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으뜸 품(A1:4:1~ 80) Etadagga-vagga
(3) 세 번째
3-1. "비구들이여, 배우기를 좋아하는 나의 비구 제자들 가운데서 라훌라100)가 으뜸이다."
100) 라훌라(Rahula) 존자는 세존의 외아들이다. 라훌라 존자는 세존이 출가하시던 날 태어났다.
세존께서는 깨달음을 증득하신 지 2~3년 뒤에 부친 숫도다나(Suddhodana, 淨飯)왕의 간청으로 고향 까삘라왓투를 방문하셨는데 그때 부처님의 아내였던 야소다라(Yasodhāra, 아래 A1:14:5-11밧다 깟짜나 주해 참조)는 라훌라를 세존께 보내어서 상속물을 달라 하라고 시켰다. 리훌라의 말을 듣고 세존께서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라훌라를 출가시키게 하셨다.
무소유의 삶을 사시는 부처님이 아들에게 상속물로ㅡ줄 것은 출가밖에 없었을 것이다. 라훌라 존자를 출가시키면서 세존께서는 라훌라 존자에게 "다시는 세상에 태어나지 말리K(ma lokarn punarāgami Sn.339)"라는 간곡한 말씀을 하셨다.
부처님께서 라훌라를 가르치신 여러 경들이 초기경전군에 전승되어 온다.
그 가운데서 라훌라 존재를 가르치신 최초의 경은 『맛지마 니까야』「암발랏티까 라홀라 교계경 (M61)인데 여기서 부처님께서는 발 씻는 세숫대야의 비유로 그를 엄하게 가르치신다. 이 가르침은 아쇼까 대왕에게도큰 감명을 주어서 그의 명령으로 바위에 새긴 아쇼까 대왕의
칙령에서도 이 경의 일부를 언급하고 있다. 라훌라 존자는 「짧은 라홀라 교계 경」(M147)을 통해서 아라한이 되었다. 그 외에도 라홀라를 교계하신 (Rāhulovāda) 경이 몇 개 더 전해온다.(M62; S.iii.105; A.iii.152 등) 이런 라훌라 존자였기에 세존께서는 그를 배우기를 좋아하는(sikkhā-kāma) 비구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하셨다. 북방에서는 밀행(密行)제일이라 부른다.
3-2. "믿음으로 출가한 자들 가운데서 랏타빨라101)가 으뜸이다."
101) 랏타빨라(Raṭṭhapāla) 존자는 꾸루(Kuru)의 툴라꼿티따(Thullakoṭṭhita)의 유명한 가문 출신이다. 그의 간절한 출가 이야기와
출가 후 자기 집에 가서 가족들을 교화한 이야기는 『맛지마 니까야』 「랏타빨라 경」(M82)에 상세히 전해온다.
이런 이유로 세존께서는 믿음으로 출가한 자(saddhā-pabbajita)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칭찬하신 것이다.
3-3. "가장 처음으로 식권102)을 받은 자들 가운데서 꾼다다나103)가 으뜸이다."
102) "식권(salāka)'은 승가 전체를 위해서 받은 대중공양을 배분하는 차례나 투표의 순서 등을 정하기 위해서 나무로 만든
표식을 말한다.(PED)
103) 꾼다다나(Kuṇḍadhāna) 존자는 사왓티의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베다에 능통했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원래 다나(Dhāna)였다. 그가 꾼다다나 혹은 꼰다다나라고 불리게 된 데는 이상한 인연이 있다.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출가하였는데 그때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자신은 모르지만 젊은 여인의 모습이 항상 그를 따라다녔다.
탁발을 가면 여인네들은 그에게 두 사람분의 음식을 주면서 ‘하나는 당신 여자 친구의 것입니다.’하면서 놀렸고 비구들도
그를 ‘우리 존자는 참 꼬부라지기도(꾼다,kuṇḍa/koṇḍa)하지.'라면서 놀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꾼다다나 혹은
끈다다나가 되었다 한다. 그는 상심하여 탁발을 갈 수도 없었고 제대로 수행을 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이 이 소문을 들고 그에게 늘 공양을 베풀기로 약속을 하여 타발을 가지 않고도 수행에 전념할 수 있었으며
그래서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 여인의 모습은 없어졌다고 한다.
