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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 장 믿음은 오직 성영님으로만 되는 것
17.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18주의 성영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
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눅4:17-20)
요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하셨는데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큰 신비입니
다. 어떻게 말씀으로 계시던 분이 육신이 되어 올 수가 있는가? 바로 '성영으로'라고 분명히 가르
쳐주고 있습니다. 영원 전에 하나님 안에서 말씀으로 계시던 분, 즉 신성과 인성이신 로고스를 성
영님이 마리아의 몸에다 잉태케 하여 태어나게 하시고, 그래서 인간이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하나님으로 오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영님은 한 분 하나님이시지만, 사람
을 위해서 구원의 일을 행하여 역사하셨을 때는, 아버지 하나님이 뜻을 주관하시고 세우신 뜻을 아
들 예수님이 마리아의 몸에 성영님으로 잉태되어 육신이 되어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놓으시
고, 이루신 그것을 오늘날 모든 믿는 자 속에 오셔서 증명하시고 증거하시는 분은 성영님이십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성영님으로 잉태되어 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일도 성영님으로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도 하나님이고, 성영님도 하나님인데 왜 예수님께서 성영님으로 나시고 일하셔야 했
는지, 성경이 강조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사
람이 알 수 있었던 것도 성영님에 의해서입니다. 마3:16에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
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영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했습니다.
눅3:22에 성영이 형체로 비둘기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
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성영님이 임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증명되었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또한 증거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서도 성영님이 임하시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실 수 없다는 것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하나
님의 뜻, 독생자가 오셔서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을 행하심은 성영님으로 하신 것이요, 사람에
게 구원이 이루어지게 하신 것도 성영님으로 말미암아서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주의 성영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했습니다. 그것
은 곧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같이 성
영님이 임하시자 하나님의 아들임이 증명이 되고 또한 복음을 전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실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다니심도 성영님의 이끌림을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임의대로 행하
신 것이 아니라 성영님께 이끌림을 받았습니다. 구약의 모든 예언의 말씀을 응하는 일이었습니다.
눅4:1에 예수께서 성영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영에게 이
끌리시며 하셨고 마4:1에 그 때에 예수께서 성영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
사 라고 말씀하셨듯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에 성영님의 이끄심을 따라 나가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도 성영님의 이끄심을 따라 행하셨듯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신앙도 반드시 성영님의 이끄
심을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성영님의 이끄심을 따르는 데는 성영님께서 자기에게 오셔야 하는데 무조건 성영님을 오시
라 한다고 해서 오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성영님이 오실 수 있는 조건이 돼야 합니다.
우리가 믿을 때에 성영님을 받아 따르지 않으면 그 믿음은 잘못 믿는 것이 됩니다. 아무리 인간이
열심히 교회를 왔다 갔다 하고, 헌금 드리라 하니 헌금 열심히 드리고 목사님 말씀 순종하면 복 받
는다 하니 목사님 말씀 다 순종한다 하더라도 성영님으로 믿는 것이 아니면 헛것입니다. 우리가 하
나님의 뜻대로 믿음이 돼야 한다는 것은 여러분 다 아는 것이잖습니까? 절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믿
음이 돼야 한다는 것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신앙을 인도하는 분은 성영님이신 것은 아는데 그러면
성영님이 내 안에 오실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가? 행2:38,39에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
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영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고 했
습니다. 성영님을 받는 조건이 뭐라고요? '너희가 회개하여'했습니다. 그다음 마3:6에 자기들의 죄
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더니 했습니다. 바로 회개하고 죄를 자복한다는 말입니다. 회계
를 헬라어로 메타노에오(metanoevw)라고 합니다. 죄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인본으로부터 나와 하나님
께로 완전히 돌아선다는 말입니다. 입으로 '하나님 나 죄지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이런 것을 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 비춰 메타노에오(metanoevw) 한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
