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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위하여 집을 지으면 하나님이 내 집을 지어주십니다. / 2023년 4월 30일 주일 예배
본문 / 사무엘하 7:1-17
안면도에서 목회할 때 하루는 새벽에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가려는데 뜬금없이 ‘새집 줄게 헌집 다오’라는 소리가 마음에 들리는 겁니다.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이지? 재미있다는 생각도 들고 문득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라는 동요가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동요는 새집을 주면 헌집을 주겠다는 것인데 반대로 새집을 줄 테니 헌집을 달라는 것입니다.
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그 소리를 듣고 기분이 좋았다고 말입니다. 헌 집을 내놓으면 새 집을 준다니 이것보다 기분 좋은 게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몰랐습니다. 그때 아주 낡은 집에 살았거든요. 낡은 주택을 새 주택으로 바꿔주시겠다는 것인지. 연세 드신 부부가 서산으로 이사를 간다고 했었습니다.
농촌에서 교인이 이사를 가면 얼마나 휑하겠습니까? 그 대신에 하나님이 젊을 사람들을 보내주시려나 생각했습니다. 이러나저러나 아무튼 낡은 헌 집 내놓으면 새 집 주겠다니 저야 좋은 것 아닙니까? 기분이 엄청 들뜨는 겁니다.
새 집 준다는 데 그깟 헌 집이야 얼마든지 내놓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제가 그 말을 잊고 살다가 몇 년 전에 이곳에서 새벽에 기도하다가 번뜩 생각났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새집 줄게 헌집 달라고 하신 그 말씀이 말입니다.
헌 주택을 새 주택으로 바꿔주겠다는 것도, 나이 많은 사람 대신에 젊은 사람을 보내주겠다는 말씀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정말 쓰디쓴 그 고난과 시련을 겪은 후에, 그것이 지나고 나서야 아! 그 말씀은 바로 나를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몰랐습니다. 저는 제가 몸은 다 낡은 창고 같은 집에 살고 있는 것은 알았지만 제 영혼이 낡은 헌 집에 살고 있다는 것은 말입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원하는 가장 절실하고 큰 첫 번째 소원이 무엇입니까? 내 집, 자기 집을 갖는 것입니다. 집 없으면 불안하고 이것보다 큰 고통은 없는 겁니다. 집을 그것도 새 집을 가지면 그것은 가장 큰 행복인 것입니다. 집이 낡으면 다시 고쳐서 새 집처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육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의 주인인 영혼이 있지 않습니까? 몸 이 육체야 잠시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지만 영혼은 영원하지 않습니까? 잠시 살 때도 몸이 편안하게 쉴 집이 있어야 하듯이 영혼의 집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영혼의 집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자기 육체가 잠시 살다가는 눈에 보이는 그 집은 어떻게든 크고 좋은 집을 지으려고 몸부림을 치지만 자기 영혼이 영원히 살게 될 그 영적인 집에는 무관심 한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자기 영혼이 다 낡고 무너진 헌 집에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세상의 불신자들은 아예 그 헌 집도 없는 사람들이고 말입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은 것을 반영하고 육적인 것은 영적인 것의 교훈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여러분의 육신이 사는 집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예배가 끝나면 당장 어디로 가겠습니까? 길거리에서 눈과 비와 바람과 추위와 더위를 그대로 다 받아야 합니다. 무슨 행복과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비가 새는 다 무너져가는 낡은 집에서 산다고 해보십시오. 어떻게 저런데 살까? 그런 집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미 나름대로 안전하고 좋은 집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집이 없다거나 낡고 더러운 집에서 사는 것은 생각만 해도 머리를 흔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살다가는 육체의 집일뿐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영원히 살게 될 영원한 집은 어떤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지금 내 영혼은 어떤 집에 살고 있는지 관심과 생각은 있습니까?
정말 잠시 살다가는 이 세상에서 다 낡은 헌 집에 살면 어떻습니까? 심지어 아예 집이 없는 노숙자면 어떻습니까? 하나님 나라에 내 영혼이 영원히 안식하게 될 영원한 집이 있다면 말입니다. 나사로는 병든 거지에 노숙자였지만 지금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품에 안겨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이 세상에서 그 육체를 위해 크고 화려한 집을 짓고 자랑하며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던 그 부자는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지옥의 그 뜨거운 불구덩이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는 영혼의 집이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 뭡니까?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에서 내 영혼이 영원히 살 집을 짓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 나라에서 내 영혼이 살 집을 이 세상에서 어떻게 짓겠습니까? 예를 들어 우리가 미국에 가지도 않고 미국에 내가 살 집을 지을 수 있습니까? 건축업자에게 내가 어떤 집을 원하는지 말하고 돈을 주면 얼마든지 지을 수 있는 겁니다.
