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철 - 하늘 나라 청지기 - 2. 첫 번째 하계 전도 회고
1 1957년 7월 20일, 특별 40일 하계 전도가 시작되었다. 아마도 그 당시 뜻을 따라가는 식구라면 누구나 참가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때다. 40일 전도의 의의를 듣고 나니, 나도 마찬가지였다.
2 우리는 반만 년의 역사를 지닌 민족이지만 이 나라 저 나라에 찢긴 상처투성이의 흔적이며 동족상쟁이라는 비극 속에 허덕이는 슬픈 사연의 민족이었다. 그러기에 입에서 나오는 말에 좋아도 죽겠다, 나빠도 죽겠다, 배불러도, 배고파도 죽겠다는 말과 같이 소망 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민족과 같았다. 국민학교 때는 일제의 교육을 받았고, 중학교 때는 소련군 진주 후의 북괴 교육을 받았다.
3 피난 후에는 미군들의 신세를 지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가난을 생각하는 조상들의 무능과 무책임을 탓하고 싶었다. 내가 가진 것 없고 아는 것 많지 않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 민족 앞에 희망과 소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자꾸 역사적 동원에 참여하고 싶었다. “전도 나갈 사람 손들어봐”라고 하시는 선생님 말씀에 나도 손을 번쩍 들었다.
4 지금 생각하니 정말 당돌했다. 선생님이 쾌히 승낙하여 주셔서 이요한 목사님의 장남인 이대위군과 짝이 되어 경북 영덕으로 떠났다. 얼마나 귀하고 중한 사명을 졌으며 또한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내용도 실력도 없는 가운데 동참했다.
5 아버지는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결과적으로 한 사람의 식구도 뜻 앞에 찾아 세우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하나님은 뜻을 위해 더욱 충성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갖게 해 주셨다. 6 40일간 하루도 빼지 않으시고 선생님께서 몽시 가운데 나타나시어 ‘의심 말고 열심히 공부하고 끝까지 따르라’라고 하시던 모습은 잊을 수가 없었다. 또 한번은 선생님께서 높이 하늘로 올라가시는데 나도 믿음으로 아버님 가시는 곳을 따라가려고 땅을 차고 하늘로 뛰어오르니 몸이 둥둥 떠서 선생님의 손길을 잡으려고 높이 날던 그때의 광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7 요셉이 꿈 해석을 잘하여 애급의 총리대신이 되었다지만, 나는 내가 꾼 꿈 해석을 잘하여 오늘의 뜻길에 남아졌는지도 모르겠다. 8 전국을 누비며 부흥회를 주도하는 전도관의 박 장로가 영덕으로 온다고 하기에 호기심에 참석해 보려고 작정한 날 밤의 꿈이었다. 독실하게 믿는 한 남자가 아기를 업었는데 머리를 쳐들고 얼굴을 바라보니 눈이 하나뿐이었다. 깜짝 놀라 일어나 보니 새벽이었다. 믿는 남자가 아기를 업었다 함은 성도들을 보살핀다는 뜻이요, 눈이 하나밖에 없다 함은 완전한 뜻이 아니라 한 쪽이 부족한 진리를 의미한다고 생각되었다.
9 말세는 신령과 진리로 예배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시던 유효원 협회장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7일간의 금식을 하면서 전도관 집회에 참석했다. 그러나 무사했다. 어린 것들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은사임을 깨달았다. 10 시장기를 몇 개의 감자로서 때우고 교회에서 자려다가 목사에게 쫓겨나 거지들과 같이 자기도 하며 칠팔십 리 길을 걸어서 갔다 오기도 했다. 11 겨우 전도관에 나가는 집사에게 말씀을 전했는데 이단에 빠졌다는 주위의 모진 핍박 때문에 더 이상 말씀을 듣지 못했다. 좀 더 뜻을 알게 해 줄 수만 있었다면 능히 시련을 이기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12 그 후로 더욱 원리 공부에 열심했다. 선생님은 전도 나간 전 식구들에게 직접 싸인하신 원리해설을 보내 주셨다. 정말 귀한 보물과도 같이 가지고 다니며 보고 또 보았다. |
첫댓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