던 삶의 기준을 버리고 행동까지도 바꾼다는 것으로서 이것은 감정의 변화나 양심의 가책 이런 것
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돌아서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
라 살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영님이 자기 안에 들어오실 수 있는 조
건은 먼저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고 고백하는 것이요, 그다음 자신의 삶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하나
님께로 돌아서서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요, 그다음 예수님께서 자기의 죄 용서를 위해 생명의 피를
흘려주셨다는 것을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같이 회개함으로써 성영님께서 임하실 수 있고 오실
수 있는 조건이 되었습니다. 회개하여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는 믿음을 가졌으니 죄 사함을 확실히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죄가 깨끗게 되어 이제 성영님이 오실 수 있는 조건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영님을 알고 성영님을 모셔들여야 합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여 들이면, 예수님 영접하는 것은 곧 성영님을 영접하는 것이 되고 성영님을 영접하면 예수
님을 영접하는 것이 되기에 성영님이 임하시기는 합니다. 그러나 성영님을 알고 성영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신앙은 힘이 없고 즉, 생명력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사람들이 회개가 안 돼 있습니다. 정말 너무너무 회개가 안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서 더 잘 먹고 잘살려고 하는 목적, 육체의 정욕에 이끌려서 믿는다 하고 있기 때문에 성영님이 그
사람과 관계를 두실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편리한 대로 믿는 것이 되어서 항상 타협적이고 합리적
입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인제 믿으러 나와서 뭘 알겠어? 그냥 몰라서 그러지....'하고 갖가
지의 변명을 내세웁니다. 이 같은 변명은 자기가 알려는 수고와 노력이 없기 때문이고, 자기 아집
으로 믿는다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이 같은 변명들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정말 믿으려면 성영님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른 기도 할 필요 없어요. 자신의 구원(생
명)의 문제이니 이보다 더 중한 일은 없습니다. 오늘 밤에라도 호출받으면 가야 할 곳이 분명히 있
어야 하지 않습니까? 지옥 갈 것으로 한다면 모를까 영생의 나라에 들기 원한다면 믿음을 바로 해
야 하지 않겠습니까? 영의 눈을 열어주시고 죄인임을 보게하시고,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다는 확신
의 믿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주라는 성영님으로 믿는 확고한 믿음을 주시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 뭘 기도하는 것입니까? "아이고 내 자식 좀 잘되게 해주세요. 나는 못 돼도 좋
으니 내 자식 좀 잘되게 해주세요"하는데 뭘 잘되게 해달라는 겁니까? 내가 구원받아야 자식도 구
원으로 이끌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자기 자식 잘되게 해서 세상이나 늘 마음에 품고 살라고요?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입고 명예 얻는 대로 가라고 나는 못 돼도 괜찮으니 우리 자식 주님 잘 믿게
해주시고 복 받게 해주세요, 하는 것입니까? 믿음은 그런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멸망 받
게 되었으니 그곳에서 구원받게 하려고 예수님을 십자가 저주의 형틀에 내주셨고 예수님 공로로 구
원 얻는 그 믿음을 주시려고 성영님을 보내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 자식 잘되게 해주세요, 우리
잘 먹고 잘살게 해주세요'하는 것 하나님께서 듣지도 않으시고 절대로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아!
나는 정말 죽을 죄인이로구나!"하고 자신 속에서부터 죄인인 것을 깨달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래서 우리가 성영님에 대하여 분명한 지식을 가지고 성영님을 따르는 신앙이 돼야만 합니다.
그런데 자기는 성영님을 영접해드리긴 했는데 실제로 자기에게 오셨는지 느낌도 없고 현상도 없으
니 답답하다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실 수도 있습니다. 먼저 "성영님이 누구신지를 알았습니다.
성영님이 내 믿음을 도우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기에 내게 계시기 원하고 성영님의 인도를 받기 원
하는 간절함으로 기도하니 성영님 내 안에 오시옵소서, 내 믿음을 도와주시옵소서"하고 진정으로
기도하였다면 이제 성영님이 자기 안에 오셨다는 것을 확실히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성영님이 자기 안에 임하셨는지 느낌을 받지 못하면, 이제 성영님을 경험하기
원한다고 성영님의 나타남을 주시라고 계속 중점적으로 사모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뭐 환상 보
여주라 음성을 들려주라 이런 것이 절대 아닙니다. 누가 뭐래도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믿음을 보
증해주시는 것이 돼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성영님이 계신 것을 경험하게 해주시라고 중점적으로 간절히 기도하면 자기 안에
서, 말씀을 듣거나 기도를 하거나 찬송을 하거나 일상생활 중에서도, 자기가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
던 어떤 기쁨이 샘솟아 올라오는 것입니다. 자기 속에 뭔지 행복하기도 하고 기쁜 것이 있음을 느
끼게 되는 겁니다. 평안함이 느껴지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성영님이 영에 오셔서 계신 증거로서
성영님이 자기 안에 오셨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이 알고 싶고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
는 소망이 일어나고 예배를 드리러 올 때도 소망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자기 안
