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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고대국어 갑골문자 원문보기 글쓴이: 하늘아비
亢 목 항
까닥까닥, 끄덕끄덕, 깡충깡충
亢 자에 대한 기존의 자원(字源)은 설문(說文)에 ‘人頸也[사람의 목덜미이다]’라고 되어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결후(結喉), 즉 울대뼈의 모양을 본뜬 것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 목덜미나 울대뼈를 본뜬 亢 자가 실제 그런 뜻으로는 전혀 쓰이지 않습니다. 이는 ‘목덜미, 울대뼈’라는 자원은 잘못된 것이며, 亢의 [목 항]이라는 훈독(訓讀) 역시 전혀 격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 吭(목 항), 肮(목구멍 항) 등은 전문 자형에 없는 글자입니다]
亢의 갑골문 亢의 전문
亢의 갑골문 자형은 정면을 향하고 있는 사람의 상형인 大에서 두 다리 사이를 빗금 형태의 획[①](표시요망)으로 가로지르고 있는 모양이며, 전문 자형은 大의 변형으로 다리가 몸통에서 띄워져 있는 모양입니다.
大의 갑골문 大의 전문
大와 亢의 갑골문 자형과 비교해 보았을 때, 두 다리 사이를 빗금 획으로 가로지른 모양이 亢 자임을 알 수 있으며, 大의 전문 자형에서 사람의 몸통을 이루는 부분의 획이 띄워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亢의 갑골문 자형은 사람이 한쪽 다리를 계속 흔드는 모양을 나타낸 것입니다. 도1이나 도2와 같은 형태라면 ‘차다, 뛰다’ 등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기에 본래의 다리 부분을 그대로 둔 채 빗금 획을 추가하여, 다리가 계속 반복해서 움직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는 배달말의 ‘까딱까딱, 끄덕끄덕’ 등의 소릿값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전문 자형에서 다리와 양팔의 사이를 띄운 것은 ‘깡충깡충’ 정도의 의태어(擬態語)를 나타냅니다.
亢 자의 훈독(訓讀) [목 항]은 亢의 자형 자체에 목의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고갯짓의 의태어(擬態語)인 ‘까딱까딱’을 설문(說文)에서 잘못 풀이한 것입니다.
亢旱(항한 ; 아주 극심한 가뭄)에서 亢은 ‘까닥까닥(/물기나 풀기가 있는 물체의 거죽이 거의 말라서 빳빳한 상태. ‘가닥가닥’보다 센 느낌을 준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 어떤 사전에서는 亢燥(항조)를 ‘지대가 높아 땅이 메마르고 건조함’의 뜻으로 정의 내리기도 하는데, 이는 오류(誤謬)이며, 여기서의 亢도 ‘까닥까닥/가닥가닥’을 나타내며, ‘까닥까닥/가닥가닥하게 마르다’가 정확한 뜻입니다.
亢進(항진)은 ‘위세 좋게 뽐내고 나아감’으로 정의되고 있지만, 실제는 ‘깡충(/키나 길이 따위가 어지간히 긴 모양)/껑충거리며 나아가다’의 뜻입니다. 極亢(극항)도 사전적으로는 ‘극도에 이르러서 여지가 없음’으로 의역하지만, 亢 자의 실제 뜻은 ‘까딱하다(/움직이거나 변동되어서는 안 될 것이 조금이라도 움직이거나 잘못 변동되다)’입니다. 亢羅(항라)는 사전에는 ‘씨를 세 올이나 다섯 올씩 걸러서 구멍이 송송 뚫어지게 짠 것으로 여름 옷감으로 적당하다’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여기서의 亢은 배달말의 ‘깔깔하다[≒깔딱깔딱하다]’ 정도의 어감을 나타냅니다.
高論怨誹爲亢而已矣. 『莊子』
고답적인 언론으로 원망하고 비방하며, 까닥인다고(/거들먹거리다고) 여기고 말 뿐이다.
상기 구문에 사용된 亢 역시 亢龍과 마찬가지로 ‘까닥이다(/잘난 체하다)’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先納之 可以亢寵. 『左氏傳』
먼저 들일 지라면 깍듯한 받듦이 가하겠다.
상기 예문의 亢은 일반적으로 ‘극진하다’로 풀이되며, 대다수의 사전에도 그렇게 정의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의 뜻은 ‘깍듯하다’입니다.
주역(周易)의 亢龍有悔(항룡유회)를 기존의 일반적인 풀이는 ‘하늘에 오른 용은 뉘우침이 있다’로 하고 있습니다. 주희(朱熹)가 亢을 ‘高也[높은 것이다]’라고 주(注)를 달고 있으며, 亢龍을 ‘하늘에 오른 용’으로 최상의 지위에 있음을 의미한다는 식의 풀이를 하고 있지만, 이 역시 오역(誤譯)에 지나지 않으며, 여기서의 亢은 ‘까닥까닥(/자꾸 분수없이 잘난 체하며 경망하게 행동하는 모양)’의 뜻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亢龍有悔란 ‘까닥까닥한 용은 후회가 있다’의 뜻입니다.
文言曰 亢龍有悔 何謂也 子曰 貴而无位 高而无民 賢人在下位而无輔 是以動而有悔也 又曰 亢之爲言也 知進而不知退 知存而不知亡 知得而不知喪. 『文言傳』
문언에 이르고 있다. 亢龍有悔란 뭐를 이름인가? 공자는 “귀하면서도 지위가 없고, 높으면서도 백성이 없다. 현인(賢人)이 아래에 있으면서도 보필함이 없다. 바로 그래서 움직이면 후회[/잘못]가 있기 마련이다”라고 말하였다. 또 “亢이란 말은 나아감은 알고 물러남은 모르며, 존속은 알지만 멸망은 모르고, 얻음은 알면서 잃음은 모르는 것이다”라고도 말하였다.