그는 세존을 상수로 여러 비구대중이 욱가나가라의 마하수밧다(Mahā-Subhadda)와 사게따(Saketddā)의 사께따(Sāketa)의
쭐라수빗다와 수나빠란따(Sunāparanta)로 유행을 갔을 때 늘 제일 먼저 식권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식권을 처음 받는 비구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3-4. "영감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 왕기사104)가 으뜸이다."
104) 왕기사(Vaṅpisa) 종자는 바라문 가문에 태어나서 베다에 능통한 자였다. 특히 그는 죽은 사람의 머리(sīsa)를
손톱(nakha)으로 쳐서 그가 죽어서 어디에 태어났는지를 알아맞히는 재주가 있어서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3년간 큰돈을 번 뒤에 부처님을 뵈러 갔다. 부처님께서는 아라한의 해골을 주시면서 알아맞히게 하였지만 그는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니그로다깝빠(Nigrodhakappa) 존자를 은사로 출가하였으며 몸의 32가지 부위에 대한 혐오를 수행해서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시를 잘 짓기로 유명하였다. 『장로게』에는 그가 지은 많은 시가 전해오며(Thag.1208~1279) 『상웃따 니까야』 의 「왕기사 상응」 (S8)은 모두 그와 관계된 경을 모은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세존께서는 그를 영감을 가진 자(patibhanavanta)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하신 것이다.
3-5. "모드 면에서 청정한 믿음을 내게 하는 가운데서 왕간따의 아들 우빠세나105)가 으뜸이다."
105) 왕간따의 아들 우빠세나(Upasena Vaṅgantaputta) 존자는 날라까(Nālaka)에서 루빠사리(Rūapasārī)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왕간따는 그의 아버지이다. 베다에 통달했지만 출가하여 부처님 제자가 되었다. 그는 출가한 지1년 만에 출가자의 수를 늘리기 위해
상좌를 두어서 그를 데리고 부처님께 갔다. 세존께서는 그의 성급함을 나무리셨고 그는 세존으로부터 모든 면에서 신뢰받는 제자가
되려고 결심하고 정진에 물투하여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존자는 여러 가지 두타행을 닦았으며 많은 회중을 거느렸다고 한다.
그는 설법을 잘하기로 유명하였으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신도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그를 모든 면에서
청정한 믿음을 내게 하는 자(samanta-pasadika)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하신 것이다.
3-6. "거처를 배당하는 자들 가운데서 말라의 후예 답배106)가 으뜸이다."
106) 말라의 후예 답바(Dabba Mallaputta) 존자는 아누삐야(Anupiya) 혹은 꾸시나라(Ap.473)에서 말라 족의 가문에 태어났다.
그가 태속에 있을 때 그의 어머니가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화장을 하였는데 그는 나무 장작(dabba-tthambha) 안에서 발견되었으며
그래서 답바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일곱 살에 부처님을 뵙고 할머니에게 출가하겠다고 하여 출가하였는데
머리를 깎는 순간에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세존을 따라 라자가하로 갔으며 객스님들이나 신도들의 방을 배정하는 소임을
맡았다고 한다. 일곱 살의 아라한이 소임을 잘 본다는 소문을 듣고 각처에서 일부러 그를 보기 위해서 찾아오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거처를 배당하는 자(senasana-panfapaka)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그를 칭찬하시는 것이다.
3-7. "신들이 좋아하고 마음에 들어 하는 자들 가운데서 밸린다왓차107)가 으뜸이다."
107) 삘린다왓차(Pilinda-Vaccha) 존자는 사앗티의 바리문 기문에 태어났다.
삘란다는 그의 이름이고 왓챠는 족성이다. 그는 쭐라간다라 주문(Cūla-Gandhāra-vijā, D11. §5의 주해 참조)에 능통하였는데
세존께서 정각을 이루신 날부터 그 주문이 효력이 없었다. 그는 마하간다라(Mahā-Gandhāra) 주문이 쭐라간다라 주문을
무력화시킨다는 말을 듣고 부처님이 그 주문을 아실 것이라 여기고 부처님 문하로 출가하였다고 한다. 그는 부처님이 가르치신 대로
수행하여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전생에 그의 지도로 수행하여 천상에 태어나게 된 신들이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서 아침저녁으로 그의 시중을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신들이 좋아하고 마음에 들어 하는 자(devatānarn piyamanāpa)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한다.