예수님은 땅에서 매이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리면 하늘에서도 풀린다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믿음과 삶으로 지금 하나님 나라에 집을 짓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을 보고 왔다는 어떤 목사님의 책에서 천국에는 짓다가 공사가 중단된 집도 있더라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집이 대천에 와서 일곱 번째 집입니다. 이제 대천을 떠나면 모를까 대천에서는 더 이상 이사 다니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전세 아파트지만 그래도 내 집이라는 마음이 있는지 집이 지어지는 2년 6개월 동안 지켜보았습니다. 아이고, 이제 터를 닦았네. 지나다가보니 5층이 올라간 겁니다. 야! 저기가 우리 집이다. 언제 저 안에 인테리어를 하나? 저 곳에 살 날이 오려나? 간간히 지나다니면서 다 지켜보았습니다. 야! 이제 거의 다 되는구나! 며칠만 있으면 이사 가네. 벌써 4달째 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짓는 집이 눈에 보인다면 어떨까요? 이게 전혀 보이지 않으니 공사가 중단 된지 오랜데도 걱정이 없고, 아예 지옥으로 가면서도 두려움도 없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사는 모습을 보면 확인할 수가 있는 겁니다. 건축회사나 인부들이 집을 괜히 지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건축비를 통장으로 송금하지 않는데도 집을 지어주겠습니까?
내가 지금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지 않는데도 하나님 나라에서 집이 지어지겠느냐 말입니다. 지금 하나님 나라에서 내 집이 짓다만 것은 아닐까요? 짓다만 건물은 이게 얼마나 흉합니까? 하나님 나라에 집이 아예 없는 성도들은 왜 없겠습니까? 지금 하나님 나라에 영원한 집을 성실하게 짓고 있는 지혜로운 건축자는 얼마나 될까요?
하나님 나라에서 성도들이 살 집은 즉 내가 살 집은 하나님이 지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겠다.”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짓는 집은 어떤 집입니까? 사람들이 이 세상에 아무리 잘 짓는 집도 완성된 그 순간부터 헌 집이 되어가고 결국은 낡고 무너지고 말지만 하나님이 지어주신 집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시 옮기지 못하게 하며” 주인이 요구할 때 비워야하는 그런 집이 아닙니다. 그 집은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악한 종류로 전과 같이 그들을 해하지 못하며 하며” 이 세상에는 대궐 같은 집에도 불행이 있지만 그 집에는 영원한 안식이 있습니다. “너를 모든 원수에게 벗어나 편히 쉬게 하며” 그리고 영원합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다스리며 왕 노릇하는 집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부모의 도움이 없이 내 집을 가지려면 얼마나 힘듭니까? 아마 10년 이상을 허리띠를 졸라매고 저축을 해야 살까말까 일겁니다. 어떤 사람이 고생고생하며 집을 샀을 때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더라는 겁니다. 이 방에도 한 번 누워보고 저 방에도 누워보고 너무 좋아서 웃었다고 울었다 했다는 겁니다. 우리가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집은 언젠가는 무너지고 내주어야 하고 결국은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겁니다. 결국 사람은 영원히 살 집을 지어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에 말입니다. 예수님이 그 집을 짓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는 것과 그 거처를 예비하면 다시 온다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말씀 한 마디에 천지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이 사람들이 세상에 집을 짓는 것처럼 시간과 재료와 노동력이 필요합니까? 단지 하나님이 우리의 거처를 예비하는 데에는 우리의 믿음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믿음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무엇입니까? 아버지가 내 안에 있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내 안에 있는 것이다. 나와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하셨고 서로의 안에 거하는 그 하나 됨이 사랑이라 하셨고 그 사랑이 계명을 지키는 것 곧 순종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라고 하신 겁니다. 그것은 순종하는 자만이 나를 사랑하는 자며, 내 안에 있는 자며, 나와 함께 하는 자며, 나를 믿는 자라는 겁니다.
계명은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이라 하신 겁니다.
사람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을 죽은 신을 섬기는 종교와 우상으로 변질시켜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이론과 지식으로 만들고 뜬 구름을 잡는 것처럼 대충 얼버무리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은 이 세상에 집을 짓는 것처럼 아주 섬세하고 실제적인 것입니다.
입으로 집을 지을 수가 있습니까? 이론과 지식으로만 집을 지을 수 있습니까? 입으로 되는 것은 사기와 거짓말 밖에 없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거짓말로 성도들에게 거짓 평안을 주며 집을 짓게 하는 겁니다. 말로만 주여 주여 하는 그 믿음으로 천국에서 집이 지어지겠습니까?
