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명 평전
제3장 통일교, 세계로 뻗어나가다
5. 미국의 영혼을 뒤흔들다
1970년대에 미국 사회는 심하게 분열되어 있었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문선명은 '하나님의 뜻과 미국'이라는 주제로 전역을 순회하며 설교를 했다. 그 누구도 지적하지 않은 미국의 아픔을 꼬집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동양에서 온 신흥종교 목사를 호기심으로 바라보았으나 차츰 문선명의 말에 귀 기울이고 설교에 감명 받았다.
그러나 문선명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무언가 더 큰 경고가 필요했다. 그래서 건국 200주년에 맞춰 미국의 심장부인 뉴욕과 워싱턴 DC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기로 했다.
첫 번째 행사는 1976년 6월 1일,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렸다. 문선명은 첫 번째 행사를 '하나님이 미국을 축복하시는 축제'라 명명했다. 양키스타디움 집회가 진행되자 미국 전역과 전 세계의 신도들이 뉴욕으로 몰려들어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다.
거리에서 혹은 가정방문을 통해 전단을 시민들에게 전했고, 다채로운 포스터도 붙였다. 또한 기독교 교회들을 방문해 성직자와 신도들을 초청했으며 수만 명의 기독교 성직자들에게 초청 편지를 보냈다.
행사가 있기 한 달 전부터 '미국을 아름답게' 라는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공연예술팀 단원들은 대중집회와 행진을 통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양키스타디움은 빨간색, 하얀색, 노란색 장식품으로 아름답게 꾸며졌다. 대규모 무대가 중앙에 설치되었고 무대 뒤에는 '하나님의 미국을 축복하시는 축제'라는 큼직한 플래카드를 달았다.
그러나 행사 당일은 한순간에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져 행사장은 곳곳이 망가지고 사람들은 비에 흠뻑 젖어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었다.
세찬 바람은 폭우를 몰고 왔고 스타디움 위를 비행할 열기구는 땅으로 떨어져 경기장 여기저기를 뒹글어 다니며 행사장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또 대형 간판들도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고 사람들은 비를 피해 이리저리 몰려다니느라 혼란이 극에 달했다.
너무나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몇몇 지도자는 다른 날로 연기하자고 말했다. 그러나 문선명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행사장을 떠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당신은 나의 햇살'이라는 찬송을 불렀다. 모든 사람들은 일어서서 비에 흠뻑 젖은 채 찬송가를 불렀으며 누구도 낙담하지 않았다.
마침내 비는 멈췄고 햇살이 비추기 시작했다. 수만 명의 청중들은 기쁨에 환호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뉴욕 심포니 (New York City Sympy)와 고월드브라스 밴드 (Co-World Brass Band), 새소망 국제합창단 (New Hope Singers International), 한국 민속춤 공연 등을 시작으로 행사가 다시 진행됐다. 문선명은 단에 올라 '미국에 대한 하나님의 소망'을 주제로 설교를 시작했다.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차원의 시대에 접어 들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으니 그 하나는 자기만을 중심 삼고 사는 사람이요, 다른 하나는 개인과 가정을 넘어 국가와 세계를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주도적 역할을 해온 사람들은 모두가 공적인 생활을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개인보다 가정을, 가정보다 국가를, 국가보다 세계를, 세계를 넘어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이 공적인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야말로 최고의 공적인 분이십니다. 타락해 당신을 배반한 인류를 버리지 않으시고 일편단심 그들을 죄악과 도탄에서 구원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가정과 교회, 국가는 인종을 초월해야 하며 국적을 초월해야 합니다. 즉 오색 인종이 정답게 섞여 사는 통일된 혼합 민족형!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내적 사상의 싸움에 있어서도 말씀과 사상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모시지 않고는 결단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신 미국이 중심이 되어 유심 민주주의 세계와 유물 공산주의 세계와의 대결에서 공산 무신론의 세계를 완전히 극복하고, 초민족적이요 초국가적이면서 세계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의 승리를 거두어야 합니다."
양키스타디움 대회가 끝난 뒤 곧바로 워싱턴 모뉴먼트 광장에서 30만 명을 대상으로 대회를 연다고 선포했다. 날짜는 9월 18일로 못을 박았다. 문선명은 자나깨나 모뉴먼트 대회를 생각하느라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7월 초, 수 백명의 신도들은 워싱턴 시민들에게 행사의 참뜻을 알려주기 위해 속속 모였다. 그들은 공원 청소, 양로원 방문, 민속춤 교습 등의 봉사활동을 했다. 9월 18일 워싱턴 모뉴먼트 대회가 열렸다. 650대의 버스가 워싱턴DC를 부지런히 오가며 3만 명이 넘는 시민들을 실어 날랐다.
또 다른 850대의 버스는 인근 주에서 4만 여 명의 사람들을 싣고 왔다. 이외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자동차로 혹은 걸어서 행사장으로 왔다. 그렇게 참석자 수는 30만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정말로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
비판자들은 자신의 눈을 믿지 못했다. 그들은 '문선명은 실패한다'고 호언장담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30만 명의 청중들이 미국 전역과 전 세계에서 모여들었고, 행사는 평화롭게 진행됐다. 예술단 공연이 끝난 후 문선명은 오후 7시에 연단에 올라 '하나님의 뜻과 미국'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미국은 지금 인종문제, 청소년 윤락 문제, 기독교 몰락과 공산주의 문제 등 여러 심각한 문제들을 안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무신론에 입각한 공산주의의 위협은 가장 심각하며 이 시간에도 세계 도처에서 침식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은 크게 각성하고 하나님께서 분부하신 중차대한 세계적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두철미한 하나님주의로 돌아가 공산주의와 공산세계를 해방하고 지상천국 건설의 기수가 되어야 합니다. 미국은 오늘 각성해야 합니다. 내일이면 늦습니다."
이어 미국 독립을 축하하는 불꽃놀이로 장관을 이루며 끝났다. 양키스타디움 대회와 달리 모뉴먼트 대회는 지극히 평화롭게 진행됐다. 날씨는 아주 화창했고, 행사를 방해하는 시위나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1971년 12월 18일 워싱턴에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문선명은 고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선명은 그 고난을 망설임 없이 받아 들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온몸과 마음을 투입했다.
워싱턴 모뉴먼트 집회는 그의 말처럼 '미국 청년들에게 신성한 충격'이었으며 통일교가 세계적인 종교로 자리잡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아주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