상기는 亢龍有悔(항룡유회)에 대한 『문언전(文言傳)』의 설명입니다. 이 문장대로라면 亢龍이란 ‘최상의 지위에 있지만, 격(格)을 가지지 못한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까닥까닥’, 즉 분수없이 자꾸 경망하게 하는 모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글은 공자의 亢 자에 대한 설명으로 되어 있는데, 공자는 亢의 정확한 의미를 알았지만, 배달말은 구사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여 ‘亢龍’을 ‘독재군주’ 정도로 치환하고 철학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래 예문과 비교해보면, 퇴계선생은 亢자가 가진 배달말의 의태어 ‘끄덕끄덕’이 나타내는 어감 자체를 가지고 논술하고 있습니다.
臣謂 人君 勢位高㉠亢. 苟不知 進極必退 存必有亡 得必有喪之理, 至於㉡亢滿 則志氣驕溢. 慢賢自聖 獨智馭世. 不肯與臣下 同心同德 誠意交孚 以共成治理 膏澤不下於民. 比如陽氣㉢亢極而不下交 則陰氣無緣自上而交陽 豈能興雲致雨 而澤被萬物乎 此所謂㉣亢龍有悔 窮之災也. 『退溪集·亢龍有悔』
신이 아룁니다. 인군(人君)은 세력과 지위가 높고 ㉠깍듯합니다. 극(極)에 나아갊에는 반드시 물러남이 있고, 존(存)에는 반드시 망(亡)이 있으며, 득(得)에는 반드시 실(失)의 이치가 있음을 진실로 모른다면 ㉡까딱까딱 가득함에 이르러 곧 지기(志氣)가 교만하게 넘쳐 방자한 똘똘함으로 스스로 성인(聖人)이라고 여겨, 혼자만의 지식으로 세상을 부리게 됩니다.
신하와 더불어 동심동덕(同心同德)과 진실한 뜻으로 서로 믿고 도와줌으로써 함께 치리(治理)를 이룩하지 않아, 고택(膏澤)이 백성에게 내려가지 않게 됩니다. 비유하자면 양기(陽氣)가 ㉢까닥까닥(/끄덕끄덕/깔딱깔딱) 극에 달해 아래와 교우하지 않게 되어, 곧 음기(陰氣)가 올라와 양기와 교류할 연고가 없으니, 어찌 구름이 일어 비로 치달아 혜택이 만물에 끼치게 되겠습니까?
이것이 소위 ‘㉣까닥까닥한 용은 후회가 있다’는 것이며, 궁극의 재앙인 것입니다.
-기존의 풀이-
신은 아룁니다. 임금은 권세와 지위가 ㉠지극히 높습니다. 진실로 나아감이 극에 이르면 반드시 후퇴하게 되고, 존재한 것은 반드시 멸망하게 되며, 얻으면 반드시 잃게 된다는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극한으로 높고 차게(滿)되면 지기가 교만에 넘치고 어진 사람을 업신여기며, 스스로 성인을 자처하여 혼자 지혜롭다 하고 제멋대로 世上을 다스리려 하게 됩니다.
따라서 臣下와 더불어 마음과 덕을 같이 하고 성의와 신의를 주고받으며 군신이 힘을 합하여 정치의 도리를 잘 이룩하고자 하지 않게 될 것이니, 결국 은택이 백성에게 내려가지 아니합니다. 비유하면 마치 양기가 ㉢높이 오르기만 하고 아래로 내려와 교류하지 않는다면 결국 음기가 스스로 올라가 양기와 교류할 도리가 없으니, 어찌 능히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오게 하여 만물을 축여줄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이 이른바 ‘㉣가장 높이 오른 용은 후회한다.’함이며, 궁극에 이르러서는 재난을 본다는 뜻입니다.
상기의 예문은 퇴계 선생이 亢龍有悔(항룡유회)에 관하여 경연강의(經筵講義)한 내용입니다. 모두 네 번의 亢 자가 사용되고 있는데, 기존의 풀이에서는 이들을 ‘높다, 지극하다, 극한하다’ 등으로 풀이하고 있지만 모두 오류입니다.
특히 ‘高亢(고항)’은 성어(成語)로 ‘뜻이 높아 남에게 굽실거리지 않는 태도가 있다’, ‘소리가 높고 세다’ 등의 뜻으로 사전적으로 정의되어 있기도 하지만, 실제의 뜻은 ‘높고 깍듯하다/높고 깡총하다’의 뜻입니다. 이 경우 유사한 어기로는 깍쟁이가 있습니다.
퇴계 선생은 亢 자의 쓰임이 ‘까닥까닥, 끄덕끄덕(껄떡껄떡), 깡충깡충’ 등과 같은 배달말의 의태어에 있음을 분명히 알았으며, 亢龍有悔(항룡유회)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亢 자의 쓰임을 유효적절하고 또 자유자재(自由自在)로 구사(驅使)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퇴계(退溪)에 비하여 오히려 2천년도 더 앞선 사람인 공자(孔子)가 한문 문장에서는 아류(亞流) 수준입니다. 이는 이황의 학문이 공자나 주희와 같은 사람들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 중간에도 亢龍有悔에 대한 중국 쪽에서의 풀이는 많고 많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가득하면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다’라는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자기들 어감상 문맥에 맞춘 뜻을 잡아 넣어버립니다. 주희(朱熹)가 주로 이런 식이며, 주희의 풀이는 중원공정(中原工程 ; 동북공정 이전의 역사 왜곡 작업)이라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주변국가에 압박을 줍니다. 그 결과로 주희식의 끼워 맞춘 뜻이 현재의 한자사전에도 버젓하게 등재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압박(중원공정)이 조선에 까지 미치게 되고 결국은 조선에서는 태고적 방식을 버리고 중국어식 한문이 점차로 퍼지게 됩니다. 퇴계보다 후대의 사람인 다산 정약용의 경우에는 공자식 한문 문장을 구사합니다. 그리고 어떤 선비[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儒生(유생)’]들의 경우에는 아예 주희식의 한문 문장을 구사하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사대주의(事大主義) 표방하며 '율시(律詩 ; 중국식 한자음에 의한 노랫말)' 외던 유생들입니다.
