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울보입니다
정은희
울보가 되었습니다
살아온 시간만큼 눈물이 쌓였나봅니다
쨍한 햇살 한자락
가을하늘을 가로지르는 작은 벚꽃 한송이
마른 풀더미 속에서 고개드는 하얀 작은꽃
시멘트 틈새 파란 질경이들
공간을 뒤흔드는 찌바뀌의 울음소리
눈앞에 있었는데 순식간에 사라진 벌레들
가슴에 피멍을 안고 살아가는
그들의 애달픈 치열함이
눈물이 되었습니다
매일매일이 지옥같은 삶들이
살려는 의지가
사람도 다르지않음에 눈물이 납니다
살려고 잡은 한줄의 희망이
그만 그 줄을 놓아버리는 것이라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울보가 되었습니다
기억하지마세요
심장이 멎을만큼의 아픔이 삶이었던
그대는 이제 기억하지마십시오
당신이 어디에 있던
세상도 그대를 잊을 것이고
내 눈물도 어느날
더는 당신에게 위로가 되지 못할겁니다
히지만 아직은
나는 울보입니다
흘러가다가
정은희
모르겠다
기억해야할 것들도 잊어버리고
잊어야 할 것들로 외투를 장식하고 있는
그런 나인지도 모르겠다
저절로 일어나는 내 마음을 따라
기억도 잊음도 흘러간다
가다보면 어느덧 엉킨 나무뿌리에라도 닿지않을까
거기 작은 새로 난 뿌리근처에라도 기댈 수 있지 않을까
실뿌리 하나 잡고 손가락에 걸어본다
잊어버리고
다시 시작하자
그래 사랑하자
사랑만 흐르는 강물 속으로
스며들자
조금씩
늦었지만 조금씩
멀지않은 시간
내 기억이 사랑과 감사로 가득하고
당신에게도
따뜻한 미소로 기억되기를
흘러흘러 가다가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잔물결로 닿기를 소망한다
어쩌라구요
정은희
그까짓것
버리라 높은 산에 가서
99년의 세월을 보낸 어머니
그 긴 세월을 훅 던져버리신다
어쩌라구요
나는 어쩌라고 그리 말씀하시는지
마음이 시려와서 먹먹하다
어머니 가시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당신이 보고프면 어디로 가야하나
언니야
나는 모르는 산속에서 헤매게 될거야
높은 산 어디메서 엄마를 부르며
지난 기억들을 더듬으며
마침내 그 기억들도 왜곡되어
안개비 내리는 어디에서도
어머니 당신을 만나지 못하면
어쩌라구요
나는 어쩌라고 영혼 육신을 벗어나
새벽 숲속의 이슬방울이 되고자 하시는지
언니야
안된다고 말 좀 해 주라
내년 100세 생신도 무사히 보내시고
그 말씀 거두시라고 말 좀 해 봐라
잘 들으라고
무릎 앞에 앉혀놓고 하시는 말씀에
나는 엉킨 기억의 실타래 속으로 가라앉는다
혼자 세월을 삭히는 어머니
그리움의 무게를 줄이려고
바람이 되고싶은 당신을 안아봅니다