주를 가려 섬긴다고 했습니다. 군주께서 직언을 싫어하고 아첨을 좋아하여 노기로써 신을 대하셨다면 저 영척은 죽을지언정 상국의 편지를 내놓지 않았을 것입니다.” 했다. 제환공이 크게 기뻐하여 영척을 뒷수레에 타라고 명했다.
是晚,下寨休軍,桓公命舉火,索衣冠甚急。寺人貂曰:「君索衣冠,為爵甯戚乎?」桓公曰:「然。」寺人貂曰:「衛去齊不遠,何不使人訪之?使其人果賢,爵之未晚。」桓公曰:「此人廓達之才,不拘小節,恐其在衛,或有細過。訪得其過,爵之則不光,棄之則可惜!」即於燈燭之下,拜甯戚為大夫,使與管仲同參國政。甯戚改換衣冠,謝恩而出。髯翁有詩曰:「短褐單衣牧豎窮,不逢堯舜遇桓公。自從叩角歌聲歇,無復飛熊入夢中。」桓公兵至宋界,陳宣公杵臼,曹莊公射姑先在。隨後周單子兵亦至。相見已畢,商議攻宋之策。
그날 저녁에 영채를 세우고 휴식을 취하며, 제환공은 불을 피우고 급히 의관을 가져오라고 했다. 시인(寺人 ; 내시) 수초(竪貂)가 말하기를, “주군께서 의관을 찾으시니 영척에게 벼슬을 주려는 것입니까?”하니, 제환공이 말하기를, “그렇다.” 했다. 시인 수초가 말하기를, “위나라는 제나라에서 멀지 않습니다. 어찌 사람을 보내 그를 조사해 보지 않습니까? 그 사람이 과연 어질면 그때 벼슬을 내려도 늦지 않습니다.” 하니, 제환공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활달한 인재라 작은 예절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가 위나라에 있을 때 혹시 작은 잘못이 있어, 그 잘못을 조사하여 벼슬을 준다면 벼슬은 빛을 잃게 되고, 그를 버린다면 너무 아깝지 않겠느냐?” 했다. 즉시 등불 아래에서 영척에게 대부의 벼슬을 내리고 관중과 함께 국정에 참여하게 했다. 영척이 의관을 갈아입고 감사의 말을 올린 후에 밖으로 나갔다. 염옹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베잠방이 홑적삼의 궁색한 목부가, 요순은 만나지 못했으나 환공을 만났구나. 쇠뿔을 두드리며 부르던 노래도 끝났으니, 곰으로 변해 주문왕의 꿈속에 들어간 강태공의 환생이 아닌가?” 했다. 제환공의 군사들이 송나라 경계에 도착하자, 진선공 저구와 조장공(曹莊公) 역고(射姑)가 먼저 와 있었다. 뒤따라서 주나라의 선자(單子)의 왕군도 이르렀다. 상견례를 끝내고 송나라를 공격할 계책을 상의했다.
甯戚進曰:「明公奉天子之命,糾合諸侯,以威勝,不如以德勝。依臣愚見,且不必進兵。臣雖不才,請掉三寸之舌,前去說宋公行成。」桓公大悅,傳令紮寨於界上,命甯戚入宋。戚乃乘一小車,與從者數人,直至睢陽,來見宋公。宋公問於戴叔皮曰:「甯戚何人也?」叔皮曰:「臣聞此人乃牧牛村夫,齊侯新拔之於位。必其口才過人,此來乃使其遊說也。」宋公曰:「何以待之?」叔皮曰:「主公召入,勿以禮待之,觀其動靜。若開口一不當,臣請引紳為號,便令武士擒而囚之。則齊侯之計沮矣。」宋公點首,吩咐武士伺候。
영척이 앞으로 나와 말하기를, “주공께서는 천자의 명을 받고 제후들을 규합하여 위세로 승리하고자 하시는데 이는 덕으로 승리하느니만 못합니다.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굳이 군사를 진격시킬 필요 없이, 신이 비록 재주가 없으나 세 치의 혀를 가지고 송환공 앞에 나아가 화의를 이끌어 내도록 해보겠습니다.” 했다. 제환공이 크게 기뻐하며 송나라 국경에 영채를 세우도록 명을 내린 후에 영척을 사자로 삼아 송나라에 들여보냈다. 