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신명기 30:15-20 / 2020년 5월 3일 주일 오후 예배
오전에는 신명기 11장 26절부터 32절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인생은 영원한 복과 영원한 저주를 선택하는 복불복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연예인들이 까나리 액젓과 아메리카노를 선택하는 것은 순전히 요행에 달려있지만 천국과 지옥은 오직 믿음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신명기 11장에서 선포했던 말씀을 설교가 끝나는 신명기 30장에서 다시 한 번 반복합니다. 본문 15절에서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말씀합니다.
지금 우리 앞에 두 개의 길이 있는데 한 길은 아주 편하게 갈수 있는 넓은 길이 있습니다. 그 길 주변에는 탐스러운 과일도 많고 볼 것도 재미있는 것도 너무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움푹 파이고 돌이 불쑥 나와 있고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위험한 좁은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가는 사람들도 거의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길을 선택하겠습니까?
당연히 사람들은 그 눈으로 보기에 편한 넓은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길의 최종 목적지를 알아도 같은 선택을 할까요? 그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 이 넓은 길로 가시면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외롭지도 않고 재미있는 것도 너무 많고 고난을 피하며 편하게 갈 수 있지만 그 끝은 영원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는 지옥입니다. 반면에 이 좁은 길은 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외롭고 사람들에게 미움과 멸시를 받고 직장에서 쫓겨날 수도 있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는 고난을 받아야 하고 눈물 없이는 못가는 엄청 힘든 십자가의 길이지만 그 결말은 영원한 생명과 천국입니다.
그런데 이런 설명을 듣고도 넓은 길을 선택하는 성도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목이 말라 갈증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까나리 액젓이고 이것은 아메리카노라고 가르쳐주어도 많은 사람들은 기필코 까나리 액젓을 선택하고 들이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까나리 액젓은 화려하고 보기 좋은 예쁜 큰 그릇에 담아 놓았고 아메리카노는 오래돼서 누렇게 된 싸구려 종이컵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천국을 겨자씨만큼만 보여주셨습니다. 겨자씨는 잔디씨보다도 작아 유심히 보지 않으면 있는지도 모르는 크기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계시해주신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겨자씨와 같이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드러나 그 실체가 감추어져 있고 은익되어 있기 때문에 성도들조차도 그 실체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천국의 실체를 믿지 못하고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인 장자권을 팔아버리는 망령된 자가 된 것처럼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 나라를 이 멸망할 세상의 영광과 재물과 돈과 명예와 재미와 물질과 육체의 만족과 정욕과 탐심을 위해 팔아버리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은 천국을 죽어서나 가는 나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천국이 지금 이 세상에 임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임한 천국을 멸시하고 업신여기면서 죽어서는 그 천국을 가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교만하고 미련한 것입니까? 그런 성도들이 갈 수 있는 천국은 결단코 없습니다.
겨자씨 하나와 같이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계시된 천국을 보고 눈이 뒤집히는 사람들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천국은 이 세상에 존재감 없이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하나님 나라가 이 우주의 실체이며 크게 보이는 이 세상 나라는 잠시 있다 사라지는 껍데기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밭에 감추어져 있던 보화를 발견한 사람들입니다. 정말 이 세상에서 천국을 발견한 성도들은 세상에 소망을 버리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그 나라를 받드는 성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왜 세상에 보내셨는지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깨달은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를 어린아이를 받들 듯이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15절에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천국을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못하면 결단코 못 들어간다고 하신 것입니다. 핏덩이 같은 어린아이를 품에 안아 보았습니까? 얼마나 조심 조심해야 합니까? 그러나 아이들은 어린아이를 받들지 못합니다. 얼마나 귀한 생명인지 얼마나 조심해서 받들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성숙한 성도만이 그 마음에 심어주신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섬기고 받드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성숙하지 못한 어리석은 성도들은 마귀가 지나가는 말로 위협하거나 막대사탕 하나만 흔들기만 해도 얼른 어린아이를(천국을) 내주고 마는 것입니다.
본문 19절부터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자격이 안 되는 자들에게 값없이 은혜를 주시고 선택을 요구하십니다. 믿음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자들이 믿음으로 즉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에 속한 천국의 시민답게 살 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구원의 그 섭리와 작정과 계획 속에 인간의 자유의지가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구원은 하나님이 다 하시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성도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남겨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영광과 육신의 평안과 만족을 얻고자 천국을 헐값에 팔고 지옥을 사는 것은 누가 선택한 일입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습니까? 하나님이 결단코 하지 말라고 한 것을 자신 안에 있는 죄와 육망을 받들며 자기 의지로 하는 것입니다.