하나님이 왜 다윗을 위해 영원한 집을 짓겠다고 하셨습니까? 다윗이 가만히 있는데도 하나님이 그런 말을 하셨습니까? 다윗이 이 세상에 하나님을 위한 집을 짓겠다고 결단했을 때입니다. 다윗이 왜 그런 생각을 했습니까?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은혜가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집의 양치기 막내아들을 일약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가 이게 기가 막힌 겁니다. 너무 놀라운 겁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별 것도 아닌 나를 이렇게 사랑하실까?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하셨을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기가 막힌 은혜에 이제 내가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신은 백향목 궁에 살 때에 하나님의 궤는 성막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이 하나님을 위하여 집을 짓겠다는 그 생각과 마음을, 이것을 엄청 마음에 들어 하시고 기뻐하셨다는 겁니다.
즉시 나단을 보내어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하시더니 내가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하시고는 내가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지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벌렁벌렁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하는 것을 보십시오. 더 이상 무슨 축복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위해 영원히 안식할 집을 지어주겠다는데 말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놀라운 축복을 받으셨습니까? 내 집 좀 지어달라고 하면 하나님이 지어주십니까? 다윗은 그런 생각은 조금도 안 했습니다. 다윗은 단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며 이 세상에서 내가 하나님을 위한 집을 지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다윗처럼 하나님을 위한 집을 지어야겠다는 생각과 마음이 있습니까?
성도들은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지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다 자신을 위해 집을 집으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내 집과 내 교회만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과 교회는 없는 겁니다. 아직도 내가 주인이고 왕이고 하나님이라는 그 자아숭배를, 그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을 박지 못한 것입니다. 아직도 회개하고 거듭나지 못한 것입니다. 아직도 마음과 영과 삶에서 주인이 하나님으로 바뀌지 않은 것입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하나님과 자신을 함께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을 십자가에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순종이 있겠습니까? 자기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마음대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금송아지 우상으로 조작하고 이게 우리를 애굽에서 구원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이라고 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자신을 위하여 자신이 만든 하나님을 자기 마음대로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녀도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밖에 거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자신을 부인하는 순종이 없습니다. 성도들은 교회는 주구장창 다니며 예배와 헌금은 하고 목사는 강단에서 하나님에 관해 아는 것처럼 말씀을 그럴듯하게 전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천국에 집을 지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를 위해 어떻게 집을 지어주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도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마음과 목숨과 뜻을 즉 내 생명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그것이 얼마나 큰 고통이며 죄인지 모릅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하나님도 사랑하는 겁니다. 적당히 대충 사랑하고 마는 것입니다.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미지근한 겁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영원히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집 없는 자가 되어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왜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지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까?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을 택하고 부르셔서 여기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의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이제 내가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지어야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윗과 같은 은혜를 입지 않았습니까? 이 세상에서 부자와 재벌과 왕으로 만들어주면 그때 나도 다윗처럼 집을 지어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울은 왜 다윗과 같은 생각을 못했습니까? 왜 부자 청년은 근심하여 집으로 돌아갔습니까?
다윗이 정말 이 세상에서 양치기 목동을 왕으로 만들어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만이 고마워서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짓겠다고 했을까요? 예수님은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렇지만 다윗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그 대속의 십자가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그 놀라운 은혜를 본 것입니다. 믿은 것입니다. 세상에! 어떻게 하나님은 죽어야 할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사랑하는 자기 아들을 버리실까? 이 기가 막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이미 약속으로 받았던 것입니다.
이 세상을 다 주면 뭐합니까? 죽지 않을 겁니까? 죽을 때 하나라도 가져갈 수 있습니까? 다윗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복을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아들을 버리면서까지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지어야겠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우리와 다윗을 비교할 때 누가 더 큰 은혜를 받은 것입니까? 히브리서는 이 사람들이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한 것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여 또 땅에서는 단지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며 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그래서 믿음의 선진들이 잠시 살다가는 이 세상에서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았다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목사였지만 내 몸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린 것이 아니라 내 몸과 영혼과 마음과 인생을 나를 위한 집으로 짓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이 세상에서 제 집을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큰집으로 지어주세요. 십자가의 은혜를 받고도 내 집을 지으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지겠다고 한 것이 아니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무슨 은혜를 받았는지 모르는 것이고 은혜를 헛되이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헌 집이라고 하신 겁니다. 제 믿음은 새 술을 담을 수 없는 낡은 가죽부대였습니다. 옛것이 좋다고 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묶은 것에 익숙해져 있는 겁니다. 낡은 가죽부대가 터지는 것을 원치 않는 겁니다. 그 안에는 내가 지금까지 마셔온 묶은 포도주가 있고 그것이 쏟아지는 것은 고통인 것입니다.