영척이 작은 수레를 타고 몇 명의 수행원과 함께 송나라의 도성 수양성 밑에 이르러 송환공에게 접견을 청했다. 송환공이 대숙피에게 묻기를, “영척이 어떤 사람입니까?” 하니, 대숙피가 말하기를, “신이 듣기에 이 사람은 소를 치던 촌부였는데 제환공이 발탁해서 대부에 봉했다고 했습니다. 반드시 구변이 뛰어날 것입니다. 이번에 오는 것은 우리를 유세하러 오는 것입니다.” 했다. 송환공이 말하기를, “그를 어떻게 대하여야 합니까?” 하니, 대숙피가 말하기를, “주공께서 그를 안으로 불러서 예의로 대접하지 말고 그의 동정을 살피십시오. 만약 그가 부당한 말을 하면 제가 띠를 끌어 올려 신호하겠습니다. 그러면 무사들에게 명하여 붙잡아서 옥에다 가두면 제환공의 계책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했다. 송환공이 머리를 끄덕이고 무사들에게 (매복하여) 명령을 내릴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甯戚寬衣大帶,昂然而入,向宋公長揖。宋公端坐不答。戚乃仰面長嘆曰:「危哉乎,宋國也!」宋公駭然曰:「孤位備上公,忝為諸侯之首,危何從至?」戚曰:「明公自比與周公孰賢?」宋公曰:「周公聖人也,孤焉敢比之?」戚曰:「周公在周盛時,天下太平,四夷賓服,猶且吐哺握髮,以納天下賢士。明公以亡國之餘,處群雄角力之秋,繼兩世弒逆之後,即效法周公,卑躬下士,猶恐士之不至。乃妄自矜大,簡賢慢客,雖有忠言,安能至明公之前乎?不危何待!」宋公愕然,離坐曰:「孤嗣位日淺,未聞君子之訓,先生勿罪!」
영척이 넓은 옷에 큰 허리띠를 두르고 의젓한 모습으로 들어와 송환공을 향하여 길게 읍을 올렸다. 송환공은 단정히 앉아 답례도 하지 않았다. 영척이 얼굴을 들어 길게 탄식하며 말하기를, “위태롭구나, 송나라여!” 했다. 송환공이 놀라서 묻기를, “나의 작위는 상공이고 모든 제후의 앞자리에 있는데 어찌하여 위태롭다고 하는가?” 하니, 영척이 말하기를, “명공께서는 스스로를 주공(周公)과 비교하여 누가 더 어질다고 생각하십니까?” 했다. 송환공이 말하기를, “주공은 성인인데, 내가 어찌 감히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하니, 영척이 말하기를, “주공(周公)께서는 주나라가 번성할 때 천하가 태평하고 사방의 오랑캐가 입조하여 조공하는데도 오히려 토포악발(吐哺握髮 ; 식사 중 세 번이나 음식을 뱉고, 머리를 감다가 세 번이나 머리를 잡고 나가 어진 선비를 대한 일)하여 천하의 어진 선비를 맞이하였습니다. 명공께서는 망한 은(殷)나라의 나머지(후예)로 군웅이 힘을 겨루는 때에 처하여, 양대에 걸쳐 신하가 군주를 죽인 뒤를 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곧 주공을 본받으려고 하시면 선비에게 몸을 낮추고 오히려 선비가 오지 않을까 걱정하셔야 하거늘, 망령되이 스스로 높여 어진 사람을 멀리하고 손님을 대하는데 이렇게 태만하시니, 비록 충언이 있을지라도 어찌 능히 명공의 앞에 이르겠습니까? 이러고도 위태롭지 않기를 어찌 기다리겠습니까?” 했다. 송환공이 크게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하기를, “내가 군주의 자리를 이은 지 오래지 않아서 군자의 가르침을 아직 듣지 못했소. 선생께서는 너무 허물하지 마시오.” 했다.
