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코스 : 일동 유황온천단지 - > 논남 유원지
일동 유황 온천단지(화대2리)는 30대 후반에 등산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 산군 시절에 광덕재 - > 강씨봉까지 종주하고자 처음으로 왔던 곳인데 그때의 종주 산행을 통해 한북정맥의 장쾌한 산줄기에 매료되어 산을 좋아하게 되었고 산군이 되어 백두대간 종주에 나서게 하였던 잊을 수 없는 곳이다.
오늘은 경기 둘레길을 걸어가고자 다시 서니 그때가 어렴풋이 떠오르며 왠지 마음이 설렌다. 온천 주변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유황온천의 뒷길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간다.
국망봉, 강씨봉, 청계산으로 힘차게 뻗어간 산줄기는 구름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아 아쉬운 마음으로 포장도로를 걸어가는데 한여름의 더운 날씨 때문인지 땀이 나는데 지청교를 지나니 산기슭을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눈길을 끄는 한옥, 예비군 훈련소, 새마을 2교를 지나 임도에 진입하니 국유림을 알리는 임도 안내문과 철문이 세워져 있다. 고대산, 보개산의 국유림 임도를 걸어가는 것과 같은 길이 또다시 시작되었다.
앞을 보면 산등성이로 막혔고 뒤로는 흐린 날씨로 유황온천단지가 있는 화대 마을의 전경이 보이지 않아 조금은 답답하지만 걸어가면 갈수록 고도가 높아지어 점점 하늘 높이 날아가는 아기 새가 되어 진행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돼지 도열병 예방 때문인지 임도는 철망을 세워 마치 우리 안에 갇히어 걸어가는 착각 속에 2번째 철문을 지나갈 때 오뚜기 고개 1.5km를 알리는 표지목이 세워져 있어 다 왔다는 생각으로 진행하는데 예상 시간이 지나가도 강씨봉(오뚝이) 고개는 나타나지 않았다.
길 안내 팻말은 길을 걸어가거나 등산을 하는 사람에게는 나침반과 같다. 표지목에 새겨진 안내를 보고 산행 시간을 예측하며 산행을 즐기는 데 힘을 내어 걸어왔지만, 그 시간에 목적지에 이르지 못하면 힘이 빠지게 되기 때문인데 이곳의 1.5km를 40분이 소요되어 올라온 것이다.
그런데 잘못된 거리 안내가 너무 많아 표지목의 거리 안내가 잘못되었다고 한탄을 하며 길을 걷거나 등산을 하는 사람은 초보 산군이고 ’허‘ 하며 쓴웃음 한번 짖고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은 등산의 달인으로 부를 정도로 잘못된 거리 표기가 너무도 많다..
임도는 거칠었다. 절벽을 깎아 만든 곳이 있었고 사람들의 오고 감이 많지 않아 풀이 무성하게 자란 곳이 있는 평탄한 산길이 아니었고 가파른 길이 되어 자동차가 올라올 수가 있을까? 라는 의구심마저 들게 하였다.
산허리에 임도를 개설하였자먼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갖추고 있어 산짐승이 출몰할 수도 있을 것 같은 깊은 산길이 되어 경기 둘레길을 걷지 않으면 오지 않을 남성미가 넘치는 투박한 길을 따라 강씨봉 고개로 향하고 있다.
고개는 산봉우리를 하나의 산줄기로 이어주는 낮은 안부로써 종주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곳이 되었지만,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생활을 위하여 사람들이 넘어 다니던 곳이다.
그러기에 고갯길에는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진 애환이 서려 있어 우리의 시인 정훈 선생은……. ’ 요강원을 지나, 머들령 옛날 이 길로 원님이 내리고 등짐장사가 쉬어 넘고, 도적이 못 지키던 곳'이라 노래했다.
이름도 남기지 않는 민초들의 애환이 곳곳에 서려 있을 것 같은 산길에 입산 통제를 위해 세워진 철문 5개를 통과하여 강씨봉 고개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종착지 논남 유원지까지 6.4km임을 알린다. ‘다 왔네’란 말이 절로 나온 것은 이제 하산하는 길이 되었기 때문일까?
강씨봉 고개는 후고구려 궁예의 왕비 강씨가 피란하여 터를 잡고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강씨봉 마을(가평 적목리)에서 포천시 일동면을 넘어가는 고개인데 한국전쟁 이후 이곳에 군사도로를 만들 때 작업했던 군부대 이름을 따서 오뚜기 고개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일까? 강씨들이 살았던 곳은 강씨 마을, 그들이 올랐던 봉우리는 강씨봉, 넘어 다니던 고개는 강씨봉 고개로 부르고 있는 것처럼 궁예의 부인 강씨 집안과 깊은 관련이 있는 곳이었다. 땀방울을 식히며 생각에 잠긴다.
