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문화사(33)-철원(鐵原)
강원특별자치도 북서부에 있는 철원은 고구려 시대부터 국가에서 인정한 우리말 땅이름이 있었을 정도로 중요하게 인식되었던 곳이었다. 20세기에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되는 상황을 맞이하여서는 철원군 역시 둘로 쪼개지는 아픔을 겪었다. 또한 휴전선(DMZ)이 철원군 북쪽을 지나게 됨으로써 민간인 통제 구역을 중심으로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곳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고구려, 신라, 고려, 조선 시대 내내 지리적으로나 전략적으로나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고 그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일 정도로 철원 지역은 소중한 가치를 지닌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고구려에서 지금의 철원을 부르는 공식적인 명칭은 ‘철원(鐵圓)’이었는데, 한자의 뜻과 소리를 빌어서 우리말 이름을 표기하는 이두(吏讀)로는 ‘모을동비(毛乙冬非)’라고 했다. 신라 경덕왕 대에 ‘철성(鐵城)’으로 했고, 고려가 건국되면서 개성에 도읍을 정한 왕건은 ‘동주(東州)’라는 지명으로 바꾸기도 했다. 그러다가 고려 충선왕(忠宣王) 대인 1302년에 지금의 땅이름인 철원(鐵原)으로 고쳐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런 역사에 비추어 보면 철원이라는 지명이 가진 뜻을 올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고구려 시대의 땅이름인 모을동비와 철원(鐵圓)에서 시작해야 함을 쉽게 알 수 있다. 한자 지명은 우리말 땅이름의 뜻을 그대로 옮긴 것이므로 이두 표기로 된 원래의 우리말 지명인 ‘모을동비’를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것으로 생각된다.
‘모을동비’는 ‘모을(毛乙)’+‘동비(冬非)’의 구조로 되어 있으므로 두 낱말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해석이 필수이다. 이두(吏讀)에서는 중심이 되는 표현은 한자의 뜻을 가져오고 나머지는 소리를 빌려 오는 것이 원칙인데, ‘모을동비’에서는 중심어인 ‘모을’은 뜻을 가져오고 ‘동비’는 소리를 가져와서 표기한 것으로 파악된다. ‘毛乙’은 ‘털’의 이두 표기가 되는데, ‘乙’은 받침을 나타내는 ‘ㄹ’로 많이 쓰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여기에서도 받침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 경우는 좀 다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털’을 표기하기 위한 것으로만 본다면 ‘ㄹ’ 받침으로 볼 수 있지만 중세 이전에는 ‘털’은 ‘텨럭’ 혹은 ‘터럭’의 형태로 존재했기 때문에 ‘乙’은 ‘럭’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터럭’이 ‘털’로 되었기 때문에 같은 뜻이기는 하지만 ‘乙’이 그냥 받침을 표시하기 위한 용도로만 쓰인 것이 아니므로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이 말은 ‘텨럭>터럭>털’로 음운변화가 일어났는데, 고구려에서 ‘毛乙’로 표기한 ‘털’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를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한다면 철원이란 땅이름의 참뜻을 제대로 헤아려내기 어려울 수 있어서 상세한 고찰이 필요하다. 사람이나 짐승의 피부에 돋아나는 가느다란 실 모양의 조직이 ‘털’인데, 사람의 그것은 검다는 것이 기본이므로 ‘검은색’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용도로 쓰였다. ‘검은색’은 다시 추상적인 어떤 것과 연결되면서 이중의 상징 구조를 가지게 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음양오행설에 의하면 ‘검은색’은 방위상으로는 북방(北), 물질로는 물(水)을 상징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중국식 사상으로 이해하면 ‘털’은 물과 북쪽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해석은 ‘毛乙’에 대한 이해를 한층 어렵게 만들 뿐인데, 그 이유는 고구려에서 붙인 땅이름이기 때문이다.
고구려는 북방에서 일어나 만주를 거쳐 한반도까지 진출한 나라라서 그런지 중국 한(漢)나라 무렵에 만들어진 음양오행설 같은 사상은 수용하지 않고 독자적인 이념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고구려의 우주관, 혹은 세계관은 몽골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데, 이쪽 세계관에서 ‘검은 것’은 방위상으로 ‘가운데(中央)’를 상징하며, 힘과 권위를 나타내는 색으로 간주했다. 그러므로 검은색을 가진 ‘털’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중심, 중앙, 한가운데, 군주, 가장(家長) 등을 상징하는 존재가 된다.