한문 이전의 원형이 되는 언어를 ‘북방어(北方語)’라고 한다며, 한문은 이 북방어에 중국어식 어감이 덧붙여진 ‘변종북방어(變種北方語)’입니다.
我東方之文 非漢唐之文. 亦非宋元之文. 而乃我國之文也. 宜與歷代之文 幷行於天地間. …… 中略 …… 吾東方之文 始於三國 盛於高麗 極於聖朝. 「四佳集」
우리 동방의 글은 한나라와 당나라의 글이 아니요. 또한 송나라와 원나라의 글도 아니다. 그러한 우리의 글인 것이야. 마땅히 역대의 글로 천지간을 아울러 행할 지다. (중략) 우리 동방의 글은 삼국에서 시작하여 고려에서 성대해졌으며, 성스러운 배달[조선]에서 극한 것이다.
조선 초기 학자 서거정의 글입니다. 서거정은 무슨 ‘문자’를 가지고 저와 같은 문장을 쓴 것일까? 세종대왕의 신하였던 서거정이 결코 ‘훈민정음’을 가지고 저와 같은 문장을 쓴 것이 아닙니다. 저 ‘한문 문장’ 자체를 가지고 논한 것입니다.
배달사람들의 입말을 전혀 담고 있지도 않으면서 ‘우리의 문자’라고 할 수가 있을까 얼핏 가벼운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이른바 ‘한문 문장’은 중국어의 입말에는 더욱 가깝지 않은 문자언어입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아니라, 수백 종을 넘어나는 각기 다른 언어와 혈족의 사람들을 동시에 다스려야 하는 ‘배달나라’의 통치자라면,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간의 소통(疏通)입니다. 이 소통을 위하여 어떤 편협하고 배타적인 침략국의 경우라면 ‘말살이나 동화’ 정책을 펴겠지만, 또 다른 방법으로는 ‘공용어’로 아우르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 북방어는 처음부터 ‘공용문자’의 개념으로 제작 반포된 것이며, 문자 조어(造語)의 기본 원칙은 바로 ‘배달말의 소릿값’에 있습니다. 그리고 한 번 더 생각에 깊이를 더한다면 ‘공용문자’가 제작되기 위해서는 우선 기준의 되는, 즉 모체가 되는 ‘글자’가 먼저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예로 아직 문자도 없는 나라에서 서로 언어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하여 각기 다른 두 말을 아우를 수 있는 글자를 만들었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한자(漢字)아니, 북방어(北方語) 이전에도 ‘글자’는 분명히 존재한 것입니다. 한자의 원형인 갑골문자는 ‘상형성을 가미한 소리글자’인데, 여기서 상형성을 가미한 이유는 바로 각기 다른 언어의 사람들을 소통시키기 위한 ‘공용문자’이기 때문이며, 상형성이 가미되지 않은 순수한 소리글자, 즉 표음문자(表音文字)가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창힐이라는 황제(黃帝) 시대의 사람이 한자를 처음 만들었다’라는 식으로 정의되기도 합니다. 또 시황제(始皇帝)의 승상이며, 전문 자형을 직접 제작하고 반포하였던 이사(李斯)는 ‘창힐이 쓴 28자 중 단지 8자만을 알 수 있었다’라는 내용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창힐이 쓴 ‘28’자는 훈민정음의 ‘스물여덟 자’와 같은 숫자입니다. 이사가 알 수 있었던 ‘8’은 주역의 ‘팔괘(八卦)’와 같은 수입니다. 우연의 일치이겠는가? 지금의 알파벳이나 훈민정음과는 근본 체계가 다를 수 있지만, 창힐의 28자는 한자와 전혀 무관한 소리글자이며, 주역의 팔괘의 근원도 어떤 소릿값의 표시에 있습니다.
祁寒溽暑 念蔀屋之何以奠居, 亢暵淫霖 念田家之何以安業, 此聖人之爲‘寧’也. 『純宗實錄 19年 6月 1日』
욱하게 춥고 바짝 더움에 오막살이들이 어찌 살림을 받치는지 생각하고, 가닥가닥한 무더위와 음울한 장맛비에 전가(田家)살이들이 어떻게 안치며 일하는지 생각함, 이것이 성인(聖人)의 ‘영(寧)’이 되는 것이다.
상기 문장은 순종황제의 글입니다. 순종황제는 결코 옛사람이 아닙니다. 아직도 이 땅에는 순종 황제를 직접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살아 있기도 합니다. 일본에게 통치권을 완전히 빼앗기고 ‘이씨(李氏)’라는 호칭의 막말을 들어야 했던 조선의 마지막 황제입니다.
순종황제는 이 亢 자가 가진 배달말의 소릿값 ‘가닥가닥’을 분명히 알고 있었으며, 저 글을 기록한 사관(史官)도 알았으며, 당시의 지식인들도 다 알았던 것입니다.
이 북방어(北方語)의 맥이 끊어져 버린 것은, 아니 끊어 버린 것은 625 동란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서입니다.
