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기복신앙의 기도는 하나님도 들어주실 수 없다. 왜냐하면 기복신앙은 제 한 몸 잘 되기를 바라는 신앙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고 강건하기를 바라는 분이시지만, 일부 특별한 사람들만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분은 아니시다. 결코 하나님은 차별적인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신 분이다. 그러나 기복신앙은 다른 사람이 어려움 가운데 고통당해도 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식의 신앙이다. 내 아들 대학 붙게 해달라는 기복적 기도는 다른 학생 떨어지게 해달라는 기도와 다를 바 없다. 모든 부모가 다 자기 아들 붙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누구 기도를 들어 주실까?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기도는 하늘나라에서 “잡동사니 우편물” 취급을 당한다는 말의 의미를 새겨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는 기도가 아닌 기복신앙의 기도는 당연히 이방인처럼 중언부언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같은 기도를 반복해서 하는 기도, 이런 기도가 중언부언하는 기도다. 통성기도의 문제점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기도라는 데 있다. 통성기도가 다 잘못된 기도는 아니지만, 대개 통성기도는 하나님의 음성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자기 원하는 것만 목청껏 외치는 기도이기 때문에 기복신앙과 아주 잘 어울린다.
물론 우리는 절박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매달리며 애절한 심정으로 몸부림치며 기도해야 할 때가 있다.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찾아야 할 때도 있다. 어린 아이처럼 떼를 부리며 간구해야 할 때도 있다. 모든 것이 형통하기 때문에, 혹은 하나님의 응답을 믿지 않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는 분이시고, 우리의 억울함에 응답하시는 분이시다. 억압과 고통에서 울부짖는 우리의 기도를 듣고 대답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하셨다.
[회중주체적 조직신학], 366-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