에 있다고 하면 성영님이 내주하셨다는, 죄 사함 받고 구원받았다는, 그러니까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에 대한 증거입니다. 배 속에서부터 평안이 올라오고, 기쁨이 올라오는 것이
바로 증거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믿음에서 반드시 구분돼야 할 필요가 있어서 참고로 말씀드립니다. 이것은 누구나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에 따라서 나타날 수도 있고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앞
에 방금 말한 성영님이 내주하신 증거가 되는, 속의 평안과 기쁨이 있는 것은 믿는 자 누구든지 나
타나야 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당연히 나타나야 합니다. 그것은 거듭났다는 증거이기 때문
에 성영님의 기쁨과 평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 말은 거듭났어도 나타나는 것이고 거듭
나지 않았어도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서 성영님이 옆에 계신다는 것을 표적으로 방언을 하게 하십
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관계되는 꿈을 꾸기도 하고 환상을 보기도 하고 몸에 병이 치유되는 이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현상이 있는 것은 자기에게 와 계신다는 것을 확정시켜주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거듭났다, 구원받았다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고 했습니까? 아니라고 했습니다. 거
듭난 증거는 자기가 겪어보지 못한 평안과 기쁨이 자기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요7:38,39에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영
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하셨으니 그 배가 어디에요? 마음, 심층부에 있는 영을 말합니다. 그 배
에서 성영님이 오시면 생수의 강이 흘러난다는 것입니다. 바로 성영님이 영에 들어오시면 그 속에서
부터 생수가 흘러나리라, 성영님의 평안과 기쁨이 흘러나리라, 예수님의 생명 안에 있는 기쁨이 평
안이 즉 영적 행복이 흘러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남의 현상입니다. 그러나 방언, 꿈,
환상 이런 외적 현상은 거듭나지 않았어도 나타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하는 것 착
각입니다. 이렇게 성영님이 옆에 계신 것을 표적으로 주셨으니 참으로 좁고 협착한 길 갈 것으로,
핍박받을 것으로, 성영님을 따라 살 것으로 원하고, 그 소원을 가지고 성영님을 영접하여 들이면
성영님이 내주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들 시대에 보면 사도들의 안수로 성영님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목사들에
게 안수나 기도를 통해 성영님을 받는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부른 제
자들이지만, 오늘날은 거짓 선지자들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이방인 중에서 고넬료라는 사람이 있
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겸손한 사람인지 그 마음에 사모함이 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종에게
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쁘다 보니 베드로를 맞이하는 것을 하나님을 맞이하는 것처럼 했습
니다. 베드로가 말씀을 말할 때에 성영님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였다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성영님은 아무에게나 임하시는 것이 아니라 고넬료와 같이 삶에서 하
나님을 경외하며 말씀을 존중하여 사는 겸손한 자가 말씀을 듣는 중에도 받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기회는 언제나 있는 것 아닙니다. 이 땅에서 가면 끝이에요. 뭘 자꾸 내일로 미룹니까? 세
상 사람과의 관계를 왜 끊지 못하고 뭣 때문에 사람을 따라? 뭣 때문에 사람을 두려워해? 뭣 때문
에 먹고 사는 문제를 두려워합니까? 먹이시면 먹을 것이요, 죽이시면 죽을 것이요, 예수님을 믿으
니 오늘 죽는다 해도 천국인데 좀 담대하라는 말입니다. 왜들 믿는다는 것이 그렇게 그냥 똥 싸서
뭉개고 앉아 있는 것처럼 합니까? 지금이 어느 때인데요? 하나님이 자기 하나 살릴 힘 없을까 봐서
요? 마음에 욕심 탐욕 다 내버리고 하나님께 내 삶을 맡겨드리면 이른 비 늦은 비를 주셔서 다 살
게 하십니다. 뭐를 위해서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뭘 그렇게 세상의 것 못 가져서 안달하냐고요?
우리는 천국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은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
으니'하셨습니다. 자기 밭이 뭐예요? 자기 마음, 자기 심영이에요. 자기 마음에 예수님이 심겨져서
계셔야 합니다. 다른 것 다 없어야 합니다. 자기 안에 예수님이 계셔야 하는 것이지, 다른 온갖 잡
다한 것들 다 두고 있으면서 예수님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은 성영님으로만 되는 것
인데 성영님이 계실 수가 없습니다.
자기 밭에다 별것을 다 심어놓습니다. 티브이나 스마트폰은 아주 자기 목자가 돼 있고, 명예도, 돈
도 있어야겠고 저 집을 보니 좋은 차 샀던데 나도 더 좋은 차로 사야 하겠고, 그런 것들로 심어져
있으니 겨자씨가 생명을 싹터서 자라겠냐는 말입니다. 싹은 나는데 그런 것들로 치여 죽는 겁니다.
오늘 제가 이런 말 하려고 강단에 올라온 것 아닙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안타깝고 괴로워
서 말이죠, 이렇게 불편한 말 하려고 올라온 것이 아닌데.....,지금 믿는다는 것 마음속을 보면 다
거짓입니다.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믿고 대접해드립니까? 자기 대접하려고 믿는다고 하는 것 아닙니
까? 하나님을 정말 경외합니까? 존중하나요? 아니면 뭐 하러 예수님 믿는다고 하는 것입니까? 믿기
원하면 똑바로 믿자고요. 천국을 소유했다면 오늘 죽어도 큰 기쁨입니다.
땅에 사는 동안 아버지께서 다 먹이고 입히고 마시우는 것으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경
제가 최고로 어렵다고 그렇게 노래 부르듯 말들을 하던데, 여러분 경제가 그렇게 어려운데 해외여
행들을 다닙니까? 요사이 해외여행객들의 숫자 통계를 보니까 우리나라 사람이 제일 많다고 제가
어느 식당에서 뉴스 보도를 들었습니다. 경제요? 제가 볼 땐 너무 넘치고 있습니다. 너무 넘쳐나니
더 쌓으려고 더 가지려고 하는 욕심, 탐욕에 아귀다툼하느라고 경제 어렵다 어쩐다 하는 겁니다.