40대의 장년 시절, 백두대간을 종주하였을 때라면 과연 이곳을 임도를 따라 강씨봉 고개를 넘어 논남 유원지로 향하고 말았을까? 아닐 것이다. 산을 보면 가슴이 뛰며 오르고 싶은 충동이 넘쳐나는데 고개를 넘어가는 것으로 만족할 수가 있을까?
이곳은 한북정맥의 산줄기가 힘차게 뻗어있고 고산준령이 하늘 높이 솟구친 곳이기에 그때의 패기였다면 분명코 청계산에서 명지산으로 뻗어간 산등성이를 타고 연인산에 이르러 용추계곡으로 하산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60대의 중장년이기에 강씨봉을 넘어 논남 유원지로 내려와 귀목 고개를 넘어 보아 귀골로 내려와서 다시 연인산에 올라 용추계곡으로 하산하는 경기 둘레길을 걷고 있다.
어제는 백두대간을 종주하였고 오늘은 경기 둘레길을 종주하고 있지만, 과거를 그리워하며 오늘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오늘 경기 둘레길을 걷고 있을지라도 어찌 종주 산행을 할 수없을까?
강씨봉 고개에서 논남 유원지로 향했다. 가드레일을 넘어서니 승합차가 주차되어 있고 길이 넓었다. 일동에서 올라오는 길은 야생짐승이 나올 수 있는 길이었다면 논남 유원지로 내려가는 길은 산책로와 다름없는 길이었다.
평탄한 길에 계곡물 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벗님이 부르는 것 같은 정다운 소리를 들으며 내려가는데 물넘이 포장 다리가 놓여있다. 다리 위로 물이 흐를 때 신을 벗지 않고 건널 수 있도록 난간을 세워놓은 것이 귀여웠다. 오늘도 이틀 전 내린 비로 물이 다리 위를 흘러가고 있었지만 물넘이 다리로 인해 등산화를 벗지 않고 건널 수 있었다.
가는 길에는 울창한 나무숲으로 인해 시원한 그늘 길이 되었고 계곡에는 주절주절 간직한 설화를 들려주며 가는 걸음을 가볍게 하였다. 지네를 물리친 두꺼비 바위 이야기가 있고 강씨봉 산신령이 내려준 칼바위와 태봉국의 왕비였던 강씨 부인의 한이 서린 연화소가 있었다.
물넘이 포장 다리 7-7에서 알 수가 있듯이 계곡물은 굽이쳐 돌아가는 길이 되어 발걸음이 한층 더 가벼웠고 포장 다리 7개가 다하자 물이 다리 위로 흐를 수 없게 설치된 6개의 세월교가 놓여있었다.
일동에서 올라온 임도가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투박한 자연의 형태로 길이 놓여 있다면 논남 유원지로 내려가는 길은 자연 그대로에 모습에 사람의 손길이 가해진 아름다운 여인의 화장한 듯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자연의 향기를 마음껏 마시며 가볍게 내려오니 어느새 세월교 3번째 다리가 놓여있는 도성고개 삼거리에 이르렀다. 도성고개는 태봉국 궁예의 부인 강씨가 강씨봉에 피난했을 때 이 성을 쌓고 도성이라 했다고 하여 도성고개라고도 부르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고려 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성을 쌓고 난을 피했다 하여 도성으로 통하는 고개라는 뜻으로 ‘도성고개’라 불렀다는 설도 있지만, 강씨 부인의 얽힌 설화가 많은 곳이기에 강씨 설화에 한 표를 주고 싶다.
도성고개 삼거리에서 경기 둘레길은 가평의 소리 향기 길과 합류하여 나란히 걸어가는데 궁예의 아들이 목욕하였다는 동자소가 있었다. 물소리, 바람 소리, 새소리를 들을 수가 있고 그 소리를 듣고자 걸어가는 사람의 소리가 공존하고 있는 소리 향기 길에서 마음껏 소리의 향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흥겹게 걸어가노라니 어느덧 강씨봉 휴양림 매표소에 이르렀고 논남 버스 정류장까지 보도와 차도 구별이 없는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되어 다소 주의를 하며 버스 정류장에 이르렀다.
배차 시간표를 확인하니 16시 30에 출발한다. 지금 시각은 13시 15분, 2시간여를 기다릴 수 없어 목동면의 택시를 호출하여 가평역에 이르러 전철을 타고 귀가하였다.
● 일 시 : 2023년 6월 23일 금요일 흐림
● 동 행 : 김헌영 총무
● 행선지 :
- 09시50분 : 화대2리(일동 유황온천단지)
- 10시30분 : 국유림 임도 철문
- 11시40분 : 강씨봉 고개(오뚜기 고개)
- 12시45분 : 도성고개 삼거리
- 13시15분 : 논남 버스 정류장
● 총거리 및 소요시간
◆ 거리 : 14km
◆ 시간 : 3시간2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