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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8일 주일 설교
시리즈 제목: 땅을 위한 하늘의 대리인들 17
설교 제목: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라
https://youtu.be/OZ3gI4RgBcE?feature=shared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마태복음 16:1~4
설교 목적:
예수님은 때를 분별하라고 하셨다. 사도들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고 했다. 자다가 깰 때라고 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의 전쟁을 보면서 마지막 때가 가까이 왔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이번 설교에서 나는 마태복음 16장에서 말하는 시대의 표적에 대하여 설명한 후에 오늘 우리 시대의 표적에 대하여 정리할 것이다. 이 설교를 통해서 우리는 지금이 어느 시대라는 말이 결국 하나님의 뜻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에 자신을 바치는 삶을 사는 것이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고 사는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설교 개요:
1.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2. 요나의 표적
3. 우리 시대의 표적
4.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라
***
1.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오늘 저는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라는 제목으로 설교하겠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책망하신 말씀에서 왔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날씨의 표적을 분별하면서도 시대의 표적을 분별할 수 없느냐고 질책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생각해 보면 당연히 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너무나 분명한데 그것을 보고도 깨닫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날씨처럼 너무나 명확하게 분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시대의 표적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무슨 말을 했기에 예수님은 이렇게 시대의 표적을 분별할 수 없느냐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주기를 요청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에게 이런 요청을 합니까? 그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고자 할 때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요구합니다. 요한복음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요한복음 6:30).
그러므로 예수님이 질문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결국 ‘당신이 진정으로 하나님이 보내신 예언자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그렇다면 시대의 표적을 보고 분별하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메시아이심을 알아야 하며, 그렇다면 하나님이 지금 메시아를 보내셨다는 의미인데, 그러면 지금이 예언자들이 그렇게 말한 바로 그 예언이 이루어지는 시대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표적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메시아시라면 지금 하나님이 새로운 일을 하시는 역사적인 시대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시대의 표적은 결국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표적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보고 사람들은 단지 하나님의 메시아가 오셨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이제 하나님이 약속하신 계획이 이루어질 때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시대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2. 요나의 표적
그들을 위해서 보여주실 표적은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장에서 요나의 표적은 다음과 같이 설명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마태복음 12:39~40
요나의 표적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오병이어 표적과 칠병이어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믿겠습니까? 결국 그들은 시대의 표적을 읽지 못하고 그 결과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새 시대의 사역과 역사에 동참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혈통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위해서 하시는 모든 일은 아브라함의 언약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혈통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지만 실제로는 아브라함의 언약과 유업을 물려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삭의 아들 에서처럼 그들은 아브라함의 약속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정리하여 말했습니다: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로마서 2:28~29
아브라함의 언약을 이어받으려면 육신의 표면에 할례를 받을 것이 아니라 마음에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마음으로 하나님이 하실 일을 믿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그 일에 동참하라는 말입니다. 성령이 밝히 증거하는 것에 대하여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니 그가 두루 다니며 착한 일을 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고 사람들이 그를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셨고 우리에게 음식 드시는 모습을 보여주시고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재판장이라고 증거하게 하셨습니다(사도행전 10:38~43).
이렇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예수님은 그것을 요나의 표적으로 제자들에게 보이셨으며, 그 제자들은 고넬료와 같은 이방인에게 그 사실을 증거했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혈통적 유대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혈통을 떠나서 아브라함의 언약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그것을 명확하게 말했습니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갈라디아서 3:7~9
3. 우리 시대의 표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지난 2천년 동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믿고 그 언약에 동참하면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온 세상에 복을 주시기 위하여 한 민족을 택하시고 그들과 함께하시면서 그들을 통하여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믿음과 삶을 통해서 건강하고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 인간의 삶을 배우고 추구하면서 공동체를 이끌어 왔습니다. 그것이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이어온 교회입니다. 진정한 교회는 언제나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하심을 믿었고 이 세상의 권력자들이 일어서서 세상을 혼란하게 할지라도 참되신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믿고 따랐습니다.