새 집 줄게 헌 집 다오! 세상의 물질주의 가치관으로 이것보다 좋은 거래는 없지만 영적인 세계에서 내 헌 집을 내놓고 주님이 주시는 새 집을 얻는 것은 내가 죽고 내 안에 주님이 사는 십자가의 죽음과 고통인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신봉하며 지켜온 나의 인생의 방향과 목적과 가치관을 다 십자가에 부인하고 회개하고 오직 사나 죽으나 주님을 위하여 사는, 하나님만을 나의 주인으로 모신 믿음의 가치관으로 거듭나는 게 쉬운 것입니까? 수십 년 교회를 다니며 주여 주여 하는 성도여도 심지어 목사여도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입니다.
저는 내 영혼이 헌 집에 살고 있다는 것도 몰랐고 그 헌 집을 내놓으라는 그 의미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죽을 것만 같았던 그 고난을 벗어난 어느 날 번뜩 이 말씀이 떠오른 겁니다. 아! 지금까지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이걸 하셨구나!
헌 집 내놔! 싫어요. 난 이 집이 좋다고요. 난 이 집에서 살래요. 넌 그 집에서 살면 지옥에 가는 거야! 그 집에서는 내가 너와 함께 살 수 없어! 하나님은 제가 살던 헌 집을 부셔버리고 저를 그 집에서 끌어내셨습니다. 마치 롯이 살던 소돔과 고모라를 부려버리고 끌어낸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너무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사람들은 별로 밉지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너무 미웠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큰 집을 지어달라고 내가 하나님께 어떻게 했는데 나한테 이럴 수 있습니까? 나한테 왜 이러는 거에요. 다른 사람들은 별짓을 다해도 그냥 눠두면서 나한테는 왜 이러는 거냐고요?
지나고나니 하나님, 왜 나를 이렇게까지 사랑하시는 거에요. 그냥 날 버릴 수도 있었잖아요. 가장 음란하고 가장 흉악하고 가장 역겨운 죄인을 왜 이렇게 사랑하시는 거에요. 그냥 놔두었다고 심판하면 됐을 텐데 말이에요. 내가 너를 버릴 수가 없어. 내가 인내하지 않고 너를 기다리지 않았다면 네가 회개하고 돌아와 나를 위해 집을 짓는 이 기쁨을 어떻게 누리겠니?
십자가의 은혜를 헛되이 받았던 지난날을 회개하며 이제는 정말 죽어야 마땅한 죄인을 죽이지 않고 기다려주신 하나님의 그 한량없는 사랑과 벌레만도 못한 죄인을 대속해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당할 길이 없어 가슴을 치며 내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어떻게든 나를 십자가에 못을 박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 좁을 길만을 가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인데 하나님은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하셨는지 말입니다. 이제 내가 주님을 위해 집을 지어야 합니다. 바울은 너희가 하나님의 집이며 성전이라고 한 것입니다. 내 몸을 하나님만이 거하는 성전으로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나를 부인하며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순종하는 그 믿음으로 살면 내가 하나님의 집이 되는 것입니다.
이 저주받고 쓸모없었던 몸이 가장 존귀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집이 되었으니 그것은 자신의 몸을 하나님의 집으로 지어가는 사람만이 아는 기쁨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내 몸을 하나님의 집으로 지어갈 때 하나님은 가만히 계십니까? 하나님은 그때에 하늘에서 나를 위해 내가 영원히 안식할 새 집을 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윗을 통해서 모든 성도들에게 하시는 약속인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겠다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집은 하나님 나라에서 지어져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짓고 계실까요? 지금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해 내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집을 짓고 있습니까? 내 몸과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까? 십자가에 나를 부인하여 내가 원치 않아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순종합니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십니까?
막연한 믿음과 확신으로는 되지 않을 겁니다. 헌 집을 달라고 하시는 하나님 앞에 헌 집을 내놓으셨습니까? 그 헌 집을 십자가에 못을 박았습니까? 여전히 헌 집에 살며 지키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나를 위해 새 집을 지으시겠습니까?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돌아보시고 십자가 앞에 나아가 헌 집을 다 파멸하고 이제는 내 몸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집을 짓는 그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하늘에서 나를 위해 새 집을 지어주시는 가장 귀한 복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