믿는다는 사람들도 똑같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믿는다면 세상 따르는 것 아닙니다. 세상 보는 것
아닙니다. 자기 안에 예수님만 계시는 성전이 돼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부르더라도, 어떻게 알아!
지금 이때가 오늘 오실지 내일 오실지 모르는 때 살고 있는데.....,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통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고 했습니다. 부한 자들이 뭐예요? 세상
것으로 채우려고, 채워지니 거기에 취해서 사는 그들에게 너희는 울고 통곡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
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 것 좀 모자
라도 좋습니다. 자녀들도 세상 공부시키려고 얼마나 부부가 거기에 매달려 세상 따라가느라 수고
하고 있습니까? 아주 세상 것 잘 갖춰보겠다고 어린 자식 저 유치원에다 내맡기고 맞벌이 한다고
합니다. 그러려면 자식 왜 낳아요? 양육을 부모가 하는 것이지 어떻게 세상 근본도 모르는 그런
곳에다 자식 내놓고 돈을 벌려고 한다는 말입니까? 자기 믿음도 물론이거니와 자녀들의 믿음도 함
부로 세상을 심어주어서 멸망으로 가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자, 그래서 성영님을 받는 것에 대해 알아보았고 그다음 내주하신 성영님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은
말씀 안에서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으로 살고자 하는 믿음의 노력과 말씀을 따라 움직여 갈 때에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성영 충만하게 안수기도 좀 해주라'고 하기도 합니다만, 기도해주고 안수
한다고 성영님으로 충만해진다면 제가 예수님을 믿겠다는 사람들에게 기도 팍팍 해주겠습니다.
절대로 성영 충만은 이런 경로로 되는 것이 아니란 것, 분명히 알기 바랍니다. 성영님을 귀히 여
겨 사모하고 성영님이 원하시는 목표를 나의 목표로 삼고 이끌려 갈 때 성영님으로 충만해지는 것
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계속 얘기하는 것은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르는 자들이 성영님으로 충
만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전하거나 말할 때 마음에서 기쁨이 있는 것을 경험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세상
쓸데없는 잡담이나 하고 나면 뭔가 씁쓸하고 개운치 않고 마음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습니까? 그것
은 성영님이 거부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영님과 배치되는 것이기에 불편한 것입니다. 그래서
죄가 되는 것은 성영님께서 그때그때 양심의 불편으로 지적하시니 즉시 깨달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성영님으로 충만하지 못한 것은 자기 안에 성영님을 모셔놓고는 골방에 가두어놓
듯이 하기 때문입니다. 가르치기를 시작하신 성영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믿음이 되도록 행할
일에 양심에다 말씀의 뜻에 따라 기도하라, 말씀을 보아라, 예배의 생활이 돼라, 죄를 버리라는 등
등으로 간섭하시며 가르치십니다. 그러니까 자기 마음에서 '기도해야 하는데 기도해야지'하게 되고
'말씀을 좀 읽어야 하는데'하는 등으로 믿음에 관련된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재빠르게 따라붙는 것들이 있습니다. 자기 본성에서 나오는 성영님의 뜻을 막는 인간
생각들입니다. "에이 귀찮다, 오늘은 이런저런 일로 시간이 안 되겠고 내일 하자"하고 오늘의 핑
곗거리가 눈앞에 나열되는 겁니다. 또 내일 되니 또 무슨 일이 생겨버립니다. 내 일이 내일 되고
하다 보니 사단이 아예 할 수 없는 형편이 되도록 그 힘을 잘 밀어줍니다. 그러니까 "성영님 잔소
리 말고 한쪽에 가만 계세요"하는 꼴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 성영님이 근심하시니 자기 영이 답답
함을 느끼고, 평안의 힘을 잃고 문제를 만나니 힘들고 마음에 불평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감정 내 뜻을 버리고 성영님의 가르침을 따르니 성영님이 기뻐하시니 내 영이 기뻐서 나도 모
르게 콧노래가 저절로 나오는 겁니다. 그러면서 사는 것이 즐겁습니다.