진정한 교회는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와 늘 함께 하신 것처럼 교회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사도들도 하나님이 항상 함께하시고 자신들 가운데서 일하시는 분임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교회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평화의 복음을 전하게 하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장차 하나님이 완성하실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면서 인내와 희생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교회를 세상의 등불로 서 있게 하는 비결이었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성경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하여 일하시며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다시 오실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이야말로 하나님이 아끼시는 진정한 도시이자 민족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생각으로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에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그들은 이제 구약의 예언이 성취된다고 말했습니다. 즉, 예수님의 재림이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시대의 표적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때를 보여주는 표시입니다.
예를 들면,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을 곡과 마곡의 전쟁으로 해석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에스겔 38장과 39장에 있는 이 예언을 끌어와서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해석자들은 시대의 표적을 종말이 징조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시대의 표적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과 관련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시대의 표적을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오셔서 그들을 다시 아브라함의 언약에 동참할 수 있게 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결과 교회가 세워지지 않았습니까?
사도 바울도 자기 시대의 표적을 잘 이해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지금 어떻게 일하시며 무슨 일을 하시는지를 잘 알았다는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 구원의 날이라고 했습니다(고후 6:2). 특별히 그는 때가 찬 경륜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를 머리로 하여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이 다 통일될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어 한 가족이 되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제사장과 같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당시에 사도 바울이 깨닫고 증거한 복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시대에 하나님이 이런 일을 행하신다고 굳게 믿고 증거했습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발견하고 분별한 시대의 표적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시대의 표적이란 하나님이 지금 하시는 일을 깨닫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를 살피려면 우리는 성경과 세상을 잘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시대의 표적을 분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며, 그 뜻이 지금은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살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점에서 지나간 모든 역사를 되돌아볼 때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은 사람들은 모두 자기 시대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깨닫고 그 일에 동참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영웅들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 교회의 역사 가운데서 활동한 많은 선배 신앙인들입니다. 멀리는 어거스틴에서부터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 그리고 길선주 목사님과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과 조용기 목사님 등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준 우리 믿음의 어머니와 아버지들도 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에 순종한 사람들입니다.
그 위대한 순종의 역사를 릴레이 경주에 비교한다면, 오늘 우리는 그 경주에서 바통을 들고 뛰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브라함과 다윗, 모세와 바울, 베드로와 우리 신앙의 선배들과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성경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그런 열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하늘의 문을 열어주셔서 하늘의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사도 야고보도 말하기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야고보서 1:5)고 하였고,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야고보서 3:17~18)고 했습니다.
4.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라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라고 인사하며, ‘하나님이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우리 교회 암송 성구 2-9번은 빌립보서 2장 13절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소원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지금 우리 주변에서 무슨 일을 하시는지를 잘 살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 또는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하나님의 뜻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살피는 것은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해석의 문제입니다. 글자로 된 텍스트를 해석하는 것이나 사건이 일어나는 상황인 컨텍스트를 해석하는 것은 어떤 관점을 필요로 합니다. 예를 들면, 코로나 판데믹이 일어났을 때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종말의 징조라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의 주장은 거짓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상황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관점이나 생각이 그들에게 안경이 되어 그런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먼저 올바른 눈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올바른 눈은 성경에 대한 건강한 관점을 말합니다. 성경 전체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차근차근 배운 사람은 그릇된 가르침에 쉽게 빠지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의 경우에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잘 배우면 하나님의 저주를 조심하라는 위협을 우습게 여길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경륜을 잘 배우면 말세가 가까이 왔다거나 휴거가 임박했다는 식의 말에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하나님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세상을 경영하시는지를 안다면 다른 이야기를 분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눈은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는 눈이면서 동시에 양심의 눈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큰 그림을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성경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분별하려면 우리의 양심이 맑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눈은 몸의 등불이니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 6:22, 눅 11:34). 눈이 성하다는 말은 맑은 창문처럼 세상을 밝히 보는 것입니다. 눈이 나쁘다는 말은 불투명한 창문처럼 모든 것이 희미하게 보인다는 말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하신 기적을 보고 그것을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 행하시는 표적이라고 알아보는 것은 맑은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탐심이나 두려움이 마음의 창문을 흐릿하게 하면 명약관화한 사실도 볼 수 없고 판단할 수 없는 맹인이 되고 맙니다. 눈이 성해야 바르게 보고 반응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는 자들과 함께 울 수도 있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 가운데서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즐거워하면서 가족과 이웃, 그리고 우리의 공동체를 살핍시다. 그리고 주님이 어떤 일을 하시는지 살펴보고 우리도 그 일에 동참합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