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네서 얻어온 손바닥만 한 압력밥솥은 혼자 사는 나의 필수품이 되었다. 외할아버지 생전 쓰시던 밥그릇보다도 작은 솥이라니.
러시아에선 -나 혼자 행복하게 잘 살아요- 류의 방송 프로그램이나 광고에 벌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했다는 뉴스를 봤다. 출생률이 1.5명인 상황에서 고삐를 틀어쥐겠다는 러시아 정부는 아마도 0.7명도 무너질 지경이라는 한국의 극심한 출생률 저하를 타산지석 삼고 있지 않나 싶다.
동생네는 정부에서 그나마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단란한 네 가족을 이루고 산다. 그 집에 이 작고 앙증맞은 솥이 해당 사항 있을 리 없다. 친정엄마가 찬밥 혐오자인 까닭으로, 끼니마다 따뜻한 밥해 먹으라며 손 수 장만해주신 최소형 압력솥이었다. 동생은 두어 번 밥을 해 먹고는 솥을 이내 방치했다. 제부가 따뜻한 밥을 싫어하는 희한한 체질이어서다. 제부는 식은 밥을 좋아한다. 또 지나치게 찰기가 많은 밥을 좋아하지 않는다. 엄마의 정성이 무색하게 작은 압력솥은 싱크대 안에 방치되어 있다가 지난번 동생네서 가족 모임을 했던 날, 내 품에 넘어왔다. 사실 그 솥이 내게도 필요할 리가 없다. 즉석밥 한 박스면 한 달은 넉넉한 처지이다. 집밥이 먹고 싶을 땐 오랜 습관대로 한 줌의 쌀을 씻어 솥 밥을 해 먹으면 되었다. 그러나 엄마의 애면글면 밥 사랑을 외면치 못해 솥을 끌어안고 고속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한동안 현관 신발장 근처에 방치되어 있던 솥은 구운 달걀을 해 먹기 위한 용도로 드디어 주방에 입성하였다. 온라인 몰에 주문하면 하루 만에 배달되는 구운 달걀이지만 가격이 너무 오르고 보니 쉽사리 손이 가지 않았다. 심지어 두 판을 주문해야 가격이 좀 저렴해지는 데 두 판이면 무려 60알, 그 많은 달걀을 어느 세월에 다 먹는단 말인가.
동영상 사이트를 뒤져 보니 압력솥으로 쉽게 구운 달걀을 만들 수 있었다. 방치되어 있던 압력솥에 들어갈 손바닥보다 작은 채반을 놓고 달걀을 담으니 간신히 열 알이 들어갔다. 물을 붓고 소금을 조금 넣어 불에 올렸다, 강 불에서 압력추가 울릴 때까지 돌리다가 불을 최대한 낮추고 한 시간 이상 돌려 압력이 다 빠질 때까지 두었더니 산 것에 버금가는 맛있는 구운 달걀이 완성되었다. 달걀을 까먹으며 동영상 사이트를 어슬렁거리니 저당 밥 짓는 법이라는 영상이 올라왔다. 건강에 좋은 밥이란다. 귀에 솔깃했다. 혼자 사는 처지에 병이 나는 게 가장 무섭단 말이지. 렌틸콩과 귀리와 현미와 백미를 섞어 밥을 해 먹으면 혈당이 오르지 않고 좋단다. 동생이 솥과 함께 밥해 먹으라고 준 정체불명의 곡식들이 다시 보니 저당 밥 재료들이었다. 든든한 남편이 있는 동생도 이미 건강 관리에 뛰어들었나 보다.
곡식들을 1/4씩 섞어 압력솥에 밥을 지었다. 조그만 녀석이 주어진 임무를 야무지게 해냈다. 가스레인지 위 솥의 모습은 모조품인 양 어울리지 않지만 말이다. 타고나길 소식 인간인 내겐 2인용 압력솥도 커서 솥의 절반만큼 지은 밥도 냉동해야 했다. 밥을 한 번 하면 일주일은 너끈하게 먹었다. 날이 더운 통에 한나절 만에 밥이 상해 속이 상하기도 했지만, 작은 솥에 나를 위한 건강 밥을 지어 먹는 게 생각 보다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밥 짓는 일이 어렵다고 여겨본 적은 없다. 엄마는 내가 핏덩이일 때부터 늘 일을 했고, 나는 예닐곱 살부터 동생과 라면을 끓여 먹고 찬밥을 찾아 먹다가 어느 순간부턴 직접 밥을 짓기 시작했다. 밥 짓는 법을 누가 물으면 정확하게 답하기는 힘들다. 물 맞추기는 이론이 아니라 실전의 영역이다. 솥마다 쌀마다 계절이나 아침저녁에도 같지 않다. 말하자면 그때그때 다르다. 그래서 이론으로 손가락 한 마디라던가 손등 어디만큼까지 물을 채우는 등의 기술 영역은 잘 설명하지 못한다. 눈대중으로 밥을 지은 지 수십 년인 탓이다. 가끔 된 밥이 되는 경우가 있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지아비 닮아서 고두밥 좋아하는 까탈스러운 입맛을 가진 애다. 밥알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걸 꼭꼭 씹을 때 밥알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단맛을 좋아한다. 먹다 남은 된 밥은 볶음밥을 해도 좋고 카레를 부어 먹기도 좋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식성도 여간해서 변하지 않는가 보다. 심지어 대물림 되는 영역이니 더 말해 무엇할까.