성영님께서는 반드시 믿음에 있어 행할 것을 가르치십니다. 믿음을 도와 예수님 잘 믿게 하시고
영,혼,육을 살리시는 일이시니, 성영님께서 감동케 하시는 것을 행하여 가면 영혼이 잘되고 범사
가 잘되는 것 당연합니다. 범사가 잘된다니까 직장 잘되고 회사경영 잘되고 세상 것이 잘된다는 말
아닙니다. 영.혼.육이 잘된다는 말이에요. 당연히 삶도 보호하시고 필요에 따라서 채우시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니 얼마나 즐거운 삶이 되느냐는 말입니다. 오직 예수님만 따라 산다고 하면 필요를
채우신다는 말입니다. 저를 보니까 나보다도 아버지가 더 급하시더란 말입니다. 굶을까 봐 미리 채
우시고, 돈도 필요를 구하도록 미리 채우시는 겁니다. 저도 자식 있는 부모이니 아버지의 심정을
조금 알 수 있었습니다. 자식이 늘 행복하기를 원하고 자식 마음이 즐거워서 웃는 삶을 살기를 원
하고, 참으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살기를 소망하는 겁니다. 자식이 기뻐하면 나도 기쁘
고 자식이 슬펴하면 나도 슬픈 겁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자녀가 행복하기를 원하고 기뻐하기를 원하시더란 말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으
로 낳은 자기 자녀가 기뻐하며 행복해하는 것을 보기를 원하셔서 그렇게 자녀의 행복을 위해 돌보시
더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성영님의 감동 주시고 가르치시는 것을 눌러버리는 것입니다. 그
리고는 "왜 이렇게 믿는 것이 힘든 것이냐? 괜히 믿었나봐!"하면서 자신을 보지 못하고 두려운 말
을 하고 나옵니다. 성경은 성영님과 다투라고 하지 않았고 성영님을 근심케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말입니다. 성경이 참으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라는 것을 진짜 믿는다면 엄청난 긍지가 생
겨 좋아서 말씀 보기를 너무나 사모할 텐데 근데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안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하
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처럼 생각이 드니까 그렇게 "보기 싫다, 읽기 싫다, 몇 줄 보면 졸린다"하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우리 믿음은 오직 성영님으로만 되는 것임을 분명히 아십시오.
오늘날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듣는 것 정말정말 심각합니다. 귀신의 음성을 듣고 쫓아다니는 사람들
많습니다. 여러분은 음성을 듣겠다고 애쓰지 마십시오. 음성 들으려고 마음이 애쓰면 결국 귀신이
얼씨구나 하고 갖다 주는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성영님이 말씀하시기도 하지만, 자기 스스로가 자
신의 믿음이 바른 것인가를 아는 것이지, 사실은 말씀으로 바로 서지 않은, 믿음이 바르지 않은 경
우가 대부분이라 영적인 측면에서는 성영님이 말씀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무거나 듣
고 우왕좌왕 따라다니지 말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믿음이 되기를 힘쓰는 것이 우선입니
다. 그러다 보면 영적인 밝음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그때는 자연스럽게 성영님과 교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홈피에 어떤 회원이 글을 올렸는데 '양신역사'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은 한 사람에게 두
신이 역사한다는 말이 됩니다. 두 신 중 한쪽은 성영님을 말하고 한쪽은 귀신을 말하는 것이지요.
바로 이런 것이 귀신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감히 하나님과 하찮은 귀신을 동등, 동격으
로 두고 하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입니다. 이런 가증하고 더러운 말들을 하는 것은 귀신의 음성을
듣고 귀신에게 가르침을 받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다른 신은 없습니다. 그 외에는 다
하찮은 피조물 귀신들입니다. 여러분 중에도 혹 자기도 모르면서 이런 표현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
라는 뜻에서 참고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가끔 저 자신을 돌아볼 때마다 성영님의 이끄심을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내 인
생의 짐을 지고 갈 땐 얼마나 곤고하고 마음 편할 날이 없었는데 그런 존재로 살았다면 과연 어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얼마나 끔찍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성영님의 이끄심을 따라 사는 이 복을 생
각하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도 성
영님의 이끄심을 따랐습니다. 복음을 전파하시고 병자를 고치시고자 갈릴리에 들어가셨을 때도 성영
님의 권능에 의해 가셨다고 했습니다(눅4:14). 하나님의 성영을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낸다고 했습니
다(마12:28). 예수님은 이같이 생애를 온전히 성영님으로 행하셨습니다. 기뻐하는 것도 성영으로
기뻐하셨다고 하셨어요(눅10:21). 칠십 인의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어 복음을 전하라고 각처로 보
냈는데 그들이 기뻐 돌아와서 그동안 있었던 일을 다 보고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
게 항복하더이다 하자 예수님께서는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
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고 성영님으로 기뻐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귀신은 예수님 이름 앞에 항복한 것이지 귀신이 항복했다고 해서 기뻐할 일은 아니다. 왜냐? 귀신
이 항복하는 것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일 뿐, 그것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기뻐할 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생명 얻게 되었으니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영님으로 명하셨다고 했습니다(행1:2). 십자가에서 피 흘
리신 것도 성영님으로 흘리셨다고 했습니다(히9:14). 예수님이 다시 사심도 성영님이 살리셨다고
했습니다(롬8:11). 그리고 부활하신 뒤 제자들에게 오셔서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영을 받으라"
하셨습니다(요20:22). 사람을 흙으로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이 된지라
한 것처럼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 생명 안에 부활의 생명을 불어넣으시듯이 그같이 제자들을
향해 '후'하시고 숨을 내쉬며 성영을 받으라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는 성영을 받으므로
예수님의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성영님이 아니고는 나실 수도 없었고 삼 년여의 공생애 사역을 하실 수도 없었고 성영님
으로 아니하고는 죽으실 수도 다시 사실 수도 없었습니다. 예수님과 성영님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절대적 관계입니다. 그래서 일체요, 하나요, 또 일하실 때는 따로 분리되어 나오실 수도 있는
분이요, 그래서 삼위일체라고 하는 겁니다. 그다음 두 번째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영을 받으라'
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성영님으로 다 이루시고 하늘로 가셔야 했습니다. 이제 제
자들이 예수님의 이루신 그 뜻을 그대로 바통(baton) 받아 예수님의 일을 행하여야 하기에, 그같이
'성영을 받으라'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듣고 본 바를 행하고 그대로 사람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을 받고 성영님의 충만함을 받아 예수님을 증거한 것입니다.