叔皮在旁,見宋公為甯戚所動,連連舉其帶紳。宋公不顧,乃謂甯戚曰:「先生此來,何以教我?」戚曰:「天子失權,諸侯星散,君臣無等,篡弒日聞。齊侯不忍天下之亂,恭承王命,以主夏盟。明公列名於會,以定位也。若又背之,猶不定也。今天子赫然震怒,特遣王臣,驅率諸侯,以討於宋。明公既叛王命於前,又抗王師於後,不待交兵,臣已卜勝負之有在矣。」宋公曰:「先生之見如何?」戚曰:「以臣愚計,勿惜一束之贄,與齊會盟。上不失臣周之禮,下可結盟主之懽,兵甲不動,宋國安於泰山。」宋公曰:「孤一時失計,不終會好,今齊方加兵於我,安肯受吾之贄?」
대숙피는 옆에 있다가 송환공이 영척을 위하여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자기의 허리띠 끈을 계속해서 끌어올렸다. 송환공은 돌아보지도 않고 영척에게 말하기를, “선생이 여기까지 오셨으니 저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시겠습니까?” 하니, 영척이 말하기를, “천자가 권위를 잃자 제후들은 흩어져 임금과 신하의 질서가 없어졌고 찬탈과 시역이 날마다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환공이 천하가 어지러워진 것을 참지 못하여 천자의 명을 받들어 지난여름 북행 땅에서 회맹을 주관하고 명공의 이름을 회맹에 올려 군주의 자리를 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회맹에 바로 등을 돌렸기 때문에, 아직 명공의 군주 자리가 확실히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지금 천자께서 불처럼 진노하시어 특별히 왕실의 신하를 보내어 제후들을 몰아서 송나라를 토벌하라고 하셨습니다. 명공은 이미 왕명을 따르지 않으셨고, 또한 장차 천자의 군사들에게 항거하게 되어, 싸우지 않아도 신은 이미 그 승부를 점칠 수 있습니다.” 했다. 송환공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선생의 의견은 어떠합니까?” 하니, 영척이 말하기를, “소신의 어리석은 계책으로는 한 묶음의 예물을 아끼지 마시고 제나라와 회맹을 하십시오. 그렇게 되면 위로는 주나라 신하로서의 예를 잃지 않고, 아래로는 회맹의 맹주와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군사를 움직이지 않으셔도 송나라는 태산보다 안전할 것입니다.” 했다. 송환공이 말하기를, “내가 한때 실수하여 회맹을 끝맺지 못했습니다. 지금 제나라가 바야흐로 군사를 내어 우리를 치려는데, 어찌 우리의 예물을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까?” 했다.
戚曰:「齊侯寬仁大度,不錄人過,不念舊惡。如魯不赴會,一盟於柯,遂舉侵田而返之。況明公在會之人,焉有不納?」宋公曰:「將何為贄?」戚曰:「齊侯以禮睦鄰,厚往薄來。即束脯可贄,豈必傾府庫之藏哉?」宋公大悅,乃遣使隨甯戚至齊軍中請成。叔皮滿面羞慚而退。卻說宋使見了齊侯,言謝罪請盟之事。獻白玉十玨,黃金千鎰。齊桓公曰:「天子有命,寡人安敢自專?必須煩王臣轉奏於王方可。」桓公即以所獻金玉,轉送單子,致宋公取成之意。單子曰:「苟君侯赦宥,有所藉手,以復於天王,敢不如命。」桓公乃使宋公修聘於周,然後再訂會期。單子辭齊侯而歸。齊與陳曹二君各回本國。
영척이 말하기를, “제환공은 마음이 넓고 어질 뿐 아니라 도량이 커서 사람의 지나간 과실에 연연해하지 않고 옛날의 원한도 마음속에 두지 않습니다. 노나라가 회맹에 참석하지 않았으나 가(柯) 땅에서 다시 맹약을 맺고, 마침내 옛날에 빼앗았던 땅도 모두 돌려주었습니다. 하물며 명공은 회합에 참석하기까지 했는데 어찌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 하니, 송환공이 말하기를, “제가 장차 어떤 예물을 갖고 가면 되겠습니까?” 했다. 영척이 말하기를, “제환공은 이웃 나라들과 화목하기 위해 주는 예물은 후하게 하고 받는 것은 박하게 하고 있습니다. 단지 한 다발의 육포로 예물을 삼으시면 되겠습니다. 어찌 반드시 나라 창고의 재물을 기울이겠습니까?” 했다. 송환공이 크게 기뻐하여 영척에게 사자를 딸려서 제나라 군중으로 보내어 화의를 청했다. 대숙피가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을 띠고 물러갔다. 한편, 송나라 사자가 제환공을 뵈어 사죄를 드리고, 회맹에 참여하기를 청했다. 백옥 열 쌍과 황금 천일을 바치니 제환공이 말하기를, “천자의 명을 받들 뿐이니, 어찌 감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겠는가? 반드시 왕실에서 나온 분이 왕께 아뢴 후에 결정할 것이오.” 했다. 제환공이 즉시 금과 옥을 선자에게 보내어 송환공이 화의를 맺으려는 뜻을 받아들이게 했다. 선자가 말하기를, “만일 군주께서 너그럽게 용서하시겠다고 하면, 있는 그대로 천자께 복명하겠습니다. 어찌 감히 왕명대로 시행하지 않겠습니까?” 했다. 제환공은 곧 송환공으로 하여금 직접 주나라에 사절을 보내 입조하게 하고, 송나라와 회맹할 날짜를 정했다. 선자가 제환공에게 감사하고 돌아가자, 제나라와 진(陳)나라, 조(曹)나라의 군주들도 각각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要知後事如何,且看下回分解。
뒷일이 어찌 될지 알고 싶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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