[현재의 국역본에서는 亢을 ‘매우’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伉 짝 항
깍지가 되는 상대방, 짝지, 짝꿍, 꼿꼿하다
伉의 전문
伉의 전문은 人과 亢의 합자이며, 亢의 ‘끄덕끄덕, 까딱까딱’에서 ‘깍지(/콩 따위의 꼬투리에서 알맹이를 까낸 껍질/열 손가락을 서로 엇갈리게 바짝 맞추어 잡은 상태)’의 소릿값을 유추하여, 깍지가 되는 사람[人]으로 ‘짝지, 짝꿍(/뜻이 맞거나 매우 친한 사람을 이르는 말)’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 人은 ‘사람만의 특성이나 성격’의 뜻을 나타내는데, 亢의 ‘까닥까닥’과 더하여, ‘꼿꼿하다(/사람의 기개, 의지, 태도나 마음가짐 따위가 굳세다), 꺽꺽하다(/사람의 목소리나 성질 따위가 억세고 거칠어서 부드러운 느낌이 없다)’의 뜻도 나타냅니다.
伉配(항배 ; 남편과 아내를 아울러 이르는 말), 伉儷(항려 ; 남편과 아내로 이루어진 짝) 등에서 伉이 ‘짝지, 짝꿍’의 뜻이며, 伉直(항직 ; 마음이 꼿꼿하고 곧음), 伉健(항건 ; 굳세고 용맹스러움) 등에서 伉이 ‘꼿꼿하다’의 뜻입니다.
子路 性鄙, 好勇力, 志伉直. 『史記』
자로는 성품은 비루하고, 용력(勇力) 쓰기를 좋아하며, 뜻은 꼿꼿하고(/꺽꺽하고) 곧다.
상기 예문의 伉을 기존에서는 ‘정직하다’의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풀이합니다. 하지만 정직의 뜻은 直에 있는 것이며, 亢은 ‘꼿꼿하다(꺽꺽하다)’ 로 直을 수식합니다.
忼 강개할 강
까닥까닥한 마음, 껑충한 성격, 꼬장꼬장
忼의 전문
忼의 전문 자형은 성격의 뜻을 나타내는 心과, 亢의 합자이며, ‘까닥까닥한 성격’이라는 것에서 ‘꼬장꼬장(/성미가 곧고 결백하여 남의 말을 좀처럼 듣지 않는 모양)’의 뜻을 나타냅니다.
설문(說文)에는 ‘忼慨也. 忼慨 壯士不得之於心也[강개(忼慨)이다. 강개(忼慨)는 장사(壯士)가 마음을 얻지 못한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의 ‘강개’는 ‘慷慨’라고 써야 맞으며, ‘장사가 마음을 얻지 못함’, 즉 일말의 슬픔과 분노의 뜻은 慨(슬퍼할 개)에 있는 것입니다. ‘꼬장꼬장’에 대한 중국어식 해석에 지나지 않습니다.
抗 막을 항
꺾다, 꺼꾸러트리다
抗의 전문
抗의 전문 자형은 手와 亢의 합자이며, 亢이 ‘까닥까닥, 끄덕끄덕’인 것에서, 그러한 손동작[手]으로 ‘꺾다, 꺼꾸러트리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抵抗(저항), 抗議(항의), 抗拒(항거), 抗生劑(항생제) 등에서 抗이 ‘꺾다, 꺼꾸러트리다’의 뜻입니다.
有能抗君之命. 『荀子·臣道』
능히 임금의 명을 꺾다.
抗拒(항거)는 ‘막고 거부하다’의 뜻입니다. 여기서의 ‘막다’는 비유적인 표현일 뿐이며, 抗의 원뜻은 ‘꺾다, 꺼꾸러트리다’입니다. 상기 예문의 抗을 ‘막다’라고 한다면 전체 문맥에 잘 들어맞지 않지만, ‘꺾다’는 더욱 분명한 뜻을 나타내줍니다.
鐘鼓旣設 擧醻逸逸. 大侯旣抗 弓矢斯張. 『詩經·小雅』
종과 북은 이미 베풀어지고 되받는 술은 돌고 도네. 큰 솔은 이미 꺼꾸러지고 궁시는 이에 펼쳐진다네.
주희(朱熹)는 상기 시경의 구문의 ‘大侯[여기서의 侯(임금 후)는 과녁의 뜻]’를 ‘인군(人君)의 과녁’이라고 설명하며, 抗을 ‘베풀다[張]’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경 편의 내용은 임금과 신하와의 잔치가 아니라, 손님과 주인과의 자리에 대한 내용이기에 딱히 ‘大侯’를 임금의 과녁으로 볼 이유는 없습니다. 또 抗이 ‘張’의 뜻으로 쓰인 경우는 시경이 오직 이 구문에 한해서일 뿐입니다.
이런 경우는 비단 抗 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결코 적지 않은 글자들에서 오직 하나의 문장에서만 유별한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은 주희(朱熹)의 막무가내(莫無可奈) 방식의 훈고(訓詁)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희의 이러한 태도는 ‘학자에게 지나치게 큰 권력이 주어진 경우’로 볼 수도 있으며, 아니면 현재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 이전에 있었던 ‘중원공정(中原工程)의 일환’일 수도 있습니다.
주희가 시황제와 동시대에 살면서 이러한 훈고학을 펼치고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 했다면 분서갱유(焚書坑儒)의 첫 번째 대상이 되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잘못된 훈고는 현재까지 한자 문화권의 모든 나라에서 계승되어 사전류에 그대로 등재 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것이 이 한문의 현실입니다.