오늘날 너무나 잘못된 가르침들로 인해 예수님께서 내게 듣고 본 바를 행하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신 말씀으로 할 말이 참 많은데, 때가 늦은 말 이제 말하면 뭐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행1:4,5에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
라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영으로 침례를 받으리라고 하신 대로
오순절 날에 성영님이 하늘로부터 임하여 오셨습니다. 바로 믿음은 성영님으로만 되는 것이기에
예수님께서 '성영을 받으라''성영으로 침례를 받으리라''성영님을 보내리라''너희 속에 계시겠음이
라' 강조하고 강조하여 성영님을 받아 믿음이 되어야 함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성
영님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알고 성영님으로 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혈과 육으로 태어납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신앙이 좋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식이라도 그 신앙은 유전될 수 없습니다. 여전히 혈과 육으로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를 소개할 때 모태신앙이라는 말을 참 서슴없이 하는 것을 많이 듣습니다. 사
실 '모태신앙'하는 것은 거짓말이요, 자기 기만입니다. 어떻게 배 속에서부터 신앙이 있습니까? 배
속에서 분명히 구주 예수님을 알고 구원받아 나온 것이 아니니 100% 틀린 말입니다. 신앙은 구주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신앙하므로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은 것, 인격적인 관계가 된 것, 예수님을 구주
로 믿고 영접하여 거듭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믿는 것이 아님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예수님을 믿어 교회를 다니셨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았고, 자신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것은 언제다"라고 말하는 것이 맞는 말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영님으로 잉태되어 나신 것처럼 우리도 성영님으로 다시 나는 것입니다. 성영님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께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성영님으로 다시 나서 성영님으로 사는 것입니다. 요16:
13에 진리의 성영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
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했습니다. 장래일이 뭘까요? 가난한 자
기를 하나님께서 잘살게 해주신다는 것을 알게 하신다는 것일까요? 자녀들을 훌륭한 인물이 되게 하
실 것을 알게 하신다는 것일까요? 좋은 집에서 살 수 있도록 어느 때 좋은 집을 주신다는 것을 알
게 하신다는 것일까요?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신 이 말씀을 성영님께서 제게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천국을 보게 하시고, 눈앞에 왔다 갔다 보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영님으로 천국을 확실히 본다는 것이고 하나님이 아버지이심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고, 예수님
께서 강림하신다는 것을 확실히 알려주시고, 영생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려주신다는 말입니다.
제가 목사라는 사람들에게 "장래 일에 대해서 알리심을 받으셨느냐?" 물으니 대답이 없었고 단지
어안이 벙벙해하는 모습만 보았습니다. 물론 그 외 믿는다는 사람들에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저의 이 말씀을 성영님으로 듣고 "제게 이 믿음을 갖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천국은 이제
내 것입니다. 천국을 내 안에 품고 분명하게 보게 하시고 꿈을 갖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천국은 이
제 내 안에 있습니다"라고 장래 일을 기쁘게 고백하는 여러분이기를 바랍니다. 자기에게 천국이 이
뤄져야 천국이지 자기에게 천국이 없으면 천국은 없는 것입니다. "가봐야 알지!" 이미 그것은 틀렸
습니다. 가보면 지옥입니다.
어떤 목사라는 사람이 "천국이 있는지 가봐야 알지"했습니다. 저만 이 말을 들은 것은 아닐 것입니
다. 도대체 왜 목사를 하는지 불쌍합니다. 그의 주관자가 저와 같은 성영님이 아닌 다른 존재이니
말할 필요는 없지요. 여러분 또한 그런 막연함으로 귀신에게 농락당하는 그런 자리 있지 말고 육체
에서 떠나면 천사들이 받들어 아버지 나라에 들어가는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이렇게 성도는 성영
님으로 진리를 알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받아야 하나님의 뜻대로 믿는 것이요, 신앙입니다. 오직
성영님께서만이 말씀을 깨닫고 바로 알 수 있게 하는 것이지 다른 어떤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
다. 온 세상 수십억의 인간 머리의 지혜를 모아도 깨달을 수 있는 것 아닙니다. 이처럼 성영님은
예수님과 뗄 수 없는 관계이신 것처럼 성도 또한 성영님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실제로 자신이 성영님의 이끄심을 알지 못하면 그것은 아직 바른 관계의 믿음이 되지 못했습니다.
