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天皇)을 신격화하고 신성불가침이라 하며 하늘을 찔렀던 기고만장한 일본의 교만은 하나님의 공의(公義)로운 심판으로 막을 내렸다.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투하되자 일본의 천황도 황급히 손을 들어 항복했다. 1945년 8월 15일, 조국광복이 되어 해방의 종소리가 삼천리 금수강산에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일본의 독아(毒牙)는 산산이 부서지고 그의 세력들 또한 추풍낙엽이 되어 야밤에 도주하여 이 강토를 빠져나갔다. 이제 이 강토에 흑운(黑雲)은 맑게 걷히고 조국의 하늘 아래 태극기는 힘차게 휘날렸다. 과거 35년간 태극기를 높이고자 얼마나 많은 애국 열사들이 이슬같이 사라졌던가. 그들의 염원이 이제야 이 강산에 실현된 것이다.
우리 민족의 해방과 아울러 신앙의 자유를 얻는 그리스도인들도 무너졌던 교회를 재건하며 조국 건설에 앞장섰다. 그간 전국 각지에서 일제에 의해 예배당을 빼앗겼던 성도들은 새롭게 봉기(蜂起)하여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고 고요했던 이 강산에 지축(地軸)을 울리며 복음을 힘차게 전했다. 그러나 조국은 광복되었지만 국토는 분단되었고, 남한은 연합군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아직 치안이 어수선하고 교통이 불편했다.
1946년은 우리 교단에도 재건의 움직임이 동튼 때였다. 교단재건을 위해 많은 분들이 노력했다. 강경구역 김용해 목사는 교단재건을 위해 경북 문경에 있는 노재천 목사에게 연락을 했고, 노목사는 충남 부여 칠산교회의 장석천 목사를 만나기 위해 내방했다. 3인이 모여 교단재건을 위한 결심을 다졌다. 그 뒤 1946년 2월 9일 칠산교회에서 교단재건회의가 개최되었다.
이 회의는 1940년 제35차 대화회 이후 만 6년 만에 열린 범교단적 회의였다. 비록 38선 이남의 7개 구역 대표들로만 이루어진 모임이었지만, 역사적 의의가 대단히 큰 회의였다. 이 모임은 원칙적으로 목사와 감로 등 임원들만 모이는 것인데도, 사안의 특수성과 중요성을 감안해서 평신도도 함께 참여하도록 했다. 포항구역 회원을 비롯하여 예천, 공주, 예산, 강경 등에서 18명의 임원들과 다수의 교인들이 함께 참관했다. 참석임원은 경북 점촌의 노재천 목사, 신성균 목사, 이종만 감로, 김봉학(김주언) 감로, 이덕상 교사, 예천의 박기양 목사, 영일의 이종학 감로, 충남 예천의 이덕여 감로, 전북 익산의 김용해 목사, 강경의 윤상순 교회대표, 부여의 장석천 목사, 최종석 교회대표, 공주의 조병진 감로, 이현구, 오경환 교회대표 등이었고, 방청인 박봉석, 홍갑덕, 이건창, 장석오 등이었다. 연소한(19세) 나는 회원이나 방청인 자격이 못 되었지만 이 회의를 시종 지켜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나는 이때부터 단 한 차례도 교단총회의 모임에 빠진 적이 없다.
9일 오전 10시에 임시의장 김용해 목사의 사회로 개회가 선언되었고, 정식 의장으로 선임된 원로 노재천 목사가 의장으로서 교체되어 개회사를 했다. 윤상순 회원의 특청으로 방청인의 발언권 유무를 물으니 의장이 당원(堂員)에 한하여 회원권을 허락한다고 했다. 의장은 각 구역 교회의 참석현황을 살펴보니 울진, 울릉 두 구역은 불참했고, 각 구역에 아직 교회당 구입이 늦어지고 있는 곳이 많다는 보고가 있었다.
여러 가지 신안건이 다루어졌다. 포항구역의 이종학 회원이 38선 이남의 교회만이라도 종전과 같이 총부(總部)를 설치하고 교단을 이끌어 나갈 것을 제안하였고, 이 안건은 가결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안건은 ‘합동교회에 가입의 건’이었다. 합동교회는 해방직후 교회를 규합하여 교단을 형성하자는 것인데, 주로 장로교회들이 주도했다. 당시 우리 교단은 인물과 재정이 열세하여 앞으로 유지하고 발전하는 것이 불가능하니 경성(京城)에서 실시하고 있는 교회합동에 참가하자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이 문제는 연일 논란으로 이어져갔다. 합동을 주장하는 이들은 장석천, 김주언, 윤상순, 이덕여, 김만근 회원이었고, 종전대로 존속하자는 이들은 조병진, 박봉석 회원이었으며, 중립에는 김용해, 노재천 회원이 있었다. 결국 표결에 부치니 회원들은 기존대로 존속하자는 조병진 회원의 발언에 다수가 손을 들어주어 가결되었다.
그리고 임시감목으로 노재천 목사를 선임하고 서기는 김용해 목사로 하였으며, 총부를 강경교회에 설치했다. 또한 총부운영비를 세우기로 의결하여 강경구역 1천원, 예천구역 300원, 포항구역 200원, 공주구역 150원, 예산구역 50원으로 도합 1천 700원이 모아졌다. 교역자는 각 교회가 청빙하고 생활비를 부담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