3-8. "빠르게 최상의 지혜를 얻은 자들 가운데서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은 바히야108)가 으뜸이다."
108)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은 바히야(Bahiya Daruciriya) 존자는 바히야 혹은 바루깟차(Bhārukaccha, Ap476)의 상인이었다고
한다. 그는 일곱번을 배를 타고 교역을 하여 크게 성공을 하였는데 여덮 번째에는 수완나부미(Suvangṇṇabhūmi)로 향하던 중
배가 풍랑에 가라않아 수빠라까(Suppāraka) 부근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채 떠밀려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나무껍질로 옷을 삼아
음식 구걸을 다녔는데 그 후 그는 누가 옷을 주어도 입지 않고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고 검소하게 탁발하는 수행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를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는 자(dāru-cīriya)라고 부른다.
그는 그렇게 살면서 자신이 아라한이 되었다고 믿었다고 하는데 인연 있는 어떤 신이 그를 사왓티의 부처님께로 인도해서 법을 듣도록
하였다고 한다. 그는 탁발하시는 세존을 뒤따르면서 법을 설해주시기를 간청하였지만 부처님은 바른 시간이 아니라고 거절하셨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 법을 설해달라는 그의 간청에 부처님께서는 법을 설하셨고 그는 법을 듣고 바로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 다음 바로 그는 송아지를 가진 암소에 받혀서 죽었다. 소똥에 범벅이 되어 있는 그의 시신을 부처님께서는 잘 수습하여
화장을 하게 하시고 그의 탑을 세우게 하셨다고 한다.
그는 탁발하시는 부처님으로부터 법을 듣고 그 자리에서 바로 아라한과를 증득하였기 때문에 빠르게 최상의 지혜(초월지)를 얻은 자(khippa-abhiñña)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부처님의 칭찬을 받게 된 것이다. 빠르게 최상의 지혜를 얻는 자에 대해서는 본서 제2권 「
상세하게 경」(A4:162)과 「흐름을 따름 경」(A4:5) §1의 최상의 지혜에 대한 주해를 참조할 것.
3-9. "다양하게 설법하는 자들 가운데서 꾸마리깟사빠109)가 으뜸이다."
109) 꾸마리깟사빠(Kumāra -Kassapa) 존자의 어머니는 라자가하 출신이라고 한다. 그녀는 출가하고자 하였으나 부모가 허락하지
않았다. 결혼한 뒤에 남편의 동의를 받아 비구니가 되어 사왓티에 머물렀다. 출가하고 보니 그녀는 임신을 하고 있었고 그래서
승가에서 큰 문제가 되었다. 세존께서는 우빨리 존자에게 사태 해결을 위입하셨고 상세한 조사 끝에 그녀는 결백한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우빨리 존자는 세존으로부터 큰 칭찬을 들었다고 한다. 아이가 태어나자 빠세나디 왕이 깟사빠라는 이름을 지어 아이를 키웠으며
일곱 살에 출가하였다고 한다. 그는 어린애(kumāra)였을 때 상가에 들어왔고 왕이 키웠기 때문에(kumāra는 왕자 즉
rājakumāra라는 뜻도 됨) 꾸마라잣사빠라는 이름을 가졌다. 그는 『맛찌마 니까야』 「왐미까 경」(Vammika Sutta, M.i.143)을
통해서 아라한이 되었다. 그가 왜 다양하게 설법하는 자(citta-kathika)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세존의 친찬을 받는가 하는 것은
『디가 니까야』 제2권 「빠야시 경」 (D23)이 좋은 보기가 된다. 「빠야시 경」에서 그는 대략 14개 정도의 상세하고
다양한 비유를 들면서 빠야기 태수에게 설법하고 있다.
3-10. "무애해를 얻은 자들 기운데서 마하꼿티따110)가 으픔이다."
110) 마하꼿티따(Mahā-Koṭṭhita) 존자에 대해서는 본서 제2권 「마하꼿티따 경」(A4:174) §1의 주해를 참조할 것.
무애해에 대해서는 본서 제2권 「논사 경」(A4:140) §1의 주해를 참조할 것.
[출처 - 초기불전연구원]
Ciraṁ tiṭṭhatu lokasmiṁ sammāsambuddhasāsanaṁ.
(이 세상에 부처님 교법이 오래 오래 머물기를!)
첫댓글 사두 사두 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