행16:6,7에 성영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
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했습니다. 바울은 아시아에 사람이 많으니까 거기 가서 복음을 전하
려는데 성영님이 막으셨다는 것입니다. 자기 머리, 자기 생각 내려놓고 성영님의 이끄심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행1:8에 "성영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하는 이 '두나미스, 권능'은 말에
도 행동에도 권능이 있다는 뜻입니다. 영에 권능이 있어 죽음도 질병도 저주도 다 물리친다는 뜻입
니다. 바로 예수님도 제자들도 사도 바울도 이 같은 권능으로 말하고 행하니 바리새인 서기관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얼마나 핍박하고 방해했습니까? 이들이 하나님의 일을 망가뜨리고 모독하니 하나님
을 위해서 죽이자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성영님 없는 성경 박사라는 사람들이 오직 예수
님을 증거하러 오신 성영님을 얼마나 방해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성영님은 예수님을 증거하러 오셨
습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 가지고 세상사나, 정치나, 문학이나, 윤리나, 도리나, 도덕이나 논하면
서 성영님의 뜻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아듣습니까?
또한, 성도는 예수님과 같이 성영님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요16장에 내가 아버지께로 간다 하시
니 제자들이 근심이 되었습니다.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고, 너희
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다시 오고, 내가 죽으나 다시 제삼 일에 살아난다 하시고 도무지 알
아들을 수 없는 말씀을 하신 겁니다. 율법은 부활을 말하고 있지 않으니 제자들이 알아듣지를 못했
어요. 내가 가면 슬퍼하여 애통하지만 오히려 기뻐할 것이라고, 성영님이 오시니 너희 마음이 기쁠
텐데 너희 안에 성영님이 오시면 기쁨을 아무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고 말씀하신 대로, 제자들이
성영님으로 기쁨이 충만했기 때문에 어떠한 고난도 핍박도 넉넉히 감당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
도 이같이 성영님의 기쁨으로 기뻐하는 신앙인지 자신을 살펴봐야 합니다.
그다음 가르치는 것도 배우는 것도 성영님으로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다. 요14:26에 보혜사 곧 아버
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영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
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하셨고 고전2:13에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
니하고 오직 성영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영한 일을 신영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했습니다. 바울
도 신영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데 성영님으로 가르친다고 했습니다. 또한, 성영님으로 분별한
다고 했어요. 그래서 많은 학문을 했고 성경을 꿰는 박사라 하더라도 성영님 없이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생명 얻지 못하는 껍데기일 뿐입니다. 성경 안다고 하는 혼의 만족은 있을지언정 영의 것은
될 수가 없습니다. 성경을 배우는 것도 읽는 것도 성영을 의지하여 배우고 읽어야 하고 가르치는
것 또한 반드시 성영님의 능력과 지혜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배드리러 올 때도 "예수님의
피가 내 죄를 씻어주시고 의롭다 하셨으니 이 은혜 입고 감사로 나아갑니다. 삼위의 하나님께 영광
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들을 때 성영님으로 듣고 새김질하여 영혼에 살이 되고
피가 되는 복이 있게 해주옵소서"라고 믿음을 고백하고 성영님 의지하여 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의 언어 자원은 누구입니까? 성영님입니다. 마16:17에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마10:20에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영이시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성영님께서 그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아 입의 말이 예수님 복음의
말 아버지 나라의 말을 말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영님은 신앙과 생활과 언어에 있어
서 절대적 요소가 되고 자원이 되십니다. 그래서 이것을 사모하고 기도하는 겁니다. 성영님께서 내
마음도 생각도 지배하여 주시고 내 언어도 사로잡아주셔서 성영님의 말이 되게 해주시라고 하는 거
예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라"하신
것은 바로 이런 것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 하는 것인데, 여러분 뭘 기도합니까? 먹고 사는 문제
요? 이생의 자랑의 것들이요? 기도할 것이 없다고 하는 말도 들었는데 예수님 믿는 것을 그렇게 이
웃집 사람 대하듯 하는 것은 진짜 믿는 것은 아니지요.
성도의 부활도 예수님처럼 성영님이 일으키십니다. 롬8:11에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했습니다. '성도'라고 하는 것은 성영님으로 다시 난
사람을 말합니다. 성영님의 이끄심을 받고 성영님의 권능으로 하나님 나라의 일도 하고 성영님으로
기뻐하고 성영님으로 또 배우고 가르치고 말하고 일하다가 마침내 성영님으로 부활하여 삼위일체
하나님과 영원히 복락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도 절대적으로 성영님이 세우시고 성영님
께서 이끌지 않으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몸에 붙은 지체입니다. 지체들이 모인 것을 교회라 하고 교회를 예수님의 몸이
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성영님으로 잉태되어 나셨고 또한 성도가 성영님으로 다시 났으니 성영님으로 난 성도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멋지게 세운 예배당 건물을 교회라 하는 것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건물에 관심
없습니다. 오늘날 건물 놓고 성전이라 하는 그런 사기꾼들이 있는데 그것은 자기도 속고 또 속이는
거짓 종자들입니다. 건물을 성전이라 한다면 구약으로 가서 모세처럼 지시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구약시대는 끝났어요. 지금 건물을 성전이라 하는 것, 그래서 사람들 마음에 건물을 신성시하도록
조장하는 것, 그것은 성영님을 훼방하는 것으로서 도무지 사함 받지 못할 죄에 속합니다. 그래서
건물을 성전이라 하는 것들은 거짓 종자라는 것을 밝혀드렸습니다. 교회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
라고 하는데 뜻은 '영적으로 불러냄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다, 성영님으로 난자(성도)들의 모임이
다'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영님에 의해 세워지는 것입니다.