이 시경 구문에서 大侯란 말 그대로 ‘큰 솔(/활을 쏠 때에 쓰는 무명 과녁)[侯의 矢가 배달말의 ’살‘의 소릿값을 나타냄]’의 뜻이며, 다음의 旣, 즉 ‘이미’로 활쏘기 게임이 한창 진행 중인 상태를 나타냅니다. 과녁 중에서 大侯는 (화살을 많이 맞아서) 이미 꺼꾸러졌고, 연하여 활과 화살은 (계속) 펼쳐지고(시위에 매겨지고 발사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自沈於淵而溺者不可以爲抗 弦高誕而存鄭 誕者不可以爲常. 『淮南子』
스스로 연못에 들어가 빠졌다면 꺼꾸러진 것으로 여길 수 없다. 현고(弦高)의 거짓말로 정나라가 존속되었다. 거짓이라는 것은 떳떳하다고 여길 수 없다.
상기 예문에서 ‘溺者’는 ‘물에 빠진 사람’으로 풀이하고, 抗은 ‘높다’로 풀이하여, ‘스스로 물에 빠진 사람은 (죽지 않도록) 높이지 못한다’는 식의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과 비교해 보았을 때, 抗은 ‘꺼꾸러지다’의 뜻입니다. 스스로의 의지에 의하여 물속에 빠졌다면 그것을 ‘물에 쳐 박힌 것(/꺼꾸러진 것)’으로 여길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爲는 위동동사로 ‘~라고 여기다’의 뜻]
弦高(현고)는 정(鄭)나라 사람으로 소장수인데, 진(秦)의 군대가 정나라를 급습하기 위하여 출병 중 활나라에 도달 했을 때, 진나라의 장수 맹명시에게 거짓말로 정나라는 진나라의 움직임을 사전에 다 알고 있었던 것처럼 속여, 스스로 돌아가게 했다는 내용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弦高(현고)가 거짓말하여 진나라 군대가 스스로 돌아간 것을 常[떳떳하다 ; 정상적인 법도나 도리]이라 여기지 못하는 것처럼, 반대로 스스로 빠진 것을 가지고 ‘꺼꾸러트린 것’, 즉 이긴 것으로 여길 수 없다는 두 내용을 비교하고 있는 문장입니다.
百人抗浮 不若一人挈而趨. 『淮南子』
백 사람이 꺼덕꺼덕(/≒허우적허우적) 떠 움직이는 것은 한 사람이 이끌며 재촉하는 것만 못하다.
상기 문장의 抗을 ‘(물을)건너다’로 풀이하지만, 실제의 뜻은 亢이 사람의 몸을 아래위로 움직이는 의태인 것에서 手를 덧붙인 抗으로 ‘아래위로 흔드는 손동작’으로 ‘끄덕끄덕/허우적허우적’의 뜻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贈學部協辦李鳳煥. 在昔年忘身抗義之大節, 先朝曾有旌忠之遺敎, 而未遑矣. 『純宗實錄 3年 5月 30日』
증(贈) 학부협판(學部協辦) 이봉환(李鳳煥). 옛날의 자신을 잊고 꺾어지는 의(義)의 큰 절개에 있어서 선조(先朝)에 일찍이 정충(旌忠)의 유교(遺敎)가 있었으나 아직 황급한 거였다.
古人之內侍所過 猶或抗義 甚者車駕所經 猶不敢虐民以求媚. 『牧民心書』
옛사람은 내시(內侍)가 지나가는 바에서도 오히려 혹은 꺾어지는 의(義)였으며, 심한 것으로는 거가(車駕)가 지나가는 바에도 오히려 감히 백성을 학대하면서까지 아첨을 구하지 않았다.
상기 두 문장에 사용된 ‘抗義’의 抗을 대부분의 풀이에서 ‘항거(抗拒)하다’로 풀이합니다. 그러면 순종실록의 ‘抗義之大節’는 ‘의(義)에 항거한 큰 절개’가 되어, 전체 문맥이 맞지 않으며, 목민심서의 ‘抗義’도 ‘옳음에 항거하다’가 되어 버립니다.
모두 오역이며, 여기서의 抗은 ‘꺾어지다(/길고 탄력이 있거나 단단한 물체가 구부러져 다시 펴지지 않거나 아주 끊어지다)’로, ‘부러졌으면 부러졌지 휘지 않는’의 뜻을 비유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抗義’가 나타내는 바를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는 배달말일 뿐입니다.
선진(先秦) 이전의 쟁쟁한 문장들에 대한 중국인들의 오역, 혹은 중원공정(中原工程)에도 불구하고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하여, 조선의 선비들은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고 태고의 말을 잘 계승하고 있는데, 이는 한문 및 한자가 한(漢)나라 이후에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것이 아니라, 아예 태고로부터 배달인의 아버지에서 아들로 전해진 것이기에 가능한 상황입니다. [조선 중기와 후기에 오면 명나라의 영향으로 일부 유생(儒生)들의 글에서 상당히 중화(中華)된 문장들이 나타나기는 합니다]
이두와 향찰에 대한 기존의 개념은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한자 고유의 독(讀)에 우리식의 훈(訓)을 붙여 익히고, 이런 과정에서 순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훈(訓)을 쓰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독(讀)으로써 표기했다는, 즉 ‘신라 때 중국문자인 한자의 소리와 우리말에서의 새김을 혼용하여 국어 문장 전체를 적은 표기법’이라는 식의 사전적 정의는 과연 옳은 것인지 재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한자가 한나라 이후 중국인으로부터 유입된 외래 문자라고 했을 때, 향찰이나 이두와 같은 표기법이 생겨나려면 ‘표준화된 대표 훈독(訓讀)’의 개념이 먼저 성립되어야만 가능합니다. 지금도 한자의 훈독을 표준화하는 것에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발생하는데, 한글도 존재하지 않았고 최소한 5천 자가 넘는 문자의 규범을 각 지방에까지 엄정한 규정으로 배포하는 것이 고대에 가능했을 리는 없습니다.