‘털’을 ‘毛乙’로 표기했다는 것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털’을 지칭하는 중세 이전의 말이 ‘터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점을 고려하면 ‘터럭’은 매우 오래된 말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인다. 즉, 조선 초기의 중세 국어에서 ‘터럭’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그 당시의 말로만 취급했었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毛乙’이라는 표기가 잘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문헌상으로 드러나는 증거를 찾기가 어려워서 확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터럭’이라는 우리말은 고구려 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이미 쓰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고구려가 만들어낸 이중의 상징 구조를 통해 ‘毛乙’을 해석하면, ‘검은’, 혹은 ‘가운데’라는 뜻이 된다. ‘毛乙’을 이렇게 해석하고 나면 고구려에서 한자로 정했던 지명이 철원(鐵圓)이었다는 점도 수긍이 간다. ‘鐵(쇠 철)’은 검은 쇠붙이(黑金)로 인식되었으므로 검은색을 가진 ‘毛’와 언제든지 연결될 수 있었다. 더구나 우리말에서 ‘텨럭>터럭>텰>쳘>철’로 음운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보면 ‘검은색’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털’과 ‘철’은 우리말과 한자라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발음상으로 얼마든지 서로 통해서 쓸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철원 지역이 한반도의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는 지형적 특성을 아주 잘 짚어서 땅이름으로 살려낸 선인들의 슬기에 탄복을 금할 수가 없다.
‘冬非’는 좀 더 세밀한 관찰이 필요한 표현이다. 이것 자체만으로는 어떻게 해도 해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冬非’는 ‘冬乙非’의 줄임말이다. 조선 시대의 지명에 ‘冬乙山’, ‘冬乙背串’, ‘冬乙旨’, ‘冬乙非島’ 등의 기록이 보이고, ‘冬乙仇里’, ‘冬乙只’, ‘冬乙巨旨’ 같은 사람 이름도 기록에 남아 전하는 것으로 보아 ‘冬乙’이라는 표현이 매우 다양하게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이두 표기에서 중심어가 아닌 말은 소리를 빌려 쓴다(借用)는 원칙으로 보면 ‘冬乙’은 ‘돌’이 된다. ‘非’는 ‘ᄫᅵ’로 볼 수 있는데, ‘ㅸ’은 시대가 지나면서 주로 ‘ㅇ’으로 된다. 그러므로 ‘非’는 ‘이’가 되어 ‘冬乙非’는 ‘돌이’가 된다. ‘돌이’는 둥근 것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쓰였는데, 해(日), 한 해(一年), 둥근(圓), 둘레(圍) 등의 뜻을 가진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을 ‘한해’라고 하는데, ‘돌이’라고도 했다. 이때는 해를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오다라는 뜻이 되어 ‘둥글다’라는 의미와 연결된다.
이런 흔적은 현대어에도 남아 있다. 아이가 태어나서 꼭 일 년이 되는 날을 ‘돐(돌)’이라고 하여 기념하는 풍습이 있는데, 돌아온다는 뜻을 가진 ‘돌이’와 때를 가리키는 한자인 ‘時’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말이다. 즉, 돌의 조선 시대 표기가 ‘돌시’였다가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그것을 살려서 ‘돐’로 표기했던 것인데,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근래에 국립국어원에서 ‘돌’로 바꾸어 표기하도록 하고 있어서 매우 의아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지금 호미곶(虎尾串)이라고 부르는 영일만의 작은 갑(岬)은 원래 이름이 ‘冬乙背串’이었는데, 이것은 ‘돌이 곶’의 이두 표기이다. 호미곶은 하늘에서 보면 둥근 모양의 바위 언덕이 바다 쪽으로 튀어 나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毛乙冬非’를 이렇게 이해하고 보면 고구려 시대의 철원(鐵圓), 신라 시대의 철성(鐵城), 현재의 철원(鐵原) 등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圓’, ‘城’, ‘原’은 모두 일정한 공간에 둥근 모양의 경계를 지어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만든 지역을 지칭하는 것이 되어 수천 년 전에 만들어졌던 우리말 땅이름이 지금까지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셈이 되는 것이다. ‘圓’은 둥글다, 달, 하늘, 동그라미, 원만 등의 뜻을 기본으로 한다. 그러므로 ‘鐵圓’은 ‘중앙의 둥근 땅’이라는 의미가 된다. ‘城’은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는 공간의 안쪽을 지칭하는 글자인데, 둥글게 경계를 지어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한 지역이라는 뜻이다. 넓고 평평한 땅을 지칭하는 ‘原’은 우리말에서 같은 뜻을 가지는 ‘벌’을 의미하는 것으로 쓰였다. 그러므로 이것들은 모두 같은 용도로 쓰였으며 시대에 따라 글자만 달라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검은 색을 기본으로 하는 ‘毛’와 ‘鐵’이 ‘검음’과 ‘가운데’라는 이중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텰>털>철’로 이어지는 소리의 변화에서 ‘털’과 ‘철’을 연결하여 땅이름 속에 녹여냈다는 점 또한 절묘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남북분단과 휴전 상태라는 민족적 비극 앞에 비록 갈라지고 낙후된 땅이 되었지만 철원 지역이 한반도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 교통과 이동이 편리한 사통팔달의 지형을 가지고 있다는 점, 드넓은 평야와 비옥한 토양을 가진 지역이라는 점 등 다양한 장점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남북이 이어지기만 하면 우리나라에서 매우 중요한 공간으로 될 것이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한자로 되어 있는 지명인 ‘鐵原’을 우리말로 바꾼다면, 검음(黑), 가운데(央), 둥근 것(圓)이라는 지형적 특성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가라 돌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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