오순절에 성영님이 임하시니 교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영님이 임하셔서 공생애를 시작하셨
던 것처럼 교회도 성영님으로 세우시고 예수님의 제2의 공생애를 따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님이 교회의 머리이시니 지체는 자기 머리가 아닌, 머리이신 예수님을 머리로 가져야 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머리가 원하시는 것을 지키고 따라야 그것이 지체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참으로 징그럽
고 무서운 것이 머리이신 예수님은 없고 중풍에 걸린 것과 같은 지체들만 넘쳐납니다. 머리 따로
지체 따로 노는 중풍 병자 같은 모습들로 넘쳐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그 모습이 눈으로 보
인다면 얼마나 징그럽겠습니까? 영의 눈을 떠서 볼 수 있다면, 징그러워서 보지 않으려고 할 것입
니다. 그것을 보는 저로서는 진짜 징그럽습니다. 쳐다보기 싫습니다.
성영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이끄시며 예수님의 남은 고난을 채우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
을 교회가 바통을 받아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2의 공생애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
가 성영님을 알지 못하고 성영님으로 일하지 않고 성영님을 따르지 않으면 죽은 교회입니다. 제자들
이 삼 년 반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시며 죽은 자도 살리고 병든 자도 고
치시고 귀신도 쫓아내고 풍랑도 잔잔케 하시고 오병이어로 표적과 함께 많은 이적을 행하여 나타내
시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씀하신 것도 다 보고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성영님이 계시지 않으
니 예수님이 왕이 되면 누가 좌의정이 되고 누가 우의정이 될까, 누가 더 크냐? 하며 서로 경쟁의
식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막9-10장). 당시 유대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예
수님께서 유대 나라를 로마에서 해방시켜 하나님의 나라가 되고 예수님이 왕으로 등극하여 나라를
다스리실 것으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따라 죽는다고 자신에 찬 소리 하더니 따라 죽기는커녕 죽을까 봐 배반하고 예수
님을 저주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예수님 죽는 데까지 따라
가 같이 죽던지 예수님 죽게 버려두지 않습니다'하던 베드로가 죽을까봐 겁나서 배반하고 부인하고
모른다고 맹세까지 하며 저주했다고 했어요. 제자들이 자기 목숨 위태로우니 다 도망가 숨었습니
다. 이같이 성영님 모르고 성영님으로 믿는 것이 아니면 인간 자기 믿음, 자기 사랑으로는 이 제자
들과 같습니다. 인간으로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한 것입니다. 어떻게 제자들
이 그럴 수가 있을까? 하지만 성영님으로 믿는 것이 아니면 인간 자기는 하나님과 원수를 맺은 것
이기 때문에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뭔가 잘되면 '할렐루야!'하고 '하나님 사랑합니다. 찬양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목숨도 아
끼지 않겠습니다'합니다. 그러나 밑바닥에 떨어지거나 목숨의 위협 앞에 서면 '하나님이 어디 있느
냐? 하나님 계시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하고 나옵니다. 그러나 믿음이 성영님으로 되면 밑바
닥이든 위에 있든 풍부에 처하든 빈궁에 처하든 환경에 좌우하지 않습니다. 그 속은 천국을 소유했
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짜 믿음인지 아닌지 고난 때 아는 거예요. 믿음인지 아닌지! 제자들이 성
영님으로 침례를 받으니 목숨을 내놓고 핍박과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을 증거하지 않았습
니까? 예수님께서 맡기신 하나님 나라의 일을 성영님과 함께 동역하여 확장해 가잖아요? 그래서 성
영님 모르고 주의 일 한다고 하는 사람, 믿음 생활한다고 하는 사람, 성영님 없이 일한다면 무엇이
될지 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오직 말씀과 성영님으로만 되는 것을 이제 우리가 너무나 확실히 잘 알게 되었으
니 오직 믿음을 도우시는 성영님께 아뢰고 의지하고 따르면서 성영님으로 믿고 성영님으로 일하고
성영님으로 가르치고 성영님으로 복음 전하고 성영님으로 살다가 성영님으로 들려 올라가는 여러
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에게 성영님으로 말씀을 알고 믿는 믿음이 되
게 하신 삼위의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아멘!!
제 18 장 믿음은 오직 성영님으로만 되는 것.p333-p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