鄕札(향찰)의 기본 개념은 지방의 향리(鄕吏)들이 주로 사용했던 문자 표기라는 것입니다. 향가(鄕歌), 향언(鄕言), 향명(鄕名) 등에서 鄕(시골 향)이란 ‘우리 고유의 것’이나 ‘본토(本土)의 것’의 뜻을 나타냅니다. 이두(吏讀)에 보이는 吏(관리 리)도 마찬가지 개념입니다. 한(漢)나라나 당(唐)나라로부터 수입된 문자를 가지고 배달말을 표기하면서 鄕, 吏와 같은 ‘우리 고유의’, ‘본토의’와 같은 개념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역으로 예를 들자면 현재의 중국어를 로마자인 병음(倂音)으로 차용하여 표기하면서 중국인이 ‘우리 고유의’라는 명칭을 쓰지 않는 것과도 같습니다.
‘지방의 향리들은 향찰을 주로 사용하고, 중앙의 귀족들은 한문(漢文)을 더 선호하였다’라는 단편적인 정의는 왜곡이거나 오류에 지나지 않습니다. 갑골문자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시황제의 전자까지는 처음부터 공용어의 개념으로 고문(考文)하고 배포한 것이기에 중앙의 귀족들은 대외적인 관계와 위치 상 공용어 한문에 더 치중한 것이며, 향찰과 이두는 한나라나 당나라와는 무관하게 훨씬 태고로부터 내려온 ‘문자[품고 있는 소리, 드러나는 소리]’를 신라와 고려 사람들이 나름으로 전개한 방식입니다.
갑골문자는 처음부터 세계 공용어로 제작된 문자이며, 그 조어(造語)의 기준은 배달말의 소릿값에 두고 있습니다. 이두와 향찰에서의 소릿값의 전개는 다 풀지 못한 갑골문자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것입니다.
沆 물넓을 항
물이 까닥까닥, 출렁출렁, 찰랑찰랑, 찰찰
沆의 전문1
沆의 전문2
沆의 전문 자형은 水와 亢의 합자이며, 亢의 ‘끄덕끄덕, 까닥까닥’에서 水와 더하여, ‘출렁출렁, 찰랑찰랑, 찰찰(/적은 액체가 조금씩 넘쳐흐르는 모양/생생한 기운이 가득 찬 모양)’ 등의 의성의태어(擬聲擬態語)를 나타냅니다.
沆의 전문 자형1은 다리와 몸통이 띄워져 있으며, 자형2는 붙은 상태로 다리가 움직이고 있는 모양을 뜻하는 가로획이 그어져 있습니다. 전문 자형이 배포될 당시부터 구분이 되었던 것인지 후대에 발생한 것인지 명확하진 않지만, 우선은 자형1처럼 띄워진 형태는 ‘깡충깡충’을 나타내고, 자형2처럼 붙은 형태는 ‘까닥까닥, 끄덕끄덕’을 나타내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炕 마를 항
불길에 가닥가닥, 끄스르다, 까칠하다, 구들장
炕의 전문
炕의 전문 자형은 火와 亢의 합자이며, 亢의 ‘끄덕끄덕’에서 불길[火]이 아래위로 끄덕이는 모양으로 ‘끄스르다, 그슬다(/불에 겉만 약간 타게 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다르게는 굽거나 말리기 위한 동작으로 ‘가까이 했다가 멀게 했다가(/끄떡끄떡)’하는 동작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또 ‘불길에 가닥가닥하다’에서 ‘까칠하다(/윤기가 없고 매우 거칠다/성질이 부드럽지 못하고 매우 까다롭다)’의 뜻도 나타냅니다.
炕과 유사한 어기를 나타내는 글자에 然(그럴 연)이 있는데, 이는 ‘개고기를 불에 대다[개고기의 비린 냄새를 없애기 위하여 요리 전에 불에 그을림]’로 ‘그을다, 그을리다’에서 ‘그렇다’의 뜻으로 쓰입니다.
炕洞(갱동 ; 방의 구들장 밑으로 나 있는, 불길과 연기가 통하여 나가는 길)에서 炕이 ‘그슬다’에서 ‘구들장’의 뜻으로 쓰였으며, 炕暴(항포 ; 몹시 난폭하다)에서 炕이 ‘까칠하다’의 뜻입니다.
‘炕[kàng]’는 현대중국어에서 ‘온돌, 방구들’의 의미로 쓰이지만, 중국어 자체의 어감이 아니라 강식에 의한 사용입니다. 온돌과 방구들은 중국문화가 아닙니다.
平安·咸鏡兩道 則父子賓旅 混宿於一房長炕, 無異於夷狄之風. 在所當禁, 而習俗之來已久 不可猝變. 『中宗實錄 25年 3月 8日』
평안과 함경의 양도에서는 부자(父子)와 빈려(賓旅)가 한 방의 긴 구들장에서 섞여 묵는데, 이적(夷狄)의 풍습과 다름이 없으니, 당연히 금해야 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습속의 전래가 이미 오래되어 갑작스레 변경하기는 불가합니다.
상기 문장의 炕이 ‘구들장’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炕陽而暴虐. 『漢書』
볕에 끄슬리는 것처럼 포학(暴虐)하다.
炕火曰炙 謂以物貫之. 「詩經 注」
불에 끄스르는 것을 ‘굽다’라고 한다.