자유의지를 자신의 욕망을 섬기는데 사용하는 사람은 지옥, 그 견딜 수 없는 영원한 고통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유의지를 동원하여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를 선택하고 그 믿음으로 이 세상에서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받으며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온양에 있는 한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 맨 뒷자리에 있던 아이들이 너무 떠들어서 말씀을 전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목사님이 화가 나서 내쫓을까 하다가 꾹 참고 집회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씩 앞에 나와 기도를 해주고 있는데 마침 떠들고 까불어서 심기를 건드린 그 놈도 기도를 받겠다고 사람들에게 이끌려 나온 것입니다. 목사님이 설교시간에 방해한 것이 괘씸해서 머리에 손을 세게 얻고 힘껏 아래로 눌러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때 목사님도 의도하지 않는 기도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너는 앞으로 악한 자가 되어서 멸망의 길을 가든가 귀한 하나님의 종이 될 것이다.”
그 아이는 부모 없이 절간에 미친 가난한 할머니와 사는 중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기도를 모두 끝내고 교회에서 나오자 이 아이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목사님,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악한 자가 되어 멸망의 길을 가든가 귀한 하나님의 종의 길을 가든가라고 했는데 저는 악한 자가 되어 멸망의 길을 가고 싶지 않습니다. 귀한 하나님의 종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때에도 목사님은 예배 시간에 얄밉게 한 것이 남아 있었습니다. 내일부터 새벽에 나와서 기도해 임마! 라는 말을 던지고 간 것입니다.
그로부터 5년 후에 어느 날 목사님께 이 아이가 찾아온 것입니다. 목사님 그때 기억나십니까? 제가 그 아이입니다. 목사님이 말씀하신 그날부터 새벽에 교회에 나와 하나님의 귀한 종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신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제 할머니도 우상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 아이가 기적을 보았습니까? 신비한 체험을 하였습니까? 단지 하나님의 준엄한 말씀만을 들었을 뿐입니다. 내가 네 앞에 두 개의 길을 놓았다. 하나는 넓을 길로 영원한 멸망으로 가는 길이며 다른 하나는 좁은 길로 생명으로 가는 길이다. 너는 선택하라는 말씀이 떨어질 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멸망의 길을 버리고 생명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자신에게 떨어지는 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알아듣고 생명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 안에 많은 성도들은 시험과 고난을 만나면 그 영화로운 천국을 버리고 세상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배설물, 똥이라고 버린 세상을 말입니다. 그 영원한 지옥을, 고통과 멸망을 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장 눈앞의 이익과 육신의 만족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 선택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두려움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둠에 속한 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선택하였으며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천국의 길을 가고 있는 줄 착각하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자신이 받은 은사나 신비한 영적 체험이나 종교적인 열심과 행위를 의지하며 그것을 자기 의와 구원의 증거로 삼으려고 합니다. 아니, 내가 하나님의 음성도 듣고 환상도 보고 신기한 응답도 받았는데 하나님 백성이 아니냐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 영적인 체험이 구원의 증거라면 왜 하나님이 시내산에 강림하는 것을 눈으로 목격하고 매일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만나를 먹고 산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 것입니까? 여러분이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더 기막힌 것을 보고 체험을 하였습니까?
예수님은 심지어 말씀을 전하며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병든 자를 고친 그 대단한 사람들을 향해 도무지 내가 알지 못하는 자들이라 심판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교회 안에 방언을 하면서 사탄을 추종하는 악한 자들이 많다고 말한 것입니다.
마귀에게 속지 말고 자신을 기만하지 말고 교만하게 착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돌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만들 수 있는 분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그 음성을 듣고 나는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이 세상을 장차 멸망할 성, 장망성 바벨론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이미 심판을 받았지만 하나님은 잠시 그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멸망의 그 때까지 잠시 기다리는 것은 이 장망성에서 자신이 시한부 인생임을 알고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천국에 합당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찾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 세상을, 장차 멸망할 이 장망성을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어리석은 부자 청년처럼 영생을 얻기 위해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그러나 세상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주는 육체의 영광과 만족과 안전과 즐거움을 버릴 수 없기에 안타깝게도 장망성인 이 세상을 선택함으로 심판의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하셨습니까? 무엇을 선택하고 있습니까? 지금은 이 세상에서 천국과 예수 그리스도가 보잘 것 없이 보일 수 있지만 그러나 믿음의 눈이 열린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더 귀한 일은 없습니다.
인생은 단 한번 뿐입니다. 부디 세상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를 선택하고 육신의 만족을 버리고 영의 만족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발휘하여 영생의 소망을 이루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