다른 집은 대부분 공부를 더 못 시켜 안달이었고, 피아노에 미술에 갖가지 예체능 가르치느라 바빴던 걸로 아는데 우리 집은 딸들을 식모 수준으로 부려 먹으며 키웠다. 살림 조기교육 덕에 네 식구 오붓하게 사는 동생은 살림의 여왕 수준이고 혼자 사는 나도 내 앞가림에는 부족함이 없다.
냉동실 밥이 다 떨어지고 다시 밥을 했던 어제 아침, 다른 곡식은 먼저 떨어지고 백미와 렌틸만 남아 그 두 가지로 밥을 지었다. 씻어서 불려 솥뚜껑을 닫기 전 눈길이 물 높이에 잠시 갔다. 순간 물이 조금 많다 싶었다. 살면서 헷갈리는 문제가 있을 땐 첫 번째 드는 생각이 정답일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랬다. 어제 밥물도 그랬다. 물을 좀 따라냈어야 했다. 물을 쏟아 내려다가 대충 맞을 것 같기도 해서 마음을 바꾸어 그냥 불을 켰다. 압력추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불 끄는 타이밍을 정확히 모른다. 언제부터인지 감각에 의지해왔다. 감에 따라 불을 끄고 뜸을 들이고 밥솥을 열었다. 주걱을 가져다 댔을 때 알았다. 밥이 질었다. 남은 곡식을 다 털어 넣었기에 심지어 밥의 양도 많았다. 나는 진밥을 정말 싫어한다. 죽도 밥도 아닌 느낌을 견디지 못한다. 그깟 밥이 되고 진 것에 이토록이나 무게를 두다니. 한심하지만 내게는 중요한 문제다. 일단은 한 그릇을 퍼서 밥을 먹었다. 숟가락에 붙은 밥은 찰떡처럼 들러붙었다. 간신히 떼 내어 씹는 입안이 괴롭기 그지없었다. 한 그릇은 꾸역꾸역 먹는다 치고, 남은 밥을 어찌할까 생각하니 한숨이 났다. 진밥은 누룽지를 만들기도 어렵다. 같은 밥일진대 볶음밥도 김밥도 돌솥비빔밥도 못 해 먹을 한솥의 밥에 마음이 우중충해졌다.
솥뚜껑을 덮어놓고 밥을 피해 집을 나왔다. 추석이 지났는데도 날씨는 여전히 한여름이다. 짜증이 울컥 솟구친다. 누군가에게 집에 있는 진밥이 고민이라는 말을 한다면 나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어쩌면 각각의 삶에 주어진 수많은 고민이나 걱정거리 중에는 솥에 든 진밥처럼 너무 사소해 어이없는 일도 많지 않을까 싶다.
뜨거운 햇볕을 피해 동네 카페로 피난을 갔다. 차가운 커피 한 모금을 입에 댔을 때 동생한테 전화가 왔다. 제부의 흉을 보고 싶어 전화를 건 것이다. 어디 하소연할 곳이 없는 동생의 대나무밭이 나다. 집에 와서 발을 안 씻고 거실을 돌아다닌다, 옷을 제때 안 갈아입는다, 나이를 먹으니 버릇이 더 나빠진다, 같은 익히 아는 레퍼토리다. 제부는 자기 마누라가 너무 깔끔해서 피곤하다는 말을 내게 여러 번 한 적 있다. 영원히 해결될 수 없는 문제임을 잘 안다. 하소연을 한참 들어주다 보니, 남편이 이번에 명예퇴직하는 바람에 그 집 아내인 동생 이웃이 걱정이 많다는 말이 이어졌다. 제부는 회사 잘릴 걱정이 없으니 그거 봐서 참아주기로 결론이 났다. 밥을 했는데 질어서 짜증 난다는 내 말에 죽 끓여 먹거나 국에 말아 먹으라고 그런 것도 걱정이냐며 동생이 피식 웃었다. 문제가 일거에 해결되었다. 마음을 고쳐먹는다. 냉장고 신선칸의 자투리 채소들을 썰어 넣어 죽을 끓여 먹던지, 미역국을 한솥 끓여 진밥을 말아먹고 치우자고 결론 내려버린다.
커피잔을 비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인생도 어쩌면 밥물 맞추기와 비슷한 일이 아닐까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 늘 하는 일, 별생각 없이 진행되는 일들의 연속에서 잠시 삐끗하면 문제가 되어 삶이 복잡해지고 어수선해진다. 그러나 시간은 또 대부분의 어그러진 일을 되돌려 놓게 마련이다. 탄 밥이든 고두밥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솥은 비게 되고 다시 밥을 하듯 삶도 다시 내일로 나아가기 마련이니까. 가족과 사는 동생이 더 행복하거나 혼자 사는 내가 더 불행하지도 않다고 느낀다. 비슷한 총량의 행복과 불행 앞에서 울고 웃으며 살아가게 되는 것을 결국 삶 속에서 깨닫는다. 광고 때문에, 예능에 힘입어 비혼과 결혼을 선택하지 않지만, 훔쳐보는 삶이 더 좋아 보이는 것은 인간의 본성일 것이다. 이미 폐경을 겪어 버려 인구수를 늘리는 일로 국가에 이바지하기 어렵게 된 인간은, 그저 조금 더 긍정적인 마음과 건강한 몸으로 세상을 살아 국가 의료보험 재정에 이바지하는 걸로 대신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