晝聶宵炕. 『爾雅』
낮에 저며 놓았다가 밤에 끄스른다.
상기 문장들에서 炕이 불의 화력이나 거리를 적당히 조절하여 굽는 것으로 배달말의 ‘끄스르다’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迒 발자국 항
깡충깡충/끄덕끄덕 지나가다, 총총/종종
迒의 전문1
迒의 전문1
迒의 전문은 辵과 亢의 합자입니다. 辵은 ‘동작상(動作相)’의 의미를 나타내며, 전문1 자형은 亢의 ‘껑충껑충’과 더하여, ‘총총/종종(/발걸음을 매우 재게 떼며 바삐 걷는 모양)’의 뜻을 나타냅니다.
전문 2자형은 다리와 몸통 부분이 연결되어 있는데, 1자형의 ‘껑충껑충’과 구분하여, ‘까닥까닥’으로‘띄엄띄엄 떨어져 있다’는 어기를 나타내어, ‘발자국’의 뜻을 나타냅니다.
閌 높은문 항
껑충한 문, 솟을대문
閌의 전문
閌의 전문 자형은 門과 亢의 합자입니다. 亢이 ‘껑충하다(/키나 길이 따위가 매우 큰 듯하다)’의 뜻을 나타내어, 다른 문에 비하여 유난히 높이 솟아 있는 문으로 ‘솟을대문’의 뜻을 나타냅니다.
杭 건널 항 航 배 항
끄덕끄덕 구조물, 높은기둥
배가 끄덕끄덕, 건너다
杭의 전문
杭의 전문 자형은 구조물을 뜻하는 구조물의 뜻을 나타내는 木과, 亢의 합자이며, 亢의 ‘까닥까닥, 껑충껑충’에서 ‘까닥한 구조물, 껑충한 구조물’로 ‘높은기둥’의 뜻을 나타냅니다. 杭의 훈독(訓讀) [건널 항]은 격에 맞지 않으며, 어떤 자전(字典)에서는 杭은 전문 자형이 없는 것으로도 되어 있습니다. 배달말에서 ‘기둥’에 대한 표현으로 ‘까닥한 구조물’로 했다는 것은 개연성(蓋然性)이 부족합니다. 閌자에 의하여 파생된 글자로 보아야겠습니다.
橋杭(교항 ; 다리의 기초 공사 때에 쓰는 말뚝), 試驗杭(시험항 ; 흙의 지지력을 재기 위하여 시험적으로 박는 말뚝), 亂杭(난항 ; 적의 기병을 막으려고 굵은 말뚝을 불규칙하게 박아 동아줄로 얼기설기 얽어 놓은 장애물), 杭上住居(항상주거 ; 몇 개의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마루를 놓는 주거 양식) 등에서 杭이 ‘기둥’의 뜻입니다.
또 航은 전문 자형에는 없는데, 이 경우는 ‘배[舟]가 끄덕끄덕’으로 배가 출항하여 움직이고 있는 모양을 나타내며, 이로부터 ‘건너다’의 뜻이 도출됩니다. 橋도 ‘끄덕끄덕한 구조물’로 ‘건너다’의 뜻이 도출됩니다.
航[/杭]海(항해), 航[/杭]空(항공), 運航[/杭](운항) 등에서 航이 ‘건너다’의 뜻입니다.
頏 날아내릴 항
머리를 끄덕이다, 끼룩끼룩, 꼴깍꼴깍, 꿀꺽꿀꺽
頏의 전문
頏의 전문 자형은 亢과 頁의 합자입니다. 頁은 얼굴이나 머리 쪽에 있는 신체기관을 나타내거나 자형의 요소로 쓰여, ‘특징’의 의미를 함의합니다. 여기서는 구분자로 사용되었습니다. 亢의 아래위 반복동작으로 움직인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燕燕于飛 頡之頏之. 『詩經』
제비, 제비 날아 후룩후룩 끼룩끼룩.
상기 시경 구문에 보이는 頡頏(힐항)은 아래로 내려오다가 짧게 솟구치는 제비가 나는 모양에 대한 형용으로 頏이‘끼룩끼룩’의 의성의태어(擬聲擬態語)를 나타냅니다.
끼룩끼룩 (1) 기러기나 갈매기 따위의 새가 자꾸 우는 소리
(2) 무엇을 내다보거나 목구멍에 걸린 것을 삼키려고 목을 길게 빼어 자꾸 앞으로 내밀다.
頏은 ‘목’이나 ‘목구멍’의 뜻도 나타내는데, 목은 亢의 ‘끄덕끄덕’이 고갯짓을 나타내는 것에서 머리를 받치고 있는 구조물이란 의미를 나타내는 項(목 항)과 같은 뜻으로 가차(假借) 것이며, 목구멍의 뜻은 亢이 음식이나 물 따위를 마시고 목을 넘길 때의 의성어인 ‘꼴깍꼴깍, 꿀꺽꿀꺽’의 소릿값에서 나타낸 것입니다.
㽘 지경 강
터가 끄덕끄덕, 물컹물컹, 끈적끈적, 늪, 수렁
가닥가닥한 밭, 볕소금
㽘의 전문
㽘의 전문 자형은 田과 亢의 합자입니다. 田은 갑골문에서 場(마당 장)과 통용되며, ‘터, 터전’의 뜻을 나타냅니다. 亢의 ‘끄덕끄덕’이 아래위로 반복되는 동작이라는 것에서 ‘터가 끄덕끄덕’으로 ‘물컹물컹, 끈적끈적’을 의미하여, 이로부터 ‘늪, 수렁’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 亢이 ‘가닥가닥(/물기나 풀기가 있는 물체의 거죽이 거의 말라서 빳빳한 상태)’으로 ‘가닥가닥한 밭’이라는 것에서 ‘볕소금’의 뜻도 나타냅니다. 鹵(소금밭 로)는 ‘짜내고 남은 찌꺼기’로 ‘곤소금(/천일염을 물에 풀어서 잡물을 거르고 고아서 깨끗하게 만든 소금)’을 의미합니다.
笐 나란할 강/나란할 항
죽죽 가닥가닥, 가닥, 가락
笐의 전문1
笐의 전문2
笐의 전문1 자형은 竹과 亢의 합자이며, 竹은 대나무의 모양에서 ‘죽, 죽죽(/여럿이 고르게 늘어서거나 가지런히 벌여 있는 모양)’의 뜻을 나타내며, 亢의 ‘가닥가닥(/여러 군데서 갈려 나온 낱낱의 줄/여러 가닥으로 갈라진 모양)’과 더하여, ‘가닥(/한군데서 갈려 나온 낱낱의 줄/빛이나 물 따위의 줄기), 가락(/가늘고 길게 토막이 난 물건의 낱개)’의 뜻을 나타냅니다.
秔 메벼 갱/메벼 강
가닥가닥한 벼, 메벼
秔의 전문
秔의 전문 자형은 禾와 亢의 합자입니다. 亢의 ‘가닥가닥(/물기나 풀기가 있는 물체의 거죽이 거의 말라서 빳빳한 상태)’이 ‘메지다(/밥이나 떡, 반죽 따위가 끈기가 적다)’로 쓰여 ‘메벼(/찰기가 없는 메진 벼)’의 뜻을 나타냅니다.
秔米(갱미 ; 멥쌀), 秔白米(갱백미 ; 메벼에서 나온 차지지 않은 쌀), 秔稻(갱도 ; 메벼) 등에서 秔이 ‘메벼’의 뜻입니다.
阬 구덩이 갱
가닥이진 지형, 고랑창
阬의 전문
阬의 전문 자형은 지형(地形)이나 지세(地勢)의 뜻을 나타내는 阜와, 亢의 합자이며, 亢이 ‘가닥가닥(/여러 가닥으로 갈라진 모양)’으로 쓰여, ‘가닥이진 지형’으로 ‘고랑창(/폭이 좁고 깊은 고랑)’의 뜻을 나타냅니다.
현재는 坑(구덩이 갱)[전문 자형 없음]이 일반적으로 쓰이며, 坑道(갱도 ; 광산이나 건축 공사장에서 공사의 편의를 위하여 땅속에 뚫어 놓은 길), 坑口(갱구) 등에서 ‘坑’이 단순한 ‘구덩이’의 뜻이 아니라, ‘가닥지게/고랑지게 파다’의 어기를 머금고 있는 것입니다.
以四十之戶, 而運巨萬之木, 越險跨壑, 塡阬墜谷, 男女力竭, 牛馬隨斃,…. 『明宗實錄 12年 5月 7日』
40호(戶)로써 거만(巨萬)의 목재를 운반하며, 험지를 넘고 구렁을 타넘어 넘고 고랑창을 메우고 골에 떨어뜨린다면 남녀가 모두 힘이 고갈되고, 우마도 따라 죽어….
…, 敺而納諸罟 擭阬塹而後已. 『純祖實錄 18年 9月 22日』
…, 몰아서 그물에 들이고 덫으로 고랑창에 빠뜨린 후에야 그칩니다.
何資之豐 而壽之嗇! 追想英靈 良深慟. 阬降恤典 伻陳一巵…. 『世宗實錄 22年 11月 11日』
어찌하여 자질의 풍부함에도 목숨의 인색함일 줄이야! 영령(英靈)을 추상(追想)하니, 참으로 깊게도 서럽도다. 고랑창에 휼전(恤典)을 내려 심부름꾼으로 하여금 한잔 드리니….
상기 세 구문에 사용된 阬이 모두 ‘고랑창’의 뜻입니다. 세 번째 세종실록의 阬은 ‘무덤’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신하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에 그 죽음이 묻혀 있는 장소를 ‘고랑창’이라고 한 것입니다.
魧 큰자개 강
가닥이진 비늘 모양, 자개
魧의 전문
魧의 전문 자형은 鱗(비늘 린)의 축약인 魚와 亢의 합자이며, 亢이 ‘가닥(/빛이나 물 따위의 줄기)’으로 쓰여, ‘가닥이진 비늘 모양’으로 ‘자개(/금조개 껍데기를 썰어 낸 조각. 빛깔이 아름다워 여러 가지 모양으로 잘게 썰어 가구를 장식하는 데 쓴다)’의 형상을 나타내는 글자입니다.
斻 떼배 항
반듯하고 끄덕끄덕, 떼배
斻의 전문
斻의 전문 자형은 方과 亢의 합자입니다. 方은 배달말의 ‘방방, 반듯하다’ 등의 소릿값을 나타내며, 亢의 ‘끄덕끄덕(/아래위로 움직이는 모양)’과 더하여, ‘떼배(/뗏목처럼 통나무를 엮어 만든 배)’의 뜻을 나타냅니다.
犺 고슴도치 강
가닥가닥한 짐승, 고슴도치, 성성이
犺의 전문
犺의 전문 자형은 犬과 亢의 합자이며, 亢이 ‘가닥가닥(/여러 가닥으로 갈라진 모양)’으로 쓰여, 가시가 가닥가닥한 ‘고슴도치’와 털이 가닥가닥한 ‘성성이(/오랑우탄)’의 뜻을 나타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큰 일 좋은 일 하고 계십니다.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